〈 39화 〉[재배치]
감염 군주가 제거된 지 일주일이 흘렀다. 피터는 전사한 케일을 대신해 공식적으로 소대장 자리에 올랐고, 두 동화된 자를 쓰러트린 공적으로 준위까지 5계급 특진을 받았다. 코리 또한 동화된 자를 쓰러트린 공적을 인정받아 중사, 즉 부소대장까지 특진을 받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대전차 유탄이나 수십 명의 보병과 홀로 싸울 수 있는 동화된 자를 단 2명이서 쓰러트렸다는 것은 특진을 받기 충분한 결과였다.
또한 그들이 피땀흘려 싸우던 오레스 01 행성 곳곳에서 티스에게 승리한 전선들의 소식이 울려퍼지며, 오레스 01 행성의 티스는 점점 섬멸되어가고 있었다. 연방군의 예상으로는 도망친 티스의 잔당을 처리하는 것이 이 행성의 종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피터와 그의 동료들이 투입된 전선은 이제 더이상 전략적 가치가 없었다. 더이상 티스의 공격도, 흙먼지와 살점이 나뒹굴던 참호전도, 포격으로 귀가 멍멍해질 정도로 지냈던 나날들도 이제는 겪을 필요가 없었다. 피터의 소대는 연방군 우주 궤도의 기지로 발령받게 된 것이다.
피터는 담배를 건네는 코리에게 정중히 거절하고 그와 같이 참호에서 피묻은 전장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코리의 담배가 치익하며 타들어가는 소리가 났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어. 고작 1년도 안돼서 말이야."
헬멧을 눌러 쓴 피터가 나지막히 말했다. 코리는 자신의 담배를 계속해서 빨아들였다.
"그리고 우리는 1년도 안돼서 뭔가를 죽이는데에는 도가 튼 사람들이 됐지."
"이곳에서 있던 나날들을 잊을 수가 있을까. 케일 중위.. 루이.. 마틴.. 순.. 로크.. 스퍼티.. 플레겔까지. 이들을 제외하고서도 죽은 동기들을 영원히 잊지 못할거야."
"...나도 그래. 그런데 어쩔 땐 너무 두려워. 나도 살아남지 못할까봐."
"그런 생각하지 마. 우리는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갈 거라고."
"그래. 너도 돌아가서, 에리랑 알콩달콩 살아야지?"
코리가 그를 보고 씩 웃었다. 그의 담배가 타들어가며 땅바닥에 재가 투툭 떨어졌다.
"뭐?! 야, 조, 조용히해!"
코리의 말에 주위에 있던 에리가 귀를 쫑긋 세웠다. 그런 그녀는 피터를 사랑스럽게 쳐다보았다. 피터는 그녀의 시선이 부담되어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려버렸다.
"크흠. 흠! 어쨌든. 우리는 오늘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발령받게 되었으니까... 앞으로 있을 8년간의 전쟁 중 첫 전장이었던 이곳을 잊을 수가 없다고."
"너만 그러겠냐. 아마 여기에 투입된 이들 모두가 그럴걸. 뭐,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을 일들이지만."
코리가 말을 끝내자 참호의 문이 열리며, 하겐과 칼리브레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피터, 수송선 준비됐대. 어서 움직이자."
"고마워. 하겐."
"야, 피터 준위님이라고 해야지! 이제 우리 지휘관님이시라고."
담배를 잠시 입에서 떼낸 코리가 하겐에게 장난치며 을러댔다. 칼리브레는 그를 보며 한숨을 푹 쉬고 하겐과 같이 나갔다.
"어휴, 저런 녀석이 우리 부소대장이라니."
"머 임마?"
"그만해. 이제 수송선에 오르자. 새로운 우주 궤도 기지는 어떨지 궁금한데. 에리! 애들한테 빨리 움직이라고 좀 전해줘."
"알겠어."
"너도 가야지. 늦겠다."
"응."
피터가 코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코리는 자신이 들고있던 담배가 끝까지 타들어가자 참호 바깥으로 휙 던져버렸다. 그는 피터를 따라 참호 바깥으로 나가기 전, 뒤돌아서 전장을 한번 더 내려다보았다.
곳곳에서 시체나 잔해를 태우는 플레이머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 옆의 공병들은 새로운 참호나 전략적 요충지를 건설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없어도, 이들은 굳세고 강하게 이겨내리라. 라고 코리는 생각했다.
"잘 있거라. 우리의 첫 전장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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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팔콘V-3, 피터 소대의 이륙 준비가 완료되었다. 나머지는 어떤가?"
피터 소대가 타고 있는 수송선의 조종병이 계기판의 무전기를 꾹꾹 눌러댔다. 그러자 다른 팔콘의 교신이 흘러나왔다.
"여기는 팔콘V-2, 플라탄 소대 이륙 준비 완료."
"여기는 팔콘V-1, 메이 소대 이륙 준비 완료."
"여기는 팔콘V-4, 즐탄 소대 이륙 준비 완료."
"알겠다. 오레스 01 우주 궤도 기지의 맨-홀 게이트에서 집합한다. 통신 종료."
"통신 종료."
이윽고 4대의 팔콘 수송선이 하늘 높이 떠올랐다. 그들은 손쉽게 오레스 01의 하늘을 벗어나 우주 공간으로 돌입하기 시작했다. 대기권을 돌파하며 모든 수송선들이 잠깐 흔들렸으나 그다지 위험한 것은 아니었다.
"여기는 팔콘V-1. 오레스 01 우주 궤도 기지에 진입했다. 나머지는 어떤가?"
"여기는 팔콘V-2, 현재 V-4와 동행하며 우주 궤도 기지에 거의 다다르고 있다. 2분 정도 소요될 것 같다."
"알겠다. 팔콘V-3는?"
"여기는 팔콘V-3, 소행성 구간을 비껴지나가느라 시간이 조금 소요됐다. 약 3분 정도 소요될 것 같다."
"알겠다. 게이트에서 대기하겠다. 통신 종료."
"통신 종료."
소행성들이 총알처럼 휘몰아치는 소행성 구간을 비껴지나온 팔콘V-3는 이곳저곳이 긁혀져 있었다. 만약 조금이라도 거대한 소행성이 이들과 정면으로 부딪혔다면,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었다.
팔콘V-3가 소행성 구간을 지나 오레스 01 행성 우주 궤도 기지에 도달했을 때, 3기의 팔콘 수송선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팔콘V-3의 도착을 확인한 팔콘V-1이 먼저 열리는 게이트 내부로 기체를 몰았다. 게이트 내부에서 에메랄드 빛 섬광들이 쏟아져 나오며 사람들의 눈을 적셨다.
"언제봐도 밝군."
어느새 조종석에 온 피터가 게이트 내부에서 나오는 빛에 자신의 눈을 가리며 말했다. 조종병이 그를 돌아보며 약간 놀란 표정을 짓자, 피터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말하고 자리로 되돌아갔다.
"뭐, 궁금해서."
활짝 열린 맨-홀 게이트 속으로 진입한 4기의 팔콘들은 선두에 선 팔콘을 따라 차원 내부를 이동했다. 맨-홀 차원 내부는 왜인지 참으로 따듯하고 편안한 기분이 드는 곳이었다. 피터는 차가운 수송선 내부에 있으면서도 맨-홀 차원 내부의 기운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여기는 팔콘V-1, *차원 따개를 가동하겠다. 차원 밖으로 나가면, 지정된 경로를 따라 메탄07 우주 궤도 기지에서 만나자."
(*차원 따개: 맨-홀 차원 내부를 가르고 나갈 수 있는 도구)
"알았다. 뒤를 따르겠다. 통신 종료."
팔콘V-1의 기체 아래에서 나온 기다란 포에서 빨간색 레이져들이 형형색색의 빛을 내며 뻗어나갔다. 레이져들은 차원을 마치 회를 뜨듯 베어나가더니 수송선들이 충분히 나갈 수 있는 커다란 구멍을 만들어냈다.
팔콘V-1이 구멍 밖으로 나가자, 나머지 기체들도 그의 뒤를 따라 따라나갔다. 모든 기체가 나오자마자 팔콘V-3의 무전기가 울렸다.
"팔콘V-1, 무슨 일인가?"
"여기는 팔콘V-1, 무언가 이상하다. 항로 지정이 되지 않은 곳이다. 어둠 뿐이다."
"??"
팔콘V-3의 조종병이 자신의 계기판을 두들겼다. 은하계를 간단히 소형화 시킨 맵이 홀로그램으로 팍 떴다. 그는 홀로그램을 살피며 자신들의 목적지인 메탄07 우주 궤도 기지를 찾아보았다. 그러나 그의 홀로그램에는 암흑만이 있었을 뿐, 그 어느 행성도 나와있지 않았다.
"여기도 문제가 생겼다. 팔콘V-1. 우리의 홀로그램 항로에도 목적지가 보이지 않는다."
"여기는 팔콘V-2! 여기도 문제가 생겼다. 홀로그램 항로가 먹통이다."
"팔콘V-4. 동일한 상황을 겪고 있다. 무슨 일이야?"
"모르겠다. 어느 우주 궤도 기지로도 교신을 보낼 수가 없다. 여기가 어디지? 알맞은 곳으로 나온거 맞아? 팔콘V-1!"
"여기는 팔콘V-1. 확실하게 나왔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하다. 온통 어둠 뿐일리가 없는데..."
모든 조종병들이 당황하며 자신들의 계기판을 두들기고 있을 때, 갑자기 계기판들이 전부 꺼졌다가 재가동되었다. 그리고는 홀로그램 항로에서 자신들의 목적지가 보이며 정상적으로 운행되기 시작했다.
"뭐지? 뭐야?"
"여기는 팔콘V-3, 항로가 재가동되며 모든게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귀소측은?"
"여기는 팔콘V-1, 정상이다. 돌아왔다."
"여기도."
"여기도."
"좋아. 일시적인 오류였나보군. 목적지로 다시 수송을 재개하겠다."
"알았다. 통신 종료."
무전을 끝낸 팔콘V-3의 조종병이 잠시 헬멧을 벗고 땀을 닦았다. 옆에 있던 부조종병이 무슨 일이었을까 하며 물어왔다.
"헤일. 무슨 일이었을까? 갑작스런 기기 고장이면 4기중 1개의 기체만 일어나도 희귀한 일인데.. 4 기체 전부 다 기기 고장을 겪다니. 뭔가 이상한데."
"... 잘 모르겠다. 나는 잠시 생각 좀 할테니까, 항로 수정이랑 조종 좀 부탁해."
"엉."
4대의 팔콘 기체들은 별이 빛나는 은하를 가로지르며 메탄07 행성 우주 궤도 기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조종병 모두가 갑작스런 오류에 놀란 마음보다, 어딘가 이상한 느낌에 찜찜함을 품고 있었다. 별들을 가로지르며, 몇 십분이 지났을까? 저 멀리 우주 궤도 기지의 커다란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팔콘들은 능숙한 솜씨로 기지 주위에 다가가 기지의 착륙장에 기체를 살포시 올렸다. 우주 바깥으로 돌출되었던 착륙장은 구우우 하는 커다란 소리를 내며 궤도 기지 내부로 수납되기 시작했다. 착륙장의 천장이 닫히며, 푸쉬익 하는 소리와 함께 산소들이 주입됐다.
"다 왔습니다. 하선하셔도 됩니다."
조종병 중 하나가 헬멧을 벗으며 피터에게 말했다. 피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의 대원들을 좌석에서 일으켰다.
"다들 들었지? 우리의 새로운 보금자리다. 가자!"
팔콘의 문이 열리며 피터의 소대를 비롯, 나머지 소대들도 착륙장에 발을 올렸다. 착륙장 내부는 천장이 마치 하늘같이 크고 넓었다. 하지만 이런 착륙장도 고작 궤도 기지의 20% 크기 밖에 되지않았음은 피터 일행이 나중에야 안 사실이었다. 그들이 팔콘에서 내리고 쭈뼛거리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궤도 기지의 병사들이 팡파레를 불거나 환호하며 그들을 맞이해 주었다.
"우, 뭐야. 완전 전쟁터 분위기가 아니라 잔치하는 기분이잖아. 안 그러냐."
코리가 피터에게 살짝 귓속말했다. 피터도 그처럼 이런 환영은 처음이었기에 조금 부담스러운 기분을 받고 있었다.
"흐음. 우리가 그만큼 반가운가 봐."
"환영합니다. 오레스 01 행성의 역전의 용사들이여. 저는 쿠셴입니다. 이제부터는 메탄07 행성 우주 궤도 기지의 일원이 되셨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덩치가 큰 병사가 앞으로 나섰다. 그의 등에는 장교의 상징인 망토가 매어져 있었다. 그는 자신의 병사들 몇명을 시켜 피터의 소대를 제외한 다른 소대의 인도를 명령했다. 병사 몇명이 경례를 하고는 다른 소대들을 인도하러 나가자, 쿠셴은 피터의 소대에게 기지를 간단히 소개시켜 주겠다며 그들을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