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8화 〉[이별] (38/131)



〈 38화 〉[이별]

"크아아아아아--!!"


온몸이 피투성이인 동화된 자가 자신의 생체검을 높게 들어올렸다. 케일을 부축하던 마리는 그대로 굳어버렸고, 나머지 결사대원들은 자신의 무기들을 꺼내들었으나 놈의 생체검보다는 빠를 수가 없었다.

"이익-!"

케일은 남은 한 팔로 자신을 부축하던 마리를 강하게 밀쳤다. 마리는 옆으로 밀쳐지며 데굴데굴 굴렀다. 곧 동화된 자의 생체검이 케일의 왼쪽 쇄골부터 가슴팍까지 대각선으로 그어버리더니 멈추었다.


"...!!"

동화된 자는 그 커다란 입에서 자주색 체액을 줄줄 흘리면서도 케일의 집념에 감탄하고 있었다. 케일은 남은 오른팔로 자신의 왼족 가슴팍을 자르고 있는 그의 생체검을 잡아 막아내고 있었다. 생체검의 칼날을 붙잡은 케일의 손에서 차폐복의 장갑들이 베이며 쇳소리가 났다. 케일의 가슴팍과 왼쪽 쇄골, 그리고 생체검의 칼날을 붙잡은 손에서는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크으으으... 크르르르!!!"


칼날이 케일의 몸에 박힌 상태로 옴짝달싹 할 수 없던 동화된 자가 분노에 몸을 떨며 칼을 움직여댔다. 동화된 자도 아까 전 코리와 피터의 공격에 의해 숨이 끊어질랑 말랑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케일은 자신을 베고 있는 생체검을 놓지 않았다. 그의 손바닥이 점점 갈라지며 베어지기 시작했다.

케일은 이대로 가다간 놈에게 베여버릴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쓰러지면 자신을 베어버린 이 개자식은 다른 대원들에게도 달려들 것이 분명했다.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이 놈을 쓰러트려야만 했다. 그는 헬멧의 바이져를 열고 핏덩이를 퉤 내뱉었다. 그는 자신의 차례가 왔음을 느끼고 있었다.


"피터--!!! 내가   기억하지!"


"...."


피터는 자신의 바이져를 열고 케일을 똑바로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머뭇거리는 팔런에게 다가갔다. 그는 팔런이 들고 있던 유탄 발사기를 뺏어들고는 케일과 동화된 자에게 조준했다.

"야, 야야야! 뭐, 뭘하려는 거야!! 미쳤어?! 중위님이 아직 살아있다고!!"


"해야만.. 하는 일을 하려는거야..."


피터는 유탄 발사기의 조준기에 눈을 가까이 가져다댔다. 하지만 유탄 발사기를 잡고 있는 그의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방아쇠에 올린 손가락은 한 눈에 봐도 고민하고 있을정도였다.


조준기를 통해 그들을 바라보며 고민하던 피터의 눈과 케일의 눈이 마주쳤다. 케일은 그에게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다.


"주, 중위님..."

피터의 눈에서 눈물  줄기가 주륵 흘렀다. 그도 쏘고 싶지 않았다. 케일 같은 상관을 잃고 싶지 않았다. 그 어떤 위험한 작전에서도 항상 선두에 섰던 자신의 상관을 잃고 싶지 않았다.

그가 유탄 발사기를 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자, 그의 마음을 알아챈 케일이 모두에게 들리도록 크게 외쳤다. 그의 입에서는 피가 울꺽울꺽 쏟아지고 있었다.

"피터!! 쏴라!! 쏴! 끄으..윽.. 빨...리! 더이상 잡아둘 수 없다!"


"으으으-!"


피터는 눈을 질끈 감으며 유탄 발사기의 방아쇠를 당겼다. 유탄이 회전하며 공기를 가로지르고 날아갔다. 유탄이 그들에게 직격하기 직전, 케일은 자신의 대원들이 들을 수 있게 헬멧의 무전을 켰다.

"이별이다. 모두들... 그리고.. 피터를 따라라."

"중위님-!"

중위에게 달려가던 팔런을 하겐과 코리가 제지했다. 그들 모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에리는 피터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린채 소대장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않으려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눈도 촉촉하게 젖어있었음은 슬픔의 증거였으리라. 곧이어 120mm의 고폭발 유탄이 그들에게 직격하며 폭발을 일으켰다. 불타는 화염과 재가 케일을 감싸며 매캐한 연기를 사방에 뿜어댔다.

새카만 연기가 걷히고, 케일과 동화된 자가 서있던 곳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까맣게 불타고 폭발한 증거인 재들만이 그들이 서있던 자리에 흩뿌려져 있을 뿐이었다.

"제길... 이게 말이 되냐구.."

팔런을 저지하던 코리도 그를 놓아주고 땅바닥을 주먹으로 쳤다. 하겐은 이가 뿌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물었다. 그의 볼에도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잘..했어. 잘한..거야.."


에리가 피터의 어깨를 두들기며 수송차량으로 그와 함께 걸어갔다. 나머지 대원들도 슬픔에 잔뜩 젖은 발걸음으로 터덜터덜 수송차량에 올라탔다.  모든 광경을 보고 있던 운전병은 자신의 헬멧을 푹 눌러쓰고는 운전석에 몸을 실었다.





"어, 저기 봐! 수송차량들이 온다!"


"뭐? 정말?"


참호 안에서 결사대원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던 병사들이 누군가의 말을 듣고 몰려들었다. 누군가가 가리킨 곳에는 몇 대의 수송차량들이 털털거리며 돌아오고 있었다.

"그렇게나 많이 나갔는데.. 결국 저 정도만 살아돌아온건가.."


"야, 그런말 하지마. 다들 죽음을 각오하고 나간거라고."

"알았어."


"중위님은 살아계실까? 피터는? 하겐은?"

케일 소대의 병사가 전장을 내려다보던 칼리브레에게 질문을 해왔다. 칼리브레는 그녀의 얼굴을 잠시 쳐다보고는 다시 수송차량들을 쳐다보았다.

"... 다들 살아있겠지. 걱정하지 말자."

"어?! 수송차량에서 사람들이 내린다! 가보자!"

멈춰 선 수송차량에서 대원들이 내리자, 병사들이 들뜨며 그들에게 달려갔다. 케일 소대의 소대원들도 달려나가자 칼리브레는 마지못해 그들의 뒤를 따랐다. 그는 수송차량에 가까이 걸어갈 때마다 속으로 자신의 동료들이 안전했으면 하고 바라고 있었다.

"(제발.. 다들 괜찮기를.)"

멈춘 수송차량의 게이트가 열리고 팔런이 먼저 내렸다. 그 뒤로는 마리와 하겐이 따라 내렸다. 병사들이 귀환한 그들을 보며 함성을 지르거나 작전을 성공했냐고 물어보며 소리질렀다.

"작전은! 작전은?!"


"녀석들이 돌아왔다! 와!"

"이봐, 조용히 해! 작전 성공 여부를 먼저 들어야 할 것 아니야!"


"우와, 저 녀석들 엄청 신기한 슈트를 입고 있잖아."


마지막으로 에리를 부축하며 나온 피터에게 모두의 관심이 쏠렸다. 차폐복의 헬멧을 벗은 피터는 잠시 당황했으나 그들의 질문에 하나하나 답해주기 시작했다. 에리는 그에게 질문을 쏟아대는 병사들을 보며 몰래 한숨을 쉬었다.

"작전은 성공했어?!"

"응. 감염 군주는 우리가 폭사시켰어. 놈은 죽었다."

"우와-!"


"이봐, 너희들이 입고 있는 그 슈트들, 뭐야?"


"이건 차폐복이야. 착용도 간단하고 신체 능력을 약간 상승시켜줘. 외부의 공기나 가스같은 유독성 물질들도 막아주지."

"이야- 멋진데?"


칼리브레는 차량에서 내린 자신의 동료들을 살펴보았다. 몇명이 없었다. 마틴.. 루이.. 스퍼티.. 그리고 케일 중위까지. 그는 불안함을 최대한 억누르며 피터에게 터벅터벅 걸어갔다. 피터가 칼리브레를 보고 그에게 시선을 맞추었다.

"칼리브레."


"피, 피터. 나머지 사람들은? 나머지는 어디갔어?"

"잠깐 진정해. 잠깐.."

"어디갔냐고!"

"칼리브레.. 그만해."

피터에게 부축받던 에리가 칼리브레를 막아섰다. 칼리브레는 잠시 차량 내부를 흘긋 보더니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하겐이 칼리브레를 보고서는 조심스레 걸어왔다. 칼리브레도 하겐을 보고는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하겐. 넌 역시 살아있을 줄 알았어. 어디서 죽을 녀석이 아니지."

"그래. 칼리브레."

"그런데, 루이나 중위님은 어디있는거냐?"

"... 그들은."


"아직 차량에 있는거지? 어디 다쳐서 움직이기 불편한건가."


"미안하다.."

"야, 갑자기 왜 사과를 하냐..?"

칼리브레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그도 그의 불안감을 더이상 억누를 수가 없었다.


"미안하다... 미안해... 그들은 작전 중 모두 전사했어. 마틴 헤콕스. 루이 브라운. 스퍼티. 케일 중위님까지..."


"..."

"할 말이 없다. 미안하다.. 내가, 내가 조금 더 강했더라면."

"...그런 오글거리는 소리 하지말고 들어가자."

칼리브레는 말을 마치며 뒤돌았다. 병사들이 그의 표정을 보고는 양옆으로 슥 비켜났다. 그의 어두운 얼굴에는 눈물이 길게 흐르고 있었다. 칼리브레는 터덜터덜 참호로 걸어갔다. 그런 그의 뒤를 살아남은 결사대원들이 걸어 따라가고 있었다.


모든 결사대원들이 참호 안으로 들어가자, 밖에서 잔뜩 질문하며 몰려들었던 병사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야, 쟤네들 소대장을 잃었나봐."


"그러게. 케일 중위였나.. 그 사람 언제나 위험한 작전에 선두로 섰던 사람이잖아. 진짜 따르고 싶었던 사람이었는데."

"분위기가 많이 안 좋네. 작전이 성공했는데도 말야."

"저 녀석들이 없었으면 누군가는 결사대원이 되었어야만 했을거야. 결사대 녀석들한테 고마움을 갖자고."


"그래. 그러자고."

작전을 성공시킨 결사대원들에게 기쁨의 함성과 축하를 해 주려던 병사들이 머뭇머뭇 참호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병사들도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결사대원들의 심정을 이해하고 있던 병사들은, 오늘은 기쁜 날이더라도 조용히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현재 느끼고 있는 기쁨과 감탄은 전부 죽은 결사대원들이 만들어준 것들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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