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10인의 결사대]
"중위님! 돌파당한 구역에서 생존자를 데리고 왔습니다! 1소대 녀석들입니다."
피터의 말에 글라디오로 감염자 목을 베어버리던 케일이 뒤돌아 보았다.
"뭐야, 1소대 녀석들? 나머지는? 나머지는 전부 당했나?"
"...그런 것 같습니다."
"좋지 않은 상황이군. 이쪽도 돌파당할 뻔 했다. 다행히 플레이머들이 즉시 지원을 와 줘서 살았지만. 그런데 플레겔은? 보이지 않네."
케일의 질문에 피터가 고개를 저었다. 케일은 고개를 젓는 그의 모습에 이마를 짚고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씨팔."
감염자들의 대대적인 침공이 끝나고, 시체가 가득한 전장에서 플레이머들이 시체를 모아 불태우고, 그 위를 연방 공군의 기동병들이 살아있는 감염자를 찾으며 느릿느릿 날고 있었다.
"좆같은 새끼들. 죽은 자들을 이용해? 씨발... 씨발!!"
코리가 분노에 주먹을 꽉 쥐고 참호 벽을 쾅 때렸다. 그의 분노가 참호 벽을 흘러 모든 소대원들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하겐과 칼리브레는 우울한 표정으로 글라디오를 닦아내며 전장을 쳐다보았다. 곳곳에서 시체 태우는 연기가 솟아오르는 전장은 정말 암울한 모습이었다.
"...아직 끝난게 아니야."
"뭐?"
하겐의 옆에서 그를 위로하던 루이가 얼굴에 물음표를 띄웠다. 피터는 중얼거리다가 벌떡 일어섰다.
"아직 끝난게 아니라고. 그렇지 않습니까, 중위님?"
"그렇긴 하지."
케일의 대답에 얼빠진 소대원들이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케일은 그들에게 말해줬던 감염 군주를 벌써 잊었냐고 말했다.
"내가 아까 말했던 감염 군주를 잊었나? 이제 상부에서는 감염 군주를 어떻게든 제거하려고 할거다. 제거하지 못하면, 또 다시 감염자들이 몰려올거야."
"말도 안됩니다. 저희같은 알보병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합니까?"
칼리브레가 이해가 안 된다는 제스쳐와 표정을 취했다. 케일은 그런 칼리브레를 보고 어깨를 으쓱했다. 자신도 딱히 이해는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연방군은 죽으라면 죽고 살라고 하면 살아야하는 자들이잖나."
케일의 말이 끝나자마자, 참호 내의 스피커가 지지직 거리며 울리기 시작했다. 곧 스피커에서는 어느 장교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전군에게 알린다. 전선의 감염자는 더이상 없으나, 놈들의 수뇌부를 치지 못하면 계속해서 몰려올 것이다."
"...그래서 어쩌자는 건지."
팔짱을 끼고 듣던 칼리브레가 고개를 저었다.
"피해가 적은 4구역의 각 소대에서 10명의 결사대를 차출하라. 사랑하는 이들을 살아있는 괴물로 부활시킨 티스에게 증오를 갖고 있다면 일어나라. 제군들의 증오를 무기로 놈들에게 맞서 싸워라.. 이상."
"..."
"..."
참호 내부는 잠시 조용해졌다. 다들 고민하는 듯, 침묵이 유지되고 있었다. 그런 침묵을 피터가 총을 뒤로 매며 깨어버렸다.
"내가 지원하겠어."
"...네가 간다면 나도 가."
에리도 그의 옆으로 붙으며 말했다. 시체를 불태우는 전장을 내려보던 케일은 그의 말에 얕은 미소를 지었다.
"역시."
"중위님도 가실겁니까?"
"당연. 나는 이미 감염 군주를 제거해 본 경험이 있어. 한번 더 없애버리는 건 일도 아니지."
"...더이상 없지?"
피터가 동료들을 쓱 훑어보았다. 그러자, 1소대의 생존자 2명이 벌떡 일어섰다.피터는 일어난 자들을 보고 내심 깜짝 놀랐다. 그는 마리와 이름모를 병사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마리...? 그리고 넌?"
"스퍼티."
"그래. 스퍼티. 너희 둘 진짜 갈 생각이야?"
마리와 스퍼티는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1소대의 다른 생존자가 마리의 손목을 잡고 가지 말라고 애원했다.
"마리, 가지마. 가면 죽는다고!"
"...줄리. 괜찮아. 난 안 죽어."
"마리..."
"용서할 수 없어. 내가 죽인 감염자 중에는 내가 믿고 의지했던 이들도 있었어. 티스는 그들에게 주어진 안식을 빼앗고 괴물로 만들어 일으켰어. 나는 이걸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그렇지, 스퍼티?"
"당연하지! 개새끼들."
"너희 1소대는 전멸한 것이 확실하냐?"
케일이 팔짱을 끼며 둘에게 물어보았다. 마리는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의 끔찍한 기억이 생각나는 것 같았기에.
"네."
"그럼 어쩔 수 없이 임시로 우리 소대에 편입해야겠군. 상부에는 전해 놓으마. 그건 그렇고... 이걸로 5명인데."
케일이 팔짱을 끼며 피터와 지원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용감하고 씩씩했지만, 8명이 채워지지 않으면 결사대는 커녕 아무것도 조직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소대장이 그렇게 고민을 하고 있을 때, 하겐 또한 마음속에서 고민과 고민이 파도처럼 몰아치고 있었다. 그는 솔직히 두려웠다. 아까 전, 하겐은 자신에게 달려들던 감염자들의 머리통을 박살내 버렸다. 그중에는 훈련소에서 같이 웃고 떠들며 함께했던 자들도 있었다. 그는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며 생각했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자신이 알고있던 이들이 되살아나 자신에게 손을 뻗친다면 눈 딱 감고 그들을 죽일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하지...?)"
"저도 지원할게요!"
"?!"
루이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하겐이 옆을 쳐다보았다. 손을 번쩍든 루이는 비장한 얼굴로 결사대에 지원하고 있었다.
"루, 루이.."
"뭘 고민해? 더이상 죽은자들이 안식을 빼앗겨서는 안돼. 나는, 우리는, 그들에게 안식을 되찾아 줄거라고."
루이의 올곧은 생각을 듣고 하겐이 땅바닥을 쳐다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그의 이마에는 땀 한 방울이 흐르고 있었다.
"너 답지 않은데. 그렇게... 순진하고, 여린 줄 알았던 녀석이었는데."
하겐이 으스러질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장갑의 가죽이 구겨지는 소리가 났다. 그는 마침내 결정하며 크게 외쳤다.
"...나도! 나도! 나도 가겠어!"
"좋아. 이로서 7명이군."
"우리도 갈 겁니다."
"팔런. 코리. 마틴."
케일은 셋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안심하고 있었다. 특히, 코리는 피터와 하겐 다음으로 케일이 믿고 있던 병사였기 때문이었다.
"플레겔은... 저희의 뒤를 봐 주다가 홀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죽는 그 순간까지 저희의 뒤치닥꺼리를 해 줬던 겁니다. 그리고 녀석은 잔혹하게 죽음을 맞이했어요. 같은 병사였던 자들에게 목숨을 잃고 말았다고요... 그리고 저는 이번 사건의 범인인 티스들을 결코 용서할 수 없습니다."
팔런이 플레겔에게서 떼어낸 이름표를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그는 플레겔의 이름표를 자신의 가슴팍 주머니에 다시 넣었다. 팔런이 말을 끝내자, 참호 벽에 기대어 서 있던 코리가 몸을 일으켰다.
"제가 지원한 이유는 간단해요. 만약 작전이 실패하면... 다시 전장에서 걸어오는 동료들을 쏴야하니까. 안식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그들에게 내 손으로 안식을 줘야하니까... 그런 일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아요."
"그래. 네 말이 맞다. 그렇기에 우리는 실패하지 않을거다.."
코리의 진심이 담긴 말에 케일이 동의했다. 그는 결사대에 지원한 소대원들의 의지를 다지기 위해 주먹을 높이 쳐들었다.
"10명이 모였네."
전의를 다지는 8명을 보며, 에리가 피터에게 속삭였다. 그녀는 10명이 모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어떻게든 모였어. 에리. 저들의 눈을 봐. 분노와 복수심으로 불타고 있어. 그럴만도 하지. 동료들을 쏴야만 했으니까."
피터는 동기들의 눈을 보며 조그맣게 감탄했다. 에리는 그런 피터에게 다시 속삭이기 시작했다.
"피터, 조금 뜬금 없지만... 하나 물어봐도 될까?"
"당황할 수 있는 질문은 아니라면."
"만약 결사대원들 중에서 감염자가 나오면, 너는 그들을 쏠 수 있어?"
"왜 그런걸 물어?"
"그냥."
"...솔직히 잘 모르겠네."
"나는 쏠 수 있어. 다른 이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내가 감염되어 변해버린다고 해도?"
"...그건 대답하지 않을래. 하지만 피터.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중요한 순간에 망설이게 돼."
"무슨 뜻이야?"
"알고 있으라구."
에리는 그렇게 말하고 자신의 헬멧을 푹 눌러썼다. 피터는 에리의 말을 곱씹으며, 그녀의 의도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소중한 것을 버리지 못하는 자는, 중요한 순간에 망설이게 된다라.)"
"그냥 해본 말이니까 너무 귀담아 듣지는 말고."
"알겠어."
에리와 피터의 담화가 끝나자, 케일은 결사대원들을 참호 밖으로 불러냈다. 9명의 결사대원들을 열중쉬어 자세로 세운 케일은 그들을 한명씩 깊게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의 대화나 마찬가지였다.
"좋아! 너희들은 다시는 오늘 같은 일들이 벌어지지 않게 목숨을 걸었다. 용기를 가져주어서 고맙다. 너희들이 내 소대원이라는 것이 너무나 기쁘고 자랑스러워. 그리고, 고맙다."
결사대원들은 비장한 눈길로 케일을 쳐다보았다. 케일은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그들을 밖으로 왜 불러냈는가에 대해 짧게 설명했다.
"이런 말을 하려고 불러낸 것은 아니라는 거. 너희들도 잘 알고 있겠지. 내가 이곳에 너희들을 불러낸 이유는, 내가 사망하면 소대의 지휘권은 누가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주기 위해서다."
그는 피터와 눈을 잠깐 마주쳤다. 피터는 케일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내가 죽는다면, 소대의 지휘는 피터가 맡는다. 어차피 이런 전장에서는 현장에서 굴렀던 이들이 지휘관으로 알맞다고 상부에서도 생각하더군. 고작 32명의 소대지만, 다음 소대장을 고를 수 있는 권한은 현 소대장에게 있는거야. 그래서, 내가 할 말은..."
"중위님이 전사한다면 피터가 대빵이란 말씀이군요."
케일이 말을 흐리자 코리가 캐치해 내고는 뒷말을 이었다. 케일은 코리의 말에 동의하하며 맞다고 대답했다.
"맞아. 그 말이야. 잘 알고 있군. 내 말 잘 알아듣겠지. 대원들?"
"네!"
"좋아. 얼마 안 있으면 각 소대에서 뽑힌 결사대들이 전부 모일거다. 나는 너희들의 정보와 작전을 정확히 들어야해서. 피터, 네가 동기들을 준비시켜. 알았지?"
"예."
"이따가 보자."
케일은 사령탑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9명의 결사대원들은 그의 뒷모습에 경례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