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으어어..."
"쏴! 쏴! 씨발!"
"으아아악! 물렸어! 물렸-!!!"
"피터! 피터!"
"...?"
"피터! 일어나. 벌써 저녁이야."
피터가 머리를 흔들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옆에는 에리가 걱정하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대체 무슨 꿈을 꿨길래 땀을 그리 흘리고 그래? 신음 소리도 냈다고."
에리가 피터의 볼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냈다.
"글쎄...무슨 꿈이었더라..."
피터는 이마를 긁적이며 무슨 꿈이었는지 되짚기 시작했다. 전장을 거니는 수많은 사람들. 그들에게 총을 쏘는 병사들. 하지만 전장을 거니는 이들은 어딘가 이상해 보였다. 발을 질질 끌고, 손을 앞으로 꼿꼿이 내민채 전선을 향해 느릿느릿 걸어오고 있었다. 잘 기억이 나지는 않았지만 그리 좋은 꿈은 아니었다.
"음. 모르겠어."
"그건 그렇고, 위에서는 잔치가 벌어지고 있어. 이쪽 전선은 이제 티스의 공격이 많이 잠잠해지게 될테니까."
"그래? 잘 됐네..."
"빨리 올라가서 뭐라도 얻어 먹자?"
에리가 피터의 손목을 잡아 침대에서 끄집어냈다. 그들이 지하 휴식실에서 나와 참호로 올라오자, 병사들은 승리를 축하하며 노래를 부르거나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만찬이래야 고기가 잔뜩 들어간 빵 정도였지만.
"여! 피터! 드디어 일어나셨군? 이거 먹어봐!"
에리가 끌고 나온 피터를 보며 반갑게 인사한 코리가 *스에티크가 가득 들은 커다란 빵을 건넸다. 마침 일어나서 배고팠던 피터는 코리의 선물을 고맙게 받아들였다.
(*스에티크: 7000년대 고기의 일종)
"오. 스에티크 육즙이 대박인데."
"그렇지? 그렇지? 그럼 이것도 마셔봐."
"이건?"
"헤헤."
목을 축이라며 코리가 건넨 것은 청록색의 에너지 드링크였다. 피터가 좋아하고, 코리도 좋아하는 그런 음료수였다. 고향에 있었을 때, 하루 일과를 마치고 이 음료수를 들이키는 것이 이들에게는 자그만 행복이었다.
"어떻게 얻었어?"
"보급 담당인 공병 녀석한테 몰래 말했지. 몰래 얻어다 줄 수 있냐고. 그리고 짠! 이렇게 된거지."
"이럴 땐 치밀하네. 어쨌든 잘 마실게."
스에티크 빵과 에너지 드링크를 건네받은 피터는 참호의 앞쪽으로 걸어가 자리를 잡았다. 그의 눈앞에는 어둡고 광활한 전장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가 빵을 한 입 베어물고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는데, 에리가 몰래 다가와 그를 놀래켰다.
"왕!"
"?!"
"뭘 그리 쳐다보고 있어?"
"...그냥. 우리는 이런 평화를 갖기 위해서 목숨걸고 싸웠던 걸까 싶어서."
드넓은 전장을 바라보던 피터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눈에는 티스의 잔해들과 이름모를 병사들의 시체가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저 중에는 자신과 훈련을 함께한 훈련소의 동기들도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피터는 조금 우울해졌다.
"너무 그런 생각에 빠지지는 마."
에리는 피터의 등을 껴안고 나지막히 말했다.
"결국 우리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이렇게 피를 흘려 이 행성을 지켜야 했을거야. 그저 우리가 선택된 것일뿐."
"그렇겠지... 이 은하계는 너무나 잔인해. 서로가 살기 위해 서로를 죽이잖아.."
"...반면에 아름답고 빛나기도 해."
"무슨 뜻이야?"
"있잖아? 피터.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해?"
"응."
"그때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새싹들이었지만 수송선 안에서 같이 우주를 보고, 은하계를 보고 아름다움을 느꼈어. 빛나는 행성과 별들을 보며 감탄하기도 했지."
"그랬어..."
"그만큼 우리는 잔인하지만 아름다운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거야. 그리고 그 아름다운곳을 무너트리려는 자들을 막아내려는 것 뿐이고. 우리는, 우리는...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는거야."
"... 네 말이 맞네."
참호속의 병사들이 제각기 승리의 기쁨을 누리고 있었을 때, 전선의 사령탑에서는 어느 장교가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는 곧바로 사령관실에 들어가 나일의 책상에 빨간 점들이 잔뜩 찍힌 레이더의 사진을 올려두었다.
"얀나. 뭐지?"
"준장님. 저희 쪽의 전선으로 티스들이 대량 접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합니다. 티스이면서 티스가 아닌, 무언가들입니다."
"뭐? 그게 무슨 뜻인지 정확히 설명해줬으면 하는군."
"...그게..."
-
"에리. 저기 봐."
"왜?"
"전장을 봐 봐. 뭔가가 어둠 속에서 움직이고 있지 않아?"
"...?"
피터가 가리킨 곳에는 어둠 속에서 무언가들이 꾸물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형체는 사람의 모습과 비슷해 보였다. 피터의 말에 열심히 떠들고 놀던 병사들도 잠잠해졌다. 그들은 피터 주위로 몰려들어 피터가 가리킨 곳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뭐지?"
"뭐가 움직이는데."
"설마 티스 아니야...?"
"에이. 이쪽의 티스는 거의 다 죽었잖아?"
"저, 저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바로 자신들의 동료이자 죽었던 연방군들이었다. 그들은 느릿느릿 발을 끌어가며 참호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어느 병사가 저 연방군의 대열 중에서 자신의 동료가 있다며 참호 밖으로 달려나갔다.
"알트먼! 알트먼이다! 살아있었구나!"
"야, 헤링! 어디가?!"
"알트먼!"
헤링이라고 불렸던 병사는 알트먼을 향해 달려가더니 그들의 앞에 멈췄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연방군들의 대열이 헤링을 천천히 응시했다.
-
"그게... 사실이야?!"
나일이 한 손으로 책상을 쾅 내리쳤다. 그의 다른 손에는 빨간 점들이 빼곡히 찍힌 레이더의 사진이 들려있었다.
"...사실입니다."
얀나는 고개를 떨군 채 대답했다.
"죽은 자들이 살아나서 걸어오고 있다니! 티스 놈들이 손을 쓴 게 분명하군!"
"*인류 보안부에서 저희가 주둔하는 오레스 01 행성에 감염 군주가 나타났다고 하더군요. 그 놈의 짓이 틀림없다고 합니다."
(*인류 보안부: 연방의 거대한 비밀 조직. 어마어마한 정보력과 대를 위해 소를 희생시키는 악랄한 방식을 사용한다.)
"알았어! 현 시간부로 전 병력 무장시켜. 어서!"
"수호!"
경례를 마친 얀나가 밖으로 나갔다. 나일은 주먹을 꽉 쥐며 조용히 분노했다.
"악랄한 벌레새끼들... 죽은 자를 욕보이다니..."
-
"알트먼. 살아있었잖아!"
헤링은 알트먼을 껴안고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숨인 것도 모른 채. 알트먼은 자신을 껴안은 헤링의 목을 날카로운 이빨로 물어뜯었다. 알트먼이 헤링의 목을 물어뜯자, 다른 이들도 달려들어 헤링을 물어찢기 시작했다. 헤링의 사지가 잘려나가며 하늘로 피가 솟구쳤다. 헤링의 내장은 배에서 길게 늘어뜨려져 그들의 게걸스러운 입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뭐야?!"
"씨발. 대체 뭐야?"
"전 대원! 무장해!"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케일이 소대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윽고 다른 소대의 소대장들도 자신들의 소대원들에게 무장을 하라며 외치는 소리들이 참호 내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헤링을 산 채로 잡아먹어버린 그들은 인간의 목소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괴성을 질러대며 느릿느릿 참호로 걸어왔다. 그들의 눈에는 인간일 적 생생함이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살점, 인간의 살점만을 원하는 눈이었다.
무장을 마친 참호의 병사들은 걸어오는 그들을 향해 무기를 겨누고 대기하고 있었다. 하겐이 식은땀을 흘리며 자신 옆에 있는 케일에게 조심히 물었다.
"저, 중위님. 저들은 대체 뭡니까?"
"...내가 일병이었을 때 딱 한번 본 적이 있지. 감염 군주. 티스는 자신들의 생체 조직을 공중에 흩뿌려 시체들을 감염시킨다. 죽은 이들에게 한번 더 생명을 부여하는 대신에 티스의 명령을 받드는 시체 인형으로 만들어버리는거야."
"그런게 있단 말입니까?"
"그래. 저들은 감염자야. 더이상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고 본질은 시체일 뿐이지. 저 자들이 살아있었을 적 너희들과 생사를 오가고 함께한 동료였다고 해도, 지금 저들의 눈에 우리는 맛있는 고깃덩어리로 보일 뿐이다. 대화도, 감정에 호소하는 것도 통하지 않아. 저들은 이미 티스나 다를 바가 없다."
"으어어어어...."
벌써 감염자들은 참호를 향해 언덕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병사들은 모두 굳어 그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자신과 같은 훈련병 동기, 너무나 사랑했던 연인, 믿음직한 상관, 뒤를 맡기고 안심할 수 있었던 전우 등...
병사들과 감염자들이 몇십미터를 남겨두고 대치 중이었을 때, 참호 내의 스피커들이 치익 거리더니 나일 준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여기는 나일 준장. 지금 상황에 모두가 당황하고 있음은 이해하고 있다. 저들 중에는 너희들이 사랑했던, 혹은 믿었던, 의지했던 자들이 있었겠지! 하지만 그들은 더이상 너희들이 아는 사람이 아니다! 저들은 괴물이다! 저들에게 상처입지 마라, 긁히고 물리지 마라! 병사들이여, 티스에게 잠식되어 일어난 불쌍한 자들에게 안식을 선물해 주어라. 그들이 전선을 넘게하지 마라!"
"발사!"
글라디오를 뽑은 구역 사령관인 준령이 명령을 내렸다. 병사들은 일제히 감염자들을 향해 사격했다. 개중에는 자신의 옛 지인들에게 총을 쏘는 것이 가슴 아파 눈을 감고 방아쇠를 당기는 자들도 있었다.
"으어어..."
"크워어..."
선두에 서 있던 감염자들이 총탄에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그중에서 '완전히' 죽지 않은 자들이 훨씬 많았다.
"뭐야!? 맞췄는데, 안 죽어!"
"나도! 분명히 가슴팍을 뚫어버렸는데..!"
병사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겁먹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케일은 그 말을 듣고 머리를 노리라며 모두가 들을 수 있게 외쳤다.
"머리를 노려! 머리를! 머리를 정확히 파괴해야 숨통을 끊을 수 있다!"
"다시 쏴라! 다시 쏴!!"
준령의 명령에 자세를 다시 잡은 병사들은 감염자들의 머리를 조준하고 사격했다. 비틀비틀 움직이는 감염자들의 머리를 총탄이 뚫고 지나가며 퍼석하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감염자들의 숫자는 전혀 줄지 않았다. 앞쪽의 감염자들이 죽어나가면 곧바로 뒤에 서 있던 감염자들이 공간을 메꾸어 버렸다. 감염자들은 크나큰 타격 없이 점점 참호로 가까이 다가왔다.
콰앙- 콰앙- 콰앙-
참호 뒷 편에 널려있는 타격포들이 발포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감염자들의 대열 중간에서 타격포의 포탄들이 터져나가며 감염자들의 사지와 체액을 사방에 흩뿌렸다.
그러나 그것은 파도에 돌멩이를 던지는 꼴이었다. 어둠 속에서는 끝없이 감염자들이 걸어나왔다. 심지어 부패가 어느정도 진행된 감염자들도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티스는 죽은지 오래된 인간조차 감염자로 부활시킨 것이었다.
"놈들이 들어온다! 놈들이 들어온다!"
병사들이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가 참호 내에 울려퍼졌다. 이윽고 케일의 소대 옆 소규모 구역에서 감염자의 파도가 참호를 뚫어버리고 밀려들어오기 시작했다.
"으악!! 으아아아악!"
"무, 물렸어! 도와줘! 누가!!"
"으워어어..."
"구역이 돌파당했다! 지원! 지원을 요청한다!!"
소규모 구역의 참호를 뚫어버리고 참호 내부로 들어온 감염자들은 곧바로 병사들의 살점을 탐하기 시작했다. 감염자들에게 물리고 잡아먹히는 병사들이 비명을 질러댔지만 감염자들의 신음에 묻혀버리고 있었다.
"피터! 몇명 데리고 가서 지원해! 이쪽은 우리가 막는다!"
"네?!"
"빨리!"
"알겠습니다!"
케일의 명령에 피터가 참호 뒤쪽으로 빠졌다. 그는 코리, 에리, 팔런, 플레겔을 데리고 돌파당한 소규모 구역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참호 내부를 달려가는 5명은,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비명과 고통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어느 병사가 산 채로 감염자 2명에게 잡아먹히며, 그의 내장이 참호 바닥을 더럽히는 것도 목격했다. 그 감염자들은 에리와 하겐이 총기를 난사해 머리가 없는 두 구의 시체로 만들어버렸다. 죽었지만 감염이 진행되며 몸을 비트는 불쌍한 병사는 피터가 단 한발로 안식을 선사해 주었다.
소규모 구역에 다 와가며, 피터는 동료들에게 한 가지를 당부했다.
"절대 물리지마. 긁히지도 마. 놈들처럼 변한다!"
"그래!"
참호 내부의 게이트를 열어 소규모 구역으로 진입한 그들은 참혹한 광경을 목격해 굳어버렸다. 이미 소규모 구역 내부는 도살장처럼 변해 감염자들이 같은 인간을 잡아먹는 곳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누군가의 뜯겨진 다리를 잘근잘근 씹던 감염자가 피터 일행을 바라보고는 신음이 섞인 괴성을 내질렀다
"크아아아아아---"
"온다!"
이윽고 수십의 감염자가 비틀거리며 그들에게 다가왔다. 양팔을 앞으로 겨눈 채, 피와 살점이 뒤엉킨 입을 벌리며.
"이정도로 가까우면 머리를 노리기 쉬워! 다들 겁먹지 말라고!"
피터가 선두에서 먼저 다가오던 감염자의 머리를 레이져 탄환으로 쏘아 녹여버렸다. 그의 총기 하단부에 달린 레이져 응축기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러나 다른 감염자들은 서서히 그들을 향해 포위망을 조이고 있었다. 하겐이 그들의 전진을 막기 위해 산탄총을 들어 총구에서 불을 뿜자, 3명의 감염자가 머리와 가슴팍에 구멍이 뚫리며 나가 떨어졌다.
근접한 감염자가 썩어가는 이가 가득한 입을 벌리며 코리를 물어뜯으려고 하자, 팔런이 총의 개머리판으로 머리를 박살내어 버렸다.
"이 개자식!"
"고, 고마워! 팔런!"
"더 온다! 제기랄... 생존자는 없는건가?"
플레겔이 텅텅 빈 탄창을 빼내 휙 던져버리고는 새 탄창으로 갈아 끼웠다. 플레겔의 말을 들은 피터가 엉망이 된 참호 내부를 재빨리 살폈다. 감염자들에게 가려져서 잘 안 보였지만, 누군가가 살아서 저항하고 있었다.
"생존자가 있어! 저쪽에!"
피터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감염자가 상당히 몰려있었다. 그러나 그런 감염자들 사이로 총기의 섬광과 총성이 번쩍이고 있기도 했다.
"구해야 되냐..?"
팔런이 SK-2 소총을 앞으로 겨누고 피터를 돌아보았다. 피터는 잠시 고민했다.
"...애초에 우리는 이곳에 도와주러 온 거잖아."
"피터 말이 맞아."
하겐이 고개를 끄덕이며 하체가 잘려 버둥거리는 감염자의 머리를 군화로 짓뭉개버리며 말했다. 군화의 바닥에 있는 스파이크들이 감염자의 썩어가는 뇌를 조각조각으로 찢어버렸다.
"우리는 이들을 도우러 온 거야. 생존자가 있다면 구해야해."
"그럼 움직이자!"
코리가 화염 수류탄을 옆구리에서 뽑아 던졌다. 화염 수류탄은 10m 정도를 날아가 폭발했다. 다행히 파편이 존재하는 수류탄은 아니었기에 피터 일행에게 출혈은 없었다. 감염자들의 몸에 화염이 옮겨붙자, 그들은 근육이 타들어가는 소리를 내며 털퍽 쓰러졌다. 그들은 화염에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근육이 타들어가며 오그라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쓰러져서 느릿느릿 움직이는 감염자들의 머리에 총알을 선물해준 피터 일행은 감염자가 잔뜩 몰려있던 참호의 구석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몇몇의 생존자들이 무기를 쥔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잠깐! 쏘지마. 우리는 로스토크 1중대 4소대의 지원병들이야. 생존자들은 너희가 다인가?"
"...피터?"
생존자들 사이에서 누군가 피터의 이름을 불렀다. 피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른 사람을 자세히 보자, 피터의 이름을 부른 여자가 그의 양어깨를 붙잡았다.
"피터! 여기서 다시 보게 되다니!"
"마리? 살아있었잖아?"
"기억하는구나..."
"쟤는 누구냐?"
플레겔이 코리를 쿡쿡 찌르며 물었다. 코리는 플레겔에게 어깨를 으쓱하며 자신도 모른다는 제스쳐를 취했다.
"마리. 반가운 건 알겠는데, 생존자들은 너희 7명이 다야?"
"...응."
"그럼 빨리 이동하자."
에리가 그들의 사이에 갑자기 끼어들며 말했다. 그녀는 피터의 손목을 잡아끌며 어서 가자고 눈빛으로 쏘아붙이고 있었다.
"그, 그래. 너희들은 뒤에서 잘 따라와. 우리가 우리 구역까지 인도할 테니까. 다친 사람은 없지?"
"응!"
"하겐, 네가 산탄총을 들고 있으니까 선두를 맡아. 믿고 맡겨도 되겠지?"
"당연하지. 가자고!"
플레겔이 게이트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하겐이 샷건을 앞으로 겨눈 채 달려갔다. 피터 일행과 1소대의 생존자들고 게이트 바깥으로 나가고, 플레겔이 후미에서 그들을 엄호하며 게이트를 나가려는데 시체 사이에 누워있던 감염자가 벌떡 일어나 그를 덮쳤다.
플레겔은 글라디오를 뽑아 휘두르려고 했으나 그의 팔을 위로 젖혀버린 감염자는 그의 목을 물어뜯어 경동맥을 끊어버렸다.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며 감염자의 얼굴과 플레겔의 목덜미를 적셨다.
"으아아..."
피가 기도로 넘어가 비명도 지르지 못한 플레겔은 감염자에게 목덜미를 내주며 죽어가고 있었다. 감염자는 플레겔의 목을 뜯어먹으며 음미하고 있었다. 플레겔의 숨이 넘어가는 소리를 들은 팔런이 뒤돌아 비명을 질렀다.
"플레겔!!!!!"
"?!"
"뭐야!"
피터 일행이 팔런의 비명섞인 외침에 뒤돌아보니, 플레겔의 잔혹한 최후가 눈에 들어왔다.
"이 씨발 새끼가-!"
코리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플레겔 위로 올라탄 감염자를 걷어찼다. 감염자는 몇바퀴를 데굴데굴 구르더니 비틀거리며 일어서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
코리는 SK-2 소총을 겨누고 난사하기 시작했다. 그의 총구에서는 쉴새없이 불이 뿜어져 나왔다. 총탄은 공기를 찢으며 날아가 감염자의 몸에 날아들고 있었다. 감염자의 양팔이 총탄에 떨어지고, 가슴팍은 뒤의 풍경이 보일 정도로 카다란 구멍들이 잔뜩 나고 있었다. 감염자는 총탄에 맞아 이리저리 몸이 뒤흔들려졌음에도 가래끓는 소리를 내며 코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윽고 코리의 총탄이 감염자의 머리를 뚫어버렸다. 순식간에 머리에 수십 발이 꽂힌 감염자는 갈색의 뇟조각을 참호 천장에 흩뿌리며 털썩 쓰러졌다. 코리의 총에서는 탄약이 다 떨어져 딸깍거리는 소리가 났다.
"...코리. 그만해. 죽었어."
"하지만... 하지만..."
"팔런. 플레겔을 자유롭게 해 줘."
"...알았어."
에리의 말에 팔런이 플레겔의 머리에 총구를 댔다. 플레겔의 늘여뜨려진 팔이 심하게 경련하고 있었다. 아마 이를 그대로 둔다면 플레겔은 곧 살아있는 시체가 되어 일어날 것이리라. 플레겔은 느릿느릿 눈을 뜨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생기가 없었다.
"미안하다.. 플레겔."
팔런은 눈을 감고 방아쇠를 당겼다. 한 발의 총성이 참호 내에 울려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