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전면전]
"전방에서 랩터와 스피터 무리가 접근중! 전군, 태세를 갖춰라!"
이번 작전의 지휘관인 기갑단의 대령이 선두에서 모두에게 크게 소리쳤다. 앞서가던 돌격 전차들은 모두 멈춰섰고, 기갑 기동병들은 전차 사이사이에 빼곡히 서 자신들의 방패로 길목을 막아버렸다. 일반 보병들은 그들의 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랩터와 스피터의 소규모 정찰대는 그들에 침을 흘려대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에게 총기와 전차 포들이 겨눠지고 있었으나 전혀 굴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들에게는 두려움이 없어보였다. 그들은 단지 인간들의 살을 탐할 생각 뿐이었다.
곧이어 3마리의 랩터가 흙먼지를 헤치고 달려나왔다. 랩터들이 가진 더러운 아가리가 벌려짐과 동시에 기갑기동병들의 양팔에 달린 AN-194 기관포가 불을 뿜었다.
"전진! 전진!"
가만히 멈춰 서있던 돌격 전차들의 캐터필러(탱크의 바퀴)가 굴러가며 달려드는 랩터들을 짓밟아 뭉개버렸다. 랩터들의 머리가 짓뭉개지며 체액들이 땅에서 솟구쳤다. 기갑기동병들은 달려드는 티스 개체들을 방패로 밀쳐버리거나 기관포로 후려쳐 땅을 구르게 만들고는 즉각적으로 사살하였다. 근접한 상태에서 기관포를 온몸에 맞은 랩터나 스피터들은 상체가 박살이 나며 고깃덩어리들로 변해버렸다.
"보병단도 전진해!"
"예!!"
보병들도 제각기 글라디오를 뽑아들거나 총을 쳐들고는 진격에 박차를 가했다. 참호에서 티스의 공격을 버티기만해 오던 병사들이 드디어 전면전에 돌입하게 된 것이었다. 대열 이곳저곳에서 비명과 함성이 쏟아져 나왔다.
"으아아아-!"
저번의 부화굴 타격 작전이 효과가 있었는지, 티스의 숫자는 상당히 적었다. 기갑단의 화력까지 갈 필요도 없이, 보병들의 대열을 이룬 사격에도 맥을 못추고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이거! 이렇게만 가준다면 어렵지 않겠는데?!"
코리가 흥분하며 자신의 총기를 장전했다. 케일의 소대는 조금의 손해도 없이 교전을 끝낸 상황이었다. 피터도 처음 맛보는 승리에 희열을 느끼며 코리에게 맞장구쳤다.
"그러니까! 전열을 갖춰서 맞서니까 덤벼오지를 못하잖아!"
"아직 자만하지마라. 우리는 정찰대를 쓰러트린거야! 놈들의 본대는 아직이다."
소대원들이 흥분에 술렁거리자, 케일은 그들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그의 말대로, 아직까지는 정찰대 수준의 무리와 마주친 것 뿐이었다. 부화굴이 타격당했지만 티스는 아직 오레스 01 행성에 건재하고 있었다. 케일은 비장한 얼굴로 생각했다. 이렇게 자만하다간 모두가 목숨을 잃으리라라고.
"전군 대기!"
소규모의 티스 무리를 간단히 물리친 연방군들은 대령의 명령에 잠시 멈추었다. 병사들의 대열에서 대기하라는 소리들이 울려퍼졌다.
"전군 대기! 대기!"
"대기 명령이다!"
"대원들. 멈추랜다."
케일이 소대원들을 돌아보며 망토를 휘날렸다. 갑작스레 진격이 멈추자, 병사들 사이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뭐야?"
"왜 멈춘거지."
"앞을 봐!"
"오, 바로 앞에 놈들의 건축물들이 보이잖냐."
"진짜잖아? 돌격 전차들이 가리고 있어서 잘 안 보였어."
"이제 진짜 전면전인가?"
수군거리는 것은 케일의 소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코리는 피터와 에리를 향해 떠들어대고 있었고, 하겐은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하는 루이의 어깨를 툭툭 쳐 주며 응원하고 있었다. 칼리브레는 자신의 허벅지에 묶인 글라디오를 한번 빼 날카로운 날을 확인하고 다시 집어넣었다.
병사들의 진군을 멈춘 대령은 병사들의 헬멧에 달린 무전기로 현재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는 병사들의 사기를 돋구는 말도 잊지 않았다.
"현재 우리의 400m 앞에는 놈들의 부화굴과 혐오스러운 건축물들이 존재한다. 우리는 애초에 그것들을 불태우고 파괴하기 위해 이곳에 왔지. 우리 연방군은 놈들의 가여운 살덩이에 총알을 박아넣어주고 그들의 머리통을 군홧발로 짓밟아버릴 것이다. 이번 작전이 끝나면 우리 모둑 기나긴 전쟁에서 잠시동안은 해방되겠지! 이 행성에 평화를 가져오자! 연방을 위해 자신을 바쳐라! 연방을 위하여!"
"와아아아-!!"
돌격 전차의 360mm 텅스텐 포탄이 티스의 번식지를 강타하는 것을 시작으로, 기갑단과 보병단의 마지막 진격이 시작되었다. 번식지를 공격받은 티스들은 잠시 주춤했지만 이내 하나 남은 부화굴과 그들의 혐오스러운 건축물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파도처럼 몰려나온 티스들은 선두로 돌격한 기갑기동병들을 싸그리 흽쓸어버렸다.
"쏴! 사격! 사격!"
기갑기동병들의 기관포들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파도같은 티스의 무리에는 그렇게 큰 타격을 주지 못했지만 수많은 티스들이 기관포에 터져나가며 명을 다했다. 하지만 티스의 거대한 파도는 결국 연방군 대열 전체 휩쓸었고, 연방군의 병사들은 강제적으로 백병전에 돌입하게 되었다.
돌격 전차 위에서 지휘를 내리던 대령은 자신의 글라디오를 뽑아들며 티스들을 향해 겨누었다. 그는 모든 병사들을 돌아보며 목청이 터져나가라 크게 외쳤다.
"놈들을 하나도 살려두지 마라!! 연방을 위하여-!"
그는 곧바로 돌격 전차를 뒤집어버린 스웜가드에 의해서 죽음을 맞았다. 스웜가드는 뒤집은 돌격 전차를 자신의 발 아래에 깔아버리고는 꾸욱 눌러 파괴시켜버렸다. 놈은 적어도 25m 이상은 되어보이는, 거대한 놈이었다.
"이제부턴 각자 생존해야한다! 살아서 보자!"
소대원들에게 살아남으라는 명령을 내린 케일은 글라디오를 뽑아 달려오는 랩터를 이등분으로 베어버렸다. 세로로 잘린 랩터는 공중에서 바르르 떨더니 피를 쏟으며 죽음을 맞이했다. 피터도 마찬가지였다. 피터는 땅에서 갑자기 솟아오른 스피터에 크게 당황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소총의 레이져 응축기에서 레이져 탄환을 발사했다.
빨간색의 레이져 탄환은 스피터의 가슴을 새까맣게 물들이는 것도 모자라 관통하며 녹여버렸다. 스피터는 가슴에서 고기의 탄내를 풍기며 쓰러졌다.
"이런 씨팔!"
"하겐!"
그가 스피터를 겨우 쓰러트리고 동료들을 돌아보니, 하겐이 근접한 랩터 한 마리와 심하게 몸싸움을 하고 있었다. 랩터가 갑작스레 덤벼서 그런지, 그는 글라디오를 뽑지도 못하고 소총으로 랩터의 손톱을 막아내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힘이 빠지면 랩터의 날카로운 손톱이 그의 양팔을 잘라버리거나 목의 경동맥을 삭 그어버릴 것이 분명했다.
"으럇!"
하겐을 위해 몸을 던진 것은 코리였다. 그는 랩터를 걷어차 자신에게 이목을 집중시키게 만들고는 격투가처럼 자세를 취했다. 랩터는 걷어차여진 충격에 머리를 한번 흔들고는 더러운 아가리를 쩌억 벌리며 뒷발에 힘을 주었다. 랩터가 그와의 거리를 20cm도 남겨두지 않았을 때, 코리는 양주먹을 내질렀다.
"코리!"
로쉐 장갑을 낀 코리의 양주먹이 랩터의 턱 양옆으로 꽂혔다. 주먹에 턱을 맞은 상태로 굳어버린 랩터였지만 코리는 자비가 없었다.
"revir revir revir revir revir revir revir-!"
(흐바 흐바 흐바 흐바 흐바 흐바 흐바)
코리는 자신만의 기합을 뱉으며 주먹을 사정없이 휘둘렀다. 로쉐 장갑 덕분에 철판도 구멍을 내버릴 파괴력과 시속 200km는 나올 주먹의 속도는 그야말로 무서운 위력이었다. 주먹 세례를 맞은 랩터의 얼굴과 턱은 점점 뭉개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얼굴이 완전히 뭉개진 랩터에게 코리가 힘을 담은 마지막 주먹을 내질렀다.
"*Au revir."
(*'잘 가라.')
수십번의 주먹 세례와 강력한 마지막 일격을 받은 랩터는 마지막 타격으로 4m는 뒤로 날아가 뻗어버렸다. 코리의 마지막 타격으로 랩터의 숨이 끊어진 것은 확실해 보였다.
하겐은 맥이 풀렸는지 다리를 한번 비틀거리고는 코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코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등에 맨 총기를 꺼내들었다.
"으읏!"
피터가 다른 동기들에게 잠시 신경썼을 때, 랩터 2마리가 그를 둘러싸고 으르렁거리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랩터 2마리는 곧바로 피터에게 달려들었고 피터는 한 마리를 글라디오로 베어버렸지만 다른 한 마리는 미처 죽이지 못했다. 피터의 눈에 랩터의 쩌억 벌린 입 속이 가득찼다. 새까만 랩터의 입속은 마치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도 배가 고픈 블랙홀 같았다. 피터는 자신에게 다가올 고통에 눈을 질끈 감았다.
콰악-
그가 두려워했던 고통은 찾아오지 않았다. 랩터의 16t이 넘는 치악력을 맛 볼일도 없었다. 피터는 자신에게 찾아오지 않은 고통에 의아하며 눈을 떴다. 자신을 구해준 것은 그녀, 바로 에리였다.
"괜찮아? 왜 바로 다음 녀석을 베지 못한거야?"
에리는 랩터의 체액이 잔뜩 묻은 자신의 로쉐 장갑을 털고 있었다. 피터가 옆을 돌아보니, 머리가 함몰된 랩터가 충격에 다리를 부르르 떨며 죽어가고 있었다. 랩터의 아가리가 피터의 살을 탐하기 직전, 에리의 '주먹'이 또다시 그를 구한 것이었다.
"이걸로 두번 구했다?"
로쉐 장갑을 털어내고 다가오는 다른 티스들을 향해 소총을 겨눈 에리가 말했다. 피터는 그녀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그녀는 정말 지켜준다고 약속하면 약속을 지키는 여자였다. 역시 에리는 자신의 등뒤를 맡길 수 있는 여자였다.
"뭔가 이상하다! 땅이 이상해!"
티스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어, 연방군의 승리가 가까이 다가왔을즈음 어느 이름 모를 병사가 겁에 질려 외쳤다.
"땅이 움직인다! 따, 땅이 움직여! 이 아래에 무언가가 있어!"
그 병사의 말을 들은 다른 병사들도 가만히 멈춰 땅의 진동을 느꼈다. 역시 이상했다. 거대한 무언가가 땅속에서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런 땅의 흔들림을 잘 느끼지 못한 병사 한 명이 뭐냐고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뭐야? 뭐가 이상하다는거야? 아무 일도 없는데?"
"아냐! 땅속에서 무언가 큰 것이 움직였다고!"
"말도 안돼. 땅속에서 움직일-"
투덜거리던 병사가 서 있던 땅이 무너지며 하늘 높이 솟구쳤다. 그 병사는 땅에서 솟구친 거대한 무언가에 의해 몇십미터를 날아 땅으로 떨어져 추락사했다. 땅에서 솟구친 것을 보며, 모든 연방군은 굳어버렸다. 케일만이 굳지 않고 땅에서 솟구친 커다란 괴물을 쳐다보며 크게 외치고 있었다.
"기간트다!!"
케일의 말에 병사들이 혼비백산하며 흩어졌다. 땅에서 솟구친 크기 45m의 기간트는 천지가 울리는 괴성을 지르며 자신의 날카로운 팔을 휘둘렀다. 기간트는 마치 돌고래처럼 하늘로 뛰어올라 다시 다른 곳으로 파고들었다. 기간트가 뛰어든 곳에는 커다란 구멍과 수십 명의 병사가 저항 한 번 못해보고 납작하게 깔려 죽은 시체만이 남아있었다.
"구, 구멍에서 티스가 올라온다아!"
어느 병사가 겁을 잔뜩 집어먹고는 구멍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기간트가 파놓은 지름 14m의 구멍에는 티스 개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숫자의 티스가 튀어나오는지, 부화굴과 건축물을 불태우던 기갑단과 플레이머들도 보병들을 돕기 위해 달려왔을 정도였다.
기간트의 습격과 갑자기 불어난 티스 군단에 의해, 연방군은 커다란 피해를 입고 있었다. 수백만의 티스 무리와 수십 만의 연방군이 뒤엉켜 죽이지 않으면 죽는 전투를 치루고 있었다. 불행히도, 연방군의 피해는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티스는 죽고 죽어도 금방 복구되는 특징을 갖고 있었지만 진격 작전에 참가한 연방군은 계속해서 숫자가 줄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장의 모든 병사들에게 절망이 점점 고개를 들고 있었다.
"제기랄... 이러다 전부 죽겠어."
활발하고 용기있는 코리조차 절망에 차 한탄하였다.
"지원은, 지원은 오지 않는건가?"
케일이 무전기를 등에 매고 있는 팔런을 보며 말했다. 팔런은 들어온 무전이 없는지,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피터... 걱정하지마. 내가 있잖아."
에리는 피터에게 가까이 다가오며 안심시키는 눈으로 그와 눈을 맞췄다. 피터는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피터는 불안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대로 가다간 이 작전에 투입된 모든 연방군이 전멸할 것이 불보듯 뻔했다. 지금 병사들의 화력으로는 기간트는 커녕 스웜가드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그가 절망을 느끼며 이를 꽈득 물고 주먹을 쥐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