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진격 작전]
폭파 공작을 끝낸 므트마 대원들이 우주 궤도의 연방군 기지로 복귀한지 4일이 지났다. 그러나 아직도 수많은 연방 육군 보병들은 전선을 지켜야만 했다. 행성 전역에 깔려 있는 부화굴과 티스의 구역중 일부만이 타격을 받은 것이라, 아직 오레스 01에서 티스를 몰아내기엔 턱없이 부족한 공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케일 소대가 주둔하고 있는 전선에는 어느 한가지 소문이 감돌고 있었다.
"야 피터, 요즘 참호 내에서 도는 소문 알아?"
"뭐, 다른 소대에서 애라도 낳았대냐?"
"아니! 그딴거는 관심없고. 우리가 곧 진격한데."
"엥? 진격?"
연어빵을 씹던 피터는 코리를 어이없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진격이라니, 티스 군단을 상대로 진격? 피터는 목이 마른지 컥컥 대며 자신의 가슴팍을 쳤다. 코리가 그를 보며 물병을 건네주었다. 피터는 물을 한가득 마시고 다시 말을 시작했다.
"오, 고마워. 아무튼, 우리가 진격을 한다고?"
"그래. 기갑단에서 진격을 하면 우리가 그뒤를 따라가는거야."
"말도 안돼는 소리지만, 어디로 진격하는데? 목표가 있을 것 아니야?"
"그 있잖아. 며칠 전에 다목적 전술 기동병들 구출한거 기억나?"
"응."
"기동병들이 타격한 부화굴이 아직 살아있데. 타격을 입어서 티스들을 그전처럼 찍어낼 수는 없지만. 그래서 상부에서는 우리같은 땅개들로 거기를 밀어버리겠다는 소리지."
"말도 안돼. 우리가 왜? 우리같은 보병들이 전면전으로 티스를 밀어내버릴 수 있을까?"
"나도 모르지. 근데 연방군에서 까라면 까야 되지 않겠냐."
"니미럴."
피터가 말을 끝내자마자, 케일이 참호 문을 쾅 열고 들어왔다. 모든 소대원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케일은 자신의 망토를 터억하며 휘날리게 만들고는, 소대원들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4시간 후 진격 작전을 실행한다. 그 전에, 간단히 작전 설명을 시작하겠다. 연방 공군의 폭격이 시작된 후 기갑단의 기갑기동병과 돌격전차가 선두로 서면, 우리는 그들을 따라 부화굴까지 진격한다. 그 후 부화굴에 도착하면, *플레이머들과 기갑단이 부화굴을 불태우고 파괴할텐데 그들을 보호하면 되는것이다."
(*플레이머: 화염방사병)
"...그 말은 저희가 고기방패가 되라는 소리 아닙니까?"
"육군의 존재 의의는 연방군의 귀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야. 자네가 고기방패라고 생각하는 것은 제지하지 않겠다만. 다른 이들에게는 그런식으로 말하지 말게나."
"알겠습니다."
"자, 다들 들었지? 장비 점검하고 곧 다가올 전투에 대비하자!"
피터는 자신들의 동기를 돌아보며 크게 외쳤다. 케일은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는 흐뭇하게 웃고 그를 불러 참호 밖으로 나갔다.
"무슨 일입니까?"
"피터. 네게 한 가지를 맡겨도 되겠나?"
"뭐죠? 저는 뭔가를 맡는 성격은 아니지만 중위님이 하라면 하겠습니다."
"내가 죽으면, 피터 네가 이 소대를 이끌어라. 알겠지?"
"네? 무슨 소립니까?"
"이번 진격 작전은 우리같이 방패가 되어야하는 보병들에게 상당한 출혈을 일으킬거야. 아마 진격 작전을 실행하고 움직이면 40% 이상이 죽겠지. 공병단에서는 손실을 32~43%로 예상하고 있어."
"..."
"내 말은, 우리도 죽음을 피하긴 어려울 거란 소리다. 내가 되었든 피터 네가 되었든, 우리 소대에서도 사망자가 다수 발생할 수 있다는 말이야. 그리고 내가 죽으면... 네가 소대를 이끌어. 어차피 이 전선에는 더이상 지휘관들이 배치되지 않아. 너희같은 '병사'들이 배치되어 전쟁을 이끌어 나갈 뿐이지. 연방군에서도 경험이 없는 지휘관보다는 전투에서 여러번 살아남은 병사가 능력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말씀은, 결국 중위님이 죽는다는 소리 아닙니까...?"
케일은 고개를 저었다.
"오, 피터. 내가 꼭 죽는다는 소리는 아니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거야.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네게 지휘권을 양도한다는거야."
"...알겠습니다."
"그럼, 들어가서 장비 점검하고 대기하고 있어. 나는 구역 사령관에게 가서 작전의 내용을 더 들어야 하니까."
피터를 참호 안으로 돌려보낸 케일은 거대한 사령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피터가 참호 안으로 들어오자, 모든 소대원들이 그에게 시선을 쏟고 있었다. 피터는 갑자기 쏟아지는 시선이 부끄러웠는지 자신의 머리를 긁적였다. 당황하는 그에게 루이와 칼리브레가 달려왔다.
"피터! 중위님이 왜 부른거야?"
"그러게. 무슨 일이냐."
"어, 그거? 그거는..."
"뭔데뭔데?"
"그냥, 다들 조심하래."
피터는 곧이곧대로 말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동료들에게 소대장의 말을 전한다면, 앞으로 있을 전투에서 그의 죽음을 단정지어버리는 것 같았다. 피터는 케일의 자리를 뺏을 생각이 없었다. 그의 지휘를 받는 편이 더 속 편하고 좋았으니까.
"에엥. 뭐야? 겁나 뜬금없네."
"소대장님도 가끔 실없는 말을 하실 때가 있잖아? 그리고, 루이. 여기를 제대로 해야지."
칼리브레는 어깨를 으쓱하고 루이의 매니셉 방탄복을 제대로 조여주었다. 루이는 방탄복이 가슴팍을 조이자 으윽 소리를 냈다.
"윽. 너무 세게 조이지는 마. 일부러 그런건데..."
"뛰어다니면 방탄복이 흔들리잖아. 멍청아. 잘 조여서 튼튼히 만들어야지."
"히잉."
"근데 무슨 소리 안 나?"
매니셉 방탄복 옆구리의 탄창 주머니에 탄창들을 꽂던 에리가 문득 동료들을 쳐다보며 얼굴에 물음표를 띄웠다. 그녀의 말대로 이상한 웅웅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뭐지?"
"뭐냐?"
"어?"
소대원들도 제각기 소리를 듣고는 물음표를 띄웠다. 그 순간, 참호 위로 무언가가 웅장한 소리를 내며 쏜살같이 날아갔다.
"우오! 소리 들었어?"
피터가 자신의 귀를 막고 소리를 질렀다. 소리가 자신들의 위를 지나간 걸 알아챈 어느 소대원이 전장을 가리키며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야! 저거 봐! 연방 공군이잖아!"
"!"
소대원이 가리킨 전장의 하늘엔 여러 대의 전투기가 상공을 휘젓고 있었다. 그들은 곧 조그만 폭탄을 떨어트리거나 미사일을 날려 전장을 폭격하기 시작했다. 저 멀리 전장이 불타며 커다란 티스의 건축물들이 불타고 있었다. 전선의 보병들은 불타는 전장을 보며 탄성을 내지르거나 감탄에 말을 하지 못했다.
"히,히야..."
"와-!"
"싸그리 불태워버리라고! 싸그리!"
"피터! 저거 보고 있지?! 티스 놈들의 건축물들이 불타고 있다고!"
흥분하며 자신을 흔드는 코리에게 피터는 그의 어깨를 잡아 진정시켰다. 피터도 충분히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어, 보고 있었어. 연방 공군이 움직였다면 곧 우리도 움직여야 된다는 소리야. 저 불길과 폭발이 조금 사그러들면, 조금 있다가 진격을 시작하겠지."
"우.. 그게 그렇게 되는건가?"
"그래."
"근데 피터, 우리 진짜 위험한거 아니냐? 아무리 티스의 공세가 한풀 꺾였다고 하더라도 전면전은 힘들것 같은데."
"당연하지. 하지만 우리 보병대가 기갑단을 지키면서 서로를 돌봐주면, 작전은 성공할 수 있을거야."
"그치! 우리는 죽지 않을거라고!"
코리가 자신의 주먹을 높이 쳐들고 외쳤다. 그의 행동에 다른 동기들도 함성을 지르며 주먹을 하늘로 쳐들었다. 피터는 결의를 다지는 코리와 동료들을 보았지만 불안한 표정을 지울 수는 없었다. 전쟁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그저 운이었으니까. 그는 문득 자신에게 느껴지는 시선에 옆을 돌아보았다.
"에리?"
그를 쳐다보던 에리는 걱정하지 말라는 표정을 짓고는 얕게 미소지었다. 피터는 그녀가 보여준 사랑을 생각하니, 왜인지 부끄러워져 시선을 돌려버렸다. 그러나 그런 피터도 에리가 곁에 있다면 안전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에리가 어딘가 이상한 부분이 있는 녀석이지만 등 뒤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소중한 동료 중 하나였으니까.
에리는 피터가 시선을 돌리자 가까이 다가와 손목을 잡았다. 다른 동료들은 서로 결의를 다지느라 그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에리는 피터에게 자신의 얼굴을 천천히 들이밀고는 조용히 속삭였다.
"괜찮아. 내가 있잖아. 내가 지켜주면 되잖아?"
"...알았어."
"헤헤."
속삭이던 에리는 피터의 대답에 짧게 웃고는 뒤돌아서 자신의 장비로 돌아갔다. 그녀는 로쉐 장갑을 착용한 채 매니셉 방탄복을 더욱 강하게 조였다.
전선에 있는 전 보병들의 준비가 끝난지 3시간이 지났다. 기갑단은 수백대의 돌격 전차를 이끌고 전선 뒤에서 가까이 다가왔다. 이윽고 돌격 전차와 팔에 기관포를 장착한 기갑 기동병들이 전선 앞에서 대열을 이루자, 참호의 보병들은 전선을 지키는 소수의 병사들만을 남기고 참호의 밖으로 나갔다.
마침내 전선에 돌격 전차와 기갑 기동병, 약 16만명의 보병들이 대열을 길게 이루어 섰다. 전선의 사령관인 나일은 탑에서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참호 모든 곳에 설치되어 있는 스피커에서 나일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연방의 아들 딸들이여. 너희들 앞에는 지금 연방을 갉아먹는 기생충이 세를 불리고 있다. 이 고통받는 오레스 01 행성은 그 기생충에게 몸을 서서히 갉아먹히고 있지. 우리는 그들을 전부 멸하여 이 행성과, 더 나아가 연방에 평화와 안녕을 가져올 것이다. 이 진군은 그저 조그만 한 걸음밖에 되지 않겠지만, 연방은 점차 커다란 승리로 다가갈 것이다!"
잠시 스피커에서 침묵이 흘렀다.
"전군! 전진!"
나일이 크게 진군 명령을 내리자, 돌격 전차는 쿠웅하며 엔진 소리를 냈다. 돌격 전차는 빠르게 전진했으나 뒤따라오는 보병과는 20m 정도의 거리를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었다.
기갑 기동병의 지휘관으로 보이는 어느 장교가 손에 달린 기관총을 하늘 높이 쳐들었다. 그의 쳐들은 어깨엔 한 눈에 봐도 튼튼한 방패가 장착되어 있었다.
"전진! 가자!"
기갑 기동병들은 제각기 함성을 지르며 진격했다. 그들의 뒤를 비장한 얼굴의 보병들이 따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