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8화 〉[희생과 탈출] (28/131)



〈 28화 〉[희생과 탈출]

"랭스! 맥스!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


"맥스!!"


펠컨과 에이스가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내뱉으며 부화굴의 끝에 다다랐다. 그들이 부화굴의 끝이자 티스 군단의 생산지인 '심장부'에 도달했을 때 처음으로 본 것은, 택티컬 아머가 파괴되고 녹아 피투성이가 된 채 땅에 엎어져있는 랭스와 자신의 가슴팍에 올라온 랩터 2마리에게 공격받고 있는 맥스였다.

"이런 빌어먹을 새끼들!"


펠컨이 맥스의 가슴팍을 찢어놓는 랩터 한 마리를 발로 걷어차 사격했고, 랩터는 즉시 머리가 박살나 몸을 부르르 떨며 죽어버렸다. 다른 한 마리는 에이스가 군용 나이프로 머리를 베어버려 순식간에 즉사시켰다.

"제기랄, 핵탄두는!"


중상을 입은 랭스를 일으키며 펠컨이 핵탄두의 행방을 물었다. 랭스는 부들거리는 손가락으로 거대한 기둥에 붙어 있는 네모난 핵탄두 가방을 가리켰다. 그러나 그가 가리킨 핵탄두 가방은 무언가 이상했다. 폭발까지 남은 시간을 알려주는 부분이 완전히 망가져있었다. 에이스는 랭스가 가리킨 핵탄두로 냉큼 달려가 상황을 살폈다.

"씨팔! 점화장치가 고장났어!"

"뭐?!"

에이스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벽을 때리자, 랭스를 근처에 앉혀둔 펠컨이 달려왔다.


"점화장치가 고장났다고?!"


"그래! 이렇게 되면 폭파시킬  없어!"

펠컨은 이미 죽어서 쓰러진 랭스와 헉헉 거리며 앉아있는 맥스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쓰러진 랭스에게 달려가 그의 시신을 이리저리 뒤척였다. 그는 랭스가 죽기  꼭 쥐고 있던 무언가를 손에서 뺏어들었다.

"찾았다! 그런데.. 젠장."


그가 찾아낸 것은 핵탄두 격발기였다.불의의 사고로 점화장치가 망가지면, 원거리에서 격발시켜버릴 수 있는 핵탄두 격발기. 그것은 스피터의 가시를 맞아 반 이상 파괴되어 있었다. 랭스는 어떻게든 이것을 가동시켜보려 했는지, 격발기엔 피가 잔뜩 묻어있었다.

"랭스.. 젠장.. 젠장!"


"무슨 일이야! 펠컨!"

"... 이렇게 되면 확실하게 터트려버릴 수 있는 방법이 하나 남았지."

"뭐?"


펠컨은 비장한 눈으로 에이스를 돌아보았다. 그는 에이스를 보며 주위에 앉아 있는 맥스를 손으로 가리켰다.


"맥스를 데리고 나가. 이 핵탄두는 내가 격발시킨다."


"네가?! 네가 어떻게! 너, 너, 설마..."


펠컨은 말 없이 기둥으로 다가가 옆에 있는 에이스를 밀쳤다. 그리고 그는 붙어 있는 핵탄두 가방을 열었다. 그는 핵탄두 가방 안에 고이 모셔져 있는 40cm 크기의 핵탄두를 손으로 꺼내 집어들었다.

"핵탄두 가방의 핵탄두는 커다란 충격이 가해지면 폭발한다... 이건 우리가 교육 때 배웠던거지. 수많은 방법으로 격발시킬  있지만 한 명은 희생해야 해. 내가 짊어진다. 가!"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마라. 너, 너,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는 알고 그러는거냐? 목숨을 내던지는 거라고?!"

"난 목숨을 바칠 각오로 연방군에 들어왔어. 전술 기동병에 입단했을 즈음부터는 이별의 연속이었지. 나는 다른 사람들의 끝을  왔어. 내 동기들 말이야. 이번엔  차례가 온 것 뿐이지. 빨리 가. 정확히 4분 후에 이곳을 폭파할거다."

말을 마친 펠컨은 기둥에 걸터 앉고는 자신 앞에 핵탄두를 내려놓았다. 그는 핵탄두 바로 위에 자신의 주먹을 올려놓고는 높게 쳐들었다.

"젠장.. 펠컨. 펠컨..."

"4분 남았다! 이러다간 모두 다 죽어."

"크윽.."


에이스가 눈물을 삼키며 맥스를 향해 뛰었다. 그는 중상을 입고 입에서 피를 토하고 있는 맥스를 왼쪽 어깨에 들쳐업고는 자신들이 들어왔던 출구를 향해 뛰었다. 에이스가 탈출하는 모습을 보며, 펠컨은 얕게 미소를 지었다. 이제 4분만 있으면 모든 것이 끝장난다. 영광스러운 연방군으로서의 삶도, 동기들과 함께 살아가던 삶도, 투쟁을 하며 인류를 평화롭게 만들겠다는 희망을 가진 삶도. 하지만 괜찮았다. 그는 언젠가 이런 일이 닥칠 것이라고 생각해오던 남자였다.

눈을 감고 과거를 회상하는 그를 향해, 랩터들과 스피터들이 침을 흘려대며 천천히 다가왔다. 딱봐도 전의가 없어보이는 상대를 향해 달려드는 등의 힘을 뺄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펠컨은 자신의 헬멧을 번져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고는 그들을 하찮게 쳐다보며 말했다.

"왔냐. 이 개새끼들아."

그시각, 맥스를 들쳐업고 자신들이 들어왔던 입구로 향하던 에이스는 충격에 멈춰섰다. 분명히 자신들이 들어온 통로는 수비하던 티스들을 처리해 안전하고 비워져 있어야 하는 것이 맞았지만, 이미 수백 마리의 티스 개채들이 몸을 엉켜가면서 막아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뿐만이 아니었다. 아까 전, 시엘을 죽이고 미하일 분대장마저 자폭시킨 스웜가드가 상처를 지닌채 그들 앞에서 으르렁 대고 있었다. 놈의 오른손은 미하일의 자폭 때문에 파괴되었지만 살이 붙어가며 재생되는 징그러운 소리가 함께하고 있었다. 놈은 그새 성장했는지, 7m가 아닌 9m는 되어보였다. 성장한 크기 덕분인지 천장에 놈이 훨씬 가까워져 있었다.

"아, 아직도 살아있을 수가 있다니.."

기겁하는 에이스의 어깨에 업혀있던 맥스는 커억하며 피를 내뱉었다. 그는 에이스에게 자신을 내려놓으라고 말했다.


"에이스. 나를 내려놔. 어서. 이러다간 우리 둘다 죽는다."


"알겠어."


에이스가 통로를 가로막고 있는 티스들을 노려보며 조심스레 맥스를 내려놓았다. 맥스는 다리가 부러지고 가슴팍의 깊은 상처 때문에 일어설 수 없었지만 자신의 옆에 서 있는 에이스를 툭툭 치고 있었다.


"저 스웜가드,  커진 거 너도 느꼈지?"


"그래. 더 커졌어..."

"그리고 우리 위에 뚫린 구멍 보이냐?"

"?!"

에이스는 맥스의 말에 바로 위를 올려다 보았다. 아까 전, 시엘을 가루로 만들어버린 플라즈마 열선이 지상까지 뚫어논 구멍이었다. 그가 구멍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경사가 졌을 뿐 도달하기만 한다면 충분히 나갈 수 있어보였다.


"저게 어떻게 생긴 구멍인지는 나는 잘 모르겠는데, 저기로 나가면 탈출할 수 있어."


"저거, 저거는... 아니다. 어쨌든 저기로 나갈  있다는 소리지?"


"그래. 저기로 빛이 들어오고 있잖아."

"문제는 어떻게 나가냐인데..."

"방법이 있다."

"뭐지?"

"천장까지의 거리는 적어도 15m 이상.. 우리가 택티컬 아머의 도움을 받아서 도약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려도 힘들어. 커다란 발판이 있다면 모를까."

맥스는 다시 한 번 피를 토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시들지 않고 번뜩이며 빛을 내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좋~은 발판이 하나 있지. 바로 저 놈."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것은 방금의 스웜가드였다. 스웜가드는 아직도 둘을 노려보며 언제든지 덮칠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자고?"

"놈의 등을 계단처럼 써. 이게 내가 마지막으로 해  말이다."


"뭐?!"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한 맥스는 부러진 다리를 일으켜 에이스를 옆으로 밀쳐버렸다. 그 즉시 거대한 스웜가드의 몸뚱아리가 그들이 있던 곳을 덮쳤다. 맥스는 에이스의 반대쪽으로 굴렀기에 스웜가드를 피했고, 스웜가드는 맥스를 노려보았다. 스웜가드가 다시 달려들자, 맥스는 앞으로 달려나갔다. 다리에서는 부러진 뼈와 뼛조각들이 부딪히며 쩔그럭 소리를 냈으나 맥스는 이를 악물고 앞으로 달렸다.


"크아아아아-!"


스웜가드가 맥스에게 시선이 꽂혀 그를 향해 움직였다. 스웜가드는 완전히 뒤돌아 그를 잡기위해 몸을 던졌고, 다리가 부러졌던 맥스는 스웜가드의 억센 손에 쉽게 붙잡히고 말았다.

"맥스-!!"

"이때야! 가! 가라고!"

"!"


에이스가 맥스의 말을 불현듯 떠올리며 스웜가드의 길쭉한 등을 바라보았다. 스웜가드의 머리통 위에는 맥스가 말한 구멍이 있었다.

"네가 마지막 생존자야! 어서...으아아악!"


스웜가드가 맥스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비명을 지르는 맥스의 입과 코에서 핏덩이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제기랄...! 미안하다! 맥스! 맥스!"

에이스는 스웜가드의 꼬리를 밟는 걸 시작으로 등을 빠르게 달렸다. 스웜가드는 이미 정신을 잃은 맥스를 자신의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스웜가드의 목덜미 부분에서 마침내 에이스가 도약을 할때, 콰직하는 묵직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맥스의 머리가 씹혀버린 것이었다.

"으으윽!"


가까스로 구멍의 끝에 매달린 에이스는 나이프를 꺼내 구멍의 벽에 박았다. 그는 칼을 쥐고 있지 않은 빈손에 힘을 주어 지면에 손가락을 박으며 천천히 구멍을 올랐다. 택티컬 아머는 손까지 감싸는 전신 슈트라, 손가락이 부러지거나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먹잇감이 탈출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스웜가드가 괴성을 지르며 구멍을 쳐다보았다. 스웜가드는 하나 밖에 없는 손을 휘두르며 구멍 속에 쑤셔넣었다.


"와아악-!"


스웜가드의 손톱이 에이스의 옆을 지나 구멍 내부를 긁었다. 만약 저 손톱에 닿았다면 에이스의 사지는 산산히 찢어져 버렸으리라.


구멍에 있는 에이스를 어떻게든 죽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스웜가드가 손을 빼내고는 눈을 들이밀었다. 회색의 징그러운 눈동자가 사방을 훑으며 구멍을 살피고 있었다. 에이스는 그것을 보며 지면을 박고 있던 나이프를 뽑아들었다.

"이거나 쳐 먹어라!"

그는 나이프의 손잡이 끝을 잡고 재빨리 조준해 눈동자를 향해 던졌다. 회색의 눈동자에 날카로운 군용 나이프가 깔끔히 파고 들었다. 스웜가드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구멍에서 눈을 뗐다. 그 괴물은 어떻게든 에이스를 잡아내기 위해 다시 손을 넣어 이리저리 휘둘렀다. 하지만 이미 에이스는 지면까지 30cm 밖에 남겨두고 있지 않았다.


그때, 땅이 진동하며 굉음이 울려퍼졌다. 굉음은 곧 화염과 폭발을 몰고와 스웜가드와 티스가 막고 있던 생체 터널을 불태우고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스웜가드는 온 몸의 세포가 분해되며 불타오르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지만 폭발소리에 막혀버렸다.


구멍을 휘젓던 스웜가드의 팔이 불타오르며, 구멍 아래로 빠져버렸다. 에이스는 운좋게 폭발에서 벗어나며 지면에 올라왔다.


"헉..헉.."

땅에 드러누운 그는 일단 숨을 먼저 골랐다. 구멍에서 가까스로 탈출하고 숨을 고르던 그는 아직 위험하다는 생각이 팍 떠올랐다. 그가 상반신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자, 대기하고 있던 구출팀 여럿이 부화굴에서 탈출하고 있는 다목적 전술 기동병들을 수송차량들에 태우고 있었다. 일반 보병으로 이루어진 구출팀들은 전선에 속해 있는 연방군 소속이었다. 몇몇 보병이 에이스를 보며 달려왔다.


"빨리 가야합니다! 작전을 완수하지 못한 팀이 하나 있어서, 여기서 당장 후퇴해야 합니다! 티스 놈들이 몰려 나올 겁니다! 저희가 마지막으로 남은 구출팀입니다!"


그들은 에이스를 일으켜 H-100 수송차량에 탑승시켰다. 수송차량은 웅장한 엔진 소리를 내며 출발하기 시작했다. H-100 수송차량이 움직이기가 무섭게, 하나 남은 부화굴에서 무지막지한 숫자의 티스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어림잡아 몇만 마리는 될 것 같았다. 게이트를 닫으며 차량 내부에 있던 보병 소대의 소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운전병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플레겔! 상부에선 언제 터트린데?"

"일단 전선 안으로 후퇴하랍니다!"

"알았어! 쭉 후퇴하자고!"

운전병에게 말을 들은 소대장은 망토를 휘날리며 차량 바닥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는 에이스에게 다가왔다. 그는 무언가 의문점이 있는  같았다.

"무슨 일입니까?"

"투입된 다목적 전술 기동단 대원. 맞지요? 아니, 너무 기니까 므트마로 줄이겠소. 같이 투입된 므트마 대원들은 어디있습니까?"


"나만 살아남았어."

에이스는 그의 시선을 피하며 떨리는 말투로 대답했다. 동료들의 죽음을 떠올리기 싫었다. 망토를 맨 소대장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 못할 일이 있었나보군. 알았소."

"케일 소대장님! 상부에서 전선 가까이 다가왔으면 응답하랩니다!"


운전실 쪽에서 운전병이 소대장을 향해 다급히 외쳤다. 소대장은 알겠다고 대답했다.

"다 왔잖아! 그렇다고 해!"


"예! 여기는 후방 구출팀! 저희 뒤에는 이제 남은 생존자가 없습니다! 구출을 완료했습니다!"

"알았다. 통신 종료."


통신이 종료되자마자, 거대한 굉음이 동시다발적으로 울려댔다. 넓은 전장에서 폭발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폭발의 충격파에 수송차량이 잠시 기우뚱했다. 수송차량의 천장에 달린 해치가 열리고, 보병 두명이 내려왔다. 소대장은 그들에게 잘 되었냐고 물어보았다.

"에리, 피터. 작전은?"


"성공적입니다."


"성공적이에요. 쫓아오던 티스들은 전부 폭발에 전멸한 것 같습니다."

"좋아. 아까운 목숨을 버려가면서 폭발물을 설치한 이유가 있었군!"

"그렇습니다. 죽은 저희 동료들도 기뻐할 겁니다."

"작전 성공이군! 놈들의 부화굴도 대부분 파괴되어 전력이 약해진데다가 잔당까지 깔끔히 날려버렸다. 이번 전투는 승리야!"


차량 내부는 사실상 축제 분위기였다. 에이스는 몰랐겠지만, 차량 내부의 보병들에게는 이 행성에 투입되고 얻는 첫 승리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을 느끼는 그들과는 달리 에이스는 슬픔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헬멧의 바이져를 닫아버리고는 조용히 눈물 흘렸다. 자신의 동료들이 제각기 영혼을 불태우며 죽어나간 것의 결과가 이리도 조그만 승리였다니. 그는 동료들의 죽음이 영광스러웠다고 애써 생각하며, 구차하게 살아남은 자신을 저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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