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4화 〉[참호 속에서] (24/131)



〈 24화 〉[참호 속에서]

"돌아왔다! 폭발물 설치팀이 돌아왔어!"


"뭐?!"


"진짜?"

참호에서 전장을 둘러보던 어느 병사가 소리쳤다. 참호 내에서 쉬고 있던 병사들이 그 말에 다들 일어서서 참호 밖을 내다보았다. 전장에는 리자드 수십대가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처음 출발한 리자드의 숫자보다는 조금 적은  같은걸.."


"제길, 그런 말은 하지마. 어쨌든 살아돌아 온 이들이 있잖아! 가서 맞이해 주자고!"


참호 내부에서 총을 쥐고 보초를 서는 이들을 제외하고서, 대부분의 병사들이 돌아오는 자신들의 소대원들을 맞이하러 나갔다. 그들은 리자드가 멈추고 거기에서 내린 이들을 환영했다. 케일의 소대원들도 몇몇이 나와 자신들의 소대장과 동료들의 귀환을 환영하고 있었다.

"중위님! 살아돌아오셨군요!"

"그래, 전선에는 무슨 일 없었지?"


"예. 그래도 다들 소대장님과 동료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들 괜찮나요?"


"...루크가 죽었고, 에리가 중상이다."

"그, 그런..."


"슬퍼할 시간은 없다. 에리를 의무관들에게 옮겨 줘."

"알겠습니다."

소대원 2명이 피터에게 부축받아 나오는 에리를 들것에 실었다. 그들은 참호 안의 의무관에게로 에리를 데려갔다. 에리를 들것에 싣고 나르는 대원들의 뒤를 따라, 케일은 발걸음을 옮겼고 같이 임무를 맡았던 팔런과 피터도 그를 따라 참호 안으로 안전히 들어갔다.


피터와 팔런이 참호 안으로 들어가자, 자신들의 동기들이 그들을 격하게 반겨주었다. 그중에는 루이나 칼리브레 등, 하겐의 절친들도 보였다. 루이는 피터를 보자마자 달려와서 하겐과 같이 나간 루크의 행방을 물었다.

"피터! 다행이야. 돌아왔구나! 그런데, 하겐이랑 루크는...?"

"곧 돌아올거야. 하겐은..."

"하겐은이라니? 루크는..."


"미안, 루이. 우리는 조금 지하로 내려가서 쉴게. 너무 힘들었거든."

피터가 차마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자, 팔런이 루이를 제지하며 대화를 중단시켰다. 팔런은 피터에게 말하지 말라는 눈길을 주고는 지하 휴식실로 내려갔다. 피터도 루이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는 휴식실로 내려갔다. 그들이 지하로 내려가자, 루이는 불안한 얼굴로 시체가 가득한 전장을 바라보며 몸을 떨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곧이어 하겐과 코리가 탑승한 플레겔의 리자드가 전선에 닿았다. 플레겔은 리자드에서 내리며 자신들을 맞이하는 다른 병사들에게 들것을 가져다 달라고 말했다. 병사들은 플레겔의 얼굴에 도사린 슬픔을 알아채곤 말없이 들것을 가져왔다.


병사들이 들것을 가져오자, 하겐과 코리가 침울한 얼굴로 리자드에서 내렸다. 그들은 복부와 가슴팍이 뼈가 보일정도로 깊게 파인 루크를 부축하고 있었다. 누가봐도 이미 루크는 죽어있었다. 병사들이 들것을 내려놓자, 하겐이 루크를 들어 들것에 실었다. 병사들이 들것을 들자, 루크의 팔이 힘없이 들것 바깥으로 떨어져 덜렁거렸다. 코리는 그것을 보고 뒤돌아 울음을 참았다. 코리가 울음을 꾹 참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아팠던 플레겔은 그의 어깨를 두들기고는 참호로 들어갔다. 하겐도 그들을 따라 참호 안으로 들어가기 전, 햇살이 비추는 전장을 한번 돌아보았다.


시체와 잔해, 생명이라고는 없는 불모지의 땅. 하겐은 씁쓸함을 느끼며 뒤를 돌아 참호로 발길을 돌렸다.


"코리!! 루크는? 루크는 어디있어?"

하겐이 참호에 들어서자마자 본 것은 루이가 울먹거리며 코리에게 질문 세례를 던지는 것이었다. 코리는 말없이 슬픈 눈으로 하겐을 돌아보았다. 코리의 눈에서 마침내 눈물 한가닥이 주루륵 흘렀다.


"하겐! 다행이다! 살아있어서..."

하겐을 발견한 루이가 쪼르르 달려와 그에게 안겼다. 그녀는 하겐의 복부에 얼굴을 묻으며 다행이라고 연신 중얼거렸다.


"루, 루이.."

"돌아와서 다행이야. 하겐. 그런데 루크는, 루크는 어디있어? 의무관들한테 치료라도 받고 있는거야?"


"루, 루이.. 루크는..."

"응?"

하겐의 말이 떨리자, 루이는 불안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 보았다.

"루크는, 더이상  수 없어."

"뭐..?"

"녀석은 폭발물을 설치하던 기술병을 지키기 위해서 몸을 던졌어...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였지."

"거, 거짓말 하지마. 에이, 루크가 죽을 리가 없잖아."

"미안하다... 루이... 내가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내가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루크를 지켜낼 수 있었을텐데.."

"아, 아니야. 하겐. 괜찮아. 괜찮아..."


루이는 하겐을 위로하며 그를 꼭 껴안았다. 저 멀리서 동기들에게 배식을 하기 위해 말린 연어 고기가 껴 있는 빵 상자를 들고 오던 칼리브레가 복귀한 하겐을 보고 달려왔다.


"하겐! 돌아왔구나. 루크나 코리는? 중위님이나 다른 녀석들도 괜찮아?"


"칼리브레."

하겐이 슬픈 눈으로 칼리브레를 쳐다보았다. 칼리브레는 그의 눈빛에 불안한 소름이 전신을 훑고 지나감을 느꼈다.

"야.. 루크랑 다른 녀석들은 어디있냐니까...?

"중위님이나 다른 녀석들은 괜찮지만... 루크는 돌아오지 못했어."


"뭐라고? 야, 장난치지마라. 죽는다."


연어빵이 가득 담긴 상자를 쥐고있는 칼리브레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하겐에게 계속해서 말했다.


"야, 장난치지 말라니까. 루크 어딨는데?"


"..."

"아... 씨발..."

진상을 알아챈 칼리브레는 나지막히 욕설을 내뱉었다. 루크는 그의 소중한 고향 친구였다. 칼리브레는 연어빵이 가득 담긴 상자를 내려놓고 코리 쪽으로  밀었다.

"...그러냐. 그리고 이거 배식받은 거니까 다들 하나씩 먹어."

칼리브레는 그렇게 말하며 상자엔 눈길도 안 주고 전장을 쳐다보았다. 소대원들이 쭈뼛쭈뼛 상자를 열어 서로서로에게 빵을 전달했다. 코리가 루이와 하겐에게도 빵을 건넸다. 하겐도 빵을 건네받고는 칼리브레에게 주려고 했으나, 칼리브레는 고개를 느릿느릿 저어 거절했다.


"안 먹을거냐."

"생각  든다."

"그래... 알겠다."


코리는  두개를 들고 고민하고 있었다. 피터와 팔런에게도 줘야만 했다. 그는 빵을 건네기 위해 지하 휴식실로 내려갔다. 지하 휴식실에 내려오자, 의자와 침대에 그들이  늘어져있었다.


"피터. 팔런."

코리가 둘을 부르자, 피터가 의자에서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팔런도 눈을 깜빡깜빡 하고는 코리를 쳐다보았다.

"어, 코리잖아. 왜?"

"배식 시간이라서. 이거 먹어."

그들에게 연어빵을 건넨 코리가 올라가려고 하자, 피터가 뒤에서 코리를 불렀다.

"코리. 밖은 무슨 일 없어?"

"음. 없어. 대신... 루크가 죽은 걸 알아서 애들이 침울해 하고 있어."


"아, 그러냐... 알았어. 우리는 조금만 쉬고 올라갈게."


"아냐. 너희들은 아직 보초가 아니잖아. 보초는  소규모 구역의 소대당 4명이 나뉘어서 서고 있어. 지금은 티스가 쳐 들어오지 않는 이상 보초를 제외하고는 전부 자유시간이야. 만약 티스가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전원 무장하고 대기해야겠지만..."


"알겠어."


"어, 쉬어."


코리는 지하 휴식실에서 나와 참호로 돌아갔다. 그도  일이 없고 휴식을 취하고 싶었지만 자신의 동기들과 있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피터는 코리가 올라간 것을 보며 연어빵을 한  크게 베어물었다. 팔런도 연어빵을 와구와구 먹어버리고는 곧 그윽 트름을 했다.

"이거 맛있네. 그런데 앞으로는 제대로 된 식당에서 밥 먹는  보다 이런 빵과 전투식량으로 끼니를 때우는 일이 잦겠지?"

"그렇겠지. 하지만  연어가 좋아서 상관은 없어. 연어빵 자체가 목이  막히긴 하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아."

"야, 피터. 그런데..."


"왜?"

"오늘 죽은 그 기술병 있잖냐. 폭발물 설치하다가 결국 죽어버린 녀석 말이야."

"응..."


"제기랄. 자꾸 눈을 감으면 그 녀석이 죽기 직전에 나를 쳐다본 게 생각나서 미칠 것 같단 말이지. 씨발...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 녀석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이름도 모르는 녀석이었지만 그래도 같이 싸우는 병사였잖아."


"그렇지.."

피터가 뒷말을 흐렸다. 그러나 그는 곧 팔런을 똑바로 쳐다보고 강단있게 말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하지마. 우리는 일단 살아남았잖아? 그런 생각은 네가  전쟁이 끝난 뒤 너의 고향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서 떠올려도 늦지 않아. 그런 생각은 너를 점점  괴롭게  뿐이라고.."

피터의 말에 팔런이 자신의 얼굴을 두손으로 세수하듯 문질렀다.

"그런가.. 그런가.. 난 잘 모르겠어."

"너무 죄책감 갖지 말라는 소리야. 결국 우리는 이런 전쟁을 8년이나 더 해야 된다고. 살아남는 것은 결국 자신의 몫인거야."


"그렇겠지. 그래도, 나는 역시 잘 모르겠단 말이야..."

팔런이 침대에서 내려와 피터를 마주보고 앉았다. 그는 테이블에 올려진 물병을 들고 벌컥벌컥 마셨다. 물이 묻은 입가를 닦아낸 그는 피터에게 묻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너, 아까 어떻게 스피터의 머리를 베어버린거냐? 네가 검술 훈련 때 말도  되는 실력으로 수석을 받은 건 알겠는데. 그건 대체 어떻게 한 거야? 마치 미래를 아는 사람처럼 겁 없이 움직였잖아."

팔런이 내려놓은 물병을 들고 컵에 물을 따라 마신 피터는 팔짱을 끼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자신도 자신이 어떻게 한 지 확신을 갖고 있지 못했다.


"그러게. 솔직히 말해도 되나? 이상한 소리 하지 말라고   거지?"

"그건 들어봐야 알겠지. 대체 뭐였는데?"


"그 이야기 나한테도 알려줘."


"?"

계단에서 에리가 내려왔다. 매니셉 방탄복 대신 가슴팍과 복부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는 그녀는 고대 지구에서 있었다는 풍습인 '미라' 같았다.

"에리?!"


팔런이 깜짝 놀라며 의자에서 일어섰다. 에리는 호들갑 떨지 말라는 눈으로 팔런을 쳐다보았다.

"왜 이래. 내가 죽기라도 했니? 오바하지마."

"에리, 괜찮은거 맞아? 의무관이 뭐라하든?"


피터는 에리의 붕대를 보며 말했다. 에리는 피터가 걱정해 주는 것이 기쁜지, 얕게 미소를 지었다.

"갈비뼈 4개가 부러지고 뼛조각이 가슴을 찔렀지만, 일단은 괜찮아. 네가 놔  재생제가 초기에 상처들을 어느정도 치유해서 말이야. 의무관들이 내 상처를 절개해 뼛조각들을 뽑아냈어. 1시간도 안 걸렸지."

"더럽게 아팠겠는데. 정말 괜찮은거 맞냐?"


에리가 말하는 상처를 듣고, 피터가 의심하며 물었다. 피터는 에리가 자신을 좋아하는  몰라도, 자신과 같이 있는 건 편안하게 생각하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걱정해 주는 거야? 그거 정말, 정말~ 기쁘네."

에리가 얼굴을 붉히자, 팔런이 한숨을 쉬며 피터에게 말이나 해보라고 물었다.

"됐고. 어떻게 스피터의 머리를 벤 거냐니까. 두려움도 없는 얼굴로 칼을 집던데."

"그래. 이야기 하다가 말았었지. 어떻게 그랬냐고 물으면 그저 겁이 안 났다고밖에 못하겠어. 그니까, 내가 죽지 않을 것 같았어."


"뭐?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다. 이해가 되게  말해봐."


"잘 들어봐. 나한테는 순간적으로 내가  놈의 머리를 베어버리는 모습이 보였어. 내가 본 모습은 왜인지 진짜로 일어날 것만 같은 모습이었지. 그러고는 두려움이 하나도 없어졌어. 그렇게 나는 글라디오를 휘두른거야."

"그러니까... 순간적으로 미래를 보았다는 거 아냐?"

"미래를 보았다? 그건 너무 초능력 같고, 잘 모르겠다. 나도 그냥 내가 스피터의 머리를 베는 모습이 떠올라서 용기를 갖고 칼을 휘두른 거 였으니까."


"결국 네가 본 모습은 맞았네? 그게 미래를 보았든, 아니면 그저 네 환상이든."


에리가 턱을 매만지며 피터에게 맞장구 쳐주었다. 피터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맞아. 내가 환상을 보았든, 미래를 보았든간에 나는  덕분에 용기를 갖고 움직일  있었어. 다행스러운 일이었지."


"그래, 그렇다는거지? 뭐 별 거 아니었긴한데, 나는 한 가지 가설을 제시하고 싶은데."


"그게 뭔데. 팔런."


"있잖아. 우리는 마인드 능력에 대해서 교육 받은  있잖아? 거기서 마인드 능력을 자주 발현시키게 되는 계기가 대부분 위급한 상황이라고 했어. 우리는 그때 전멸의 위기에 놓였었으니까,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


"그럴 수도 있다니?"

"너에게 마인드 능력이 순간적으로 발현한게 아닐까?"

"뭐라고? 뜬구름 잡는 소리하지마."


"가능성은 있어. 우리는 그때 모두가 전멸할 뻔 했으니까. 아예 발현 되지 않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은 거야."

"하지만, 그냥 순간적으로 환상을 보고는 용기를 가진  수도 있잖아. 그건 너무 앞서나간 추측이라고?"

"그래서 가설이라고 했잖냐."

"참, 쉽게도 결정지어버리네."


"아무튼. 내 가설은 이런거야. 네가 초능력을 원래 갖고 있던 인간이든, 없던 인간이든간에 마인드 능력이 발현 되어서 순간적으로 미래를  것이다 라는 거."


"날 뜬금없이 마인드 능력자로 만들지 마. 난 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그거야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 네 자신도 네 능력을 모를 수 있는 법이잖아?"

"그래. 그래. 알았어. 이 이야기는 그만 하자. 그저 우연이었을 뿐이니까. 의미는 갖지말자. 그건 그렇고, 심심한데 원 카드나 할래?"

피터가 팔런의 가설을 뭉개버리며 뒷주머니에서 카드들을 꺼냈다. 팔런이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는 카드를 어디서 났냐고 물어보았다.

"그건 또 어디서 났어?"


팔런의 질문에 피터가 머리를 긁적였다.

"이거? 그냥 의자에 놓여져 있던데. 지하 휴식실은 소규모 구역마다 전부 존재하지만, 다른 구역의 병사들도 사용할 수 있거든. 아마 누가 놓고간 거겠지."

어느새 피터는 포커의 카드들을 꺼내 뒤섞고 있었다.. 그리고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곤히 듣고있던 에리를 올려다 보았다.

"너도 할래?"

에리는 그가 카드를 섞는 모습을 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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