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0화 〉[병사가 되다] (20/131)



〈 20화 〉[병사가 되다]

<헬레헤시 구역, 마탄-3 행성의 우주 공간>


헬레헤시 구역에  있는 어느 거대한 연방 우주군 기지. 그곳의  사령관실에서 한 장교가 사령관에게 극렬히 반대하며 이의제기를 하고 있었다.


"안 됩니다. 아직 훈련 기간이 남았잖습니까."


"결국 그들도 전장에서 배우게 될 것이다. 한 달 일찍 훈련을 마친다고 병사가 아닌 것은 아니야."

"하지만, 그들은 아직 햇병아리들이란 말입니다. 정말 투입할 생각이십니까?"

"그래. 마르케스 구역이 매우 위급한 상황이라고 지원을 요청하더군. 한 명 한 명이 절실한 상황이야."

"한 달간 굳센 훈련을 받은 자들이지만, 그렇다고 도움이 될까요? 차라리 벨라토르 군단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우리 제 2은하계에 소속된 벨라토르들은  거대한 위협에 맞서느라 이쪽에는 나타나기가 힘들어. 결국 우리 연방군이 해결해야하는 문제야."

"...알겠습니다. 수호."


경례를 마친 장교는 사령관실에서 뒤돌아 나갔다. 그의 표정은 매우 일그러져 있었다. 표정이 착잡하기는 사령관도 마찬가지였다. 한 달의 훈련밖에 받지 못한 훈련병들을 전장에 투입시키는 것은 꽤 좋은 일이 아니었으니. 그래도 사령관의 위치에 놓인 자는 결정을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그는 창가에서 푸른 빛을 띠는 마탄-3 행성을 내려다 보며 담배를 물었다......





<마탄-3 행성. 로스토크 훈련소.>


"비상! 비상! 전원 기상해!"


각 내무반에 연결된 스피커에서 사이렌 소리가 울려퍼지며 훈련병들을 깨웠다. 이미 복도는 빨간 불이 반짝거리며 비상 상황임을 알리고 있었다.

"무, 뭐야!? 전쟁이라도 난 거야?!"


코리가 사이렌 소리에 이불을 홱 걷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4소대 내무반의 다른 동기들도 눈을 비비거나 깜짝 놀라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대체 뭐야...? 우리는 아직 한 달이나 남았는데?"

피터가 당황해하며 주위를 둘러보는데, 내무반의 문이 열리며 완전 군장을 한 병사가 들어왔다. 그의 뒤에는 워크 비 4기가 각각 커다란 자루를 들고 따라들어오고 있었다.
피터가 그를 자세히 보니, 그는 첫 날에 자신을 소대장이라고 소개한 자였다.

"비상 상황이다. 너희들은 이제부터 마르케스 구역의 오레스 01 행성으로 투입될 것이다. 군복으로 환복하고 매니셉 방탄복을 착용해라. 관물대의 물건을 전부 챙겨라. 어서!"

훈련병들은 그의 말에 허둥지둥 보급받은 더플백을 꺼내 군복과 자신들의 물건들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피터는 아버지가 주신 더플백에 물건을 정리했다. 정리를 마친 훈련병들은 완전 군장을 한 채 명령을 기다렸다. 내무반에 들어온 소대장은 워크 비들에게 명령을 내려 움직였다. 워크 비들은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훈련병들에게 각각 4개의 탄창, 2개의 레이져 팩, 재생제 주사기 하나, 파쇄 수류탄 2개를 보급했다.

"너희들에게 지급된 것들이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겠지? 너희들이  달간 개고생한 이유가 있는 물건들이다. 사용법을 잊지는 않았을거라고 믿겠다."

관물대에 놓인 SK-2소총을 꺼내 지급받은 탄창으로 장전하고, 나머지 탄창을 왼쪽의 탄창 주머니에 꽂은 피터는 이번엔 재생제 주사기를 왼다리에 보관했다. 글라디오를 오른쪽 허벅지에 단단히 고정시키고, 파쇄 수류탄을 오른쪽 허리에 맨 그는 헬멧을 똑바로 쓰고는 머리를 흔들었다.

그가 자신의 준비를 마치고 동기들을 둘러보니, 동기들도 그처럼 준비를 마치고 대기하고 있었다. 역시 한 달간의 배움은 몸을 자동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었다.


"준비는 마쳤겠지! 그럼 이제 이동하자!"

소대장은 훈련병들에게 손짓했다. 그가 내무반을 나가자, 훈련병들은 그의 뒤를 따라나가기 시작했다. 갖가지 표정을 지은 훈련병들이었지만 그들의 마음은 하나로 똑같았다.

이제 진짜구나.


피터는 대열을 따라 달려나가면서도 주위를 둘러보는 걸 잊지 않았다. 이미 다른 소대의 내무반은 텅텅 비어있었다. 그들도 서둘러 나간 것이 분명하리라.


"야, 코리, 다른 소대 녀석들도 이미 다 나갔나 봐."


"으음. 그런갑지."

막사에서 나오자, 이미 연병장에는 탑승물 훈련 때 보았던 H-100 수송차량들이 줄지어 대기하는 중이었다. 소대장은 4번째 수송차량의 게이트를 툭툭 두들겼다. 그러자 두들김에 답하듯 게이트가 위에서 아래로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탑승! 탑승! 빨리 해!"

소대장이 크게 외치자, 훈련병들은 서로 대화를 나눌 새도 없이 수송차량에 몸을 실었다. 4소대 전원이 탑승하자, 소대장이 끝으로 수송차량에 올라탔다. 그의 뒤에는 워크 비 2기가 따르고 있었다. 양옆에 훈련병들이 착석한 것을 천천히 훑어보며 걸어가 가운데의 좌석에 앉은 그는 운전병을 향해 준비가 다 되었다고 말했다. 운전병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것에 맞춰 수송차량의 게이트가 닫히기 시작했다.

"다들 준비는 됐나?"

소대장이 긴장하고 있는 훈련병들을 보며 말했다. 훈련병들은 침묵하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처음 온 날을 제외하고 너희들과 만난 적이 별로 없군. 나는 케일 히트먼 중위. 너희들의 지휘자지."


케일이 긴장한 훈련병들의 긴장을 풀어주려는 듯 그들에게 대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훈련병들은 역시 돌처럼 굳어있었다. 한 명만 빼고. 코리는 손을 들어 케일에게 질문을 했다.

"소대장님. 저희는 왜 1달이나 일찍 투입되는 겁니까? 이것도 설마 훈련입니까?"

코리의 말에 케일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우리가 한 달후에 투입 되기로  마르케스 구역이 티스 군단에 의해 괴멸적인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일찍 투입 되는거야."

"그,그렇습니까."


"아차. 너희들도 이제는 병사니, 그것에 맞게 바꿔줘야겠군."


"?"

케일이 박수를 두  치자, 그와 같이 들어온 워크 비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워크비는 양옆에 1기씩 배치되었다.


"뭐야?"


"어?"

워크 비들의 행동에 몇몇 훈련병들이 의문을 품었지만, 케일의 움직이지 말라는 말에 다들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다. 훈련병들이 놀랄만도 했다. 그들에게 다가 온 워크 비들이 기계 팔을 들이댔으니.


"움직이지 말고 워크 비들이 만지게 둬라."

"옙?"

워크 비들은 훈련병들에게  명씩 멈춰가며 그들의 마크를 새겨주었다. 매니셉 방탄복 가슴팍에 있는, 금속 부분에. 워크 비들은 기계팔을 변형시켜 날카로운 가시촉을 만들어 내 빠른 속도로 마크를 새겨갔다. 마크의 생김새는 다이아몬드처럼 생긴 육각형의 틀 안에 놓인, 어느 행성이었다.


"너희들의 마크는 제 1은하계에 있는 지구라는 행성이다. 인류는 모두 그곳에서 시작했다. 연방의 시작도 그곳이지."


"이제 너희들은 훈련병이 아니다. 햇병아리들도 아니다. 너희들은 '병사'다. 너희들은 지금부로 모두 연방군 소속 일병이 되었다. 그리고  소대원도 되었지."

"옙!"

훈련병들은 이제 병사가 되었다. 전장에 뛰어들, 병사들. 피터는 각오를 다졌다. 자신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살아남겠다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가족에게로 돌아가겠다고. 코리는 흥분했다. 자신은 이제 연방군의 병사라고. 에리는 냉정히 생각했다. 자신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피터와 함께 살아남겠다고. 그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겠다고.


수송차량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송차량은 연병장을 벗어나 공항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마침 공항에는 피터 일행이 탄 것과 같은 수송차량들을 싣기 위해 지금 막 수송선여러 대가 들어서고 있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H-100 수송차량들이 공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대충 보아도 수백 대가 넘었다. 아마 마탄-3 행성 전체의 훈련소에서 몰려온 차량이었을 것이다. 그중에는 로스토크 훈련소에서 출발한 수송차량들도 있었다. 수송차량들은 공항의 활주로를 달려 병사들을 하차시키지도 않고 그대로 수송선에 실렸다.

"수송선에 탔나?"


케일이 운전병을 향해 물었다. 운전병은 차량의 시동을 끄고 혹시 모를 수송선의 흔들림에 대비하기 위해 사이드 브레이크를 걸고는 대답했다.


"예. 방금 막 올랐습니다. 지금은 수송선 내부에서 고정 작업을 하는 중입니다."

운전병의 말이 끝나자마자 수송선 내부의 기계 팔들이 아래에서 솟아 올랐다. 기계 팔들은 수송차량을 붙잡아 충격에도 뒤집히는 일이 없도록 바퀴를 바닥에 고정시켰다.


"그렇다면  우주 정거장에도 도착하겠군. 좋아. 수고했어. 쉬어."

"예."


케일은 자신들의 소대원을 돌아보았다. 소대원들은 아직도 잔뜩 긴장한  굳어있었다. 케일은 자신의 역할은 그들에게 용기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긴장하지마, 대원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매사에 집중한다면 죽음은 너희들을 덮치기 어려울거다. 너희 전우를 믿어. 지금 너희 옆에 앉아 있는 이들 모두가 유사  너희들 목숨을 구해줄 사람들이다."


"예..."

소대원들이  없이 대답했다. 케일은 그들이 충분히 그럴만 하다고 느꼈다. 자신도 처음 훈련병일 시절에는 저렇게 벌벌 떨고, 첫 전장에서는 두려움까지 느꼈었으니까. 케일이 소대원들의 얼굴에서 옛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고 있을 때, 그들을 태운 수송선은 점점 뜨기 시작하더니 우주 공간을 향해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출발하나?"


피터는 왜인지 자신의 몸이 붕뜸을 느끼고는 에리를 쿡쿡 찔렀다. 에리는 방탄복을 입고 있었지만 용케도 그의 쿡쿡 찌르는 것을 알아차렸다.


"응. 그런 것 같은데."

우주 공간에 진입한 수송선은 속도를 붙이고 있었다. 속도는 점점 빨라져, 우주 공간을 무서운 속도로 가로 질렀다. 때문에 멀지 않아, 수송선의 조종사들은 우주 정거장과 교신하게 되었다.


"여기는 알케인 A-23. 우주 정거장. 응답하라."

"수신 받았다. 무슨 일인가?"


"우리 알케인 A-23을 포함한 알케인 A-20, A-21, A-22는 마르케스 구역의 지원 요청을 받고 이동하는 중이다. 게이트를 사용해도 괜찮은가?"

"알았다. 도킹을 준비하라."


"라져. 수신종료."


수송선은  미끄러져 게이트에 조심스레 도킹했다. 게이트는 구우웅 소리를 내며 열리기 시작했고, 그 틈새로는 에메랄드 빛 섬광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게이트를 열었다. 행운을 빈다. 알케인 A-23."

"라져."


수송선들은 게이트를 통해 맨-홀 차원에 진입했다. 마지막 수송선이 게이트 안으로 사라지자마자, 우주 정거장은 게이트를 순식간에 닫아버렸다. 맨-홀 차원 내부에서, 선두에 선 수송선의 조종사들은 길을 찾아내는 레이더를 켰다. 그후 맨-홀 차원의 길을 찾아낸 그들은 차원 따개로 상처를 내었다. 갈라진 맨-홀 차원 사이로 우주 공간이 보이자, 수송선들은 너나 할  없이 맨-홀 차원 밖으로 나왔다.

맨-홀 차원을 벗어난 알케인 A-23의 조종사들은 알케인 A-20, 21, 22에게 무전을 걸어 그들의 목적지를 재확인했다. 알케인 A-20과 A-21은 오레스 02, 알케인 A-22와 A-23은 오레스 01이었다. 조종사들은 서로의 무운을 빌어주고는 각자의 목적지로 수송선의 머리를 돌렸다.

"여기는 알케인 A-23. A-20, A-21의 무운을 빈다."

"여기는 알케인 A-20. 마찬가지로 A-23과 A-22의 무운을 빈다."


"통신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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