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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화 〉[격투 훈련 1] (12/131)



〈 12화 〉[격투 훈련 1]

"좀 더 이를  물고! 주먹을 내질러! 그래서야 빌빌거리는 사람 하나 쓰러트릴 수 있겠냐? 이 머저리들아!"


허수아비들에게 주먹을 내지르는 훈련병들 사이를 걸으며, 훈터 교관은 그들을 다그쳤다. 훈련병들의 주먹은 이미 새빨갛게 물들고 몇몇 훈련병들은 주먹에서 피까지 배어나오고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훈터 교관은 훈련 종료를 외치지 않았다.

"더! 더! 모래가 가득 들어있는 이 허수아비들이 찢어질 정도로 주먹을 내지르란 말이다! 발차기도 섞어! 적의 어디를 타격해야 쉽게 제압할 수 있는가를 깨닫는 거다!"


훈련병들은 헥헥대며 허수아비들을 때리고 있었지만, 그들은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훈터 교관은 훈련병들이 더욱 더 강한 모습을 보여주기를 원했다. 훈련병들의 지금 같은 주먹질은 위력적이었지만 위협적이지 않은 공격이었다. 단 한 명만 빼고. 머리를 뒤로 묶은 채 땀을 흘리며 주먹을 내지르는 어느 훈련병은 그의 가르침이 없어도 충분해 보였다. 그는 그녀를 제외한 다른 훈련병들에겐 기술을 자세히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중지! 지금 너희들이 주먹질을 해대는 모습을 보아하니, 답이 없구나. 답이 없어! 너희들의 주먹은 위력적일지는 몰라도 위협적이지는 않아! 기술을 배운 상대라면 너희는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좁밥 새끼들일 거다."


훈터는 한 훈련병에게 손짓해 앞으로 나오라는 시늉을 했다. 훈련병은 그의 카리스마에 짓눌려 쭈뼛쭈뼛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렇다면 너희들에게 중요한 건 뭘까? 그래! 기술이야. 타격의 기술 말이다. 상대의 어디를 가격해야 효과적으로 쓰러트릴 수 있는가다!"

그는 말을 끝내자마자 앞으로 걸어나온 불쌍한 훈련병의 발을 검과 동시에 그를 뒤집어 땅에 꽂아버렸다.

"봤지? 2인 1조로 연습한다. 너희들만의 방식을 만들어도 좋다. 상대방을 뒤집어 메다 꽂아 승리를 얻어내거나 격투로 상대를 쓰러트린다면 휴식을 주겠다. 진 녀석들은누군가를 쓰러트리기 전 까지는 쉴  없다. 시작!"

훈련병들은 훈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로서로 조를 짜기 시작했다. 훈련병들은 조를 짜며 서로 몸의 대화를 하는 순간에도 지금 이 순간은 모두가 적이라고 생각했다.
"덤비시지! 하겐!"

"오호. 내게 덤비는 거냐? 내게 다가오는 거냐? 자신이 있나보군.."


"네 녀석에게 다가가지 않으면 때려눕힐 수가 없으니까 말이지.."

코리가 하겐에게 기합 소리를 내며 덤벼들었다. 하겐은 코리를 메다 꽂으려고 달려드는 그의 멱살을 붙잡았지만, 악력으로는 코리가 한 수 위였다. 코리는 악력으로 하겐의 손을 풀어 꺾었다. 그는 오른발로 하겐의 발을 걸고는 넘어뜨리기 위해 힘을 가했다. 하겐은 코리의 힘에 넘어져 땅에 얼굴을 박아버릴  했지만 운좋게 손이 먼저 땅에 닿았다. 그는 손으로 땅을 짚어 코리의 힘과 자신의 무게를 견뎌내곤, 잽싸게 발을 움직여 코리의 발을 옆으로 걷어찼다. 코리는 으앗하는 소리와 함께 중심을 잃었다. 이윽고 중심을 잃은 코리의 복부엔 하겐의 발차기가 날아들었다. 하지만 코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어차피 보호하기 힘든 복부를 내주고  방을 노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겐이 코리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휘두를 때, 코리는 그의 주먹이 날아오는 것을 살짝 피해 스치게 만들고는 턱에 어퍼컷을 꽂아버렸다. 하겐은 말 그대로 튀어올랐다가 땅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그가 쓰러지자 코리도 헥헥대며 주저 앉았다.


"내가 이겼다! 내가! 이제  수 있는거지!?"


싸움을 지켜보던 루이가 쪼르르 달려 와 하겐을 일으켜 세웠다. 하겐은 끙끙대며 일어섰다.

"하겐! 괜찮아? 이런..."

하겐은 피가 흐르는 입술을 쓱, 닦았다.

"으우. 내가 이길 줄 알았는데. 코리, 너 꽤 하는구나?"

"그짝도만만치 않던데. 내 배가 터지는 줄 알았어."

둘은 씩 웃으며 주먹을 맞부딪혔다. 사나이들의 기묘한 우정이었다. 루이나 다른 동료들처럼 싸움을 지켜보던 피터도 그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감탄했다.


"히야; 잘 싸우잖아."


"너도 해야지. 이리 와."


"?"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피터를 잡아 끈 에리는 *우벡 선수처럼 준비 자세를 취했다.
(*7000년대의 복싱)

"자, 잠깐만. 갑자기 나랑 하겠다고?"

"그래. 간다?"

에리는 준비 자세에서 스텝을 밟더니 곧바로 피터에게 돌진했다. 피터는 순간 그녀의 속도를 눈으로 따라잡지 못하고 접근을 허용하고 말았다. 에리의 팔꿈치가 피터의코를 후려쳤다.

"윽, 으악!"


그는 코에 느껴지는 격통에 비명을 질렀다. 피터의 코에서는 이미 피가 픽, 하며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렇게 반응이 느려서야 어디다  먹겠어?"

팔꿈치에 묻은 피를 슥슥 닦아서 털어낸 에리는 다시 준비 자세를 취했다. 그녀의 눈에는 엄청난 카리스마가 담겨 있었다.


"에리... 갑자기 공격하다니...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피터는 이를 악물고 코를 팽 풀었다. 그러자 핏덩이가 코에서 툭 튀어나와 흙 위를 굴렀다.


"그럼 나도 진짜 안 봐준다고!"

그는 이를  물고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한 마리의 야수처럼. 한  자신을 덮쳤던 카바니처럼. 그런 그의 마음속에서는 은근슬쩍 에리에 대한 분노도 솟았다. 왜 자신은 그녀를 처음 만난 이후로 말이든, 행동이든, 그녀에게 휘둘리기만 하는 것인가? 이럴 때는 자신이 어떤 남자인지 보여줘야 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달려든 피터의 뻗어나간 주먹이 에리의 앞머리칼에 닿는 순간, 그는 자신의 왼쪽 볼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오른쪽으로 몸이 붕 뜨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땅바닥을 2번 이상 굴렀다. 피터의 주먹이 에리의 앞머리칼에 닿았던 그 짧은 시간에, 에리는 오른발로 그의 머리를 후려갈긴 것이었다. 피터 또한 반사적으로 에리의 오른발이 닿기 직전 오른팔로 방어하는데엔 성공했으나 그다지 효과는 없었다.


"으으.."

그가 머리에서 느껴지는 격통과 어지러움에 신음하고 있을 때, 에리는 그의 등 위로 잽싸게 몸을 날렸다. 그녀는 자신의 두 다리 사이에 피터의 왼발을 끼고 비틀어 버려 움직임을 막았고, 왼팔꿈치로 피터의 왼팔을 누름과 동시에 양팔로 그의 목을 졸랐다. 항복을 받아내려는 생각이었다. 피터는 그녀에게 벗어나기 위해서 계속해서 몸을 비틀고 움직였다. 하지만 그럴수록 에리는 더욱 더 강하게 몸의 결박을 조여왔다. 피터는 점점 숨 쉬기가 고통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몸이 자유로워지지 않자, 피터는 저항심 가득한 눈으로 에리를 노려보았다. 그 모습에 에리는 미소를 짓곤 그의 귓가에 나지막히 속삭였다.

"누가 봐 줘야되는 위치인지 알겠지? 조금만 더 움직이면 왼다리를 비틀어서 탈골 시키는 수가 있어. 항복하는게 더 편할텐데."


에리는 그러면서 피터의 왼다리를 강하게 조여왔다. 피터의 왼팔은 이미 자유롭지 못한 상태였고, 그나마 자유로운 오른팔은 아까 에리의 발차기로 맛이  버린 상황이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지금 항복을, 아니, 발차기가 머리에 맞았을  하는 것이 옳았겠지만 피터는 악으로 버텨내고 있었다. 피터는 평소에 침착한 사람이기도 했지만 끈기와 포기를 모르는 성격도 갖고 있었던 사내였기 때문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는 점은, 에리가 그의 숨겨진 성격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피터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오른팔에 최대한 힘을 주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기합을 넣느라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으오-랏-!!"

피터는 잘 움직이지도 않는 오른팔에 온 힘을 집중 해 자신을 뒤집었다. 그런 피터의 등에 에리가 깔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에리는 순간적으로 그의 근성에 당황했다.
"!"

"(됐다! 뒤집었다!이길 수 있어!)"

라고 속으로 외친 피터는 에리에게 깔려 있다가 이제는 자유로워진 왼손을 휘둘렀다. 그의 팔꿈치는 매우 빠른 속도로 에리의 얼굴을 향해 다가왔다. 제대로만 꽂힌다면 격투의 승자는 당연 피터의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에리는 격투술의 천재였다. 그녀가 누구에게, 어떻게 배웠는지는 모르지만, 그녀는 목을 조르던 양팔을 더욱 조이며 오른쪽으로 홱 꺾었다. 피터의 상체를 조르는 그녀의 팔이 오른쪽으로 꺾이자 피터의 몸도 덩달아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그렇기에 그의 왼팔꿈치는 아슬아슬하게 에리에게 닿지 않았다. 그야말로 에리의 순간적인 판단이 이끌어낸 결과였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에리에게 불리했다. 결국 아직까지도 땅바닥에 깔려있는 것은 에리였으니까.

"아슬아슬했어. 그렇지, 피터?"




"닥쳐. 근성으로 이겨보이겠어. 에리!!"


"그렇게는  될걸."

"어쩔 생각이지?! 넌 내 등에 깔려있다..컥!"

에리의 주먹이 피터의 왼쪽 가슴과 옆구리를 강타했다. 1번, 2번, 3번, 4번, 5번. 5번의 주먹질을 맞고 피터는 자신의 왼팔이 자유로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을 후회했다. 자신의 왼팔이 자유로워졌음은,  왼팔을 억누르던 에리도 자유로워졌음을 뜻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는 옆구리의 극심한 고통에 신음을 내뱉으며 오른쪽으로 굴렀다. 자연히 에리는 피터의 무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으윽.. 여기서 지면.. 저 녀석은 나를 더욱 아래로 볼 거야. 나한테  곤란하게 굴어댈 거라고. 그런건 사양이야..)

헉헉대는 피터는 온몸에서 극심한 격통을 느낌에도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의 근성은 마치 *오르코드 같았다. 부서지기 어렵고, 쪼개지기 어렵다는 금속. 하지만 상상할 수도 없는 충격은 오르코드를 휘게 만든다고 한다.


지금 피터에게 가해지는 에리의 공격들처럼. 피터는 계속해서 맞아봤자 버티는 걸로는 이길 수 없음을 직감했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힘을 쏟아내어 일격을 날리기로 결심했다. 자신의 근성을 쏟아내 어금니가 부숴질 정도로 이를 악 물고 주먹을 날린다면, 천하의 에리도 쓰러지지 않을  없으리라. 비틀거리는 피터에게 에리가 스텝을 밟으며 접근했다. 그녀는 피터에게 빠르게 접근하면서 그의 눈이 찰나에 번뜩거리는 것을 순간적으로 목격했다.


하지만 그녀라도, 자신이 이렇게 빠르게 접근한 상황에서 날아오는 주먹을 피할 재간은 없었다. 피터는 주먹을 내지르며 기합을 내질렀다.


"우--랏!!"

퍼억-. 주먹이 정확히 에리의 왼볼에 꽂혔다. 피터는 속으로 환호를 질렀다. 드디어 그녀에게 자신이 한  먹인 것이었으니, 어찌보면 피터는 그녀를 '잠시 동안' 뛰어넘은 것이었다. 왜 '잠시 동안' 이냐면, 피터의 마지막 일격을 맞은 에리가 쓰러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 말도 안... 앗!"


피터가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본 것은 자신의 얼굴로 정확히 날아오는 에리의 주먹이었다. 그는 장장 2시간, 격투 훈련의 부상자들이 제생제를 투여받고 검술 훈련을 시작하기 전까지 기절해 있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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