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생존 훈련 3]
"우리 왔... 이야. 이게 뭐야?"
카바니의 뒷다리 세 개를 잘라 이고 은신처에 도착한 피터의 입이 떡 벌어졌다. 거대 나무 위에는 코리가 만들어낸 하나의 작품이 있었다. 튼튼한 나뭇가지를 잘라 FST로 맨들맨들하게 깎아내어 만든 지붕과, 지붕 아래에는 덩굴과 질긴 잎들로 만들어낸 두꺼운 1인용 해먹들의 모습은 며칠 밤을 보내기엔 충분히 아늑해 보이는 곳이었다. 심지어는 코리의 손재주로 만든, 나무가지들 사이사이의 떨어짐 방지 그물도 있었다.
"여! 왔어? 나는 열매 몇 덩이 찾았는데, 구워 먹으려고 남겨놨지! 보니까 고기를 가져온 것 같네."
코리는 높은 나무에서 피터와 에리를 바라보며 덩굴을 타고 주루룩 내려왔다. 그는 내려오자마자 나무에 기대어진 넓은 돌판을 들어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곧 고기를 구울 수 있는 식탁을 만들었다.
"흠, 이 아래다가 장작을 넣고 FST로 불을 붙이면 되겠네. 아까 은신처를 만들고 나서 시간이 좀 남길래, 커다란 돌을 깎아내고 깎아내서 이렇게 넓고 평평하게 만들었지. 뭘 구워 먹을때는 필요할 것 같아서 말이야."
"오호. 손재주가 좀 좋은데? 이런 쪽에 재주가 있으신가 봐?"
"흐흥. 에리, 네가 칭찬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냐. 이 정도는 이 코리님에게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란 말씀이지!"
코리의 콧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피터는 자신만만하는 코리의 얼굴을 보며 또 시작이라는 듯이 무시했다. 피터는 이고 온 카바니의 뒷다리 세 개를 돌판에 내려놓았다. 에리도 피터의 음식 준비에 커다란 나뭇잎으로 만든 간이 배낭을 열었다. 그 안에는 아까 전 사냥한 카바니의 살덩이들과 물이 가득 찬 수통 2병이 있었다. 이윽고 그녀도 살덩이를 들어 돌판에 올렸다.
재잘재잘대는 코리를 무시하며 주위의 나뭇가지를 한 개 툭 꺾어 FST로 비벼대던 피터는 곧 연기가 풀풀 피어오르는 나뭇가지를 돌판 아래의 마른 잎들 사이 속으로 쏙 집어 넣었다.
"그래서 내가 말이지~ 덩굴을 FST로 맨들맨들하게 만들어서 밧줄처럼 썼다니까? 정말 대단하, 으악!"
아직까지 재잘대던 코리의 뒷통수를 한 대 친 에리는 돌판 아래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손으로 가리켰다.
"피터랑 같이 불기나 해. 나는 고기가 익기 전에 조금 손질을 해 놓을 테니까."
"우씨."
코리와 피터는 연기에 눈물을 흘리며 장작을 향해 후후 바람을 불었다. 얼마나 불었을까, 연기에서는 불씨가 피어나 마른 잎들을 조금씩 삼키며 몸집을 키워 나가기 시작했다.
"우옷. 붙었다. 붙었어."
"그래?"
FST 나이프 기능을 사용해 고기를 알맞게 손질하던 에리가 장작을 살펴보았다. 확실히 불이 붙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돌판이 구워져 고기가 익을 것이 분명했다.
"진짜네. 둘 다 수고했어."
"나-이스!"
"휴우."
"이제는 고기가 익는 것만 기다리면 되겠네."
에리는 고기를 익는 것을 기다리며 두 사내에게 수통을 건넸다. 코리와 피터는 수통의 물을 꿀꺽꿀꺽 마시곤 입을 닦았다.
"뒷다리는 3개니까 한 명씩 먹으면 되겠네."
"으흠."
"헤헤헤. 맛있겠다. 아늑한 은신처에, 살과 육즙이 풍부한 고기에. 맛있는 나무 열매에! 완전 생존 훈련이 아니라 휴양지가 따로 없네!"
뒷다리와 고깃덩이들을 뒤집어보던 피터가 글라디오로 조심스럽게 뒷다리 한 점을 썰었다. 고기는 완전히 익어 새빨간 부분이 단 한 점도 없었다.
"이정도로 구웠으면 기생충이나 질병 걱정은 없겠는걸? 좋아. 이제 다들 먹자고!"
"잘먹겠습니다-!"
"잘먹겠습니다."
세 명은 각자 원하는 방식으로 식사를 시작했다. 에리는 글라디오로 썰은 살덩이를, 코리는 뒷다리를 통째로 들어, 피터는 뒷다리를 썰어낸 고깃덩이를 먹었다. 세 명은 모두 즐거운 얼굴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세 명 모두 지금 이 순간을 즐기기 위해 자신들이 그리 노력을 했다고 여기고 있었다. 정말로 행복한 저녁 식사였다.
"아. 잘 먹었다. 이거 장난 아니게 맛있네. 약간 군내가 있는 거 빼면 최고야."
"그러게. 근데 너는 뒷다리를 그렇게 들어서 와구와구 먹냐? 킥킥."
"뭐어? 이보세요~ 피터 씨. 고기는 이렇게 먹어야 맛있는거거든요? 고기 먹는 법도 모르네."
"나도 잘 먹었다. 남은 건 나무 위에 걸어 놔야지. 거기 아직 덜 탄 장작 좀 줄래? 훈제로 남겨놓게."
코리가 그녀에게 덜 탄 장작을 하나 꺼내 건넸다. 장작에서는 뜨거운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에리는 나무 위로 올라가 고기를 걸어 놓고 바로 아래에 덜 탄 장작을 놔 두었다. 그리곤 아래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우리 신호 보낼 무전기는 어디있어? 코리!"
"그거 내 해먹 안에 있어~"
에리는 코리의 해먹 속에서 무전기를 찾아 땅으로 조심스레 내려왔다. 그녀는 무전기를 꾹꾹 눌러대더니 신호를 보냈다. 무전기는 치이익 소리가 나더니 어떤 병사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훈련병, 신호 받았습니다.은신처는 준비가 다 되었습니까?"
"4소대 훈련병 에리 캐트, 피터 메이슨, 코리 맥코이. 은신처의 제작을 끝마쳤고 허기도 해결했습니다."
"알겠습니다. 곧 병사 2명이 확인차 들릴겁니다."
"넵."
통신이 끝난 무전기를 주머니에 쑤셔 넣은 에리는 배가 불러 서로 기대고 있는 사내들을 바라 보았다. 그 중 피터가 에리의 시선을 느끼고 그녀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확인하러 오신데?"
"응. 준비하고 있으래."
"흐아암. 졸리다. 엇, 그러고 보니 피터. 너 왜 다리에 천쪼가리를 붙여놨냐?"
코리가 피터의 다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피터는 다리를 쓱 보더니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이거? 아까 카바니를 사냥할 때 다쳤어. 엄니에 긁혔나 봐. 다행히 지혈은 했지만."
"그래? 천을 어떻게 얻어서 지혈을 하긴 했네? 게다가 천이 생긴게 좀 이쁘다고 해야하나?"
"큼... 그건 말이지. 알면 그리 마음에 들어하지는 않을 걸..."
"뭔데뭔데? 나도 좀 알려죠~ 궁금한건 못 참는단 말야."
"이자식이. 다 큰 사내 자식이 사내 자식한테 애교 부리지 말라고. 붙지도 마!"
"그럼 알려 주라고~!"
"으휴..."
에리가 피터를 괴롭히며 끈덕지게 달라붙는 코리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코리에게 별 거 아니라며 진실을 말해 주었다.
"그 천은 내 양말이야. 양쪽 양말 다."
"ㅇ,엥? 진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침묵을 깨버린 것은 코리의 웃음이었다.
"푸하하하하하! 에리의 양말이라니. 더럽다고~! 나같으면 상처 부위에 그런거 가져다 대는 건 절대 허락 못할텐데. 하하하하~"
"안 더럽거든. 당장에 피 뚝뚝 흘리는데 양말이고 자시고가 뭔 상관이야. 피가 멎게 해줬으면 된 거지. 안 그래 에리?"
"그렇지."
"흐응. 완전 그렇고 그런 사이같네. 둘이 쿵짝이 잘 맞는데."
"그, 그러냐. 나, 나는 모르겠어. 에리는 어떤 생각이야?"
"어떤 생각이긴. 평가하러 오셨으니 맞이해드려야 겠다는 생각이지."
"?"
"?"
"훈련병들. 은신처 준비는 다 됐다고 들었습니다."
병사 2명이 풀숲에서 걸어 나왔다. 에리는 그들에게 목례를 했고 피터와 코리는 경례를 했다.
"저희는 장교가 아니라 경례하실 필요 없슴다. 그냥 목례 정도만 하십쇼."
"예!"
"은신처는 나무 위에 지었습니까? 높군요. 올라가서 간단히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병사 한 명이 위로 올라가 은신처를 확인하고, 한 명은 지상에 남아 피터 일행에게 질문을 건넸다.
"허기는 채웠다고 했는데, 어떻게 채웠습니까? 뭐 조리한 냄새 같은 건 약하게 나는데."
피터는 풀숲을 가리키며 똑바르게 대답했다.
"카바니를 사냥하고 돌판에 고기를 구웠습니다. 돌판은 풀숲에 숨겨 놓았습니다."
병사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못 믿는 것 같았다.
"진짭니까? 카바니를 사냥했다?"
"네, 이것 보십쇼."
코리가 자신이 먹은 뒷다리를 병사에게 보여주었다. 확실히 거대한 뒷다리는 카바니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자라면 납득할 만한 것이었다.
"오. 대단하군요.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저 훈련병의 다리는 사냥할 때 다친겁니까?"
병사가 피터의 다리를 가리켰다. 피터의 다리는 에리의 양말이 지혈을 해주고 있었지만 아직도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다.
"넵. 그렇습니다."
"이런, 재생 스프레이를 배급 받지 못했나 보군요. 지금이라도 드리겠습니다."
병사는 자신의 백팩을 뒤져 20CM 정도의 스프레이 캔을 꺼냈다. 그는 에리에게 스프레이 캔을 건네주었다.
"이걸로 나중에 저 훈련병 상처에 뿌려주면 재생제 수준은 아니지만 상처가 굉장히 빠르게 재생될 겁니다. 하룻밤도 안 지나서 새 살이 돋겠지요."
"가, 감사합니다."
"확인 끝났습니다."
에리가 스프레이 캔을 건네 받자마자, 은신처를 확인하던 병사가 나무에서 내려왔다. 그는 자신과 같이 온 병사와 속닥 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지상에 있던 병사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은신처, 사냥, 전부 기준치 이상입니다. 잘 하셨습니다. 내일 아침 7시 쯤 다른 팀원들이 이쪽으로 올겁니다. 그들과 같이 귀환하면 됩니다. 날도 늦었으니, 훈련병들은 이제 쉬시면 됩니다."
병사는 그렇게 말하고 동료와 다시 풀숲으로 사라졌다. 피터 일행은 그들이 갔다고 생각하곤 나무에 오르려는데, 갑자기 병사의 얼굴이 풀숲에서 푹 튀어 나왔다.
"맞다. 내일 귀환하시기 전에는 은신처 만들어 둔 것은 전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시키고 귀환하셔야 합니다. 다음 훈련을 하는 훈련병들이 있어서 말입니다. 그럼."
병사들이 사라지자 피터가 어깨를 으쓱하며 에리와 코리에게 말했다.
"뭐. 그렇다네. 이제 올라가서 슬슬 휴식하자고. 오늘은 좀 피곤하다."
"그래."
"응."
코리가 만든 은신처에 들어선 이들은 해먹에 자신의 몸을 맡겼다. 안 그래도 튼튼한 덩굴에 FST로 다져낸 덩굴 밧줄은 더욱 질기고 푹신한 해먹으로 변화하였다. 거기에 새벽 추위에 버틸 수 있도록 따듯하기까지했다. 안락한 은신처에서 코리는 아까 구워둔 나무 열매를 쩝쩝 씹어대고 있었고, 에리는 피터에게로 다가가 그의 상처를 살피고 있었다.
"음. 상처가 생각보다 컸구나. 지혈을 했어도 피가 흐르고 있긴 했네."
"그러게. 앗 따가. 아프다."
에리가 지혈한 양말을 걷어내자 피터가 약한 신음을 뱉었다.
"좀만 참아. 스프레이 뿌리면 훨씬 낫다고 했으니."
재생 스프레이를 한 번 흔든 에리는 피터의 상처에 조심스레 분사했다. 소독제 냄새가 나는 스프레이 액들은 분사되자마자 그의 상처에 달라붙어 상처 조직을 재생시키기 시작했다. 재생제에 비하면 꽤나 느린 속도였지만, 이 속도라면 내일 아침에는 상처가 완전히 없어질 것이 분명했다.
"땡큐. 그래도 스프레이를 뿌리니 훨씬 낫네."
"그래?"
에리는 수통의 물을 걷어낸 양말에 쓱 뿌렸다. 아직 덜 마른 피가 물을 따라 나무 아래로 떨어졌다. 그녀는 양말을 한 번 짠 뒤 나무에 걸어 놓았다.
"상처가 좀 나았다니 다행이네. 그런데 피터. 있잖아."
"으,응?"
피터는 에리의 말에 땀을 흘렸다. 왜인지 모르게 긴장되는 느낌이었다.
"아까 카바니를 만나기 전에 서로 나눴던 말. 기억 나?"
"무, 무슨 말을 했더라...? 그것보단 잠깐 코리에게 할 말이 있어서..."
"코리 자는데?"
"에."
피터가 에리 너머에 코리의 해먹을 쓱 보았다. 코리는 먹던 열매를 손으로 쥐고 늘어뜨린 채 쿨쿨 잠자고 있었다. 에리는 코리를 살피던 피터에게 조금씩, 조금씩 몸을 밀착했다.
"네가 그랬잖아. 그때... 왜 너에게 다가와 줬냐고."
"그래앴나..?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왜 내가 다가가 줬는지 알고 싶어? 정말...?"
에리는 느릿느릿 피터의 해먹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잔 근육이 담긴 팔을, 그 다음에는 늘씬하고 긴 다리를. 이윽고 몸까지 슬며시 들어오는 모습은 마치 한 마리 뱀의 부드러운 행동 같았다.
"그건 너도 어느정도 알 수 있겠지?"
"ㅁ,몰라. 장난치지 말라구..."
"이래도...?"
에리는 그녀의 검지 손가락으로 피터의 목을 쓱, 쓸어내렸다. 그녀의 손가락은 정말로 차가웠다. 손가락이 닿은 피터가 몸을 부르르 떨 정도였으니. 여자와의 경험이 전혀 없었던 피터는 이 순간이 너무 부끄럽고 창피해 그녀의 손가락을 툭 떨쳐내고 옆으로 몸을 돌렸다.
"음, 어, 어, 너무 피곤해서. 나, 나는 좀 쉴게."
그의 갑작스런 행동에 에리는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부드러운 얼굴을 했다. 흘긋 그녀의 얼굴을 본 피터는 깜짝 놀라 다시 얼굴을 돌려버렸다. 부드러운 얼굴과는 맞지 않는, 그녀의 눈매는 무언가를 강하게 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마치 아까 만났던 카바니의 눈매처럼. 그녀는 손으로 피터의 방탄복을 가볍게 훑고 해먹에서 천천히 일어나 나가기 시작했다.
"그래..그럼 잘자?"
에리가 해먹에서 나갔음에도 피터는 뒤를 돌아볼 수가 없었다. 뒤에서는 누군가의 시선이 아주 강하게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