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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화 〉[생존 훈련 2] (9/131)



〈 9화 〉[생존 훈련 2]

로케스가 손가락을 튕기자 병사들을 품 속에 있는 조그만 연장을 하나씩 꺼냈다. 그   병사가 로케스에게 연장을 건네 주었다. 로케스는 연장을 훈련병들에게 보여주며 흔들어댔다.

"보이나? 너희들에게  마지막 선물은 바로 이것이다. 연방 생존 도구, FST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녀석이지.  녀석은 너희들이 불의의 사고로 생존 투쟁에 놓이게 되었을 때 도움이 되어줄 녀석이다."


로케스는 스페너와 망치를 뒤섞은 모양의 FST를 한번 가볍게 돌리곤 손잡이 부분을 나뭇가지에 갖다댔다. 그가 여러개의 버튼 중 빨간 빛이 점등하는 버튼을 누르곤 손잡이의 긑을 나뭇가지에 비비자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불이 필요할 때, 이렇게도 간단히 불을 지필 수 있다. 또, 이 사이에 나무를 껴서 박박 긁어내면, 나무의 거친 표면도 부드럽게 만들 수 있지. 너희들이 원하는 기능은 거의 다 들어있다고 보면 된다."

"FST 보급 할까요?"

한 병사가 로케스에게 다가와 말했다. 로케스는 고개를 끄덕였고 병사들은 훈련병들에게 FST를 하나씩 쥐어주기 시작했다. 이윽고 모든 훈련병들이 매니셉 방탄복과 글라디오, FST를 보급받게 되자 로케스 훈련 교관은 땅바닥에 신호 발생기가 탑재된 무전기들을 내려놓았다. 알아서 가져가라는 뜻이었다.

"자, 움직여라. 한 명이든, 팀을 짜든 너희들이 하룻밤을 지낼 거처를 만들고 허기가 가시게 사냥을 해 보아라. 이 섬에는 수많은 동식물들과 그에 맞는 위험성이 존재하지. 이곳 파힐 섬의 동식물들은 전부 먹을 수 있는 생물들이지만, 잡기가 그리 쉽지는 않을거다. 그리고 거처는 어떻게 만들든 상관하지 않겠다. 오직 오늘 밤의 추위를 이겨낼 거처라면 무엇이든 OK다. 지금부터 4시간 주겠다. 4시간 후에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고 무전기에 응답하라. 완료 신호가 수신되면 이쪽에서 평가를 하러 나설 것이다."

로케스는 훈련병들을 지켜보던 병사들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지금부터는 훈련병들만이 해결해 나가야  문제들이었으니까. 로케스가 병사들을 이끌고 풀숲으로 사라지자, 훈련병들은 어영부영 조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피터도 에리와 코리의 손목을 잡고 일어섰다.

"가자, 지금부턴 생존 경쟁이야."


피터 일행은 다른 훈련병들처럼 풀숲으로 들어가 거처를 지을 만한 알맞은 땅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평평한 땅, 풀들이 밟히고 눕혀져 푹신푹신한 땅, 습기가 있어 발이 빠지는  등 여러가지의 환경을 고민하던 피터에게 코리가 한 가지 탁월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다.

"야, 왜 꼭 지상이나 지하에 지으려고 해? 안전한 곳이 있잖냐?"


"그런 곳이 있냐?"

"이럴 땐 머리가 안 돌아가냐."


코리는 하늘로 손가락을 올렸다. 피터와 에리가 그의 손가락을 따라 위를 올려다 보자, 커다랗고 두꺼운 나무들이 그들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코리의 의도를 대충 알아챈 피터가 그를 쳐다보며 어이없게 웃었다.

"너, 설마."


"맞아."


"정말 또라이네. 천재랑은 종이   차이야."

에리도 코리의 의도를 알아채곤 혀를 내둘렀다.

"그럼! 바로 실행해 주셔야지!"


코리는 FST로 나무의 밑동부터 위쪽을 향해 찬찬히 찍어대기 시작했다. 그것은 발과 손을 집어넣어 나무를 타고 올라갈  있는, 마치 사다리의 역할을 했다. 벌써 나무의 중간 부분까지 올라간 코리는 피터와 에리를 내려다보며 크게 소리쳤다.


"애들아! 나는 여기에서 거처를 마련해 볼 테니까, 너희들은 가서 식량을 얻어와!"


피터는 그를 보며 미소를 짓곤 에리의 어깨를 툭 쳤다.


"가자, 여긴 녀석에게 맡기고. 우리는 먹을 거나 찾아보자고."

"응."
피터는 글라디오를 뽑아 풀숲을 가로 질렀다. 그 뒤에는 수통을 빨면서 FST로 나무에 흔적을 남기고 따라오는 에리가 있었다. 조금 걷던 둘은 피터가 FST로 돌에다가 흔적을 내는 것으로 휴식을 시작했다.

"잠시 쉬었다 가자. 뭐가 보이는게 없네."

"그래."

피터와 에리는 앉아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피터가 목이 마른지 침을 꿀꺽 삼키자 에리는 방탄복에 달린 수통을 툭 뜯어 그에게 건네주었다. 피터는 그녀가 건넨 수통을 고맙게 받아들였다.


"땡큐. 근데  수통엔 물이 안  있던데,  건 물이 차 있네."

"음? 아까 걸어오면서 물이 흐르는 조그만 바위가 있길래. 좀 받았지."

"아하. 자연에서 새나온 물이라 그런지, 물 맛이 나쁘지 않은 걸."


"그, 그래?"

피터는 물을 마시며 에리를 찬찬히 보았다. 뒤로 묶은 단발머리. 목에서 찰랑거리는 얇은 목걸이, 완전 군장을 했음에도 나쁘지 않은 몸의 굴곡... 도대체 왜 저런 모자랄 것 없는 사람이 자신에게 먼저 다가왔단 말인가 싶었다. 그는 왜인지 모르게 드는 부끄러움을 뒤로하고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음, 있잖아. 에리. 나 궁금한게 있는데."

"응? 뭔데?"

에리가 생글생글 웃으며 그와 눈을 맞추었다. 피터는 그녀의 미소와 눈길에 마음 어딘가가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그는 애써 침착하게 질문을 이어갔다.

"그, 그게 말이지.    아닌 질문인데. 왜 하필이면 그때 나랑 코리에게 먼저 다가온 거야?"

"다가왔다니?"

"음. 그러니까 내 말은..."


"왜  옆에 앉았냐는 거지?"

"맞아. 그거."

에리는 잠시 눈길을 돌려서 땅을 바라보았다.


"그러게. 왜였을까?"


그녀는 일어서서 천천히 피터에게 다가왔다. FST를 옆에 꽂은 에리는 그를 그윽히 쳐다보았다. 그리곤 피터 옆에 살포시 앉았다.

"왜였다고 생각해? 응? 너는 알고 있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몰라."

피터가 얼굴이 새빨개져서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에리는 조금씩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몸을 밀착시키기 시작했다. 피터가 마침내 그의 귓가에 에리의 숨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을 때, 그는 몸을 한 번 부르르 떨었다.

"그, 그만..."

"조용히 해."

에리가 그의 입을 손가락으로 막았다. 조용한 침묵이 흘렀다. 피터의 심장은 크게 쿵쿵거렸다. 행여나 에리에게 들릴까 피터는 숨을 참았다.


"조심해!"

에리는 피터를 붙잡아 땅바닥으로 몸을 던졌다. 피터의 다리에는 피가 솟구쳤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피터는 입에 들어온 흙을 캑캑 뱉어내며 그녀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캑, 무슨 일이야? 대체!"

"*카바니다..!" (*다리가 6개 달린, 7000년 대의 멧돼지.)


"뭣, 카바니?!"

에리가 몸을 굴려 피터에게서 떨어졌다. 그녀는 재빨리 일어나 글라디오를 뽑아 카바니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피터도 몸을 일으켜 글라디오에 손을 가져다 댔다.
"뭐야? 어디갔어!"


다리를 다치며 묶어둔 글라디오의 줄이 끊어진  같았다. 저 빌어먹을 엄니! 카바니가 덮친 그 순간 다리를 공격 당한게 큰 실수였던 것이다. 다리에서는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불행  다행히도 FST는 허리춤에 꽂혀 있었다.

"제기랄..."

피터는 고향에서 밭일을 할 때 카바니들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놈들이 나타날 때마다 아버지의 엽총은 불을 뿜었고, 놈들은 그때마다 겁을 먹고 달아났을 뿐이었다. 그때 봤던 녀석들은 덩치가 저리 크지 않았는데, 대체 뭘 먹고 저렇게 컸단 말인가? 족히 길이 6m는 되어 보였다.


"피터! 위험해!"

카바니가 콧김을 씩씩 뿜어대며 피터에게 달려 들었다. 에리가 피터를 구하려 달려들었지만,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피터는 몸을 날려 카바니가 돌진하는 옆으로 피했다. 카바니는 자신의 속도를 주체 못하고 커다란 나무에 머리를 박았다.

"주, 죽을  했어!"


"괜찮아, 피터?! 아직 저 놈은 쓰러지지 않았어! 조심해야 해!"

에리가 달려와 피터를 일으켜 세웠다. 그녀는 피터의 피가 흐르는 다리를 보며 으득 이를 갈았다. 그녀의 글라디오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피터, 아까 전의 공격으로 다리가 다친거야? 괜찮아? 피가 흐른다고!"

에리가 그의 다리를 보며 안절부절 못 했다. 피터는 자신의 상처를 보고 크게 거정하는 그녀의 어깨를 잡고 진정시켰다.

"괜찮아! 괜찮아! 나는 괜찮다고! 진정해. 에리! 일단  놈을 쓰러트려야 해. 저 자식은 우리를 그리 쉽게 놔 주지 않을 거야!"

"알겠어. 진정할게. 후우..."

"잘 들어. 내가 시간을 끌어볼 테니, 네가 틈을 봐서 놈에게 칼을 쑤셔넣어. 알겠지?"


"안돼! 넌 글라디오가 없잖아. 대체 어쩔 셈이야?"


"걱정마. 나를 믿어!"


피터는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고 있는 카바니에게로 다가갔다. 그는 발치에 떨어진 돌을 걷어차 놈의 머리에 정확히 맞췄다. 카바니의 눈이 번뜩였다. 사냥꾼의 눈이었다.


"좋아, 덤벼 봐라.  더러운 새끼야!"

카바니는 다시 콧김을 쉬익 내뿜고 그에게 돌진했다. 피터도 카바니를 똑바로 보며 달려갔다. 카바니가 그에게 부딪히기 직전, 그는 옆으로 굴렀다. 카바니는 역시나 그를 치지 못하고 나무에 머리를 박았다.


"역시! 저 자식은 돌진 중에 방향전환을 못해! 그게 약점이었어!"

피터는 카바니가 머리를 박은 충격에비틀 거릴때 에리에게 손짓했다. 풀숲에 숨어있으라는 뜻이었다. 에리는 고개를 끄덕이곤 풀숲에 몸을 숨겼다. 그는 에리가 은신한 것을 확인하자 바로 앞의 나무로 달려갔다. 카바니가 처음으로 들이박은 그 나무였다. 피터는 나무를 쓱 만져보고는 대강 내구도를 간파했다. 그의 예상대로 카바니가 들이박은 나무는 움푹파여 부서질랑 말랑 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FST를 뽑아 들어 나무의 움푹 파인 곳을 후려쳤다.


카바니가 정신을 차리고 그에게 다시 돌진하고 있음에도 그는 계속해서 나무를 후려치고 있었다. 짧은 시간에 나무를 십수번 후려친 그는 카바니의 발굽소리에 본능적으로 나무 뒤에 숨었다. 카바니는 아랑곳 않고 나무에 돌진했고, 다시금 나무를 들이박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결과가 약간 달랐다. 카바니의 얼굴과 엄니는 나무의 움푹 파인 곳에 단단히 끼어, 자신이 원하는 데로 빼낼 수가 없었다. 피터는 카바니가 완전히 끼인 것을 확인하고 그것의 머리를 FST로 내리쳤다. 카바니의 두개골이 얼마나 단단한 지, 내려친 피터의 손이 지잉 울릴 정도였다. 카바니는 발악을 하며 나무채로 흔들어대고 있었고, 손의 진동에 FST를 놓친 피터는 에리가 숨은 풀숲을 향하여 외쳤다.

"지금이야!!"


에리가 풀숲에서 크게 도약했다. 그녀는 기합을 담아 글라디오를 카바니의 목에 내리쳤다. 단 한 번의 휘두름으로, 카바니의 육신과 목은 영원한 이별을 맞이하게 되었다.


"키에에에엑--!"


카바니의 숨이 멎는 단말마와 동시에, 야생의 사냥꾼의 몸은 뻣뻣이 굳어 쓰러졌다.카바니의 쓰러진 몸을 보며, 얼떨결에 사냥에 성공한 피터와 에리는 서로를 마주보며 헛웃음을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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