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헬레헤시 구역으로]
차갑고 어두운 우주 공간. 그 한 가운데에는 길이 500m가량의 수송선들이 떼지어 이동하고 있었다. 어두운 우주 공간을 항해하며 자신 안에 타고 있는 자들을 가야만 하는 곳으로 보내려는 수송선들은 고대 지구에 살았다고 알려진 해양 포유류들의 무리 같았다. 수없이 많은 행성을 지나 온 수송선들은 헬레헤시 구역으로 도약 이동을 하기위해 고르페우스 은하 정거장으로 속속들이 모여들었다.
"우와. 엄청 크구만. 저것 좀 봐 봐라."
피터는 몇 시간 내내 서로 떠들고 장난치다 지쳐 조용해진 에리와 코리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손가락을 튕겼다.
"보이냐? 저게 은하 정거장이래. 오지게 크다야.다른 수송선들도 도킹하는거 봐."
에리가 피터의 말에 기웃거리며 창밖을 쳐다보았다. 타원형의 거대한 은하 정거장은 끝이 안 보일정도로 넓게 펼쳐져 있었다.
"우와..."
"뭔데? 나도 좀 보자."
코리는 에리의 얼굴을 밀어 젖히곤 창밖을 보려고 했다. 에리는 얼굴이 밀쳐져 우욱 소리를 냈다.
"욱! 매너가 없네. 진짜!"
하지만 코리는 창밖의 풍경에 넋을 놓고 쳐다만 보고 있었다. 그도 그럴게 그토록 자신의 할아버지에게 말로만 들어본 우주를 직접 눈으로 보게 되었으니. 코리는 감탄의 찬사를 뱉었다.
"히야... 진짜 크다... 우리가 지금 저기 들어가는 거 맞지?
"응. 근데 뭐 어떻게 저 은하 정거장에서 헬레헤시 구역으로 이동한다는거지?"
"그거야 기다려보면 알 수 있겠지."
피터의 말이 끝나자마자 피터의 눈에 띄었던 어느 수송선이 정거장 가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거장의 ㄷ모양 공간에 알맞게 함체를 맞춘 수송선은 은하 정거장의 명령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피터는 ㄷ모양 공간의 안쪽의 문이 서서히 열리는 것을 보았다.
"뭘 하는 거지?"
이윽고 ㄷ모양 공간 안쪽의 게이트가 열리더니, 에메랄드 빛 섬광이 쏟아져 나왔다. 수송선은 에메랄드 빛이 쏟아져 나오는 공간 속으로 점점 이동했다. 공간이 함선을 먹어치우듯 함선은 선체부터 서서히 없어지더니 뿅. 공간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피터와 코리, 에리는 사라진 수송선을 보며 깜짝 놀랐다. 코리는 커다랗게 탄성까지 질렀다. 피터의 일행 뿐만이 아닌, 수송선 좌석의 다른 이들도 각각 감탄을 내질렀다. 다들 한 번도 이런 현상을 보지 못한게 틀림 없으리라.
"이야!"
"와! 방금 봤어?"
"진짜 대단한데!"
코리는 흥분해서 에리와 피터를 흔들어댔다. 그의 얼굴은 신비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피터! 에리! 다들 방금 봤겠지? 이제 우리도 저런 걸 한다는거지! 좀 떨리는데? 은하 간의 도약 이동을 체험해보다니!"
"진정 좀 해라. 코리. 나도 좀 놀랐긴 했어. 은하 정거장 안으로 들어가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봐. 은하 정거장에서 도약 이동을 할 때는 저런 포탈 같은 것을 이용하는 거였군."
"그러게. 꽤나 신기하던데. 코리처럼 흥분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이제 우리는 저것처럼 똑같이 도약 이동을 하는 거니까, 너무 기대 돼!"
코리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들이 탄 수송선이 도약 이동을 하기 위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송선은 미끄러지듯 날렵하게 ㄷ모양 공간에 정박하더니, 게이트가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게이트는 구웅하는 웅장한 소리를 내며 서서히 열렸다. 게이트의 틈새에서는 아까처럼 에메랄드 빛 섬광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게이트의 소리는 얼마나 거대했는지, 수송선 내부에 소리가 울려댈 정도였다. 코리는 게이트 소리에 한 번 환호를 하며 일어서곤 자리에 앉았다.
"이제 들어가나 봐! 기분이 어떨까? 너무 궁금하잖아!"
수송선은 그의 기대에 응답하듯 엔진 소리를 한 번 크게냈다. 그러더니 에메랄드 빛이 감도는 게이트 차원 너머로 진입했다. 찬란한 에메랄드 섬광은 수송선을 감쌌고, 심지어 수송선 내부에서도 섬광 때문에 밝아진 상황이었다. 수송선이 완전히 게이트를 넘어가며, 작업을 완료한 게이트가 다시금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느낌이 묘한걸."
"맞아. 이상해."
수송선 내부의 인원들은 한마디씩 내뱉었다. 피터와 코리도 마찬가지였다. 울렁거린다고 해야할까? 가만히 있는데 몸은 떨리는 느낌이 들더니 갑자기 엄청난 속도감이 느껴졌다.
"으윽~!"
피터가 속도감을 느끼곤 짧게 신음 소리를 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온갖 중력 가속도와 속도감을 느끼는 이런 기분은 묘한 쾌감도 불러 일으켰다. 매우 찰나의 시간, 1초도 되지 않는 찰나의 시간이 끝나고 수송선을 감싸던 에메랄드 빛은 사라져버렸다. 게이트가 닫히던 웅장한 소리도 더 이상은 들려오지 않았다. 엄청난 침묵이 감돌았다. 침묵을 깬 것은 자리에서 일어선 코리였다.
"뭐야? 끝난거야? 존나 허무하잖아..."
코리가 맥이 빠져 실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도약 이동이 이렇게 빠를 줄 몰랐던 것 같았다. 피터는 실망한 코리의 어깨를 두들겨주며 반응을 살폈다.
"그래도 너무 실망하지는 마. 1초 쯤 되는 순간이었지만 그래도 속도감은 엄청 났다고. 안 그래? 에리?"
"어? 응. 그랬지. 엄청난 속도감이었어."
"그런가?"
코리는 마지못해 인정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는 툴툴대며 피터에게 음료수 좀 달라고 부탁했다. 피터는 잠시 더플백을 뒤진 다음 음료수를 꺼내주었다. 음료수를 꿀꺽 마신 코리가 병을 돌려주자, 선내 방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네, 수송선 내부 인원들에게 알립니다. 저희는 방금 고르페우스 지역의 은하 정거장을 벗어나 헬레헤시 구역으로 진입하였습니다. 앞으로 약 12시간의 항해 후 헬레헤시 구역의 마탄-3 행성 훈련소로 착륙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방송을 가만히 듣던 에리는 혀를 한번 쯧 차더니 팔짱을 꼈다.
"이젠 진짜 얼마 안 남았네. 난 눈 좀 붙일테니, 도착하면 알지? 부탁할게."
"응. 알겠어. 코리한테 부탁하면 되겠지. 나도 피곤해서 말이야. 이봐 코리..."
피터가 코리에게 깨워달라 부탁하려고 그를 돌아보니, 코리는 이미 에리의 좌석 팔걸이에 기대어 쿨쿨 자고 있었다. 그 모습에 에리와 피터는 서로를 마주보고 한숨을 쉬었다. 피터는 에리에게 기댄 코리를 깨지 않게 저리 밀었고, 자신이 잠을 자지 않을테니 걱정말라고 말했다.
"에휴. 저 녀석한테 뭘 기대하겠냐. 안 그래? 내가 깨워줄테니, 자라고. 나야 졸음 정도는 참을 수 있어."
피터는 말을 마친 후 창밖을 바라보며 흥미가 갈 만한 것들을 찾으려고 했다. 에리가 자신을 부르기 전 까진.
"뭐, 너를 깨워놓으면서까지 자기는 좀 그렇네. 그냥 나도 밖을 보면서 시간 보낼래."
에리는 그렇게 말하며 피터에게 몸을 밀착시켰다. 에리에겐 그저 창밖을 보려는, 사심이 담기지 않은 행동이었지만 피터는 내심 깜짝 놀랐다. 자신과 동갑의 여성이이렇게 가까이 붙은 적은 처음이었다. 인기도, 그렇다고 주위에 또래의 여자도 찾기 힘든 마을에서 살았으니. 그로서는 괜스레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이었다. 그는 부끄러운 속내를 행여나 들킬까 그녀에게 나지막히 말했다.
"...야, 너무 붙지마."
피터의 말이 너무 직설적이었을까, 아니면 그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서였을까? 에리는 쉽게 그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에리는 픽 웃으며 그에게 대답했다.
"왜? 부끄럽기라도 해? 설마. 얼굴이 그렇게 빨개지다니. 뭐야?"
"무,뭣?! 그런 장난은 하지마. 본지 몇 시간 안 된 여자한테 사랑에 빠질 리가 없잖냐. 그, 그렇지?"
"히히. 나는 아무 샏각 없이 우주를 더 잘 보려고 가까이 붙은 건데, 너는 다른 생각을 했나 봐? 사랑이 왜 나와?"
"모, 몰라. 그럼 밖이나 보자고."
피터는 그녀의 말에 자신의 마음을 들킨 듯 부끄러웠다. 물론 아직 그녀를 좋아한다거나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적어도 그녀의 행동이나 그녀가 싫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여자에 관해 경험이 전무한 그로서는 그냥 이 상황을 말로 얼버무리는게 최선이었다.
"흥. 얼버무리는거야? 뭐~ 언제든 내게 좋다고 말해도 된다고. 내가 받아줄지 안 받아줄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
"됐어. 이제 장난은 그만해. 우주 보기로 했잖아..."
"알았어. 알았어. 우와. 저거 봐라? 버려진 인공 위성인가?"
"그러게. 반짝반짝하네."
"우와아. 저것도 봐봐! 저거 *무법자들이 타고 다니는 우주선 아니야?"
"무법자는 뭐야?"
"그건~"
피터는 열심히 뭔가를 설명하려는 에리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에리가 그를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피터는 에리에게 꽤 놀랐다며 대답해주었다.
"너 꽤 말 많은 녀석이었구나? 코리랑 투닥거리던 이유가 있었네. 성격도 꽤 활발하고. 아까는 코리가 놀린 거 때문에 부끄러워 하더니."
"엇. 그건.."
"그냥 해 본 말이었어. 지금은 우주나 보자고. 더 멋진 것들도 있으니까. 그렇지?"
"그래."
피터와 에리는 서로 간의 대화를 나누며 우주 공간에 몰입했다. 얼음 행성, 불타는 용암 행성, 반파된 인공위성, 자신들이 타고 있는 것과 비슷한 수송선 등 신기한 것들이 천지였다. 둘은 신비한 우주 공간을 같이 탐험하는 느낌을 받았다. 피터는 왜인지 서로 잘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