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영원한 이별과 새로운 만남]
"아버지. 그럼 가보겠습니다."
피터는 메헤테크 공항에 들어서기 전 아버지와 말을 나누었다. 어머니 또한 옆에서 측은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시는 사랑하는 가족들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피터의 어깨를 두들기며 짧게 응원을 건넸다. 남자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신호였다.
"그래. 힘내거라. 언제나 너를 기다리고 있겠다. 꼭 살아 돌아 오거라."
"...별일 없을거에요. 아버지. 꼭 돌아올게요."
피터는 아버지와 대화를 끝내고 자신을 쭉 지켜보던 어머니한테도 고갤 조금 숙여 목례를 했다. 어머니의 눈가는 촉촉해져 있었다.
"걱정마세요. 어머니. 어떻게든 되겠지요. 전쟁터에 나간다고 꼭 죽는것은 아니니까요..."
그는 말끝을 흐렸다. 확신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어쨌든 어머니를 안심 시키기 위해서였다. 아들의 말에 어머니는 결국 펑펑 우시며 그를 껴안았다.
"절대 죽지말렴... 절대로... 피터야."
피터도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를 껴안았다. 이 순간이 끝나지 않았으면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공항의 스피커가 울어대기 시작했다.
"메헤테크 공항에서 알려드립니다. 징병 대상자 분들을 위한 수송선이 현재 대기중입니다. 징병 대상자들은 B 구역 입구로 오셔서 신원확인에 응해 주십시오."
"그럼 갈게요. 어머니. 아버지. 너무 상심하지마세요."
피터는 조심스레 어머니의 품을 벗어났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촉촉한 눈가를 닦으시곤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피터도 힘 없이 부모님에게 손을 흔들고는 뒤를 돌아 갈 곳으로 향했다. 냉정할 수도 있는 피터의 모습이었지만, 그조차도 공항의 깊은 곳으로 들어갈 수록 뒤를 돌아 부모님에게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그가 B구역에 다다랐을 때 입구 주위에는 수십 명의 사람이 몰려 바글바글 대고 있었다. 그중에는 너무나 낯 익은 얼굴도있었다.
"여! 피터! 왔구만."
"코리. 발빠르네."
피터처럼 커다란 가방을 둘러메고 있던 그는 한달음에 피터에게 달려왔다. 익숙하지 않은 곳,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니 그도 꽤 긴장한 것 같았다. 코리가 피터에게는 기나긴, 하지만 자신에게는 짧은 잡담을 시작하려는데, B구역의 게이트에서 누군가 크게 소리를 질러 그의 말을 끊어버렸다.
"자~! 징병 대상자 여러분들은 게이트 앞에 서 주시기 바랍니다. 간단한 검문검색과 신원 확인 후 수송선에 탑승할 예정이니, 빠르게 움직여 주세요!"
"저긴갑다. 가자. 코리."
"어. 벌써 들어가는구나. 그래."
피터와 코리는 게이트에 입장하기 위해서 다른 이들과 대열을 맞춰 섰다. 그들은 꽤 앞 쪽 대열에 속해 있었던 지라, 금새 신원 확인의 차례가 다가왔다.
조금 긴장한 피터가 게이트 입구를 살펴보자 중형차 하나는 쉽게 들어갈 너비의 입구엔 양 옆에 소총을 끼고 무서운 눈빛을 한 병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 옆엔 무기는 들고 있지 않았으나 군복 차림을 한 병사 몇몇이 태블릿을 들고 대기 중이었다.
"이리 오십쇼. 징병 대상자 맞으시죠? 징병 명령서와 간단한 신분 확인을 하겠습니다."
긴장한 피터를 발견하곤 병사 한 명이 다가와 징병 명령서를 요구하며 신분 확인에 응해달라고 부탁했다. 피터는 징병 명령서를 건넸고 징병 명령서를 건네 받은 병사는 이름과 나이도말해달라고 덧붙였다.
"피터 메이슨. 22살입니다."
병사는 태블릿을 두들기곤 OK사인을 보냈다. 입장해도 괜찮다는 뜻이었다.
"들어가십쇼. 게이트를 쭉 통과하면 수송선에 탑승 할 수 있습니다. 수송선의 자리는 지정석이 아닌 자유석이니, 원하는 자리에 앉으시면 됩니다."
"넵."
피터는 밝은 게이트를 걸으며 통과했다. 그의 뒤에는 그와 마찬가지로 막 신원 확인을 끝낸 코리가 뒤따르고있었다. 코리는 조금 속도를 올려 피터 옆으로 와 발을 맞추며 걸었다. 그는 떠들어대고 싶은 것 같았다.
"코리, 왜?"
"있잖냐. 이제 우리는 커다란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나가는 거. 맞지?"
"그렇지. 이젠."
코리는 자신의 턱을 쓰다 듬었다.
"그럼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을 떠난다고 봐야되는 건가?"
피터는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그에게 한 소리 쏟아내기 위해서였다.
"얌마. 뭔 말을 그렇게 해. 돌아올 수 없다니. 나는 돌아올 거라고. 뭐 우리가 죽기라도 할 거란 말이냐?"
코리는 손사래를 쳤다. 피터의 갑작스런 대답에 놀란 듯 했다.
"아니아니! 그런 뜻이 아니고. 그 있잖아. 우리는 지금부터 존~나게 위험한 전쟁터에서 구르게 된다는 거잖아.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르니까..."
"으휴. 어쨌든 죽거나 다칠거라는 소리잖아. 난 아니야. 난 지금 가는 이 몸 그대로 돌아올거라고. 죽지도 않을 거고! 그런 소리는 그만해라. 임마."
"알겠어. 알았다고. 그렇지만 걱정이 되니까 그런거야. 다시 말하는 거지만, 어찌 될 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
코리의 지긋지긋한 잡담을 듣다보니, 기나긴 게이트도 끝이 보였다. 피터는 코리와 같이 게이트에서 벗어나 게이트 끝자락에 연결된 수송선의 입구에 발을 올렸다. 수송선 안은 확실히 거대했다. 이래야 한 행성의 징병자들을 데려가는 군, 싶었다. 잠시 수송선 안을 둘러보던 그는 몇 겹으로 겹쳐진 유리창이 바로 옆에 붙어있는 좌석에 앉았다. 당연하게도 그의 좌석 옆엔 당연히 코리가 앉아야 했으나 코리가 앉기 전 누군가 가방을 휙 던져 자리를 차지해 버렸다. 어안이 벙벙해진 두 사내에게 기가 세보이는 여성이 당당한 말투로 말했다.
"원래 창가에 앉으려고 했는데, 그쪽에서 먼저 앉아버리셨으니 창가에서 그나마 가까운 그쪽 옆에 앉아도 되겠죠? 불편 하신가?"
"뭐야, 이 미친 여잔..."
"그만. 코리. 저 분 옆에도 자리 있잖냐. 거기 앉어. 창가가 좋아서 그런거겠지."
피터는 욕이 튀어나오려는 코리의 말을 끊어 버렸다. 불필요한 싸움을 벌이기 싫은 그의 마음이 강해서 였을까? 코리도 피터의 말을 대충 이해하곤 칫 소리를 내며 3번째 좌석에 앉았다.
"쳇. 초면에 저렇게 매너가 없어서야."
피터는 코리를 진정시켜 앉히곤 아직도 서 있는 여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제 옆에 앉으시면 되겠네요. 뭐, 창가가 좋으셔서 앉고 싶다면 다른 곳도 있고 그런데 여길 고집하시는 이유는 잘 모르겠네요. 창가가 그리 좋다면 여기 앉으셔도 괜찮은데, 제 좌석까지는 양보 하진 않을 겁니다."
여성은 픽 웃으며 피터에게 대답했다.
"아, 생각해주셔서 고마운데, 저는 창가에 2번째 자리도 좋아서요. 그럼."
자신이 놓은 가방을 치우고 좌석에 앉은 여성은 창 밖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피터는 여성에게 신경을 쓰지 않으려 했지만, 왜인지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코리는 오히려 자신의 옆에 앉은 여성을 노려보고 있었지만, 그리 화가 난 모습은 아닌 것 같았다. 코리는 초면부터 매너가 없는 여성을 찬찬히 분간하고 있어 보였다. 몇 분후, 그는 먼저 여성에게 말을 건넸다.
"저기요. 이 수송선에 탔으니, 당연히 징병 대상자겠죠?"
창 밖을 바라보던 여성은 코리의 말에 옆을 돌아 보았다. 귀찮다는 얼굴이었다.
"왜요. 그건? 당연히 징병 대상자니까 탄 거죠."
"흐흥. 여자들도 징병을 당한다던데, 진짠가 싶었죠. 뭐, 불쌍한 징병자들이라면 같은 처지로군요. 잘 부탁드려요. 저는 코리 맥코이에요. 그 쪽은?"
"흠. 설마 지금 작업 거는 겁니까? 관심 없어요. 전쟁터 끌려가는 사람들끼리 뭐하는 짓이람."
"작업이라뇨?! 저도 보는 눈 있거든요?! 그리고 저는 딱히 댁이 옆에 앉은게 맘에 들지 않다구요. 그냥 저 친구가 앉는 걸 마다하지 않길래 참고 있는거거든요? 좋아하는 거라면 저 녀석이겠지요. 참나!"
가만히 있던 피터는 괜히 코리가 건넨 말에 반응해야만 했다. 이대로 가면 왠지 저 여자가 좋아서 앉는 걸 마다하지 않은 남자로 보이는 것만 같았다.
"뭐? 창가에 앉고 싶대잖아. 그럼 그냥 싫다고 저리가버리라고 하냐? 째째하긴, 그렇게 하면 여자 친구 안 생긴다."
코리는 어깨를 으쓱하며 피터에게 반박했다. 비꼬는 건 코리의 전문이었으니.
"헤~ 째째하다구? 바보야. 니가 더 째째하지. 아예 비켜줘야 째째하지 않은 거 아냐? 결국 안 비켜주고 누가누구한테 째째하대. 메롱이다. 병신아!"
"이 자식이이잇..."
"어휴! 둘 다 그만해요. 나이는 20살 넘게 먹었을건데. 어린 애처럼 뭐하는 거에요?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창피하지도 않나. 안 그래요? 둘 다?"
"아줌씨는 조용히 하쇼. 이건 '진짜' 남자들의 대화라구. 껴들지 말란 말야."
비꼬기 전문 코리는 유치한 싸움을 말리는 여자에게 비아냥 댔다.
"뭐요? 아줌씨? 이봐요. 난 22살이거든요? 이게 어떻게 아줌마에요? 그럼 당신은 아저씬가?"
"헤~ 22살이면 동갑이잖아. 아줌씨는 면하셨군!"
어이없는 상황에 피터는 둘을 제지했다.
"둘 다 그만하기나 하죠? 누가 누굴 말리는 건지. 원."
"헤헤. 알았어. 친구."
"흥!"
피터는 자신의 옆에 주루룩 앉은 둘을 보며 수송선의 목적지에 도착 할 때 까지는 심심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