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화 〉[징병]
"씨발! 놈들이 온다! 쏴!"
"우린 끝이야! 으아아악!"
"니미, 지원군은 대체 언제 오는거야?"
"피터!!"
그는 전장에 있었다. 그는 전우들과 있었다. 곧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가진 괴물들이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병사들은 겁을 먹고 도망가거나 총을 갈겨대고 있었다. 피터는 두려웠지만 물러서지 않고 꿋꿋이 버티고 있었다. 어느 괴물의 발톱이 마침내 그의 얼굴을 향해 날아들을때, 그는 비명을 질렀다.
석양이 붉게 빛났다. 야생화된 체쉬들이 석양을 배경 삼아 날고 있었다. 깩깩 거리는 체쉬의 울음소리에 피터는 트랙터에서 잠들어있다가 깨어났다. 왜인지 두통이 그를 감싸고 있었다. 꿈속, 그 꿈속에서 무언가 악몽을 꾼 것 같았다. 맞아, 괴물. 악몽 속의 괴물들과 싸우는 꿈이었다. 그는 이전에도 이런 비슷한꿈을 자주 꿔 온 적이 있었다.
그는 이것이 일종의 예지 아닐까 싶었다. 몇 초후, 그는 머리를 흔들어 잡생각을 지웠다. 왠지 오늘은 이만하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저 멀리서 같이 트랙터를 몰던 코리도 트랙터를 멈추고 피터에게 손을 흔들어댔다.
"피터! 아직 밭 갈 것도 남은 것 같은데, 벌써 들어갈 작정이야?"
"그래!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구. 밭이 워낙 넓으니 말이야. 내일 다시 보자고."
피터는 능숙하게 트랙터에서 내렸다. 코리 또한 그의 태도에 의아했지만 트랙터를 돌려 자신의 집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코리의 트랙터 소리가 멀어져가며, 피터는 자신의 밭 끝에있는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하늘은 지속된 혜성들 간의 충돌로 인해 에메랄드 빛과 적색이 섞인 섬광이 느릿느릿 점등하고 있었다.
그가 오래 되었지만 낡지는 않은 집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가족들은 식탁에 음식을 올리며 저녁 준비를 하고 계셨다. 어머니는 막 구운체니쉬를 접시에 담고, 두 여동생들은 식기구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식탁에 놓인 한 문서만을 바라볼 뿐 평소에 읽던 신문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계셨다.
"다녀왔어요. 오늘은 뭔가 피곤해서 말이에요. 트랙터 몰다가 졸면 안 되니까요."
어머니와 여동생들은피터에게 간단히 인사를 했지만, 아버지는 그에게슬쩍 눈길만 잠시 주시곤 다시 문서를 바라볼 뿐이었다.
"피터 왔니? 밭일은 어렵지 않았고? 너무너무 고생했어. 와서 식사하거라."
어머니의 조금 과장 된 환영 인사를 받으며 식탁에 앉을 때도, 아버지는 묵묵히 문서만을 보시며 피터의 눈을 슬쩍슬쩍 피하고 있었다. 피터는 이것이 너무나도 불편했다. 언제나처럼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은 아니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는 아버지께 무슨 일인지 여쭈어보기로 마음 먹었다.
"아버지. 무슨 일 있어요? 어디 불편하신 부분이라도..."
피터의 말은 아버지가 문서를 쾅 내려 놓으며 끝이 났다. 당황하는 피터에게 아버지는 문서를 슥, 밀어 주었다.
"오늘 연방에서 징병 명령이 내려왔단다. 이젠... 너의 차례라고 하는구나."
"네?"
갑작스런 아버지의 말에 피터는 더욱 당황했다. 자신이 어릴 적 마을의 사람들이 하나 둘 징병이란 이름으로 거대한 우주선에 탑승해 어딘가로 떠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지만, 그게 자신에게 올 거란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징병 명령이요? 갑자기요? 대체왜..."
아버지는 고개를 저으셨다. 어머니와 동생들은 입을 꾹 닫고 모른 체 하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고르페우스 구역은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이지. 하지만 고르페우스 구역을 벗어나면 그야말로 전쟁터라고 하는구나. 연방은 너를 포함해 고르페우스 구역 모든 자치 행성의 징병을 명령을 내렸단다. 이 뭣 같지도 않은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가족 모두가 크나큰 불이익을 받게 되겠지."
"불이익이라고 하면...?"
피터는 일단 그것이 궁금했다. 자신이 전쟁터에 끌려가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인가.
"가족 모두의 재산이 몰수 당하고 일터에 끌려나가게 되겠지. 수호 연방은 대전쟁 중이라고 하니, 이런 무거운 처벌까지 내려가면서 이러는거야."
아버지의 말을 들으며 징병 명령서를 집어든 피터는 기겁할 수 밖에 없었다. 징병 명령서는 피터 자신을 원하고 있었으나 그의 눈에는 목숨을 내놓으라는 것처럼 보였다.
< 인류 수호 연방- 제 802회 징병 명령서 >
고르페우스 구역의 자치 행성 마키-203 주민 여러분. 인류는 지금 거대한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고르페우스 구역이 속한 제 2은하계는 전쟁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고 있습니다. 소용돌이를 멈추고 평화를 가져올 위대한 자들은 바로 당신들입니다. 인류 수호 연방의 군이 되십시오. 자랑스러운 인류의 수호자가 되십시오. 7102년 14월 42일, 수호 연방의 수송 함선이 메헤테크 공항에 도착합니다. 이 징병 명령서를 받은 전사들은 수송선에 탑승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 징병 명령서는 7102년 14월 40일부터 유효함. 징병 명령을 거부할 경우 연방의 불이익을 받을 수 있음.
징병 명령서를 잡은 피터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자, 아버지는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두려워하지 말거라. 연방에 속한 사람이라면 여자든, 남자든, 대부분 겪게 되는 일이란다. 너의 어머니도, 나도 겪은 일이야. 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가족들과는 만나지 못하겠지만, 어쩔 수는 없는 일이지..."
아버지가 피터를 다독임과 동시에 요리를 하던 어머니도 피터에게 조심스레 다가왔다. 어머니의 얼굴에는 얕은 미소가 있었지만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해, 슬픈 모습을 감추려는 미소임을 알 수 있었다.
"괜찮다! 괜찮아. 괜찮아... 피터야..."
피터는 징병 명령서를 식탁에 조용히 내려 놓았다. 그는 지금 자신에게 놓인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한 번도 우주란 것을 상상해본 적이 없던 자신이었다.
"잠깐만 바람 좀 쐬고 올게요."
"...그러려무나."
피터는 집에서 비틀거리며 나왔다. 곧 자신이 피와 살이 튀기고 총탄이 날아 꽂히는 전장에 갈 미래가 떠올랐다. 너무나 끔찍했다. 벌레새끼 하나 죽여본 적 없는 겁쟁이였는데. 어떻게 일이 이리 되어버린 걸까 싶었다. 그가 아까 전 시동을 끄고 세워 둔 트랙터에 터덜터덜 다가가 기대 한숨을 푹 내쉬는데, 누군가 트랙터 뒷편에서 헛기침을 했다.
"큼. 큼."
"?? 누구야? 뭐야? 코리잖아."
코리는 얕은 미소를 지었고, 코리와 피터는 눈길을 교환했다. 서로 하고 싶은 말이 전해진 느낌이었다. 조용한 침묵을 깨고 코리가 먼저 말을 걸었다.
"피터, 너도냐?"
피터 또한 코리의 말 뜻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18년 지기 친구 사이여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 그래. 어찌 이렇게 된 거야. 진짜."
"후... 피터 너도 이렇게 될 줄 몰랐지? 나도 15분 전만 해도 몰랐단 말이야. 빌어먹을. 우리가 전쟁터에 나가게 되다니. 이게 말이 되냐구."
"제기랄. 그러니까."
코리는 자신의 집에서 피터처럼 아무 말도 못한 것 같았다. 그는 피터에게 줄줄이 할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피터, 우리는 총을 꼬나쥐고 괴물 새끼들이랑 싸우게 될 거래. 어떻게 알았냐고? 우리 할아버지한테 들었지. 씨팔. 그 괴물 놈들이랑 연방은 천 년이 넘게 싸우고 있다고 하더라. 그 괴물 놈들 이름이... 어 뭐였더라? 어쨌든 그 자식들, 숫자도 더럽게 많은데 그냥 총질로는 죽지도 않는덴다! 우리 정말 어떡하냐."
피터는 계속해서 말을 쏟아내는 코리의 말을조용히 경청하고 있었다. 그가 한 말들은 틀린 적이 적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있잖냐. 우리는 이틀만 있으면 거대한 수송선을 타고 여기서 상상도 못할 만큼 먼 곳으로 날아가 싸우게 되는 거지? 만약, 그럴 일 없겠지만, 죽으면 어떡하지? 난 가족들에게 돌아오고 싶은데. 제길..."
"그런 말은 하지 마. 죽는 것은 누구나 싫어 한다고. 맞다, 우린 네 말대로 이틀만 있으면 총을 잡게 되잖아. 뭐 그런 쪽으로는 아는 것 없어?"
피터의 말에 코리는 턱을 쓰다 듬었다. 그가 뭔가를 떠올릴 때 자주하는 행동이었다.
"어어, 그게 말이지. 우리 할아버지께서는 SK-1이라는 소총을 쓰셨다는데. 탄창에 무려 260발이 들어간덴다."
"260발?! 엄청 많은 것 아니야? 그런 총을 들고도 괴물이 무서울까?"
코리는 피터의 말에 픽 웃었다. 그러더니 아니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말도 마라. 할아버지는 이걸 가까이서 괴물 놈에게 반 탄창을 꽂아 버렸는데, 죽질 않아서 오히려 죽을 뻔 하셨다더라. 주위에 동료가 있어서 다행이었데."
"엄청나게 무서운 놈들이구만..."
피터가 말 끝을 흐렸다. 아마 인류가 전쟁 중 발전이 없었다면 코리의 할아버지 이야기는 자신이나 코리가 될 일이 뻔했으니까. 그렇게 된다면 살아남을 지는 확실치 않으니. 피터의 낌새를 알아챈 코리가 하하 웃으며 피터의 어깨를 두들겼다.
"얌마. 걱정 마라. 그럴 때는나도 네 옆에 있고 나 말고도 다른 녀석들도 다 있을 거라고..."
그러나 코리의 말도 똑같이 흐려지고 있었다. 어찌보면 곧 자신들에게 닥칠 암울한 미래가 떠올라서 일수도 있겠다.
"큼. 큼. 피터. 난 이만 가 볼게. 이틀 후에 메헤테크 공항에서 보자고. 친구."
"그래. 잘 가라. 그때 봐. 친구."
둘은 자신의 집을 향해 각자 걷기 시작했다. 터덜터덜 걷는 둘의 모습은 어깨에 커다란 짐과 고민을 얹고 있어 보였다. 불안함과,어떻게든 되겠지라는 고민을.
"...다녀왔어요."
피터의 힘 없는 인사에도 어머니는 개의치 않고 밝은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그래! 다녀왔구나. 코리라도 만났니?"
"네. 잠깐 만났어요. 코리도 저와 같이 징병 당했더라고요."
"그랬구나. 코리 같은 듬직한 친구와 함께 있다면 더 도움이 되겠지. 난 너희 둘을 믿는단다. 호호."
애써 평소처럼 유쾌한 태도를 유지하려는 어머니는 피터의 눈에 너무나 안쓰러웠다. 어머니는 자신의 고통을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저런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이리라. 마음이 여린 어머니는 아들을 사지로 보내는 고통을 아들에게 만큼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리라...
"...저는 이틀 밖에 안 남았으니 오늘부터 준비할게요."
"그러려무나."
피터가 자신의 방에 느릿느릿 들어가니, 아버지가 바닥에 거대한 더플백을 풀어 놓고 물건을 정리하고 계셨다. 아버지는 피터를 잠시 올려다보곤 눈 인사를했다.
"왔니."
"네. 아버지."
아버지는 초록색 더플백을 자신 쪽으로 잡아 댕기고는 피터에게 이리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이게 뭐죠?"
"이건, 내 아버지가 쓰시고 내가 썼던 더플백이란다. 꽤 크지? 연방군은 자신이 가져온 더플백을 보급 더플백 대신 사용할 수 있어서 네게 물려주려는 거야. 이건 보급 더플백보다 조금 더 크고 튼튼하단다. 오래됐긴 했지만, 아직도 튼튼해."
더플백을 만져보니, 아버지의 말대로 튼튼하고 질긴 재질이었다. 피터는 왠지 군용 칼도 이걸 찢어버리려면 좀 걸리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렇게 좋은 걸 주시려구요?"
"그래. 네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좋겠구나. 너는 이걸 잘 활용할 수 있겠지."
"고마워요. 아버지."
"그럼, 쉬려무나. 혼자만의 시간에 미안했다."
"네."
아버지가 나가시고, 피터는 더플백을 한 번 매보았다. 더플백은 물건이 들어있지 않았어도 살짝 무거웠지만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 피터는 더플백을 침대 옆 발치에 곱게 모셔놓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침대는 피곤한 피터를 환영한다는 듯이 푹신하게 그를 감쌌다. 편안한 기분에 감싸인피터는 온갖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처음에 이틀만 있으면 이 정든 집도 안녕이구나 싶었다. 다음으로는 자신이 정말 전쟁터에서 살아남아 8년을 버텨낼 수 있을까 고민했다.
"씨팔...... 왜 하필이면 나냐고."
우주에는 무서운 괴물들이 존재한다고는 귓등으로 들어왔다. 사람을 잡아먹고 행성을 침공하는 외계벌레들... 하지만 그들을 곧 자신이 직접 만나며 죽고 죽이는 싸움을 한다고 생각하니 피터는 겁이 났다.
"진짜,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그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베개에 얼굴을 박았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이었다. 그는 마침내 잠에 들기 전, 내일은 집안 일을 전부 자신이 끝내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