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화 〉95.검술 교수 제스티아
검술 교사를 찾아보자는 생각에 아카데미 전체에 마나 파장을 펼쳐본다.
‘이 사람도 아니고... 이 사람도 애매해...’
검술 교사를 할 만큼 강력한 마나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을 찾아보지만, 딱히 눈에 띄는 사람이 없었다.
전부 다 도토리 키재기 수준.
생각해보니 몬스터들의 토벌 말고 분쟁도 없는 이 세계에서 검술 같은 살상에만 치중한 분야가 많이 발전되어 있을 리가 없었다.
마법은 발전하면 생활의 윤택함을 주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검술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정도 수준이면 그냥 평범한 판타지 세계의 기사 하나만 데려와도 손가락에 꼽히겠는데?’
그렇다는 말은 지금 내 검술에 대한 경지는 이 세계의 검사들에게는 천외천이라는 소리였다.
그렇게 생각을 마친 나는 아까 내가 눈으로 점 찍은 여자애들에게 다가갔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꺄르르 웃고 있던 여자애들은 웬 덩치 큰 남성이 다가오자 경계를 하며 물었다.
“누구신가요?”
그들의 리더처럼 보이는 금발의 단발머리를 한 여자애가 내게 물었다.
나는 그 당돌한 모습에 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으며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이 아카데미에서 가장 강한 검사가 누구인지 아나?”
그러자 그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눈을 끔뻑끔뻑하고는 당연하다는 듯이 내게 말했다.
“당연히 제스티아 교수님이죠! 그 가는 팔에서 나온다는 것을 믿기 힘들 정도로 수려한 검술! 제스티아 교수님을 모르시는 거예요?”
여자애들은 저들끼리 내가 제스티아 교수라는 사람을 모른다는 것에 신기해하며 꺄르륵거렸다.
나는 그런 질문에 준비했던 대사를 말했다.
“누군지 모른다. 애초에 제국에는 처음 온지라 잘 모를 수밖에. 혹시 그 제스티아 교수라는 사람에게 나를 안내해 줄 수 있겠나?”
“좋아요!”
“어렵지 않죠!”
“제스티아 교수님이라면 항상 검사 숙소앞마당에서 훈련하시거든요!”
그렇게 말한 여자애들은 천진난만하게 떠들며 앞으로 걸어갔다.
아마 이 여자애들이 가는 방향에 그 제스티아 교수라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그녀들을 따라 걸어갔다.
기본적으로 이 아카데미에서 마법사와 근접 계열들의 비율이 약 6:4였는데.
광장에 마법사들이 훨씬 많이 보이던 것이 그 사실을 증명했다.
하지만 그녀들을 따라 걸으니 슬슬 마법사들보다 근접 계열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무창을 들고 대련을 하는 학생들.
검을 들고 검술을 연마하는 학생들.
근력운동을 하는 학생들.
그렇게 학생들이 계속 시야에서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더니 어느새 그녀들이 우뚝 멈춰서 앞을향해 외쳤다.
“제스티아 교수님!”
“제스티아님!”
그녀들의 앞에는 살짝 까무잡잡한 피부에 은발을 휘날리며 검을 휘두르던 여자가 보였다.
‘오.’
표적은 이 여자애들이었지만 상황이 바뀐 듯하다.
내 예상보다 아름다운 그녀를 보니 흑심이 치솟는 것을 느끼며 나는 앞으로 나가서 그녀에게 물었다.
“당신이 이 아카데미에서 가장 강한 검사인가?”
“누구시죠?”
그녀는 나를 보며 물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집고 있던 지팡이를 들어 그녀를 가리키며 말했다.
“오늘부로 이 아카데미에서 가장 강한 검사가 될 남자.”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녀의 눈썹이 격하게 꿈틀거렸다.
아마 역린을 건드린 것 같다.
심기가 불편해진 것인지 그녀는 뾰족한 말투로 나를 향해 물었다.
“복장을 보아하니 마법 학과 분이신 것 같은데 어째서 되지도 않는 도발을 하시는 겁니까?”
“나는 마검사니까.”
“마검사?”
“그래, 나는 마법과 검술. 두 가지의 경지에서 제법 높은 곳에 도달했다고 자부하고 있으니까. 이미 마법 학과의 셰리피드는 내게 무너짐으로써 마법 학과의 최강은 내가 되었다. 하지만 검술은 아직 아니지.”
“셰리피드를 이겼다? 그게 사실입니까?”
그녀는 셰리피드를 내가 이겼다는 말에 반응하며 물었다.
“그렇다. 검사들과 다르게 마법사들은 경지가 차이 나면 승부 자체가 성립되지 않거든. 싱겁게 끝나버렸지. 거짓말 같으면 당장이라도 마법 학과에 가서 성원 교수라는 사람을 찾아보도록.”
“당신 교수였습니까? 그렇다면 문젯거리가 될 것도없죠. 교수 간의 대련은 종종 있는 일이니.”
그렇게 말한 제스티아는 연습용 나무칼이 아닌 허리춤에 차고 있던 진검을 꺼내더니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검을 뽑으세요. 이곳에서 저 제스티아는 정정당당히 승부를 볼 것을 맹세합니다. 성원 교수도 해주시죠.”
“잠깐, 그냥 대련만하기에는 동기가 되지 않아. 조건을 하나 걸지. 이긴 자는 진 자에게 무슨 소원이든 단 하나 부탁할수 있다. 혹시 불만 있나?”
내 도발적인 말투에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자세를 잡았다.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이기는 것은 저일 테니까요.”
나는 지팡이를 검처럼 잡고 말했다.
“하수를 상대로 진심으로 하기에는 미안하니 이 지팡이로 검을 대신하도록 하지.”
“크윽... 그런 저급한 도발은 그만하고, 검을 뽑으세요!”
“필요 없다.”
결국 내가 검을 들게 하는 것을 포기한 것인지 그녀는 자세를 잡으며 묵묵히 나를 노려보았다.
선공권은 언제나 하수에게 주어야만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녀가 공격해오지 않았기에 나는 자세를 잡고 지팡이를 잡았다.
내가 지팡이로 자세를 잡자 더욱 견고한 자세를 만든 제스티아였지만 역시나 검술은 별로 발달하지 못한 세계인 것이 확실했다.
경지의 차이도 차이지만 동 수준의 다른 세계의 검사를 데리다 놓으면 그녀는 절대 이길 방법이 없었다.
‘너무 정직하고 올곧아.’
검술은 어디까지나 생명을 빼앗는 것에 초점을 맞춘 살인 기술.
그렇기에 검술 안에는 온갖 비열한 기술들이 전부 녹아내려 있다.
그리고 그런 잡기술을 녹여서 하나의 검술로 만든 것에 정점이 바로 내가 익힌 샤르하 검술이었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와 싸우기에 최적화되어있는 검술.
가상 세계에서는 항상 나보다 강한 보스들과 싸웠기에 이만한 검술이 없었다.
어느덧 학생들이 몰려나와 우리의 대련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사람이 어느 정도 모인 것을 확인한 나는 빠르게 뛰쳐나가 그녀의 검을쳤다.
챙!!
제스티아의 마나로 강화된 육체로 이루어진 자세가 아무런 마나를 담지 않고 내지른 내 검에 무너진다.
“무슨!”
자신의 자세가 내 검격 한 방에 무너졌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그녀는 다시금 자세를 잡고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방금 그 검격은...!”
“놀랐나?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 지금도 충분히 나보다 하수인 상대에게 자비를 베풀고 있는 거다. 자, 항복할 거냐?”
또다시 이어지는 내 도발적인 어조에 그녀는 입을 앙다물고는 자세를 바꿔서 공격 자세를 취했다.
“좋다, 그래야지 ‘전’ 아카데미 최강 검사지.”
내 도발에도 그녀는 자세를 꿋꿋이 유지하며 잠시 뒤 자리에서 도약해 나를 향해 쏘아왔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녀의 태도가 귀엽기만 하였다.
‘이건 뭐 막아달라고 사정하는 것도 아니고...’
너무나도 정중한 검로에 나는 마치 그녀의 검이 내게 ‘혹시 제가 지금 찔러도 될까요?’라고 묻는 수준처럼 느껴졌다.
가볍게 몸을 틀은 나는 그녀의 검로에서 벗어나 오히려 역으로 받아쳤다.
챙!
땡그랑...
저 멀리 날아간 제스티아의 검을 보며 이곳에 모여있는 사람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검도 아니고 지팡이로 아카데미 최강의 검사라 불리던 제스티아를 단 2합으로 제압한 나를 괴물처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쓰러진 제스티아에게 물었다.
“더 할 건가? 더하겠다면 귀찮으니 기절시켜 주지. 그러기 싫다면 패배를 인정해라.”
멍한 표정으로 저 멀리 떨어진 검을 쳐다보고 있는 제스티아는 내 말에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말했다.
“제가 졌습니다.”
셰리피드와는 다르게 깔끔한 인정.
자신의 모자람을 인정하는 사람은 싫어하지 않았다.
제스티아가 마음에 든 나는 그녀에게 조언해 주기로 했다.
“네 검술은 너무 단조롭고, 정직하다. 검술은 예술이 아니야. 생명체를 죽이는 데에 특화된 살인 기술이란 말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나?”
“하지만 오직 살인에 치중한 검술은 더러워지기 마련입니다.”
“아니, 검술은 오직 살인에 치중한 기술이다. 검술이 어떻게 쓰이는지 생각해보아라. 적을 베고, 나는 산다. 검술은 딱 그것뿐이다. 검의 극에 다다른 사람들은 하나같이 인정했지. 자신이 연마한 것은 그저 살인 기술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건...”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가상 세계에서 만났던 유명한 검사들부터 당장 내 옆에 있는 검의 끝에 다다른 하련만 봐도 그렇다.
아무리 온갖 미사여구를 붙여서 검술을 포장해봤자 결국 검술이 생명을 죽이기 위해 발전한 살인 기술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검에 있는 정직함을 지우고, 올곧음을 비틀어라. 상대가 반응하지 못할 검로를 찾아 그곳을 찔러라. 약점이 보인다면 거침없이 공격하고, 상대의 마음을 흔드는 말을 해도 좋다. 방금 내가 한 것과 같이 말이다.”
“...”
내 말에 생각에 잠긴 그녀를 보며 나는 뒤로 돌아서서 말했다.
“대련에서 이긴 대가는 나중에 받으러 오지. 그때까지 자신의 검술에 무엇이 결여되어 있는가를 생각해라. 다음에 왔을 때는 조금은 달라져 있으면 좋겠군.”
검을 들고 싸우자 지금 당장은 그녀를 따먹을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읍습하게 살아가기로 해놓고 역시 천성은 버릴 수 없는 것 같았다.
‘쩝... 아직 배 안 부른데...’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무작정 따먹으면 그것은 섹스가 아니고, 강간이다.
여자가 내게 몸을 내줘야만 할 상황을 만들어서 그걸 먹는다.
그게 내가 정한 마지노선이다.
아무리 어두운 욕망을 꺼냈다고 하더라도 선은 지켜야만 했기 때문에 나는 그러한 마지노선을 정했다.
내가 뒤로 돌아 다시 마법 학과로 돌아가려 하자 검술 학과 학생들이 길을 비켜주었다.
뒤를 돌아보니 제스티아는 아직도 생각에 잠겨있었고, 나는 그런 제스티아가 내가 해준 조언에서 무언가를 깨닫기를 바랬다.
결국 그날 나는 셰리피드를 제외한 그 누구와도 하지 못한 채 여황에게 받은 숙소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숙소는 엄청 화려하였는데 아마 여황이 내가 준 딜도를 잘 쓰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아직 저녁도 아니고, 심지어 점심도 아직 전부 지나가지 않았기에 나는 다시 침대에서 일어나 생각했다.
‘흠... 지금 아카데미에서할 건 없다... 그렇다면...’
나는 곧바로 웜홀을 열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처음 떨어졌던 그곳이었다.
‘아마 이 방향으로 가면 엘프... 아, 잠시만.“
까맣게 잊고 있던 사실이 떠올랐다.
엘프가 존재하는 세계에는 무조건 세계수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내가 엘프를 따먹는다면 무조건 세계수의 귀로 들어간다는 소리다.
이그가 내가 하고 다니는 짓을 알면 신나서 아내들에게 일러바칠 것이 분명했다.
’씨발...‘
판타지 세계에서 엘프를 못 먹는다는 사실에 나는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나는 엘프를 대신해 누굴 따먹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드워프는 애초에 수비 범위가 아니었기에 패스.
수인은 좋아하지만, 워낙 경계심이 강하니 패스.
님프가 있지만 나는 님프는 안되었다.
왜냐면 님프는 기본적으로 애새끼들이었기 때문이다.
’님프를 먹느니 이그에게 들키고 말지.‘
그렇게 여러 가지 이종족들을 하나씩 손가락을 접어가며 제외하자 결국 남은 것은 하나였다.
’한 번도 못 해보긴 했네. 드래곤보지는 진짜 뜨거울까?‘
바로 드래곤.
드래곤은 언제나 내게 있어서 식량과 재화를 선물해주는 좋은 종족이었기에 눈에 띄는 족족 깡그리 죽이고 다녔다.
그렇기에 당연히 드래곤과 섹스를 해 볼 기회도 없었다.
물론, 본체랑 하는 게 아니라 폴리모프한 신체를 말하는 것이다.
’좋아, 답은 드래곤이다.‘
폴리모프한 드래곤은 기본적으로 아름다웠기 때문에 꽝이 걸릴 이유도 없었다.
목적지를 결정한 나는 곧바로 마나 파장을 퍼트려 드래곤이 있는 방향을 찾았다.
워낙 드래곤이란 생물 자체가 마나량이 높다 보니까 마나 파장에는 수천 마리가 넘는 드래곤들이 일제히 잡혔다.
원래는 이 정도로 개체 수가 많은 종족은 아니었지만, 세계가 평화롭다 보니 드래곤 슬레이어도 나오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방향은 대략 내가 있는 곳에서 동남쪽.’
방향을 잡은 나는 바로 동남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시야가 순식간에 바뀌고,드래곤들이 제일 많이 있을 산맥에 도착했다.
일단 이 세계는 드래곤들도 섹스에 미친 것이 분명하였다.
‘이 새끼들도 하고 있네.’
곳곳에서 느끼지는 마나 파장은 꼭 두 명 많으면 서너 명씩 붙어있었다.
애초에 드래곤은 개인주의가 강한 종족이라 저렇게 붙어 있을 일이라 하면 단 하나밖에 없었다.
‘섹스하는 거지 뭐.’
예상은 했기에 별로 이상한 기분은 아니었다.
나는 드래곤이 레어에서 튀어나오게 하는 방법을 아주 잘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그 방법을 바로 사용하였다.
『마법의 주체자는 나 이성원』
그건 바로 강력한 마법의 영창.
마나의 민감한 생물인 드래곤은 막대한 양의 마나가 느껴지면 무슨 일인가 싶어서 동네에서 일어난 부부싸움을 구경나오는 아줌마들처럼 하나둘 기어 나와 목을 쏙 내밀고 막대한 마나가 느껴지는 곳을 보기 때문이다.
그것을 증명하듯이 내 몸에서 막대한 마나가 뿜어져 나오자 드래곤들이 하나둘 밖으로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방금까지 폴리모프한 채 섹스했는지 어찌 된 것이 하나같이 폴리모프한 상태였다.
나는 목적을 달성했기에 바로 독립 마법을 캔슬 시켰다.
여기서 독립 마법을 날리면 산맥이 날아가 버릴 것이 뻔하기에 당연한 선택이었다.
”이게 무슨 짓이냐. 인간. 감히 겁대가리를 상실해서 드래곤들을 자극하는가?“
내 앞으로 다가와 엄포를 놓는 녹발의 미남이 보이자 나는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어디 남자 새끼가 내 앞에 얼굴을 들이밀어.“
나는 곧바로 주먹으로 드래곤을 내려쳐서 산맥 바닥에 꽂아버렸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드래곤들이 깜짝 놀라 마법을 영창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림도 없지.
나는 곧바로 마나 지배력을 극대화해 드래곤이 영창하고 있던 마법들을 모조리 무효화시켰다.
본인들의 마법이 무효화된 것이 믿기지 않는지 몇몇 드래곤들은 계속해서 영창을 시도했으나 의미 없는 반항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아공간에서 오랜만에 보는 드래곤 슬레이어를 꺼냈다.
아공간에서 꺼내지는 드래곤 슬레이어를 보며 경악한 드래곤들을 향해 나는 상큼하게 웃으며 물었다.
”자, 맞고 시작할래? 아니면 이야기 나눌래? 나도 존나 착해졌지. 예전이면 드래곤은 보이는 순간 도축해서 푹 고아 먹었는데. 이런 기회 다시는 없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