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화 〉77.회상
눈보라는 그칠 줄을 몰랐고 오히려 더욱 쌔게 몰아쳤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어느새 이 동굴에서 에렐과 같이 갇혀있던 시간은 일주일이 지났다.
아껴먹던 식량은 어느새 동이 나버렸고, 들쥐 고기는 진즉에 다 먹어 열매 한 개만이 남아있었다.
그래도 물은 충분히 있어 갈증에 시달리지는 않는 것이 그나마 희망적인 부분이었다.
우리는 처음에는 이야기도 나누고 나가서어떻게 할지도 고민했지만, 점점 커지는 허기에 이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늘도 눈보라가 내리는 동굴 입구만 묵묵히 쳐다보다가 내가 입을 열었다.
“에렐...”
그녀는 힘겨운 목소리로 내 부름에 대답했다.
“왜... 말 걸지 마... 배고프다고...”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에 나는 움찔하였지만 이내 마음을 먹고 말했다.
“남은 식량... 너가 전부 먹어...”
그러자 그녀가 벌떡 일어나서 내게 외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나가기로 했잖아!”
그녀의 외침에 나도 똑같이 일어나 말했다.
“나는... 너를 지키겠다고 맹세했다... 보다시피 밖에 보이는 눈보라는 그칠 기미가 보이질 않아... 이 상황에서 너와 그 마지막 남은 식량을 나눠 먹는다고 우리 둘 다 살아나갈 가능성이 적단 말이다... 하지만 너 혼자 먹는다면... 하루 이틀은 더 버틸 수 있겠지...”
“그러면 너는!”
그녀는 내 말을 잠자코 듣고는 마지막에 외쳤다.
“나는... 너를 지키면 그걸로 되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네가 살아나갈 수 있을지조차 확실치 않지만...”
나는 그 말을 끝으로 뒤로 누워서 에렐의 얼굴이 보이지 않게 하였다.
이 선택이 그녀의 얼굴을 본다면 흐려질 것 같아서.
내 마음속에 생긴 잔잔한 물결에 한 방울의빗방울 마냥 파문을 일으킬 것 같아서.
뒤에서 계속 뭐라고 말하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손으로 귀를 덮은 후 억지로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눈보라가 조금씩 멈출 기미가 보였다.
그녀는 어떻게든 나와 같이 탈출할 생각인지 끝까지 남은 식량에 입을 대지 않았다.
나도 그녀도 어떻게든 정신을 붙잡고 버티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다음 날.
조금만 더 있으면 눈보라가 그칠 것만 같았다.
그녀도 나도 이제는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죽은 듯 잠만 잤다.
하지만 남자인 나 보다도 그녀의 상태가 훨씬 심각하였다.
배에서 울려 퍼지는 꼬르륵거리는 소리는 동굴에 계속 울려 퍼졌고, 가냘픈 숨소리는 언제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할 수 없이 나는 저녁에그녀에게 강제로 열매를 먹이려고 생각하였다.
그렇게 하루가 또 지나가고 잠든 척하며 그녀가 완전히 잠들기를 기다렸다.
새애액... 새애액...
그녀의 가냘픈 숨소리가 들리자 나는 주섬주섬 일어나서그녀의 식량 주머니를 뒤졌다.
딱 한 개 남아있는 열매.
껍질을 까서 과육을 꺼낸다.
내 손에 묻어나는 과즙을 조금 핥자 마치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그 과육을 당장이라도 먹을 것 같았기에 이빨로 내 손가락을 물었다.
콰직!
단단한 이빨은 내 손가락을 뚫고 들어갔고 그 사이에서 피가 흘러나와 과육에 조금 묻었다.
천천히 또 천천히.
혹시라도 그녀가 소리를 듣고 일어나 이걸 거부하지 않게 하도록 그녀에게 아주 조심스레 다가갔다.
눈앞에 그녀의 마른 입술이 보였다.
스윽...
그녀의 입을 최대한 조심스레 벌린 다음 과육을 잘라서 넣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목젖을 움직이며 과육을 위장에 담기 시작했다.
꿀꺽
꿀꺽
꿀꺽
과육을 반쯤 먹였을 때 그녀가 눈을 번쩍 뜨더니 내 멱살을 붙잡았다.
나를 바닥에 눕힌 채 내 손에 들린 과육과 자신의 입을 만지던 그녀는 으르렁거리며 내게 말했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먹지 않기에 내가 먹인 것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이걸 먹을 생각이 없어.”
내가 최대한 냉정하게 그녀에게 현실을 직시시키자 그녀의 표정을 한없이 일그러졌다.
그 와중에도 나는 혹시나 과육에 흙이 닿을까 최대한 팔을 위로 올려서 남은 과육을 지켰다.
뚝... 뚝...
그녀의 눈에서 흘러나온 눈물이 내 가슴을 적셨다.
나는 그녀가 흘린 눈물에 당황해서 말했다.
“왜... 우는 거냐...”
그녀는 자신의 눈물을 닦지도 않은 채 내 멱살을 잡고 흔들며 말했다.
“같이 나가자며! 나가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같이 살자며!”
“그건...”
한때의 꿈이었을 뿐이다.
그녀와 함께 살아나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에 내뱉은 철없는 말.
나는 그녀가 더는 과육을 먹으려고 하지 않을 게 뻔하였기에 그녀의 입에 남은과육을 쑤셔 넣었다.
“으읍!”
그녀는 내가 그러한 행동을 할지 몰랐는지 당황해서 이빨로 내 손을 물었다.
콰직!
내가 상처를 낸 곳과 같은 곳을 물었기에 나는 고통이 찾아오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걸 참고 그녀가 과육을 전부 씹어먹을 때까지 손을 그 자리에 놔두었다.
그 상태로 나와 그녀의 대치 상태가 계속 이어졌고, 그녀는 결국 포기한 듯 자신의 입안에 들어온 과육을 씹어먹었다.
그녀가 목젖까지 움직여서 삼킨 것을 확인한 나는 안심하고 그녀의 입에서 손을 뗀 다음 바닥에 누웠다.
그녀는 그런 나를 매섭게 쏘아보더니 이내 다시 누워서 잠이 들었다.
‘이거면 된 거다. 조금이라도 에렐이 살 가능성이 생겼어.’
적어도 그녀는 나보다 2~3일은 더 버틸 터.
비록 나는 그때까지 버티지 못하겠지만 그녀는 달랐다.
나는 마음속 깊이 안심한 채 간만에 단잠에 빠졌다.
그리고 또 하루가 흘렀다.
또하루가 흐르고 또 흘렀다.
사흘이 지나자 나는 더는 말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물은 이틀 전에 전부 떨어졌고, 음식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제 진짜 죽겠구나.’
몸을 잠식해 오는 죽음의 기운이 느껴진다.
이미 한번 느껴 봤기에 더욱 생생한 기분.
눈만 살짝 움직여 옆에서 자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 대신 살아 주길 바랄게. 에렐.’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정말 죽는다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에렐이 살아나간다면 후에 나를 조금은 기억해 줄까.’
그녀의 마음속에 내가 남아있기를 바랬다.
그렇게 내 의식은 완전히 어두운 공간에 갇혀버렸다.
아침에 일어난 에렐은 그레이아를 흔들어 깨웠다.
그의 상태가 좋지 않아지자 거의 매일 아침하고 있는 행동이었다.
그나마 열매를 버텼기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이지 그것조차 먹지 못한 그는 거의 죽기 직전일것이다.
에렐은 그레이아를 깨우는 도중에 동굴 밖을 보았다.
동굴 밖은 어느새 눈보라가 그치었다.
에렐은 활짝 웃으면서 그레이아에게 말했다.
“그레이아! 눈이 그쳤어! 그쳤다고!”
에렐은 밖을 바라보면서 계속 그레이아를 흔들었지만 그레이아에게서는 어떠한 반응도 없었다.
에렐은 불길한 기분이 들어 그레이아의 코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후우...
약간의 숨소리가 들렸지만정말 약간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작아진 숨소리에 에렐은 다급해져서그레이아를 등에 업고 동굴 밖을 빠져나왔다.
세상은 온통 하얗게 변해 있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그레이아는 자신의 은신처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곳이라면 식량과 물이 남아있는 그곳이라면 아직 그레이아를 살릴 수 있을 것이다.
발이 얼어붙을 것만 같은 추위에도 에렐은 달리고 또 달렸다.
오직 그레이아를 살리겠다는 집념 하나만으로 그를 엎고 달렸다.
에렐은 점점 식어가는 그레이아의 몸에 겁에 질려 울면서도 멈추지를 않았다.
“죽지마... 죽지마... 제발... 죽지 말라고...”
결국 그렇게 달리고 달려 반나절 가까이 달리니 은신처의 입구가 보였다.
황급하게 은신처의 입구를 열고 들어가 그레이아의 입에 물과 음식을 쑤셔 넣었다.
하지만 아무리 넣어도 삼키지 못하는 그레이아에 에렐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여 음식을 잘게 씹은 뒤 그의 입에 불어넣었다.
억지로 들어가는 음식은 그의 숨결에 식도로 꾸역꾸역 내려가기 시작했다.
꿀꺽
그레이아는 아직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식도에 가득 찬 잘게 씹어진 음식들을 삼켰다.
꿀꺽
처음이 어려웠지 어느새 그레이아는 음식을 잘 받아먹었다.
에렐은 그런 그레이아를 보며 웃음 지었다.
명줄이 생각보다 훨씬 질긴 놈이구나... 하고 말이다.
그 뒤 시간이 얼마나 지나자 그레이아가 깨어나 에렐에게 물었다.
“에렐...? 살아남은 건가? 아니면 여긴 사후세계인가?”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을 에렐에게 하자 에렐은 웃으며 내게 말했다.
“사후세계 같은 게 어디 있어 이 바보야...”
에렐은 나를 와락 끌어안고는 말했다.
“너는 내게 목숨을 두 번이나 빚 진 거야. 이제부터 너는 내가 죽으라고 허락하기 전에는 못 죽어 알았어?”
나는 떨떠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그녀의 은신처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고 한참을 있었다.
그 뒤 생활은 간단했다.
나와 에렐이힘을 합쳐 식량을구한 후 은신처로 가져와서 모은다.
겨울이 오면 모은 식량으로 겨울을 버티고, 그녀와 대화를 하거나 잠을 자면서 시간을 보냈다.
겨울이 10번째 찾아왔을 때 우리는 건장한 어른이 되어있었다.
그사이 내 뿔은 커졌지만, 에렐의 뿔은 더욱 커졌다.
그런 나와 에렐은 이제는 슬슬 전투를 해야 할 나이라고 생각했다.
항상 은신처 안에서 에렐과 전투에 대해 시뮬레이션을 하며 대련을 해왔다.
물론, 번번이 지는 것은 나였다.
에렐은 강했고, 나는 그녀보다 약했다.
우리는 처음으로 은신처를 멀리 떠나 전쟁터에 합류했다.
고아 출신의 마족들은 워낙 많았기에 우리도 아무런 문제 없이 군대에 합류했다.
그렇게 미친 듯이 눈앞에 보이는 적들을 없애고, 죽이고, 찢어발겼더니 우리는 어느새 군대에서도 알아주는 실력자가 되어있었다.
전투에 재능이 있었는지 나와 에렐은 순식간에 높은 자리까지 올라갔다.
그러던 어느 날 에렐이 내게 찾아와 말했다.
“나와 떠나자 그레이아. 함께 새로운 세력을 세워서 우리 같은 아이들이 생기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 보자.”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내게 대뜸 자신의 세력에 들어오라 했고, 나는 당연히 그에 승낙하고 그날 밤 군대를 떠났다.
군대를 빠져나가는 우리를 잡기 위해 추격자들이 따라왔지만 우리는 능숙하게 추격을 따돌리고 숨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빠져나온 우리는 둘이서 함께 온갖 전쟁터를 누비면서 뜻을 함께할 마족들을 모았다.
세상에는 우리 말고도 수많은 마족이 평화를 바랬다.
그 마족들의 염원을 등에 업고 우리는 계속 나아갔다.
처음에는 10명 채 되지 않던 동료들이 어느새 100명 1,000명 늘어나더니 금세 10만 명 가까이 모였다.
에렐의 이름을 따서 에렐군이라고 이름을 짓고 싶었지만, 그녀는 내 이름을 붙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 이름보다 네 이름이 세 보이잖아. 안 그래?”
하지만 나는 이것은 내 세력이 아니라 에렐의 세력이라 생각했기에 말했다.
“에렐, 그렇다면 네가 오늘부터 그레이아다. 내가 오늘부터 에렐이 되도록 하지.”
그녀는 그 말에 처음에는 크게 웃으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며 내게 말했지만 내 진지한 설득에 이해하고는 말했다.
“좋아, 오늘부터 내가 그레이아. 네가 에렐이야. 하지만 둘이 있을 때는 원래대로 불러줘.”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막사를 나갔다.
그 뒤 우리는 승승장구 했다.
기나긴 시간 동안 이루어진 전쟁에 지친 마족들이 평화를 원하기 시작했고, 세력은 더욱 몸집을 불려서 어느새 대륙에서 적수를 찾아볼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장애물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마왕 치스트
그자와는 한번 격전을 펼쳤지만, 도저히 둘이 덤벼도 이기지못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막강했다.
나는 고민 끝에 그녀에게 제안했다.
“내 힘을 가져가라 에렐. 그래야만 치스트를 이길 수 있다.”
그러자 에렐은발끈하며 내게 말했다.
“네가 그러지 않아도 우리가 이길 거야! 이미 전세는 기울었어!”
나는 그녀의 반박에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마족은 어디까지나 힘을 우상시하는 종족. 지금은 잠깐 평화에 목말라 우리 쪽에 붙을지 몰라도 치스트의 강력한 힘을 보게 되면 배신할 녀석들이 군에 절반 이상일 것이다. 여태까지 모두가 이룬 모든것을 너의 개인적인 생각으로 버릴 셈이냐?”
그녀는 내 말에 반박하지는 못한 채 이를 악물었다.
힘을 양도한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주겠다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나는 주먹을 꽉 쥐고 부들거리는 그녀를 안아주며 말했다.
“어차피 내 모든 것은 너의 것이다. 하지만 너의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니지. 그러니 네가 내 모든 것을 가져가는 게 옳은 일이다. 그러니 내게 미안해하지 마라. 미안하다면 우리가 꿈꿨던 그런 국가를 만들어서 내게 보여다오. 그걸로 나는 만족하겠다.”
“미안해... 그레이아...”
“미안할 필요 없다.”
그렇게 그녀는 내 힘을 가져갔다.
나는 쇠약해졌고, 더는 전투에서 힘을 쓰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훨씬 더 강해져서 치스트의 군대를 박살 냈다.
치스트의 본성만을 남긴 채 우리는 군대를 재정비했다.
에렐은 전날 내게 아침이 되면 찾아오라고 했다.
‘할 말이 있다던데 무슨 말일까.’
그녀가 할 말이 궁금해졌던 나는 가벼운 걸음으로 에렐의 막사를 향해 갔다.
그녀의 막사가 보이기 시작한 그때.
“죽어라!! 에렐!!!”
푸욱!
가슴 깊이 찔러 들어오는 나를 찌른 첩자의 손.
진작에 배제 했어야만 했는데 내 실수다.
“쿨럭...”
나는피를 토했다.
“크아아악...”
입에서 비명이 저절로 나왔고, 소란을 들은 병사들이 잠에서 깨서 막사 밖으로 나와 나를 바라보았다.
“에렐님!!!!”
“에렐님을 지켜라!!!”
잠에서 막 깨자마자 보게 된 충격적인 장면에 병사들이 달려와 나를 찌른 첩자를 내게서 떼어놓았다.
푸슉...
첩자의 팔이 빠지자 붉은 피가 땅을 적셨다.
‘이 모습... 에렐이 본다면 다음 전투에 영향이 갈 텐데...’
에렐은 소란을 들었는지 눈을 비비며 막사에서 빠져나와 물었다.
“이게 무슨 일이... 그레이아?”
나는 피가 흐르는 가슴을 손으로 틀어막고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여어... 바로 출정 준비하자고... 내가... 쿨럭...”
입에서 한줄기의 선혈이 흘러내리자 에렐이 내게 달려와물었다.
“뭐야! 이게 무슨 일이야! 어떻게 된 거냐!”
그녀는 내 가슴을 틀어막은 손을 억지로 치우고서는 상처를 확인하고서 병사들에게 다그쳤다.
우리를 초창기부터 도와왔던 네이그르가 에렐의 물음에 비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미처 걸러내지 못한 첩자가... 에렐님을...”
그녀는 번뜩이는 눈으로 잡혀있는 첩자를 보며 물었다.
“네놈이냐!”
첩자는 낄낄거리며 웃더니 말했다.
“키키킥... 으하하하하하! 에렐은 죽었다! 무적의 쌍두마차에서 하나가 사라졌으니 이제 치스트님에게는 승리만이 남았다!”
그렇게 말한 첩자는 머리를 땅에 박아 자신의머리를 깨뜨려 자살했다.
나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에렐에게 말했다.
“어서... 일어나서 마무리해라... 저들은 잘못된 정보로 나를노렸다... 그렇다면 너에 대한 정보가 아직 들어가지 않았다는 말이지... 지금, 이 순간이다. 에렐...!”
에렐은 나를 바라보던 눈을 질끈 감고는 나를 병사에게 맡긴 후 말했다.
“혼자 다녀오마. 기다리고 있어라.”
그렇게 사라진 에렐은 약 20분 후 치스트의 목을 들고 내게 돌아왔다.
그녀는 그 목을 내 앞에 내려놓고는 말했다.
“우리가 원하던 세계의 시작이다. 그레이아... 그러니... 제발...”
그녀는 내 손을 두 손으로 꼭 붙잡고는 말했다.
“살아줘... 제발... 그때 그날처럼... 다시 한 번만 더...”
나는 내 손을 붙잡고 어린애처럼 오열하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죽음은 끝이 아니니까. 나는 죽음 후에 무언가가 더 있다고 믿고 있다. 내가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너를 찾아와 네가 세운 나라에서 너와 함께할 것이다.”
“그레이아... 그레이아... 제발... 가지마...”
내 말을 듣는 건지 아닌지 모르는 그녀의 뺨에 손을 올려 어루만지며 말했다.
“울지마라. 너와 함께한 그 날부터 내 인생은 언제나 행복에 연속이었다. 그날 동굴에서 굶어 죽어 세상 빛조차 보지 못하고 사그라들었을 내 목숨을 구한 것은 너다. 그런 너를 위해 내 목숨을 쓰는 것은 조금도 아깝지 않다.”
“그치만... 그치만...”
그녀의 울음을 멈출 줄을 몰랐고, 나는 주변에서 침묵하며 나를 바라보는 부하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니... 울지마라 그레이아... 네가 나를 찾아 구해준그 날처럼 나 또한 어디에서 태어나든 너를 찾아가겠다. 자 일어서라. 울지 말고 일어서서 계속 나아가라. 멈추지 말고.”
그녀는내 말을 듣고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내 손을 놓고 일어났다.
그녀의 맑은 눈물이 내 얼굴이 떨어졌다.
나는 그녀에게 재촉했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승리를 선언하고 모두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어서 승리를 선언해라 에렐... 마지막 부탁이다.”
그녀는 훌쩍이면서도 내 말을 듣고는 손을 위로 뻗은 채 외쳤다.
“흐윽... 길고 긴 전쟁은... 여기서 끝이다...! 우리는 치스트의 목을 벰으로써 평화의시대가 도래했음을 여기에... 선언,,, 한다...! 흐윽... 흐아아앙...”
결국 울음을 참지 못하는 그녀를 보며 병사들은 기뻐하지 못했다.
나는 병사들을 둘러보며 힘겹게 말했다.
“마지막 부탁도 안 들어주다니... 빌어먹을 자식들... 에렐을 잘 부탁한다...!아니... 그레이아를...”
그 말을 끝으로 나는 두 번이나 느꼈었던 죽음의 기운이 내게 다시금 찾아오는 것을 느꼈다.
죽음의 기운은 내 몸을 탐욕스럽게 갉아 먹었다.
‘서두르지 마라. 이번에는 진짜니까.’
그렇게 생각한 나는 잠겨가는 시야 속에서 나를 붙잡고 우는 에렐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담았다.
‘그래도... 마지막에 보게 되는 것도... 너네 에렐... 반드시 행복해라... 에렐...’
그렇게 그레이아는 대륙의 평화가 찾아온 날과 동시에.
이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