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6화 〉65.네 번째 임무 (64/99)



〈 66화 〉65.네 번째 임무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아직 돌아오지 않은 하련을 제외한 프레이야와 케야에게 말했다.

“돌아오자마자 미안한데. 아마 다음 일은 바로 갈 것 같아. 이번에 갔던 곳에서 시간을 너무 잡아먹었어.”

그러자 프레이야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게 물었다.

“성원씨, 괜찮아요...?”

나는 그런 프레이야의 물음에 억지로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아, 단지 조금 생각할 게 있어서 그래. 걱정하지 마.”

케야는 나를 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느냐. 안색이 좋지 않느니라.”

나는 나를 걱정해주는 사랑스러운 두 아내를 함께 꼭 껴안았다.

“스으읍...”

둘에게서 나는 달콤한 향기로 기운을 충전해 본다.
그렇게 한참을 껴안고 있다가 아내들을 놔주었다.
그러고는 둘의 머리에 손을 올려 쓰다듬으며 말했다.

“별거 아니야. 그럼 다녀올게.”

그러자 프레이야와 케야는 걱정스러운 얼굴을 지우지 않고 내게 말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서방이 일을 간다는데 내가 말릴 수야 없는 노릇이니...”

나는 둘에게 그렇게 말한 뒤 아공간에서 새로운 정장을 꺼내 입었다.
현대에서 인턴으로 일하던 그때를 다시 한번 더 자신에게 상기시키자는 의미다.
처음 구원자가 되었을 때처럼 다시 한번 그 각오를 마음에 새긴다.

‘후우...’

머리를 뒤로 넘겨 처음 회사에 면접 갈  했었던패션으로 바꿨다.
깔끔하고 단정한 행색.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한번 확인한 나는 방에서 나와 현관으로 간다.
거실에서는 아내들이 아직도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둘에게 한번 웃어준 뒤 정장 구두를 신고 집 밖으로 나왔다.

빠른 발걸음 아니, 그냥 텔레포트를 사용해서 의장실로 갔다.



의장실로 이동하자 라시르가 무언가를 바쁘게 하고 있었다.
라시르는 내가 온 것을 확인하자 처음에는 반가운 얼굴을 하더니 이내 굳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지금이...”

“네?”

뭐라고 중얼거리신 거지.
혼자서 무어라 말씀하신 것 같은데 워낙 소리가 작아서 듣지 못했다.
내가 라시르에게 되묻자 그녀는 한번 고개를 저은 후 내게 물었다.

“방금 돌아오신 것 같은데 바로 다음 임무를 하러 가시는 건가요?”

나는 그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이번에는 위험도가  높은 문명으로 가고 싶습니다.”

“위험도가 높은 문명이라...”

평화로운 문명에 가면 나도 모르게 다시금 각오가 해이해질  같아서 일부러 위험도가 높은 곳으로 가고 싶었다.

“위험도가 높은 문명은 적긴 하지만  차원을 따진다면 어마어마하게 많아요. 어떤  원하시는 거죠?”

“혼자서 갈  있는 곳을 원합니다.”

그것도 나 혼자서.

내 말을 들은 라시르는 잠시 침묵하다가 내게 되물었다.

“위험도가 높은 행성은  위험도에 비례해 다른 구원자들과 팀을 이뤄서 가야 해요. 하지만 지금 쉬고 있는 구원자는 방금 같이 돌아오신 에빌다님 말고는 없어요. 라프키르님은 개인적인 용무가 있으시고요.”

“제가 혼자 가서 한번 살펴보고 혼자서 무리일  같으면 나중에 지원요청을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결심은 굳건했다.

 딱  딱

침묵이 깔린 의장실에는 벽면에 걸린 벽시계의 소리만 울려 퍼졌다.
그렇게 한참 동안  침묵은 유지되었다.

“하아...”

그런 나를 굳은 얼굴로 쳐다보던 라시르는 결국 한숨을 한번 푹 내쉰 뒤 홀로그램으로 행성 하나를 띄웠다.
다른 행성들과는 다르게 회색빛을 띠고 있는 행성.
그녀는 그런 행성을 보며 말했다.

“위험도 8자리 행성이에요. 9나 10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위험해서 최대 8로 제한 할게요. 행성 이름은 9314251 레비 에요.”

그렇게 말한 라시르는 다시 한번 나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정말 가셔야 하나요? 잠깐 쉬다가 다른 멤버들과 같이 가는 것이 더 좋아 보여요.”

나는 고개를 저으며 그녀의 제안을 거절했다.
한시라도 빨리 다음 문명에 가고 싶었기 때문에 그걸 기다려줄 시간은 없었다.

“괜찮습니다. 앞서 말 한대로 위험한 상황에 맞닥뜨리면 바로 리오의 통신기로 지원요청을 하겠습니다.”

나는 내 옆에 육안으로는 보기 힘들 정도로 작은 코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런 나를 그녀는 더욱 슬픈 눈으로 쳐다보았다.

‘왜 저렇게 쳐다보는 거지?’

혹시나 지금 얼굴에  기분이 그대로 드러나 있나 싶어서 왼쪽에 있는 거울로 시선을 돌려 내 얼굴을 보았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라시르는 잠시 후 포기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하아... 알겠습니다. 그래도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위험해지면 바로 지원요청을 해주세요. 에빌다님과 앞으로 와서 대기할 구원자분들에게 성원 님이 혼자서 가셨다는 이야기는 해둘 테니 아마 지원요청을 하시면 바로 출발하실거예요.”

나는 고개를 숙이며 라시르에게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가볼게요.”

나는 그 말을 끝으로 의장실을 나와 차원 이동 방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라시르 시점-

성원이 떠난 의장실에서 라시르는 굳은 얼굴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막지 못했어.’

처음 만났을 때 그에게 보여줬던 미래.

그가 갑작스레 눈물을 흘리기에 무슨 미래인지 참지 못하고 전부 봐버렸던 그 미래의 도입부가 방금 시작되었다.

 번도   없던 그의 심각한 표정.

그 검은색의 정장과 뒤로 넘긴 머리.

그는 이번 문명에서 자신 보았던 미래를 겪을 것이다.

그리고 이 문명의 평가를 마친 그는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변할 것이다.

모든 구원자가  번쯤은 겪는 질병과도 같은 증세.

머릿속에 모든 구원자가 당시에 어떤 식으로 자신을 망가뜨렸는지 떠올렸다.

{비켜라, 라시르.  앞을 가로막는다면 너 또한 적이다. 그러니 다시 한번 묻겠다.너는 내 적인가?}

냉철한 얼굴로 자신의 군단을 이끌던 라프키르.


{내가 무슨 심정으로 그랬는지 네가 이해할 수 있어? 아니, 너는 이해 못 하겠지. 너는 내가 아니잖아. 그러니 내 복수를 방해하지 말아줘.}

흑화한 채 나를 향해 맹렬히 공격해오던 키 릴.


{결국 내가 이뤄온 모든 것은 허사에 가까운 일이었다는 건가.}

절망에 빠져 앞으로 나아가기를 멈추었던 레브.


{으아아아아아앙... 가지마...가지마 크로우... 뭐가 구원자야... 바로 옆에 있는 사랑하는 이조차 지키지 못한 내가 누구를 구원하라는 건데!}

비가 쏟아지던 그 행성에서 자신의 짝을 잃고 나를 향해 목 놓아 울부짖던 슈엘.

{결국 도달하지 못할 경지라면 내가 살아온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지? 나는 마법에 모든 것을 바쳤어. 그녀는 그런 내 인생을 통째로 부정하는 존재다.}

자신의 꿈을 부정당해 폭주하던 에빌다.


{라시르 너는... 내가 정말 그런 일을 계속할  있을거라 생각했나? 나는 뱀파이어다. 다른 이들의 생명을 먹으며 영원히 살아가는 존재. 그런 나보고 누군가를 구하라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거냐? 그렇다면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지금  자리에서 증명해주지.}

허공에 떠서 나를 내려다보며 비웃던 스퀴르.


{나에게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기대하지 마라. 나는 검. 검은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다. 검을 휘두르는 자가 이끄는 대로 움직일 뿐. 그러한 쓸모없는 감정은 검을 녹슬게 한다. 너 또한 그걸 알고 나를 구원자로 만들지 않았나?}

하얀 도복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나를 향해 무표정하게 물어오던 하 련.

{라시르 미안해... 내가 원한건... 원했던  이런  아니었어... 나도 이렇게 될 줄 몰랐어... 정말 미안해...}

잘못된 심판 이후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리오.


{결국 아무리 포장해봐야 병장기를 만드는 것은 사람을 죽이는 데 일조한다는 뜻이다. 내가 만든 무기들로 얼마나 많은 생명이 목숨을 잃었을지 상상이나 가나? 장인? 명장? 그런  전부 무슨 의미가 있지? 나는 결국 살인에 일조하는 공범자일 뿐이야.}

망치를 손에서 놓고 하염없이 시간만 보내던 드베리아.

{이제 와서 속죄하라고? 이봐 의장 나으리. 나는 그럴 마음도 없고, 그럴 수도 없어. 내가 죽인 모든 인간은 전부 내가 안고 갈 거야. 결국 나는 언젠가 지옥에 떨어져 영겁의 불길에서 고통받겠지. 위선자들처럼 이제와서 용서를 구하기 위해 착하게 살아가라고? 행, 엿이나 처먹으라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저지른 수많은 죄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던 쿠르하.


{나는 정령계를 포기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지. 내가 약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이다. 삶이란 투쟁이다. 끊임없이 생명이라는 장작을 불태우는 투쟁의 연속이지. 모두를 지킬 강력한 힘이 없으면 아무것도 지키지 못한다.}

지키지 못한 고향에 대한 죄책감에 서서히 죽어가던 이프리트.

그들은 하나같이 한 번쯤은 열병과도 같은 시기를 보냈던 적이 있다.
하지만 모두가 그 시기를 이겨내어 한층 더 단단해졌고, 자신을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니 당신도...’

성원도 그들과 같이 이겨내기를 빌었다.
그는 자신의 억지로 이곳에 끌려와 구원자가 된 특이한 케이스.
그렇기에 그가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몰랐다.

‘부디... 어떤 일을 겪으시든지 반드시 이겨내시길...’

‘내.......’

......

...



-성원 시점-

차원 이동 장치에 서서 9314251 레비로 가기 위한 정보를 입력한다.

띠-띠띡


입력이 끝나고 이제는 어느덧 익숙해진 차원 균열이 나를 집어삼키는 게 느껴졌다.


지지지지지직...


차원 균열에 빨려 들어가고 잠시 후.
회색빛 하늘이 위에 보인다.
  좋은 공기가 폐로 들어오자 숨이막힌다.

“쿨럭... 크으... 일단   몰라도 환경은 빵점이다...”

여태껏 돌아다녀 본 문명 중에서도 최악의 환경이었다.
공기는 이게 공기가 맞는 것인지 의심이 갈 정도로 들이마시는  고통스러웠고, 하늘은 그러한 공기 덕에 회색빛을 띠고 있었다.
신체를 변화시켜서  행성의 환경 상태에 적응하도록 한다.

“후우...  정도면 되겠네.”

한결  쉬는 게 편해졌다.
현대의 매캐한 매연들과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끔찍한 수준의 공기.
첫인상부터 최악이다.

내가 떨어진 곳은 도시의 외곽으로 보이는지역.
주변에 높게 지어져 있는 건물들이  시야를 장악한다.

‘발달한 문명.’

전형적인 기술이 발전하였으나 환경을 지키지 못한 문명으로 보인다.
길거리에는 무표정 얼굴로 사람들이 바쁘게 걸어 다녔다.

“우욱...”

내가 살았던 현대가 계속해서 그대로 발전 했으면 이러한 모습이었을까.
허공을 날아다니는 이동 수단과낮인데도 회색빛 하늘 덕에 어두운 도시를 각종 환한 불빛이 비치고 있었다.

‘카모폴라쥬‘

무영창으로 카모폴라쥬를 사용하여 몸을 숨겼다.

이곳에 오기 전에 생각했던 대로 이번에는 은밀하게 움직이기로마음먹었기에 최대한 나를 드러내지 않기로 하였다.
SF에 가까운 문명이기에혹시 모를 열 감지 센서도 대비하여 몸의 체온을 낮췄다.

나를 완전히 숨기고는 그 상태로 어디론가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 속에 섞여서 정처 없이 걸었다.
목적지는 없었다.
그저 이 문명을 자세히 돌아다닐 예정이었다.

’이제부터 훨씬 자세하게 문명에 대해 평가한다.‘

여태까지는 조금 대충 살펴보며 다닌 것만 같았기에 이제는 확실하게 문명의 밝은 면부터 어두운 면까지 전부 보기로 하였다.
그런 생각을 하며 정처 없이 계속 걷다가 커다란 벽을 마주했다.

’벽?‘

이런 세계에 이 문명에 대적하는 문명이 있기라도 한 것일까.
나는 가볍게 뛰어서 벽을 뛰어넘었다.
그리고 그  밖에는.

’좀 심한데.‘

완전히 황폐하게 변해버린 황야가 펼쳐져 있었다.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 낸 완벽하게 무너진 환경.
하지만 평소와 같이 속단하지 않기로 한 나는 에빌다씨의 조언으로 브리엘에서 만들었던 독립 마법을 사용했다.


『마법의 주체자는  성원』

마나를 끌어올려  행성의 대기권을 감싼다.


『하계를 굽어보는 전능자의 눈』


그러자 내 눈앞에 행성의 모든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재 이 행성의 환경은 말로 표현하기도 어려울 만큼 끔찍했다.

말라버린 강물.

썩어버린 습지.

말라서 갈라진 땅.

검게 변한 바다.

어디에서도 찾을  없는 삼림.

이미 파멸의 종착역에 거의 도달한 행성이란 것을 절절히 느끼게 만드는 광경이었다.

’환경은 더 볼 것도 없이 탈락이다. 마음 같아서는 기술까지 탈락을 주고 싶지만... 아직 내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으니...‘

그렇게 생각한 나는 다시 성벽을 넘어 도시 안으로 들어가려 하였다.

그때.

눈에 들어오는 행성의 모습에서 사람이 사는 것만 같은 집들이 모인 마을들이 보였다.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니었다.
수많은 마을이  커다란 도시 밖에 존재했다.

짐작되는 것은 하나.

’빈민층.‘

도시에 사는 사람들과는 다른 빈민층들일  분명했다.
도시에 들어와 사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은 소외된 자들.
아무것도 건질 것이 없는 황야에서 살아가는 그들의 삶은 어떨까.
나는 방향을 틀어 가까운 마을로 달려갔다.

1분 정도 뛰니 어느새 가까운 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발달한 문명의 세계에서 보기 힘든 돌로 대충 쌓아 만든 집들.
나무조차 없어서 오로지 돌로만 만들어진 감옥 같은 집들이 마을을 이루는 전부였다.

나는 혀를 한번 차고는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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