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4화 〉63.자결 (62/99)



〈 64화 〉63.자결

최대의 속도로 달려 어느새 저 멀리 불꽃이 피어나고 땅이 패는 최전선이 보였다.

‘베리스트는...?’

그녀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그녀가 보이지 않자 나는 마나 파장을 퍼트려 베리스트의 마나 파장을 찾았다.
그러자 저 멀리서 희미하게 느껴지는 베리스트의 마나 파장이 느껴졌다.

그녀의 위치를 특정한 나는 바로 달려서 그녀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곳에는...

“그때 그 상처를 6개월 만에 회복한 것은 놀라웠으나 이걸로 끝이다. 마녀의 여왕 베리스트여. 이제 이 기나긴 전쟁을 끝내 평화를 되찾을 때가 되었다.”

베리스트가  칠갑이 된 채 한 중년 남자의 손에 목을 붙들린 채 공중에 떠 있었다.
그녀는 힘겨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흐으... 그래, 네가  이겼어, 켄리쉬. 하지만 우리 마녀들은 쉽게 끝나지 않을 거야. 우리의 후대는 오늘의 패배를 거름 삼아 더욱 강해질 거야. 그럼  마녀들은 다시금 너희를 죽이고 납치해오겠지... 우리 마녀는 내가 죽는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아.”

그 말을 들은 켄리쉬라고 하는 크레뷸러의 국왕이 무표정한 눈으로 베리스트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게 마지막 유언인가?”

그러자 베리스트는 그에게 침을 퉤 하고는 뱉었다.
그걸 가볍게 목을 돌려 피한 켄리쉬는 그녀에게 말했다.

“그럼 되었다. 네 목을 건  진격한다면 마녀들은 전의를 잃겠지. 그렇다면 결국 전쟁은 길든 짧든 우리 크레뷸러의 승리가 될 것이다.”

그렇게 말한 그가 검을 들어 올려 내려치려는 순간 나는 상징체로 변해서 힘을 담아 말했다.


[멈춰라.]

그러자 전쟁터에 들리는 모든 소리가 일순 사라진 채 모든 사람이 나를 쳐다보았다.

[내 제자에게서 손때.]

그렇게 말한 나는 마나를 운용해서 켄리쉬를 붙잡아 들어 올렸다.
그는 갑자기 허공에 들어 올려진 자신을 보며 말했다.

“이게 무슨...! 뭐하는 놈이냐!”

나는 그의 말에 순순히 대답해주었다.


[구원자 의회에13번째 멤버. 동결의 이성원. 지금부터 이 행성에 대한 평가를 시작한다.]


그렇게 말한 후 힘을 끌어올려 모든 지성체가 나를   있게 만들었다.


[지금부터 일어나는 모든 분쟁, 혹은 전투 행위는 나에 대한 적대 행위로 간주.  자리에서 처형한다.]

나는  상태로 베리스트를 향해 손을 뻗어 내 품 안으로 오게 한 뒤 말했다.

[구원자로서 가지는 권리를 지금 이 자리에서 선언한다.]

선언이 시작되자 마녀, 사냥꾼을 가리지 않고 전쟁터에 있는 모든 인간이 벌벌 떨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첫 번째. 구원자의 행동은 기술, 환경, 윤리, 도덕, 문화, 분쟁, 역사 총 7가지의 평가 항목으로 인해 이루어진다.]


[두 번째. 구원자의 심판은 7가지의 평가 항목  과반수의 항목이 미달일 경우 내려진다.]

[세 번째. 구원자가 심판으로서 행하는 살상은 카르마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네 번째. 구원자의 구원은 7가지의 평가 항목 중 과반수의 항목이 통과일 경우 내려진다.]


[다섯 번째. 구원자의 구원에서 비롯된 살상은 카르마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여섯 번째. 구원자를 심판을 받을 해당 문명이 아닌 다른 문명이 구원자를 향해 선제공격할 경우, 구원자는 그에 대해 대응할 수 있다.]

[일곱 번째. 구원자의 모든 행동은 구원자 의회의 의장이자 '신'의 대리인인 라시르 루아에 의해 보호받는다.]


[이상, 구원자의 권리에 대한 선언을 마친다.]

권리 선언을 마친 나는 마녀들의 국가, 퀸브리엄을 보며 말했다.

[우선 마녀들의 국가, 퀸브리엄에 대한 평가를 내린다.]


[크레뷸러와 대적하며 대륙의 동쪽에서 마도의 길을 걸어가는 마녀들의 국가 퀸브리엄은 윤리, 환경, 문화, 기술 총 4가지 항목에 통과하였다.]

[종족의 특성상 남성이 태어나지를 않아 번식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크레뷸러의 남성을 납치하였던 것은  도덕적인 기준에 허용되지 않았기에 도덕 항목에서 통과하지 못하였다.]

[또한 오래된 전쟁으로 수많은 마녀가 죽어가는 대도 5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쟁을 멈추지 않고 지금까지도 이어 왔기에 역사, 분쟁 항목에서 통과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과반수가 넘는 항목을 통과한 퀸브리엄에는 ‘구원’을 선언한다.]


마녀들은 다리를 부들부들 떨며 내게서 느껴지는 압도적인 존재감에 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크레뷸러를 보며 입을 열었다.

[다음은 사냥꾼들의 국가, 크레뷸러에 대한 평가를 내린다.]


내가 고개를 돌려 자신들이 있는 곳을 쳐다보자 사냥꾼들이 사시나무 떨듯이 벌벌 떨기 시작했다.
압도적인 격의 차이로 인해 생물체라면 느낄 수밖에 없는 포식자를 향한 공포가 그들을 좀 먹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모습을 보며 말을 이어갔다.

[마녀들의 침략을 막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냥꾼들의 국가 크레뷸러는 윤리, 도덕, 환경, 문화, 기술로  5가지의 항목에 통과하였다.]

[마녀들의 침략을 오랜 기간 막으면서도 지성체로서 타락하지 않은 것은 올바른 일이기는 하나, 평화협정을 맺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마녀들과의 싸움을 이어온 것에서 역사, 분쟁 항목이 통과하지 못하였다.]

[그렇기에 퀸브리엄과 마찬가지로 과반수가 넘는 항목을 통과한 크레뷸러에도 ‘구원’을 선언한다.]

 문명의 평가를 마친 나는 이어서 구원의 해답을 내놓을 에빌다씨를 불렀다.

“에빌다씨.”

그러자 뒤에서 에빌다씨가 웜홀을 열어 성아와 함께 내 옆에 섰다.

“알겠어.”

에빌다씨도 바로 상징체로 변한 다음 입을 열었다.

[크레뷸러와 퀸브리엄의분쟁의 주된 원인은 마녀 측의 성비 불균형에서 오는 크레뷸러의 남성 납치.]

[그렇기에 두 문명에대한 구원은 그 성비를 맞추는 것에 있다.]

그렇게 말한 에빌다씨는 독립 마법을 영창하기 시작했다.

[『마법의 주체자는 나 에빌다 트루하.』]


그녀의 주위에서 막대한 양의 마나가 뿜어져 나왔다.
나는 성아가 피해를 보지 않게 내 쪽으로 끌어당겨 품에 안고는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상실의 아픔을 잊기 위한 망각의 묘약』]

그러자 마녀들의 몸이 빛에 휘감겼다.
전쟁터에 있는 마녀들뿐만 아니라 퀸브리엄에 있는 마녀들도 모두 말이다.
이내 그녀들을 휘감은 빛은 사라지고 에빌다씨가 말했다.

[이것으로 앞으로 모든 마녀는 남자아이를 낳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남자아이는 인간으로 태어날 것이다.]

그렇게 말한 에빌다씨는 나를 향해 말했다.

“성비 불균형이 문제라면 그 원인을 해결하면 되지 않겠어?”

나는 진심으로 그녀에게 감탄했다.

“마법으로 이런 것도 가능하군요...”

그러자 그녀는 빙긋 웃으며 내게 답했다.

“마법을 사용하게 만드는 마나는 ‘신’의 정신력이야. 마법으로 불가능한 일은 존재하지 않지.”

“그렇습니까...”

나는 설명을 듣고는 다시 힘을 끌어올렸다.

[이것으로 7347 브리엘 행성의 구원과 심판의 집행을 모두 완료하였다.]

[이후에도 만약 크레뷸러와 퀸브리엄의 전쟁이 끝나질 않는다면 그때는 구원이 아니다.]


그렇게 말한 나는 마나에 살기를 섞어서 행성을 감싼 뒤 말했다.


[그때는 심판이 행해질 것이다.]

이렇게 내  번째 행성에서의 평가도 막을 내렸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오자 켄리쉬가 내게 달려와 내 멱살을 잡고 미친 듯이 말했다.

“누구 마음대로 이렇게 끝이냐! 뭐가 구원자라는 거냐!”

분명히 공포심은 심어졌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반응인 거라면...’

그런 공포심조차 뛰어넘는...

“내 아내는! 마녀들에게 찢겨 죽은 내 아내 헤릴은!!!!! 누가 구원해줄 것인가? 그대인가? 자신을 구원자라 부른 그대가 내 아내를 명계에서 끌고 올라와 다시 살려줄 것인가?”

증오심.

나는 내 멱살을 잡은 켄리쉬의 손을 떼어내고는 말했다.

“당신의 아내가 죽은 것은 결국 전쟁에서 일어난 비극 중 하나. 우리가 하는 일은 그런 선례를 바탕으로 후대가 똑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지 그런 일을 당한 사람을 살려내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자 켄리쉬는 내 대답을 듣고는 탄식을 하며 천천히 바닥에 엎드렸다.
그는  맨손으로 땅을 내려찍으며 피를 토하듯 내게 외치기 시작했다.


“어째서! 어째서 더 일찍 오지 않은 것이냐!”

쾅!


“단 6년! 6년만  빨리 왔더라면!”


쾅!


“6년만 빨리 와서 이렇게 문제를 해결해 주었더라면!!!”

쾅!


“내 아내도 살아서 이렇게 허무하게 맞이할 평화를 옆에서 기뻐해 줬을 것이다. 나 또한 그녀의 옆에서 내 대에서 맞이할 평화를 기뻐했겠지... 그런데... 그런데...”


그렇게 말한 그는 자리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나더니 광인처럼 중얼거렸다.


“크흐흐흐... 안돼... 이렇게는 안돼... 이렇게 허무하게 헤릴의 복수도 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용서하고 하하 호호 웃으며 다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라고...?”


나는 그의 태도가 위험하다고 생각하여 기절한 베리스트를 에빌다씨에게 맡기고 말했다.

“이제 끝이다. 퀸브리엄과의 전쟁은 더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당신 또한 이 흐름을 받아들이고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

그때였다.

켄리쉬는 자신의 칼을 하늘 높이 쳐들더니 말했다.

“아니야... 나는... 헤릴에게... 그녀에게 속죄하지 못했어...”


“그날 내가 조금만  빨리 성으로 돌아갔더라면... 평소 그녀가 말한 대로 조금만  빠르게 행동했더라면...”


하늘 높이 치켜든 칼을 태양 빛에 반사되어 서늘한 은빛의 빛을 쏘아대고 있었다.
그는 그 칼을 멍하니 쳐다보며 말했다.

“헤릴... 미안해... 모든 업보... 내가 짊어지고 지금 당신을 만나러 갈게... 나는... 나는...  세상에서  살아갈 자신이 없어... 지금 만나러 갈게... 헤릴...”

그렇게 말한 그는 그 칼날을 거꾸로 돌려 자신의 심장을 겨냥했다.


쉬이이이익!

“그만둬!!!”

나는 그가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지 깨달은 후 반사적으로 마법을 사용해 막으려 하였지만.


푸욱!

은색의 칼날은 무자비하게 그의 심장을 뚫었다.

주륵...


심장을 꿰뚫은 칼날에서 선홍빛의 피가 흘러내린다.


뚝... 뚝... 뚝...

자신의 심장에 칼을 꽂은 그는 서서히 뒤로 넘어지기 시작했다.


쿠웅...


땅바닥에 칼에 꽂힌 채 쓰러진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너와 함께... 한번만... 쿨럭... 다시... 레피오... 숲을... 거늘고... 싶... 었...”


결국 피를 토하며 말을 끝맺지 못한 그는 모두가 평화를 맞이한 전쟁터 한복판에서 사망했다.

 모습을 보며 고개를 돌리는 사냥꾼들과 마녀들.


나는 조금  그를 막기 위해 뻗은 손을 그대로 둔 채 아연실색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오랫동안 지속된 전쟁이 끝나는 날.

크레뷸러의 켄리쉬 왕은 이 세상을 떠났다.



......

그 뒤 퀸브리엄과 크레뷸러는 평화조약을 맺었다.

켄리쉬의 죽음은 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베리스트와의 사투 끝에 사망한 것으로 처리되었다.

크레뷸러의 국민들은 갑작스레 찾아온 평화에 기뻐하면서도 죽은 켄리쉬 국왕을 위한 장례식을 열고그를 추모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켄리쉬 국왕을 죽음을 위로하기 위해서 평화조약을 맺은 퀸브리엄 측에서도 많은 마녀가 날아와 그의 명복을 빌었다.

켄리쉬는... 평화를 위해 희생한 영웅이 되어 있었다.

모두가 켄리쉬를 추모하는 그곳에는 나 또한 있었다.

아직도 그가 내게 남긴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단 6년! 6년만 더 빨리 왔더라면!}

{6년만 빨리 와서 이렇게 문제를 해결해 주었더라면!!!}

그가 남긴말이 계속 내 머리에서 맴돌았다.
나는 허공에 떠서 장례식 행렬을 지켜보며 아공간에서 술을 꺼내 들었다.
마시지 않던 술이었지만 오늘은 너무나도 취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혼자서 술을 마시고 있으니 어느새 내 옆으로 에빌다씨가 와서 물었다.

“괜찮아?”

나는 애써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괜찮아요... 늦게 온 게 저희 잘못은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거짓말이다.

마음속을 파고들어 오는 죄책감.

사실 그의 말은 말이  되는 소리다.

말이 안 되는 소리란 걸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에빌다씨는 자신의 곰방대를 내게 내밀며 말했다.

“한 대 피울래?”

나는 말없이 그걸 손에 쥐고는  모금 연기를 빨아들였다.

매캐한 연기가 폐를 가득 채운다.

후우우...

 모금 담배를 피우니 무언가 편안해지는 기분이다.

나는 하련이 그때 담배를 피우던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손에 쥐여준 곰방대를 한 모금 빨고 다시 에빌다씨에게 돌려줬다.

그러고서는 술을 다시 아공간에 집어넣고 옷을 한번 탈탈 털고서 말했다.

“일단 퀸브리엄으로 돌아가죠. 베리스트와도 작별 인사를 해야 하고.”

그런 나를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에빌다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어. 성아는 내가 데려갈게.”

그렇게 말한 에빌다씨는 먼저 텔레포트를 사용해서 사라졌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나는 흡연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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