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62.4개월의 시간
웜홀을 통과해 성으로 돌아와 내 방으로 들어가니 에빌다씨와 성아가 있었다.
나는 그 둘을 보며 반가워하며 말했다.
“생각보다 금방 오셨네요?”
에빌다씨는 곰방대를 입에서 떼고는 대답했다.
“성아가 생각보다 힘들어해서 말이야. 아직은 어려.”
그 말을 듣고 성아를 쳐다보니 상당히 충격을 받았는지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성아에게 다가가 물었다.
“성아야 괜찮아?”
그러자 성아가 나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괜...찮아...”
사람의 정신적인 성장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법이다.
아무리 시간 감속진 안에서 오랜 시간을 살았을지라도 그거는 어디까지나 에빌다씨랑 둘이서만 보낸 시간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는 있었지만, 아직 정신연령이 육체의 나이를 따라잡지는 못했단 말이다.
‘그런 성아에게 누군가 죽어가는 장면은 충격적이었겠지.’
나는 그런 성아를 안아서 내 다리에 앉히고는 물었다.
“무서웠니?”
그러자 성아는 무릎 위에서 반대로 돌아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는 말했다.
“네에...”
전쟁은 광기의현장이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쓰러진 시체를 짓밟고 지나가고, 끊이지않는 살육전을 펼치는 현세의 지옥도가 바로 전쟁이다.
그런 전쟁을 아직 어린 정신연령을 지닌 성아가 봤으면 충격을 받지 않으면 이상한 것이다.
나는 성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그런 거란다. 무섭고도 잔혹하지. 그런데도 그렇게 충격받을 필요는 없단다.”
성아는 파묻은 얼굴을 들어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째서...?”
나는 그런 성아의 볼을 매만지며 말했다.
“결국 전쟁이라는 것은 서로 한 발짝도 양보하지 못할 때 일어나는 분쟁의 최종 단계니까. 그들이 거기서 서로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은 결국 본인들이 죽어도 된다고 증명한 것과 다를 바가 없단다.”
“본인의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것을 지킨다. 그것이 권력, 돈, 가족, 사랑 그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그곳에 나가 있는 모든 사람은 자신이 지키고 싶은 것을 지키기 위해 본인의 목숨을 던진 거야. 누군가를 죽일 마음을 먹은 자는 본인도 죽을 각오를 해야하는 법이지.”
내 말을 들은 성아는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냥 서로 조금만 양보하면 되는 거 아니야...? 그럼 싸우지 않아도 되잖아...”
성아는 아직 순수하기에 인간의 추악한 욕망을 모른다.
본인이 어릴 때 겪었던 차별과 모멸 어린 시선도 자신의 잘못이었다고 생각했던 만큼 성아는 순수했다.
그런 성아의 티끌 하나 묻지 않은 순수함에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작게 속삭였다.
“그러게 말이야... 왜 그러지 못할까...”
그때 에빌다씨가 내게 물었다.
“베리는 어떠니. 진전이 있니?”
나는 애매한 상황에 머리를 살짝 긁으며 말했다.
“어...음... 없다고 하기엔 그렇고, 있다고 하기엔 부족한 그 정도...?”
“그래도 어느 정도 친해지기는 했나 보네.”
친해졌나...?
물론 처음 만났을 때처럼 나를 대하지는 않았지만 친해졌다 보기에는 애매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그렇게 말한 나는 마침 평가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에 에빌다씨에게 물었다.
“그건 그렇고 제가 퀸브리엄과 크레뷸러를 둘 다 돌아다녔는데 둘 다 통과가 나왔습니다.”
“애초에 의견의 대립일 뿐 양쪽 중 어느 한 곳이 크게 잘못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에빌다씨는 다시금 곰방대를 빨고는 대답했다.
“그래서 아마 둘 다 구원을 선언할 것 같은데... 제가 보기엔 가장큰 문제점이 마녀 쪽의 성비인 것 같아요.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하죠...?”
에빌다씨는 내 질문에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걱정 하지 마.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에빌다씨가 그렇게 말씀하시면 무언가 있는 거겠지.
나는 그 고민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베리스트한테 한 번 더 가서 물어보고 다시 올게요.”
그렇게 말한 나는 텔레포트를 써서 연습실로 이동했다.
베리스트는 연습실에서 명상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답은?”
그러자 그녀는 명상을 끝내고 눈을 뜨고는 내게 말했다.
“불은... 아름답다.”
“어째서?”
내가 되묻자 그녀는 대답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사라질 것을 아는데도 덧없이 자신을 불태우다가 사라지니까.”
나쁘지 않다.
어떤 식으로 그 사물을 바라보든 자신만의 정의를 찾아내면 그게 비나로 향하는 길이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잘했어, 이제야 비나로 가기 위한 길로 가는 방향을 잡았네.”
그녀가 당연히 머리를 흔들며 내 손을 쳐낼 줄 알았건만 의외로 조용했다.
베리스트는 쑥스러운 듯 내게 말했다.
“고마워... 가르쳐 줘서... 혼자라면 아마 몇백 년은 더 걸렸을 거야...”
“어차피 알려줘도 통과 못 할 놈들은 통과 못 하게 되어 있어. 너는 늦든 빠르든 어차피 비나로 올라올 자격이 있었다는 거야.”
그렇게 말한 나는 그녀의 앞에 앉아서 말했다.
“좋아, 그럼 다음 단계로 들어가자.”
그렇게 말한 나는 그녀의 앞에 소환해놓았던 불이 담긴 공간을 해제하고는 불을 내 손에 올려서 물었다.
“내 불꽃이 새하얀 이유는 내가 정의한불은 탐욕스럽기 때문이지.”
내가 그렇게 말하자 손에 있는 불은 화악하고 타올랐다.
모든것을 삼킬 것처럼 하늘을 향해 치솟던 불은 내가 손을 움켜쥐자 단번에 사라졌다.
“네가 불에 대해정의한 전지를 네가 사용하는 불에 담아봐라.”
“그건 쉬울 거 같은데?”
그렇게 대답한 그녀는 자신의 손에서 불꽃을 피웠다.
내 새하얀 백염과는 다른 황금빛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불꽃.
그녀의 불꽃은 마치 고고한 사자의 갈기처럼 아름답게 찰랑거렸다.
잠시 그 모습을 빤히 본 나는 말했다.
“그럼 이제 가르쳐 줄 게 없어. 지금부터는 너 자신과의 싸움이 되겠지. 네가 알고 있는 모든 전지를 너만의 것으로 바꿔라. 단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
이미 나는 비나로 향하기위한 모든 재료를 준비해 주었다.
여기서부터는 스스로 걸어 나가야 할 것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등을 돌려 게이트 밖으로 나가기 위해 걸어갔다.
그때 뒤에서 베리스트가 내게 외쳤다.
“스승님! 고마워! 나 반드시 비나가 되어볼게!”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얼굴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항상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던 그녀는 마지막에는 나를 스승이라고 불러주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손을 한번 흔들어주고는 게이트로 나와 내방으로 왔다.
방 안에 도착하니 성아가 명상하고 있었고, 에빌다씨는 그 모습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에빌...”
“쉿.”
내가 그녀를 부르려고 하자 에빌다씨가 내 옆으로 와서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 대며 속삭였다.
나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그녀를 따라 성 밖으로 텔레포트 했다.
밖으로 나온 나는 바로 에빌다씨에게 물었다.
“넘어가고 있는 건가요?”
“그래, 어마어마한 속도지. 이 정도라면 너도 금세 따라잡힐 수 있겠어.”
성아가 나를 따라잡는 것이 기쁘면서도 묘한 마음이었다.
내가 싱숭생숭한 얼굴을 하자 에빌다씨가 웃으며 내게 말했다.
“베리에게는 전부 알려준 거니?”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미 해주어야 할 조언은 전부 해줬습니다. 거기서 넘어가냐 못 넘어가냐는 본인에게 달린 거죠.”
내 대답을 들은 그녀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짓더니 내게 말했다.
“그럼, 나 대신 베리를 위해 가르침을 줬으니 나도 무언가를 너에게 줘야겠지?”
“네? 뭐를...”
그렇게 말한 에빌다씨는 내 뒷머리를 손으로 잡더니 말했다.
“눈 감아.”
나는 어찌 된 일인지 몰라 당황한 채 일단 시키는 대로 눈을 감았다.
‘뭐냐 이거... 설마?’
그건가?
나는 은근히 기대하며 눈을 꼭 감았다.
잠시 뒤 에빌다씨의 머리가 앞으로 오는 소리가 들리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하지만 에빌다씨의 머리는 내 얼굴을 지나쳐 귀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고서는 귀에다가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모든 비나는. 호크마다.”
‘뭐라고?’
에빌다씨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내게서 떨어졌다.
나는 방금 그녀가 한 말을 머릿속에 되새기면서도 키스가 아니었다는 사실에 입맛을 다셨다.
그 모습을 보며 에빌다씨가 웃으며 말했다.
“뭐야. 뭘 기대했길래 그렇게 입맛을 다셔?”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투덜거리듯이 말했다.
“수고의 키스라도 해주시는 줄 알았죠. 쩝...”
내가 직설적으로 말하자 에빌다씨의 얼굴이 빨개지면서 내게 말했다.
“그...그그...그런거라면 소원권을 쓰면...”
소원권?
‘아.’
생각해 보니 에빌다씨가 어느 상황에서든 반드시 내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소원권을 세 개 주었는데 그때 어이없게 써버려 허무해 하던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해서 억지로 키스를 받고 싶지는 않아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뇨, 일단 지금은 방금 해주신 말에 대해 생각을 좀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아마 이게 에빌다씨가 호크마에 도달한 힌트겠지요?”
에빌다씨는 내 질문에 웃으며 대답했다.
“맞아, 만약 내가 한 말을 이해하게 된다면 너는 그 순간 호크마가 되겠지. 이미 충분히 완성된 전지를 가지고 있으니 말이야.”
내가 호크마가 된다라...
이렇게 갑작스럽게 경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줄은 몰랐던 나는 에빌다씨에게 고개 숙여 감사 인사를 했다.
“이런 걸 그냥 알려주셔도 되는 겁니까? 까마득하게 어린 후배가 치고 올라가는 꼴이라고요?”
그러자 에빌다씨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하, 나 마법의 에빌다야. 마법에 근간을 둔 상대는 내게 이길 수 없어. 네가 호크마가 되어도 마찬가지야.”
나는 에빌다씨의 행동에 작게 웃었다.
그렇게 나는 호크마의 실마리를 에빌다씨에게 얻은 후 텔레포트로 다시 성아가 있는 방으로 돌아왔다.
성아는 나를 보며 달려왔다.
“오빠!”
나는 이제는 익숙하게 그 포옹을 받으며 말했다.
“축하해 성아야. 이제 게부라구나.”
정말 괴물 같은 성장 속도였다.
최고의 스승과 최고의 재능을 가진 제자가 만난다는 것이 무슨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내 눈으로 확인하는 기분이었다.
성아는 내 가슴에 코를 박고 킁킁거리며 말했다.
“킁킁... 이게 다 오빠 덕분이야... 오빠 너무 좋아...”
나는 그런 성아의 등을 토닥이며 에빌다씨를 쳐다봤다.
에빌다씨는 옆에서 곰방대를 피며 나와 성아를 지켜보고 있었다.
“에빌다씨, 이렇게 된 거 여기서 조금 더 있다가는 것은 어떨까요?”
에빌다씨는 내 제안에 조금 놀란 듯 물었다.
“여기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성아의 훈련에도 도움이 될 것 같고... 무엇보다 베리스트가 비나에 갈 수 있을지 없을지 궁금하네요.”
내 말을 들은 에빌다씨는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좋아, 나쁠 게 없어 보이기는 하네. 어차피 이제는 슬슬 실전을 경험하며 성장해야 할 시점이니까.”
그렇게 해서 우리는 이곳에 조금 장기간 체류를 하기로 정했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베리스트에게 말하고 우리는 성을 나와 성 근처에 있는 산맥에 조그마한 오두막을 만들어서 그곳에서 지냈다.
물론 중간중간 구원자 의회로 가서 아내들과 주기적인 만남을 가장한 섹스를 즐기기도 하였다.
나는 에빌다씨가 말해준 호크마로 갈 실마리에 대한 답을 끊임없이 생각하며 오두막에서 시간을 보냈고, 성아는 에빌다씨를 따라 밖으로 돌아다니며 실전 경험을 쌓았다.
전쟁터에 나가서 마법을 써보기도 하고, 마녀들과 대련을 해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베리스트는 자신만의 전지를 세우느라 바빠서 얼굴도 자주 보지 못했다.
성아가 떼를 써서 결국 잘 때는 항상 셋이서 같이 자게 되었다.
처음에는 불편했지만 적응되니이제는 마치 당연한 것처럼 누워서 자기 시작했다.
그런 일상을 보내니, 마치 가족이 생긴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약 4개월이 조금 넘는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결국 내 깨달음에는 진전이 없었다.
하지만 약간의 실마리라면 얻을 수 있었다.
나는 그걸로 만족하기로 하고 이제는돌아갈 준비를 하기 위해 에빌다씨에게 말했다.
“이제 슬슬돌아가죠. 에빌다씨, 그간 오래 지냈던 것 같아요.”
그러자에빌다씨도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긍정했다.
“성아도 이제 슬슬 실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금 수련해야 할 타이밍이야. 네 말대로 돌아갈 시기가 왔어.”
그렇게 결정한 우리는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정든 오두막을 부숴서 흙으로 만들고 마녀들의 성으로 텔레포트 했다.
성아는 부서진 집을 보며 슬픈 표정을 짓다가 이내 우리를 따라 텔레포트 했다.
하지만 성아 도착하자마자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나는 그 이상함의 원인을 중얼거렸다.
“어떻게 된 거지? 마녀들이 안 보여.”
성에 마녀가 거의 없었다.
나는 황급히 성으로 가서 베리스트를 찾았다.
처음에는아니꼽기만 하던 녀석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정이 들었나 보다.
“베리스트! 어딨어!”
에빌다씨와 성아도 내 뒤를 따라오며 베리스트를 찾았다.
나는 베리스트가 연습실에서 보이지 않자 복도에 보이는 마녀 하나를 붙잡고 물었다.
“베리스트는 어디로 갔어?”
그러자 마녀는 내게 대답했다.
“여왕님이라면 지금 최전선에 계실 거예요... 얼마전 크레뷸러에서 총공격을 선언했거든요. 여기서 크레뷸러가 멸망하든 퀸브리엄이 멸망하든 더 이상의 무의미한 소모전은 그만하고 결판을 내자고...”
‘총공격!’
나는 에빌다씨에게 말했다.
“성아를 부탁해요. 에빌다씨! 제가 가보겠습니다!”
에빌다씨가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바로 웜홀을 열어 해변으로 떨어진 다음 마녀들과 사냥꾼이 싸우고 있을 최전선으로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