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화 〉59.연예인의 삶
베리스트는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훌쩍였다.
마법사에게 스승이 어떤 존재인지를 아는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은 베리스트가 그만 울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베리스트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서 에빌다씨에게 물었다.
“스승님... 제가... 제가 어디가 모자란 건가요...? 저 더 열심히 할 수 있어요... 이제 헤세드의 끝에 섰고 곧 비나에 올라갈 실마리를 찾아낼 거에요... 그니까... 그러니까...”
그런 베리스트를 보며 에빌다씨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너도 알고 있잖니. 마법사는 한 명의 제자 외에는 더 들이지 않아. 그때 너와 함께한 한 달의 시간이 내가 너의 스승으로서 보냈던 마지막 시간이야.”
잔혹하리만큼 단호한 대답에 베리스트는 결국 다시 눈물을 흘렸다.
두 눈은 새빨개져서 퉁퉁 부었고 얼굴에는 눈물 자국이 가득했다.
그런 그녀를 보고 있자니 나는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나는 베리스트에게 다가가 말했다.
“저기... 에빌다씨도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사실 그런 사정은 없지만 여기서는 일단 베리스트를 달래는 게 맞았다.
베리스트는 뒤를 돌아 나를 보더니 중얼거렸다.
“남...자...?”
그러더니 나를 향해 말했다.
“남자가 어떻게 호브리오에 있는 거지? 누가 데려온 거야. 프르티 너야?”
신경이 날카로워진 베리스트는 뾰족한 목소리로 프르티에게 물었다.
그러자 에빌다씨가 그녀에게 말했다.
“내 동료란다. 너와 마찬가지로 마도의 길을 걷고 있는 선배야.”
그러자 베리스트는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에빌다씨에게 물었다.
“선배요...? 남자가요?”
“그래, 너보다 한 단계 더 높은 경지에 서 있지.”
나는 이 어색한 상황을 어떻게든 타파해보고자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성원이라고 합니다. 그... 에빌다씨의 일은 정말 안 됐다고 생각...”
찰싹!
내가 내민 손을 거세게 쳐버린 베리스트는 나를 쏘아보며 말했다.
“네가 뭘 알아! 네가 나와 스승님에 대해 뭘 아냐고!”
‘이런 씨발...’
위로해주겠다고 내민 손을 저쪽에서 쳐버리니 내 기분이 상해버렸다.
나는 손을 다시 내리고는 말했다.
“내게 화풀이 하지 마. 너도 마도의 길을 걷고 있다면 알고 있을 텐데? 마법사라면 무릇 더욱 뛰어난 인재를 제자로 들일 뿐이야. 특히 에빌다씨만큼 고귀한 경지에 있는 마법사일수록 더욱 그럴 권리가 있지. 후보가 너뿐이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잔인한 말이지만 구구절절 단 한마디도 틀린 말이 없었다.
그렇기에 베리스트도 내 말에 반박하지 못한 채 그저 씩씩거리기만 하였다.
그러더니 베리스트는 이내 텔레포트를 사용하더니 사라져버렸다.
그녀가 사라진 자리를 보며 에빌다씨가 중얼거렸다.
“아직도 나에 대한 집착이 보이네... 이건 내 실수라고 할 수 있겠어.”
나는 조금 언짢아진 기분으로 에빌다씨에게 물었다.
“이제 어떡하죠?”
에빌다씨는 곰방대를 한번 푹 피우고는 내게 대답했다.
“일단 베리가 진정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베리의 도움으로 마법 시연 같은 것을 구경하는 게 좋겠어. 원래 목적은 그거였으니까.”
그렇게 말한 에빌다씨는 뒤를 돌아 프르티를 쳐다보며 물었다.
“혹시 하룻밤 잘만한 곳은 없니?”
그러자 프르티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 어... 손님용 숙소가 있으니 거기서 주무...시면 되실 것 같은데...”
에빌다씨는 프르티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그럼 네가 좀 안내해주겠니?”
“네네..네!”
프르티는 에빌다씨의 부탁에 곧바로 일어나서 말했다.
“그...그럼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그렇게 말한 그녀는 방 밖으로 우리를 데려가고 게이트를 두 번이나 통과하여 숙소로 데려다주었다.
방으로 안내를 마친 프르티는 편히 지내시라고 말한 뒤 허겁지겁 도망쳤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느낀 의아함을 에빌다씨에게 물었다.
“왜 저렇게 에빌다씨를 보며 무서워 하는 거예요?”
그러자 에빌다씨가 피식 웃으며 내게 답했다.
“예전에 나는 조금 혈기가 왕성했거든. 그때는 아직 케테르를 만나기 전이여서..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마음대로 살던 때였지...”
그 때를 추억하는지, 눈을 감고 곰방대를 피우는 에빌다씨의 눈에는 그리움이 있었다.
“당시에 이곳을 발견하고 마녀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니까 화가 나서 나도 모르게 독립 마법 하나를 크레뷸러에 던져줬지. 그러더니 그런 나를 보고 크레뷸러든 마녀들이든 보랏빛 재앙이라고 부르더라.”
‘혈기 왕성한 에빌다씨라...’
조금 상상이 안 되는 모습에 나는 피식 웃어버렸다.
그러자 에빌다씨가 얼굴을 붉히며 내게 변명했다.
“어쩔 수 없었다구... 너도 호크마에 이르면 느껴지는 전능함에 세상 모든 것이 아래로 보일 거야...”
“아뇨, 그냥 혈기 왕성한 에빌다씨를 상상해보니 조금 귀여워서요.”
그때 성아가 에빌다씨에게 물었다.
“스승님... 제가 스승님의 제자가 된 게 잘못한 일이었던 것일까요...?”
그렇게 묻는 성아의 목소리는 조금 떨리고 있었다.
아마 절망한 베리스트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거겠지.
성아가 그렇게 묻자 에빌다씨는 곰방대로 머리를 한 대 내려쳤다.
딱!
“아야!”
머리를 부여잡고 아파하는 성아를 보며 에빌다씨가 말했다.
“내가 선택한 거야. 베리도 훌륭한아이였지만 네가 더 내 마음에 들었고, 그렇기에 너를 제자로 맞이했다. 단지 그뿐이라고. 모든 선택에 대한 책임은 내게 있는 거지 선택받은 네가 느낄 것은 아니란다.”
그렇게 말한 에빌다씨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어차피 할 것도 없으니 한숨 자자. 우리는 몰라도성아는 아직 잠이 필수야.”
나는 에빌다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저는 다른 방으로 가볼게요. 내일 아침에 봬요.”
내가 그렇게 말하고서는 일어나서 나가려 하자 성아가 내 팔을 붙잡았다.
그러고 서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내게 물었다.
“성원 오빠도 같이 자면 안 돼...?”
‘뭐라는 거냐 얘 지금.‘
나는 성아의 어깨를 붙잡고 말했다.
“성아야? 오빠도 그러고 싶지만, 성아는 이제 다 컸잖아? 다 큰 남녀가 한 이불에서 자는 것은 좋은 행동이 아니란다. 무엇보다 에빌다씨도 있잖니.”
1인실이라 그런지 커다란 침대 하나 덜렁 놓여있는 이 방에서 셋이 자려면 내가 바닥에서 자든가 해야 했는데 그런 것은 사양이었다.
하지만 성아는 내 설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에빌다씨에게 물었다.
“스승님! 오빠도 같이 자도 되죠?”
에빌다씨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한 건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아니... 그... 아무래도 그건 좀...”
그러자 성아가 이제는 어린아이처럼 떼를 쓰기 시작했다.
“싫어! 나 오빠랑 잘래! 항상 기대했단 말이야!”
’미치겠네 진짜...‘
최근 점점 심해지는 성아의 집착에 나는너무 힘들었다.
다 커서 가슴도 나오고 몸매도 잘록해진 성아가 자꾸 내게 엉겨오는 것만으로도 버티기 힘들어 죽겠는데 이제는 같이 자자고까지 하니 당혹스러움이 두 배가 되었다.
나는 눈빛으로 성아를 말려달라고 에빌다씨에게 부탁하였다.
에빌다씨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성아에게 말했다.
“성아야, 이 스승은 성원과 같이 자기는 조금 그렇... 구나...”
에빌다씨가 성아에게 말을 꺼내는 순간 성아는 내 팔목을 놓고 에빌다씨에게 달려가 떼를 썼다.
“히이잉... 스승님 제발요... 저 오빠랑 같이 자는 게 소원이에요...”
그러면서 애교를 부리듯 시선을 피하는 에빌다씨의 눈을 요리조리 고개를 돌리며 맞추는 성아의 모습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렇게 계속 시선을 피하던 에빌다씨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아... 그럼 오늘 하루만이야... 알겠니? 다음은 없단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에빌다씨에게 말했다.
“아니... 그걸 허락하시면...”
에빌다씨는 미안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세상 모든 마법사는 결국 제자 바보로 거듭나게된다고 하던데 에빌다씨도 예외는 아닌 듯 하다...
그렇게 결국 성아의 부탁(?)에 못 이겨 셋이 같이 자게 되었다.
성아가 중앙에 눕고, 내가 왼쪽, 에빌다씨가 오른쪽에 눕기로 하였다.
’이게 뭔 일이냐...‘
성아는 중앙에 누워서 나와 에빌다씨의 팔을 꼭 잡고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웃음이 새어 나왔다.
’뭐... 좋아하면 된 거지...‘
그렇게 생각한 나는 에빌다씨와 성아에게 말했다.
“성아야 잘자, 에빌다씨도 안녕히 주무세요.”
그렇게 잠자기 전 인사까지 마친 나는 의도적으로 숙면에 들어갔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우리 셋중에 제일 먼저 일어났다.
성아는 기분 좋은 꿈을 꾸는 건지 헤벌쭉하게 웃으며 침을 흘리며 자고 있었고, 에빌다씨는 오른쪽으로 몸을 돌린 후 조용히 자고 있었다.
나는 둘이 깨지 않게 조심해서 침대 밖으로 나왔다.
뻐근한 몸을 대충 풀고, 아공간에서 옷을 꺼내 입는다.
옷에 뭔가 물기 같은 게 묻어있었는데 아마 성아의 침인 것 같아서 나중에 빨기 위해 벗어서 아공간 안으로 집어 던졌다.
캐쥬얼한 옷을 한번 입었으니까 정장도 입고 싶었기에 나는 검은색 정장과 검은 구두를 꺼내 입었다.
현대에서는 거의 365일 중 350일 가까이 입고 다녔던 옷이기에 어찌 보면 내게 가장 친숙한 옷이기도 하였다.
클린 마법을 사용하기는 뭐하기에 나는 허공에 대충 물을 만들어서 세수하였다.
세수를 마친 나는 드라이 마법으로 물기를 말린 후 방 밖으로 나와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마녀들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고, 맛있는 음식 냄새가 복도에 퍼져있는 걸 보아하니 아마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듯 보였다.
나는 복도로 나와 마녀 한 명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그러자마녀는 화들짝 놀라면서 내게 답했다.
“아..아.아아...안녕하세요...?”
그렇게 말한 그녀는 후다닥 달려서 내게서 멀리 떨어졌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한번 갸웃거린 후 다른 마녀를 찾았다.
저 멀리서 다른 마녀가 보이기에 나는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저기 뭐 좀 물어봐도 될까요?”
그러자 이번 마녀도 아까의 마녀랑 똑같은 반응을 보이며 내게 대답했다.
“무..뭘 뭘... 뭐가 구구구...궁금하세요...?”
“혹시 식당이 어디 있나요? 아침 식사를 좀 하고 싶어서.”
그러자 마녀는 손가락으로 반대쪽 복도 쪽을 가리킨 후 아까 그 마녀처럼 도망가 버렸다.
’내가 무섭나? 왜 다들 도망가지...‘
혹여나 얼굴에 뭐가 묻었을까 물을 소환해서 물속에 비친 얼굴을 확인했는데 아무런 이상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물을 없애버렸다.
어찌 되었든 배가 고픈 것은사실이었기에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식당을 향해 걸어갔다.
텔레포트를 사용해도 되었지만, 그 정도로 급한 수준의 허기는 아니었기에 그냥 천천히 걸어서 식당에 도착했다.
식당 안으로 들어오니 마녀들이 자기들끼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빵과 수프를 먹고 있었다.
나는 대충 아무도 없는 자리를 찾은 후 식판을 들고 음식을 받기 위해 줄을 섰다.
’근데... 대체 왜...‘
줄을 서 있는 내 주변에는 어떤 마녀도 접근하지 않았다.
거의 200명이 넘는 마녀가 이 식당 안에서 밥을 먹고 있었는데 아무도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
’남자가 그렇게 신기한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줄을 서서 기다리기를 몇 분.
당연히 그사이에도 어떤 마녀도 내 근처로 오지 않았다.
나는 차례를 기다린다고 할 것도 없는데 이야기라도 훔쳐 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청력을 높였다.
그러자 웅성거리기만 하던 소리가 선명히 들려오기 시작했다.
“저기 봤어? 어제 왔다던 남자 마법사! 저기 있잖아!”
“남자 마법사라는 게 소설이 아닌 현실에 진짜 있는 거였구나...”
“심지어 어제 프르티의 경호를 맡았던 애들이 그러던데 경지도 비나래!”
“저 까만 옷은 뭐야...? 너무 세련 돼 보여...”
“진짜? 와... 능력 좋지, 얼굴도 잘생겼고... 몸도 좋고... 한번만 말 걸어볼까?”
“미친년... 니 얼굴을 보고 말해라. 그러는 거 자체가 실례야.”
“지는... 어제 캔버스에다가 저분 얼굴 그린 거 50실링이나 주고 산 주제에...”
나는 그 이야기를 끝으로 청력을 줄였다.
’진짜 너무 부끄럽다... 이게 현대에 살적에 있었던 아이돌들이 느끼던 기분인가...?‘
당시에 TV를 보면서 인생 날로 먹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기분을 언제나 느끼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내가 잘못 생각해도 엄청나게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고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나는식판을 들고 배급을 받기 위해 앞으로 내밀었다.
내게 배급을 주는 마녀가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내 식판 위에 빵을 올렸다.
한 덩이... 두 덩이... 세 덩이... 네 덩이...
멈추지 않고 올라가는 빵의 개수에 나는 그 마녀에게 말했다.
“그... 그만 주셔도 되는데...”
그러자 마녀는 화들짝 놀라며 내게 사과했다.
“죄... 죄송합니다...!”
어차피 배도 고팠기에 식판 위에 올려진 7덩이의 빵을 다 먹기로 생각한 나는 옆으로 이동해서 수프를 받았다.
다행히 수프는 흘러넘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단지 수프를 퍼주는 국자를 잡은 손이 벌벌 떨릴 뿐.
나는 배급을 다 받고 아까 봐둔 자리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