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9화 〉58.퀸브리엄의 여왕, 베리스트 (59/99)



〈 59화 〉58.퀸브리엄의 여왕, 베리스트

마치 중세시대에서나 있을 법한 하얀색의 커다란 성.
여왕이 앞에 서서 어느새 지팡이로 변한 빗자루를 바닥에 두 번 내리찍었다.

쿵! 쿵!


그러자 이내 성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기이이이잉...

성문이 완전히 열리자 안에는 마법으로 만들어진 발광체들이 입구와 복도를 빛내고 있었다.
여왕이 안으로 들어오자 성대한 환대가...
있지는 않았다.

성 내부에 있는 마녀들은 마치 여왕이 오건 말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듯이 각자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오히려 그들은 여왕보다는 나를 보며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묘한 분위기 속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에 고민에 잠겼다.

‘뭐지? 저들의 시선은 여왕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닌데?’

마녀들의 세계에서 여왕이 가지는 의미를 모르는 나는 당연히 일반적인 여왕을 생각했기에 예상외의 홀대를받는 것에 조금 놀랐다.
생각해보면 웜홀을 타고 떨어진 곳에서도 여왕을 보고 아무도 놀라지 않았던 게 생각났다.

‘나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라고 보기에는 아예 아무런 관심조차 주지 않던 마녀들이 너무 많았어...’

왕이라 하면 그 문명을 대표하는 사람이다.
또한 그 문명을 다스리는 사람을 말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여왕이 아무리 지위가 낮다 하더라도 그러한 반응은 어딘가 이상했다.

그런 고민을 하던 나에게 여왕이 말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말이에요...”

그렇게 말한 여왕의 말에 아까 여왕과 같이 왔던 마녀 한 명이 앞을 보며 외쳤다.

“뭣들 하느냐! 여왕 폐하께서 손님을 맞이한다고 하셨다. 어서 준비해라!”

오히려여왕의 말보다는 그 마녀의 말이 권위가 있는 것, 마냥 성 내부의 마녀들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법을 이용해 성 구석구석을 청소하며 분주히 돌아다니는 마녀들을 뒤로한 채 나는 여왕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성의 안으로 깊이 들어가자 게이트가 열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게이트는 쌍방향 통로로 좌표와 좌표사이를 엮는 마법으로 전쟁 중에는 쌍방향이라는 단점 때문에 쓰이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마법을 사용하는 마법 문명이라면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편리한 마법이었다.
주기적으로 마나를 넣어줘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어떻게 보면 SF 문명의 텔레포트 장치도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요구하여 서로 누가 낫다고 하기는 애매한 감이 있었다.

게이트가 4개의 방향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여왕은 그중 북쪽의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이내 나도 그녀를 따라 똑같은 게이트로 들어갔고, 내 뒤를 따라 마녀들도 들어왔다.
게이트를 통해 들어온 곳은 커다란 손님용 방처럼 보였다.

그녀는 자신이 하석에 앉고는 상석을 향해 내게 손을 내밀었다.
이런 행동도 조금은 이상했지만 나는 그녀 나름의 선배에 대한 예우라 생각하며 상석에 앉았다.
이곳까지 오는 사이 쌓인 의문이 가득했지만, 일단은 내가 저들의 질문을 받아줄 차례였다.

이야기가 새어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따라 들어온 마녀들이 사일런스(silence)를 사용하였지만 역시나  방대한 마나 지배력 때문에 실패하였다.
이쯤 되니 미안해진 나는 내가 직접 사일런스를 걸어서 밖으로 이야기가 새어나가지 못하게 막았다.

여왕은 내가 손짓 한 번에 사일런스를 발동시키자 놀라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역시... 비나에 이른 마법사답게 독립 마법을 제외한 모든 마법을 영창 없이 사용할 수 있군요...”

“그렇죠.”

사실 내가 여태까지 입으로 일일이 주문을 영창한 이유는 순전히 버릇 때문이었다.
애초에 겨우 영창을 외치고 안 외치고 하는 게 비나란 경지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독립 마법을 제외한 모든 주문의 영창은 내게 필요 없었다.

여왕은 다시 한번 더 내 경지에 대한 확신을 하고 내게 물었다.

“혹시... 어째서 저희가 있는 곳으로 오셨는지 들을 수 있을까요?”

그녀의 얼굴에는 미묘한 절박감이 느껴졌다.
이쯤 되니 쪽에서 궁금함이 더 커졌다.
나는 그녀의 물음에 일단은 사실을 숨겨보자 생각하고 말했다.

“새로운 마법 체계가 있다길래 호기심에 와  것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같이  일행들도 마찬가지고요.”

그러자 여왕은 갑자기  손을 잡더니 내게 절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 퀸브리엄을 도와주실 수 있나요? 지금 퀸브리엄은 역사상 최대 위기에 봉착해 있어요.”

나는 당황하지 않고 되물었다.

“무슨 문제가 있는지 설명을 해주셔야 합니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더니 내게 긴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사실 저는 여왕이 아니에요. 진짜 여왕이신 베리스트님의 자리를 임시로 맡고 있는 것이랍니다.”

“베리스트 여왕님은 역사상 가장 강한 마녀로 평가받으시며 벌써 4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저희 마녀들의 국가, 퀸브리엄을 수호하시는 데에 크나큰 역할을 하신 분이에요.”

“경지는 헤세드의 끝자락에 있으시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비나로 올라가셨을 수도 있어요.”

“근데 문제는 베리스트 님은 6개월 전 사냥꾼들의 나라인 크레뷸러의 국왕, 켄리쉬에게 패배하시고 홀연히 사라지셨어요...”

“차라리 잡혀가신 것이면 저희가 찾아볼 생각이라도 할 텐데 잡혀가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돌아가신 것도 아니에요.”

“마녀들의 여왕이 죽으면 모든 마녀는 치명적인 내상을 입기에 저희는 여왕님이 아직 살아계신다고 확신을 하고 있어요.”

“근데도 여왕님은 6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저희에게 돌아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어쩔  없이 여왕의 자리를 공석으로 수가 없어서 여왕님이 차기 후계자로 지목했던 저에게 잠시 여왕의 자리가 내려온거예요.”

음... 잠시만... 이야기가 너무 길어서 정리를  해야겠다.

‘그니까... 내 눈앞에 이 여자는 여왕이 아니고 베리스트라는 진짜 여왕이 존재하는데 크레뷸러의 국왕인 켄리쉬라는 작자에게 패배한 다음 죽지도 않았는데 퀸브리엄으로 돌아오고 있지 않다... 이거구만.’

상황을 대충 파악한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그래서, 부탁을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죠?”

내가 부탁을 한번 들어보자는 식으로 말하자 그녀가 황급히 대답했다.

“저희 여왕님을 찾아주세요! 지금 크레뷸러와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최전선은 여왕님의 부재로 사기가 바닥까지 떨어진 상태에요... 이러다가는 정말로 수  년간 유지해왔던 두 국가 간의 균형이 무너져 버려 수많은 마녀가 죽을 거예요!”

그녀는 내게 구구절절 하소연하듯이 부탁했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고민에 빠졌다.

‘여왕을 찾아주면 나는 평가조차 내리지 않고 퀸브리엄의 편을 들어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구원자로서 해서는 안 될 행동 중 하나인데...’

그때였다.

“좋아. 우리가 도와주지. 아니 지금 당장 데려와 주겠어.”

에빌다씨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에빌다씨와  옆에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성아가 보였다.
나는반가움에 둘을 부르려 했지만 나와 가짜 여왕을 감싸고 있던 마녀들이 마녀들의 성에 갑작스레 침입한 에빌다씨를 향해 물었다.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그러자 에빌다씨가 코웃음을 치며 물었다.

“요즘 애들은 상대의 경지조차 모르고 이렇게 막 나가는 걸까?”

“그게 무슨...!”

그러더니 에빌다씨가 순식간의 자신에게 소리쳤던 마녀의 앞에 나타나 코끝을 손가락을 튕겨 때렸다.
그 마녀는 코끝이 얼얼한지 바닥으로 주저앉으며 코를 매만졌고 그 모습을 보는 에빌다씨는 웃으며 말했다.

“아가야... 내가 누군지 모르니?”

“이익... 내가 당신이 누군지 어떻게 알아!”

바닥에 넘어진 마녀는 창피한지 큰소리로 물었다.
반면 내 앞에 있던 가짜 여왕은 몸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그...그그그그... 그 보...보보 보랏빛 머리카락에  말투... 설마...!”

에빌다씨는 그 소리를 하는 가짜 여왕 앞으로 텔레포트 하더니 그녀의 턱을 잡고 물었다.

“어머나~ 나를알고 있는 아이가 있네?”

가짜 여왕은 다리마저 후들거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녀의 반응에 다른 마녀들은 무언가 이상함 낌새를 느끼고 뒤로 물러섰다.
에빌다씨는 아직도 자기를 기억하는 마녀가 있다는 것에 만족했는지 피식 웃으며 마녀들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말렴 아가들아. 안 잡아먹으니까.”

그렇게 말한 에빌다씨는 가짜 여왕을 향해 물었다.

“그래서 그 여왕의 이름이 뭐라고?”

가짜 여왕은 부들부들 떨면서 대답했다.

“베... 베베... 베리스트 여왕님입니다...!”

에빌다씨는 그 이름을 듣고는 놀라운 표정을 짓다가 이내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흐음... 베리가 여왕이라고? 역시 내 눈은 틀리지를 않아.”

나는 에빌다씨에게 물어봤다.

“아시는 분입니까?”

그러자 에빌다씨가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내가 전에 후보로 올려놨다고 했던 아이. 그 아이가 베리스트야. 성은 없지.”

흐음...

그렇다면 예상외로 빠르게 찾을 수 있을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며 에빌다씨에게 그럼 빠르게 찾자고 말하려는 그때.

우우우우웅..

하늘 위로 웜홀이 생성되더니 그 사이에서 빨간색의 긴머리를 양 갈래로 묶은 소녀가 나타났다.
 소녀를 쳐다보는 마녀들은 입을 쩍 벌리고는 외쳤다.

“”베...베리스트 여왕님!!!“”

베리스트은 주위를 둘러다 보더니 앙증맞은 목소리로 말했다.

“야호~ 모두 잘 지냈... 어...?”

베리스트은 갑자기 눈을 찡그리더니 바닥에 가볍게 착지했다.
그러자 가짜 여왕이 베리스트에게 달라붙더니 말했다.

“흐어어엉... 어디 갔었던 거예요. 여왕님... 저두 진짜 하기 싫은데 원로회에서 억지로 앉아서 여왕 노릇 하라 하고 흐어엉...”

그러더니 그간 쌓인 서러움이 많았는지 베리스트의 다리를 붙잡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베리스트는 가짜 여왕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미안해, 프르티~ 그동안 할 일이 있어서 조금~”

“흐어어엉... 이제 어디 가시면 얘기하고 가셔야 해요오... 알겠어요...?”

“알겠어! 미안 미안~”

그렇게 말한 베리스트는 에빌다씨를 빤하게 보더니, 에빌다씨를 향해 달려갔다.

타다다다다다... 탁!

마지막에 펄쩍 뛰어 에빌다씨에게 몸을 던지는 베리스트를 가볍게 받아낸 에빌다씨가 말했다.

“오랜만이구나 베리.  지냈니?”

그러자 베리스트는 그녀의 품에 머리를 박고는 펑펑 울기 시작했다.

“흐아아아아앙... 어디 가셨던 거예요. 스승님 흐아아앙...”

마녀들이 눈물이 많은 것인지 아니면 여왕이면 감수성이 풍부한 건지는 몰라도 프르티라 하던 가짜 여왕이 눈물을 흘리던 것을 이어 베리스트도 눈물을 흘렸다.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리는 베리스트의 뒷머리를 쓰다듬으며 에빌다씨가 말했다.

“이제는 애도 아니잖니? 네 백성이 너를 보고 있단다?”

그렇게 말하는 에빌다씨는 마치 베리스트의 어머니처럼 보였다.
그때 옆에서 가만히  모습을 보던 성아가 베리스트를 에빌다씨의 품속에서 빼내었다.
그러더니 그녀를 향해 삿대질하면서 말했다.

“야!  스승님한테 뭐 하는 거야!”

“뭐...?”

그러자 베리스트는 충격받은 얼굴로 에빌다씨를 쳐다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스...스승님 아니죠...? 이거 거짓말이죠...? 스승님이 제가 훌륭한 마녀가 되면 데리러 오신다고 하셨잖아요... 아니죠...?”

그러자 에빌다씨는 씁쓸한 미소를지으며 베리스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이제 내 제자는 성아란다. 베리, 너는 이제 내가 없어도 될 정도로 커버렸잖니?”

그 말을 들은 베리스트는 하늘이 무너진 듯한 표정으로 바닥에 무릎 꿇고 멍하니 에빌다씨를 올려보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속이 몹시나 찔리는 것을 느꼈다.

‘이거... 내가 성아만 에빌다씨한테 안 넘겼어도 쟤가 제자로 들어갔을 거 같은데...?’

에빌다씨는 분명 600년 정도라고 하였으니 저리 보여도 베리스트라는 소녀는 600살은 넘게 먹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경지는...

‘아직은 헤세드 끝자락. 비나의 길을 열지는 못했네.’

사실 헤세드에 다다른 마법사가 평생을 바쳐도 비나에 대한 실마리조차 잡지 못하고 죽어가는 일은 허다하였기에 헤세드의 끝자락이라 하더라도 비나에 간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럼에도 600살에 헤세드에 도달할 정도의 재능이면 어마어마한 재능이라고 할 수 있다.

‘성아만 아니었다면 말이지...’

이미 성아의 성장세에 푹 빠져버린 에빌다씨의 눈에베리스트가 찰 리가 없었다.
심지어 마안의 개수도 2개나 적고 베리스트는 해석안 조차 없기 때문이다.

‘이거 진짜미안한데...’

졸지에 스승님을 NTR 당하게 만들어 버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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