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8화 〉47.풀리는 오해 (48/99)



〈 48화 〉47.풀리는 오해

나는 뒤를 향해 외쳤다.

"아무나  무기를 먼저 제거 해주세요!"

"내가 할게에..."


뒤에서 키릴의 대답이 들리고 얼마가 지난 후.
나는 동결된 공간 속에서 모든 폭발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동결을 해제했다.

"하아...하아..."


한순간에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했더니 숨이 찼다.
나는 뒤를 돌아 키릴이 제대로 중력 붕괴장을 쏘는 병기들이 전부 파괴 되었는지 확인했다.


"하아... 다행이다..."


키릴이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병기들이 파괴되어 있었다.


"헤헤... 전부 없앴어어~"


헤헤거리며 내게 손가락으로 V자를 해 보이는 키릴에게 엄지를 들어 잘했다고 해주었다.


자신들이 믿고 있던 병기마저 막혀버린 카샤의 여왕은 얼굴이 새파래졌다.
구원자들과 카샤의 힘이 격차가 날 거라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무력하게 모든 수단이 막힐 줄을 몰랐기 때문이다.


카샤의 여왕은 이를 악물며 결국 가이아에게 매달렸다.

[어떻게든 해보아라! 해보란 말이다! 우리가  신앙은 전부 어디에  것이냐! 왜 이 정도 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거야!]

자신의 생각보다 약한 가이아에게 분노한 카샤의 여왕은 가이아의 배때지를 발로 차기 시작했다.

[꺄아아악...커헉...]

카샤의 여왕에 거센 발길질에 가이아가 비명을 질렀다.

[쓸모 없는 년! 너도 보았을 거 아니냐! 그 날! 카샤가 죽어버린 그 날을!]

광기로 가득 찬 카샤의 여왕은 목이 찢어지듯이 가이아에게 말했다.

[그 무식한 덩치  명에 모든 기술이 한 순간에 사라지는 모습을 보았지 않았냔 말이다!]

덩치?

덩치가 큰 구원자...?

내가 뒤를 돌아보자 구원자들 전원이 이마를 부여잡고 인상을 쓰고 있었다.

"아뿔싸..."

"레브님... 제발 그렇게 일처리 하지 말라고 했었는데..."


"이번에도 레브 때문에 생긴 문제였군."


"레브으... 멍청이이..."

레브?


어리둥절 하고 있는 나를 보며 에빌다씨가 말했다.


"너가 처음 왔을 때 원탁에 있던 그 근육 우락부락한 놈. 걔가 레브야. 4번째 멤버 '불굴의 레브'."

그렇게 말한 에빌다씨는 한숨을 푹 쉬며 이어 말했다.


"저번에도 복수하겠다 하면서 덤벼온 애들도 레브 때문에 그랬던 거였는데... 이쯤 되면 레브에게 문제가 있는 건 확실하네..."

옆에서 라시르가 머리 아픈 표정으로 말했다.

"레브님... 저번에도 제가 분명히 경고를 드렸는데 또 이런..."


사실 레브라는 구원자와 나는 첫날 말고는 일면식이 없었다.
그는 일을 하고 돌아와서 5분이면 다시 일을 받고 떠나는 일벌레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구원자 의회에 처음으로 온 날.
나에 대해 좋게 평가하며 라시르에게 말해주었기 때문에 상당한 호감이 있는 근육 아재였다.


그런 우리를 바라보며 카샤의 여왕이 외쳤다.


[그래! 그 주먹으로 모든 것을 분쇄하는 구원자!]


[그 놈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이룩한 모든 것을 잃었다!]


카샤의 여왕에 눈에서 눈물이 방울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뚝... 뚝... 뚝...

[우리 카샤는 기술 종족이다! 인구의 99퍼센트가 전부 과학자였다!]

[한창 망가진 생태계를 복원하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는 도중에 갑작스레 우리의 행성에 등장한  놈! 그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


[그 놈은 우리의 행성에 구원을 선언한다고 말한 후, 우리에게 가장  문제는 환경이라며 환경을 오염 시키는 기술들을 없앤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한 그 놈은 우리의 모든 생산 체계와 기술실들을 주먹 한방으로 모조리 없애 버렸어!]

[그리고 그렇게 파괴된  많은 기술실 안에는 우리가 수 천년간 쌓아온 기술이 총집합 되어 있는 기술실이 있었다!]

[그게 하루 아침에 갑자기 등장한 구원자란 놈에 의해서 전부 사라졌단 말이다!]

[너희들이  천년간 쌓아온 기술의 집합체가 주먹질 한번에 부서지는 모습을 본 우리의 상실감이 얼마나 컸을지 이해할 수 있느냐...? 있느냐... 고... 흐어어엉...]


결국 감정이 복 받쳐 올라온 그녀는 땅에 엎드려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모든...흐끅... 과학자들이... 흐윽... 사는 것을 포기했다!]

[인구의... 흐윽... 70퍼센트가 넘는 사람들이 자살을 선택했다...]

[내 어머니도 아버지도! 흐어어엉... 나와 함께 자살을 하려... 흐끅... 했지만 나는 죽고 싶지 않았어...!]

그렇게 말한 그녀는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팔로 눈물을 닦은 뒤 말을 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히끅... 과학을 포기했다... 잃어버린 기술을 다시금 복구하기에는 너무나도 오랜 시간이 걸렸으니까...]


[살 희망을 잃어버린 우리는 잊혀진 고대의 카샤가 숭배하던 신, 가이아에게 매달리기 시작했다...]


[하루하루를 절망에 빠져 살아가고 있던 어느  자신을 신이라고 소개하는 가이아가 우리의 앞에 나타났다...!]


[나는 깨달았지! 우리가 다시금 일어서기 위해서는 기술이 아닌 강한 신앙으로 이루어진 사회가 필요하다고!]

[먼저 우리에게 타 문명을 향한 침공을 제안한 것은 가이아였다! 우리는 그 전까지는 그저 모든 기술을 일어버리고 신에 매달리던 나약한 종족에 불과했어!]

그녀가 울분을 토해내듯이 말하는 것을 들은 가이아는 그녀에게 말했다.

[아니에요! 저는 단지... 그 문명은 스스로 파멸을 맞이하였기에 남아있는 기술의 흔적이라도 건졌으면 해서 그랬던 거라구요!]

모든 사건의 전말을 들은 우리는 머리가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그니까 정리하면..."

"레브가 또 일처리를 거지같이 했고..."


"그에 앙심을 품은 카샤는 신에게 매달렸다..."


"그러던 주웅... 카샤를 가엽게 여긴 가이아가아..."

"이미 스스로 파멸한 문명의 기술을 조금이라도 빼오려는 마음에 침공을 제안했다 이건가...?"

진짜 머리가 너무 어지러웠다.

아무리 좋게 생각 해보려고 해도 이건 순도 100퍼센트 우리 구원자 측의 잘못이었다.
동료의 잘못은 우리의 잘못.
레브가 독단적으로 한 행동이었지만 결국 그게 우리 구원자 전체를 대변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조심스레 구원자들에게 말했다.


"이거... 암만 봐도 저희 측에 잘못인  같은데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나도오..."


라프키르와 키릴이 힘 없이 대답했다.
라시르는 완전히 풀 죽은 모습으로 중얼거렸다.


"이거... 너무 많이 틀어져 버려서, 어디부터 바로 잡아야 할 지를 모르겠어요..."


나는 질문을 하기 위해 힘을 끌어올려 가이아에게 물었다.

[그럼 지구인에게 각성이라는 이능력을 선물해준 이유도...?]

가이아는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처음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타 문명을 카샤가 침략한다는 사실을 버틸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행성이 조금이라도 카샤에게서 오래 버티기를 바랬습니다...]

[죄 없는 이들이 카샤의 침략을 당해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에 고통스럽지 않기를 바라며 여러가지 축복도 걸었죠...]

드디어 무언가 이상하다 느꼈던 점이 전부 해소가 되었다.
의문이 전부 풀린 나는 가이아의 말에서 이상한 점을 느꼈다.

[잠깐, 처음으로요?]

그러자 카샤의 여왕이 대답했다.

[그래, 우리가 온전한 문명을 침공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너희들을 불러 들이기 위해서 일부러 괴수만을 이용해 침공을 시도했다!]

[그동안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너희가 심판을  후 황폐해진 문명을 따라 다니며 그 찌꺼기를 주어 먹었지...]


[그렇게 찌꺼기를 주어 먹으며 전력을 보강하는 지긋지긋한 세월이 900년이 넘게 지속 되었다!]

[병력은 늘어났고, 신앙주의 사회로 탈바꿈한 우리 카샤는 강대한 세력을 가지게 되었지!]


[우리는 가이아에게 제안했다. 구원자들을 처단하자고, 우리와 같은 문명을 또 다시 만들지 말자고!]


[그 말을 들은 가이아는 자신을 봉인하여 우리를 막으려고 하였다! 하지만 이미 신에 관련된 문명을 돌아 다니며 수 많은 자료를 모은 우리는 가이아를 억지로 끌어 내리는데 성공했지!]


카샤의 여왕은 다시금 감정이 복 받쳐 오르는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우리를 향해 물었다.


[자... 말해봐라 구원자들이여... 우리는... 악인가...?]

[너희들에게는 사소한 실수였을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전부였던 기술이었다...]


[그 모든 것을 앗아간 너희가 우리를 악이라고 치부할 자격이 있는가...?]


우리의 완전한 패배였다.
우리에게는 명분도 변명할 거리도 없었다.
명백한 레브의 실수였고, 구원자 협회의 실수였기 때문이다.

할 말을 잃은 구원자들은 허탈함에 한숨만 푹푹 쉬었다.

"하아... 레브님... 진짜 이번에는 징계를 확실히 내리겠어요..."

"제발 부탁한다 의장. 레브 녀석에게 한 500년 정도의 징계를 줘라. 자꾸 무식하게 일만 하니까 이런 일의 빈도가 늘어나는 것이다."

"500년이 뭐야? 한 1000년은 구원자 의회에서 나가지도 못하게 해!"

"그래도오... 1000년은 조옴...."


모두가 허탈해서 카샤의 여왕에 말에는 대답하지 못하였다.
어쩔 수 없이 내가 카샤의 여왕에게 말했다.

[하... 그건 우리 쪽의 명백한 실수입니다... 변명할 여지조차 없이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일단 대화를 나눠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이미 죽어나간 카샤의 병력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서로 말이 통한다면 대화를 해볼 여지는 충분했다.
라시르는 뒤에서 힘 없이 내게 말했다.

"미안해요 성원님... 이런 건 제가 해야 되는데..."


나는 살짝 미소 지으며 라시르에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카샤와의 협상은 제가 한번 해보도록 할게요. 다른 분들은 옆에서 지켜 봐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 즉석으로 마련된 카샤와 구원자 의회의 협상 테이블이 허공에 마련 되었다.
카샤도 더 이상의 전투로는 자신들 쪽에만 피해가 커질 것이라 생각하여 흔쾌히 협상에 응했다.


그렇게 해서 생긴 회담.
나와 카샤의 여왕은 테이블 위에 앉아 서로를 응시하였다.
우선은 우리 쪽이 먼저 잘못한 일이기에 선 사과를 해야만 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며 카샤의 여왕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구원 건은 저희 구원자 의회에서는 변명할 여지가 없습니다..."

전투에 있어서는 우리 구원자가 압도적인 우위였지만.
이렇게 협상 단계로 오면 우리가 압도적으로 불리했다.
카샤의 여왕은 다리를 꼬고 앉아서 내 사과를 받고 있었다.
아마 꽤 운 것인지 눈이 살짝 부어있었다.
카샤의 여왕은 내게 물었다.

"어떤 식으로 우리에게 보상을 해줄 생각인가?"

왔다.
여기가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기점이다.
너무 많이 주지 안되 납득할 만한 보상을 생각해야만 했다.
나는 뒤로 돌아 의자에 쪼르르륵 앉아있는 구원자들에게 물었다.

"저희 측에서 카샤에 줄 수 있는 보상이 무엇이 있을까요?"

내 말을 들은 구원자들이 각기 대답했다.

"원하는 거 다 만들어  수 있어! 물론 적정선에서..."

"마법에 관련 된 것이라면 뭐든지."


"맛있는 음식을 언제나 제공할 수 있다. 맛은 구원자 의회에서 보장하지."

"미래라도 예언해 드릴까요...?"

모든 제안을 들어본 결과 내게 든 생각은...


'정말 하나 같이 쓸모 없다...'

막상 생각 해보니 우리가 줄 것이 별로 없다는 점이었다.

'카샤에게 필요한 것...'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생명을 연장 시킬 방법은 존재해도 이미 죽은 사람을 살릴 방법은 없었다.
영혼이 윤회의 굴레에 들어가 버리면 영혼을 일일히 찾아서 꺼내오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장 카샤에게 필요한 것은...

'잃어버린 기술...'


하지만 어떻게?
대체 어떻게 해야만 이미 900년도 전에 사라진 기술들을...


'아!'

혹시 키릴이라면.

법칙을 다루는 키릴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나는 지루했는지 꾸벅꾸벅 거리며 졸고 있는 키릴에게 물었다.

"키릴!"

"어! 어 왜애...?"

"혹시 법칙을 운용해서 특정 지역에 시간을 돌리거나 할  있나요?"

키릴은 잠시 고민하다가 내게 말했다.

"가능하기는 한데에... 그렇게 큰 범위는 안돼에... 물론 죽은 사람도 살리지 못하고오..."


'이거다!'


그렇다면 파괴된 기술실을 복원 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나는 한번 더 확인하기 위해 키릴에게 물었다.

"그럼 무생물은 완벽하게 복원  수 있나요?"


"아마 가느응....아아...!"

키릴도 내가 묻는 질문의 의미를 깨달은 것 같았다.
키릴의 반응으로 기술실을 복원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 되었다.


나는 다시 정면을 바라보며 카샤의 여왕에게 말했다.

"여왕님. 저희가 잃어버린 기술실을 복원해 드린다면 어떠십니까?"


카샤의 여왕은  말을 듣자마자 탁자를 박차고 일어나서 흥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정...정말이냐! 그게 가능하다고? 가능한 것이냐?"

"네, 해당 기술실이 지어졌던 장소만 알고 계신다면 복원 해드릴 수 있어요."


"그..그렇다면! 그걸로 하겠다! 당장! 당장 복원해 다오! 그걸 복원 해준다면 구원자에 대한 모든 적대 행동을 멈추겠다!"

출렁 출렁

흥분한 카샤의 여왕에 가슴이 위아래로 출렁거린다.

'진짜 존나 크네...'

애써 시선을 돌린 나는 눈을 손으로 가린 채 여왕에게 말했다.

"저... 여왕님 체통을 좀..."

"그건 됐고! 지금 당장 가자꾸나! 당장 기술실을 복원해다오!"

카샤의 여왕은 내 팔을 잡아 당기며 말했다.
나는  곤란한 상황에 뒤를 쳐다보며 구원자들에게 말했다.

"협상은 성공한  같습니다... 키릴님?"

키릴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답했다.


"그래애... 가자아... 대신  같이 가줘야해애... 힘이 모자르면 조금 도움을 받아야 될 것 같아서어..."
다른 구원자들도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라시르는 자신을 대신해 현명한 답을 이끌어 낸 나를 보며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성원님... 덕분에 좋게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뭘요. 누구든지 이런 생각쯤은 해냈을 겁니다."

그렇게 대답한 나는 카샤의 여왕에게 말했다.


"여왕님."


"지금 출발하는 거느냐?"

"아뇨, 대신 저희도 조건이 있습니다."


카샤의 여왕은 말해 보라는 듯 턱을 까딱했다.
방금 전까지 싸우던 상대에게 이러는 것을 보면 이 여자도 제정신은 아니었다.
나는 그녀에게 내 조건을 말했다.

"기술실을 복원 해드리는 대신, 가이아님을 풀어 주세요."

"좋다."


그녀는 흔쾌하게 즉답했다.
뒤에 있는 병력에게 손 짓을 하자 그들은 가이아를 옭아매고 있던 구속구를 풀었다.
가이아는 지친 몸을 이끌고 내게 다가와 말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그런건 괜찮습니다. 가이아님이 지구인들에게 이능력과 축복을 걸어주신 이유도 알게 되었으니 말이죠."


만약 가이아가 지구인들에게 이능력을 부여해주지 않았더라면 지구는 괴수들조차 버티지 못하고 궤멸 되었을 것이다.
또한 축복으로 정신을 건드리지 않았다면 지구는  시간의 전쟁으로 인해 완전히 타락해 버려 심판을 받아야 했을 것이다.
가이아의 행동은 결과적으로 지구를 구하는 데에 지대한 공헌을 한 셈이었다.

가이아는 카샤로 통하는 차원 균열을 열었고.
우리는 카샤의  병력과 함께 그 차원 균열을 넘어 카샤에 발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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