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27.심판 집행 part 1
-성원 시점-
내가 내뱉은 단 두 문장에 힘을 담아 읊조리자,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지성체들이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구원자로써 가지는 권리를 지금 이 자리에서 선언한다.]
처음으로 해야 할 것은 권리에 대한 선언.
[첫 번째. 구원자의 행동은 기술, 환경, 윤리, 도덕, 문화, 분쟁, 역사 총 7가지의 평가 항목으로 인해 이루어진다.]
제국에 내려진 신의 형벌이라며 아비규환에 빠져버린 제국의 사람들.
[두 번째. 구원자의 심판은 7가지의 평가 항목 중 과반수의 항목이 미달일 경우 내려진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을 환상이라 치부하며 제국의 공작이라고 하는 로 엔드리올의 수인들.
[세 번째. 구원자가 심판으로써 행하는 살상은 카르마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미 우리를 똑똑히 본 적 있기에 환상이 아니란 걸 깨닫고 바닥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엘프들.
[네 번째. 구원자의 구원은 7가지의 평가 항목 중 과반수의 항목이 통과일 경우 내려진다.]
자신들의 신인 키에르에게 기도하는 성국의 사람들.
[다섯 번째. 구원자의 구원에서 비롯된 살상은 카르마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엘프들과 마찬가지로 이미 우리를 봤었기에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하며 시끌벅적하게 떠드는 드워프들.
[여섯 번째. 구원자를 심판을 받을 해당 문명이 아닌 다른 문명이 구원자를 향해 선제 공격 할 경우, 구원자는 그에 대해 대응 할 수 있다.]
긴 수면에서 깨어나 하나둘 지상으로 나오기 시작한 드래곤들까지.
[일곱 번째. 구원자의 모든 행동은 구원자 의회의 의장이자 '신' 의 대리인인 라시르 루아에 의해 보호 받는다.]
선언의 마지막인 일곱 번째 권리를 말하고 지상을 보았다.
모두가 혼란에서 점차 빠져나와 각기 자신만의 방법으로 현 상황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상, 구원자의 권리에 대한 선언을 마친다.]
그렇게 하련이 알려준 대로 권리에 대한 선을 정확히 똑같이 선언한 후 엘븐가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가 첫 번째로 확인한 문명, 엘프들의 국가 엘븐가드에 대한 평가를 내린다.]
그러고 서는 엘븐가드의 엘프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숲에서 평화롭게 삶을 영위하는 엘프들은 윤리, 도덕, 환경, 문화, 기술, 분쟁, 역사 모든 항목에서 통과하였다.]
[그러니 엘븐가드에는 '구원'을 선언한다.]
[엘븐가드의 문제점은 딱히 눈에 띄는 바 없었기에 '구원'은 잠시 미룬다, 혹여나 엘븐가드에서 문제점을 우리에게 전해 준다면 해결 하도록 하겠다.]
엘프들에게 구원의 보류를 선언하자 엘프들은 무릎을 꿇던 자세를 풀고는 긴장이 풀렸는지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 속에서 엘프들을 독려하는 프레이야와 그 옆에서 나를 보며 웃고 있는 성아의 모습이 보였다.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살며시 웃고는 고개를 돌렸다.
이번에는 아이언쓰론의 드워프들 차례다.
[다음은 강철과 같이 단단한 요새를 지닌 문명, 드워프들의 국가 아이언쓰론에 대한 평가를 내린다.]
[돌산에서 금속을 다루며 갖은 물건들을 만들어내며 살아가는 드워프들은 윤리, 도덕, 문화, 기술, 분쟁, 역사 총 6개의 항목에서 통과하였다.]
[종족의 특성을 감안하오나. 그렇다 할지라도 산과 평야를 황폐하게 만들고, 그 산에 구멍을 뚫고 살아가는 것은 어디 까지나 환경의 파괴.]
[드워프들은 파괴된 환경을 조금이라도 복구하려는 노력을 보여야 할 것이다.]
[총 7개의 항목 중 과반수에 달하는 항목에 통과하였기에 아이언쓰론에는 '구원'을 선언한다.]
드워프들은 무슨 일인지는 잘 몰라도 자신들이 무언가에 통과했다는 사실에 긴장을 풀며 축제 준비를 시작하였다.
어지간히 먹고 마시는 것을 즐거워하는 종족이었다.
그런 드워프들 사이로 멍한 표정을 하며 우리를 바라보는 소린이 보였다.
하지만 드워프들에게 내려진 구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대륙의 북서쪽 끝에 위치한 드래곤의 협곡을 바라보며 말했다.
[드워프들은 외부의 압박을 통해 국가를 만든 것으로 추정되며, 그 압박을 넣은 존재는 드래곤이라 들었다.]
[아이언쓰론의 문제점을 지금 배제하여 '구원' 을 집행한다.]
슥
시야가 순식간에 바뀌고 한 드래곤의 레어에 도착했다.
나는 심판 받을 자들에게 조금의 공포를 더 심어주고자 지성체들이 나를 인식할 수 있는 범위를 넓혔다.
그러자 모든 지성체들의 눈에는 마치 3D영화를 보는 것처럼 성원의 주변 환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드래곤의 레어에는 한마리의 붉은색의 드래곤이 오만하게 앉아 있었다.
행성을 모두 뒤덮은 마나 파장은 마치 레이더처럼 레어 안에 모든 공간을 파악 시켜줬다.
보물 창고로 보이는 공간에 드워프들이 만든 것만 같은 수많은 병장기와 갑옷들이 존재했다.
드래곤은 레어에 순식간에 들어온 나를 보더니 말했다.
<무슨 일인가, 인간.>
목소리에서 흘러넘치는 자신감이 느껴진다.
그게 얼마나 갈지 기대가 되었다.
[문제점을 포착, 배제한다.]
내가 손을 뻗자 드래곤은 반사적으로 입을 열어 브레스를 뿜어내려고 하였다.
스퀴르와의 훈련 이후 오직 살상을 위해 구상한 기술.
그것을 사용할 때가 왔다.
오른손을 내밀어 손바닥을 펼친다.
드래곤의 입에서 붉은 화염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펼치고 있던 손바닥을 주먹을 움켜쥐고는 살짝 위로 들었다.
[혈류 급속 가속.]
내가 무덤덤하게 말한 혈류 급속 가속이 발동되자 동결의 힘은 드래곤의 몸에 흐르는 피들을 빠르게 가속 시켰다.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아하던 드래곤이였지만 잠시 후.
퍼엉!
치덕 치덕
드래곤의 육체는 자신이 견디지 못할 정도로 가속된 혈류의 속도에 버티지 못하고, 말 그대로 터져 죽었다.
커다란 레어의 벽면에는 터져버린 드래곤의 육체가 사방팔방으로 붙어 있었고, 레어는 피범벅이 되어버렸다.
드래곤답게 커다랬던 몸체는 사라져 버렸고, 이제는 살점과 피만이 이곳에 드래곤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나는 몸에 붙은 살점과 피를 클린 마법으로 깔끔하게 없앤 후.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다음.]
-드래곤 협곡에 위치한 드래곤 로드 레프리쿠스의 레어-
드래곤들이 회의할 사안이 생기면 모였던 드래곤 로드, 레프리쿠스의 레어에는 거의 모든 드래곤이 집합하고 있었다.
드래곤이라는 종족이 이 세상에 나타나고 난 후 한번도 겪은 적 없는 긴급 상태였기에 모든 드래곤은 혼란에 빠져있었다.
처음에는 다들 눈 앞에 보이는 장면이 모두 환상 마법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아무리 디스펠을 외치고, 용언으로 해제를 시도 해보아도 이 환상은 눈 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드래곤 로드 레프리쿠스는 앞으로 나와 말했다.
<지금 이 상황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드래곤이 있는가?>
드래곤 로드는 긴 수면기에 들어서 이미 2천년이 넘는 시간동안 긴 잠을 자다 일어난 상태였다.
의문의 강력한 힘은 수면에 빠진 드래곤 마저 깨울 정도로 강력했고,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환상에 본능적으로 경각심이 들어 회의를 소집한 것이다.
로드의 질문에도 모든 드래곤은 고개를 흔들며 부정할 뿐, 그 누구도 이 상황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
<후... 인간은 정말 이해가 안되는 종족이군... 그렇게나 연약하면서도 가끔씩 돌연변이 마냥 저리도 강대한 힘을 지니고 있는 존재가 태어나는 것은 창조주의 의도일까?>
드래곤 로드의 한탄 섞인 말에 에이션트 드래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쿠렐리온이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일단은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좋겠네... 저 인간이 말하길 자신들이 문명을 심판한다고 하더군...>
드래곤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더 심해진다.
그때 이제 막 에이션트 드래곤이 된지 2백년도 채 되지 않은 젊은 드래곤이 앞으로 나와 말했다.
<로드, 그리고 내 동족들이여. 저는 드래곤들의 기준으로는 그렇게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제가 살아온 시간은 짧지 않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 긴 시간 동안 공포라는 감정이 무엇인지 느끼지 못했지만 오늘에 서야 그 감정을 깨달았습니다.>
<지금 저희의 눈 앞에 보이는 인간은 모습만 보더라도 오금이 저릴 정도로 강력한 힘이 느껴져 온 몸이 떨려옵니다. 마치 포식자 앞에 놓인 사냥감처럼 말입니다.>
드래곤은 본디 이기적이지만 현명한 종족.
대상과 자신들의 힘 차이를 모를 정도로 멍청하지 않았다.
대다수의 드래곤이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웅성거림도 점점 커져만 갔다.
그때였다.
[총 7개의 항목 중 과반수에 달하는 항목에 통과하였기에 아이언쓰론에는 '구원'을 선언한다.]
안 좋은 느낌이 드는 말이었다.
드워프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높은 확률로 드래곤들이 벌인 일일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드워프들은 외부의 압박을 통해 국가를 만든 것으로 추정되며, 그 압박을 넣은 존재는 드래곤이라 들었다.]
[아이언쓰론의 문제점을 지금 배제하여 '구원' 을 집행한다.]
오싹
그가 배제라는 단어를 사용하자 모든 드래곤의 몸에 소름이 돋았다.
드래곤 하트가 두근거리며 본능적으로 마나를 끌어올렸다.
그 인간은 그렇게 말하자 확장된 공간에 한 드래곤의 레어가 보였다.
그 레어에는 한 마리의 붉은색 웜 드래곤이 보였다.
드래곤으로 치면 청소년과도 같은 나이.
<카로디에! 저 녀석이 설마?>
그 붉은색 웜은 카로디에라는 드래곤으로 예전부터 장난기가 많고 이곳 저곳을 툭툭 건드리며 시비를 걸고 다니던 말썽쟁이 드래곤이었다.
카로디에의 부모인 에이션트 드래곤 베르티에과 에이션트 드래곤 카샤소르의 표정이 굳어간다.
비록 드래곤이 해츨링 시절에서 벗어나면 부모에게서 완전히 독립해 그 후로 남남처럼 살아간다고 하지만, 카로디에는 분명히 그들의 자식이었다.
불길한 예감이 부부의 몸을 휘감는다.
카로디에는 여유를 부리며 인간을 향해 말했다.
<무슨 일인가, 인간.>
그 첫 번째 문장부터 이미 모든 것이 틀어져 버렸다.
상황 파악이 안되는 건지 자신과 상대의 힘의 격차를 깨닫지 못한 것인지.
완전히 그 인간을 아래로 보는 듯한 오만한 말투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드래곤들의 입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문제점을 포착, 배제한다.]
인간은 그렇게 말하고는 오른손을 내밀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벌리며 브레스를 내뿜으려 하는 모습에 결국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카로디에의 입에 불꽃이 모여가고 있던 그 짧은 사이에 인간은 내밀은 오른손을 움켜쥐며 위로 들어 올리며 말했다.
[혈류 급속 가속.]
펑!
치덕 치덕
살점이 튀고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와 레어를 적신다.
눈 앞에 보이는 광경이 현실인지 아닌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비록 웜이지만 카로디에는 엄연히 드래곤이다.
모든 종의 정점에 서있는 최상위 종족.
그 어떤 종족도 드래곤의 위엄에 도전할 수는 없었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베르티에! 베르티에!>
카로디에의 어머니인 에이션트 드래곤 베르티에가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돌렸다.
불길한 예감이 적중했고, 그들의 자식 카로디에는 살점의 파편이 되어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너무나도 충격적인 광경에 모든 드래곤들은 침묵했다.
그 침묵이 어느 정도 지나고 로드가 중얼거렸다.
<대단...하군...>
마법을 사용하지도 않았고, 병장기를 휘두른 것도 아니었다.
그저 손을 내밀었고 주먹을 움켜쥐더니 웜급 드래곤 하나가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같은 드래곤조차 드래곤을 죽이기 위해서는 엄청난 사투가 펼쳐졌다.
마법이 난무하고, 브레스가 뿜어져 나오고, 서로의 용언이 충돌하는 것이 드래곤과 드래곤의 사투였다.
하지만 이게 무슨 일 이란 말인가.
인간은 정말로 허무하리 만큼 한 마리의 웜 드래곤을 너무나도 손 쉽게 죽여버렸다.
모든 드래곤의 머리에 뿌리 박히는 생각.
(절대, 적으로 돌리면 안된다.)
살아남기 위한 종의 본능이 그들의 머리 속에 각인 되었다.
고개를 돌린 채 흐느끼고 있는 베르티에가 불쌍하기는 하였지만 애초부터 드래곤은 이기적인 생물이었다.
자신의 안위가 더 중요했던 드래곤들은 회의에 박차를 가했다.
<당장이라도 그를 찾아가 우호적인 협약을 맺어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드워프들에게 사과를 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카로디에의 행동을 대륙에 사과하고 그와 대화의 자리를 마련해 봅시다!>
드래곤들은 어떻게 해서든 살고 싶은 마음에 온갖 방안을 외치며 토론을 시작했다.
물론 그 당사자는 딱히 드래곤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었지만 말이다.
-성원 시점-
아이언쓰론을 지배하던 드래곤을 죽이니 드래곤 협곡이 소란스러워 졌다.
조금 충격적인 장면 이였는지 프레이야와 성아가 멍하니 있는 모습이 보였다.
눈을 감아도 피할 수 없는 광경이기에 그 모든 것을 전부 봐야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할 도리는 없었고, 그저 프레이야와 성아가 나를 미워하지 않기 만을 빌 뿐이었다.
다시 하련이 있던 행성 밖으로 올라왔다.
나는 하련의 옆에 서서 다시금 입을 열었다.
[다음은 자애의 신, 키르케를 믿는 신성 왕국 차례다.]
그렇게 말하고 서는 신성 왕국을 쳐다봤다.
다른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을지 모르지만 나와 하련의 눈에는 우리를 바라보는 키르케가 보였다.
키르케의 얼굴은 충격에 휩싸인 듯 보였지만 우리를 향한 두려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자애의 신, 키르케를 숭배하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신성 왕국은 엘븐가드와 마찬가지로 윤리, 도덕, 환경, 문화, 기술, 분쟁, 역사 모든 항목에서 통과하였다.]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며 남을 배려하고, 자신의 것을 베푸는 신성 왕국은 훌륭한 문명의 표본과도 같다.]
[그렇기에 신성 왕국에는 '구원'을 선언 한다.]
[또한 자애의 신, 키르케는 그 칭호와 걸 맞는 자애로운 마음을 내게 보여줬기에 그에 따른 보상을 내린다.]
나는 내 마음 속 깊이 자애의 신, 키르케를 향해 기도했다.
그 순간 우리를 바라보고 있던 키르케의 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그 빛 속에서 성인이 된 키르케가 걸어 나왔다.
나라는 격이 높은 존재가 하위의 격을 지닌 키르케를 믿음으로써 생긴 거대한 신앙이 그에게 힘을 주었기 때문이다.
키르케는 나를 바라보더니 조용히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나는 그런 키르케를 보며 한번 웃어주고는 이어 말했다.
[신성 왕국 또한 현재 '구원'을 행하기 적당한 문제점은 없어 보이므로 보류 하도록 하겠다.]
이제 남은 것은 로 엔드리올과 7왕국, 그리고 제국 뿐이었다.
나는 하련에게 집행을 잠시 넘기기로 했다.
하련은 내가 손으로 자신을 가르키자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으로 나와 말했다.
[7왕국과 로 엔드리올은 내가 평가하겠다.]
[우선은 다양한 종족의 수인이 모여 만든 국가, 로 엔드리올 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