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7.첫번째 세계 프로티아
곳곳에 보이는 우거진 수풀들.
거대한 나무들이 내 시선을 사로잡는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만이 들리는 고요한 곳.
나는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말했다.
옆에 서있는 하련도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위치를 확인하고 있는 듯 보였다.
"이곳이...프로티아...?"
숲 한복판에 떨어진 것 같다.
이제 뭘 해야 되는 걸까.
나는 하련에게 물었다.
"그러면 이제...뭘 해야 되죠 하련님? 그냥 하련이라고 불러도 되죠?"
"맘대로 해 그리고 우리 쪽에서 어딜 갈 필요는 없을 듯 하네."
"예? 그게 무슨..."
말을 이어 가기도 전에 그녀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마나 파장을 펼쳐보니 한 무리의 집단이 이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우거진 수풀 사이에서 한 무리의 사람이 나왔다.
아니, 정확히는 엘프가.
역시 엘프가 아름답고 잘생긴 건 어느 문명이든 공통 인가보다.
한 무리의 엘프들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하나같이 아름다운 외모를 뽐내고 있었다.
그러더니 한명의 여성 엘프가 앞으로 나와 우리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위대하신 존재들이시여."
뭐지?
우리가 올 것을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하는 그녀에 말에 어안이 벙벙해서 하련을 바라 보았다.
그녀는 마치 익숙한 듯 엘프들을 향해 말했다.
"역시 판타지 문명 답게 예언자가 있는가 보군."
예언자?
우리가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말인가?
"이런 경우가 자주 있나요?"
"마나를 사용하는 문명에서는 자주 일어나는 일이야. 각 세계마다 예언자라고 불리는 존재는 한 두명 씩 꼭 있거든. 그렇다고 해서 라시르처럼 정확한 미래를 보는 건 아니고 말 그대로 두루뭉실한 예언 일꺼야."
하련은 내가 궁금해 하는 부분을 바로 설명해줬다.
'생각해보니 그랬던 것만 같기도 하고...'
하련은 엘프들을 보고 말했다.
"우리가 올 것을 예언한 자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줘."
"알겠습니다. 그럼 이쪽으로 따라 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우두머리로 보이는 여성 엘프는 우리를 향해 손짓하였다.
그렇게 엘프들의 뒤를 따라 이동을 하며 나는 하련에게 물었다.
"근데 이렇게 알리고 다녀도 상관없나요? 귀찮게 하거나 방해를 할수도 있지 않을까요."
"누가?"
"네?"
"누가 우리를 방해할 수 있지?"
그러네.
그 누구도 우리를 방해할 수는 없었다.
자신들이 차마 이해조차 하지 못 할 정도로 강대한 격을 가진 존재들이 무엇을 하든 그들이 어떻게 방해를 한단 말인가.
나는 잠시나마 잊고 있었던 우리의 위치를 기억해 냈다.
"방해하면 벤다. 거슬리면 부순다. 그들에게 동정을 느껴서도 안되고 연민을 가져서도 안돼. 우리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떠올려라."
그렇다.
이 문명을 돌아보고 평가하고 우리는 심판을 내릴 수도 있었다.
그리고 심판은 이 문명을 깔끔히 소멸 시키는 것.
어중간한 마음가짐으로는 행동하면 안됐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니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부담감이 한층 더 커져왔다.
"도착한 것처럼 보이네. 저기 보이는 거대한 나무가 세계수 일거야."
하련이 가르키는 방향을 보니 어마어마한 크기의 나무가 하늘을 뚫을 기세로 자라있었다.
"세계수는 예전에도 본 적 있지만 엘프가 있는 문명이라면 대부분 세계수가 있는 거 같네요?"
"당연하지 세계수는 라시르가 말하는 신이 처음으로 만든 나무니까."
몰랐던 사실이 또 나오네.
"세계수 또한 범 우주적 존재야. 그녀는 모든 차원에 자신의 뿌리를 내리고 있지. 모든 세계수는 그녀의 편린이야."
"엘프들은 그녀의 종복이지. 그래서 세계수가 존재하는 문명은 무조건 엘프가 존재해."
그렇게 하련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엘프들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성벽이 보였다.
엘프가 성벽을 짓네?
성벽 앞과 위에는 엘프 병사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이윽고 그들은 우리를 발견한 듯 저희들끼리 뭐라 말하더니 대장 같은 엘프 사내가 우리를 향해 외쳤다.
"정지! 신원을 밝혀라!"
그러자 우리쪽 엘프 무리의 우두머리 처럼 보이던 엘프 여성이 대답하였다.
"크세르이야 님이 예언하신 위대하신 분들을 이끌고 왔습니다. 부디 성문의 개방을."
우리가 올 것을 예언한 예언자가 크세르이야 라는 엘프인가 보다.
그리고 성벽 위에 있던 대장 엘프가 대답했다.
"부드러운 꽃바람이 지나면"
그러자 엘프 여성도 자연스레 대답했다.
"싱그러운 풀내음이 뒤따른다."
엘프 식 암구호인가?
엘프 여성의 대답을 들은 대장 엘프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큰소리로 아래를 향해 말했다.
"성문을 개방해라! 귀하신 분들이니 조심하도록!"
쿠구구구구구구구궁
성문이 개방되고 우리는 성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수많은 엘프들이 무릎을 꿇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그들은 한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위대하신 분들을 뵙습니다!""
""위대하신 분들을 뵙습니다!""
이 무슨 환대란 말인가.
'원래 이런건가?'
의문이 들어 하련을 보니 하련은 아무런 표정을 짓고 있지 않았다.
당황한 기색이 없는 것 보니 이런 적이 한 두번이 아닌 거 같네
하련은 내게 말했다.
"보통 엘프 예언가들은 세계수, 그녀가 내리는 예언을 듣지. 그녀는 우리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으니. 그렇다고 우리가 무슨 일로 이곳에 온 것인지는 모를거야."
"신기하네요. 세계수가 저희를 알고 있다고요?"
"아까 말한 대로 그녀는 신이 만든 최초의 나무야. 라시르와는 자매와 같은 사이지."
라시르에 대해서 하나둘 알아갈수록 경외로운 느낌만 든다.
진짜 대단한 사람이네 우리 의장님...
아마 아까 하련이 말했던 신이 자신을 때어내어 만든 범우주적 존재 중 하나가 세계수인 듯 하다.
그때 수많은 엘프 무리 속에서 돋보이는 미모를 가진 아름다운 여성 엘프가 앞으로 걸어 나와 우리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저희 엘프들의 왕국 엘븐가드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저는 엘프들의 여왕 하이엘프 프레이야 디 엘븐가드. 위대하신 분들이여. 혹시 환대가 부족하지는 않았는지요."
이것보다 더 환대 할 수 있는거야?
지나치게 저자세라 오히려 좀 미안한 감이 있다.
하련은 그녀를 향해 말했다.
"정보를 얻고 싶다. 이 세계에 대한 정보를."
"알겠습니다. 일단 세계수의 그늘로 모시겠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한 후 엘프들을 향해 손짓을 했고
마치 홍해가 갈라지는 것 마냥 엘프들의 무리가 길을 열었다.
갈라진 길을 따라 걸으며 엘프들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았고 이상한 점이 다수 보였다.
첫째. 남성 엘프가 현저히 적다.
이거는 종족 특성 일수도 있어서 모르겠는데 내가 아는 엘프들은 성비가 반반에 가깝다.
아마 외부적인 요인이 있을 가능성이 크겠지.
둘째. 우리에게 적대감을 보이는 엘프들이 다수 있다.
여왕까지 나와 우리를 환영했는데도 이 정도의 적의가 느껴질 정도면 아마 인간이라는 종족에 대한 적의일 가능성이 높겠지.
그리고 이 사실은 하련 또한 알아챈 것처럼 보인다.
하련은 프레이야를 향해 말했다.
"전쟁 중인가?"
그러자 프레이야는 흠칫 놀란 듯 어깨를 살짝 떨더니 대답했다.
"예, 지금 현재 엘프왕국 엘븐가드와 드워프 왕국 아이언쓰론은 인간 제국 크로울리와 전쟁 중입니다."
역시나
전쟁 중이 아니면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의 인구 비율 이였다.
아까부터 등 뒤를 찔러오는 이 적대감도 있고...
'위대한 분이고 뭐고 일단 우리는 인간이니까 말이야.'
하련과 프레이야는 몇 마디를 주고 받았고 우리는 점점 세계수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곳입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세계수의 거대한 뿌리 중 한 곳 이였다.
뿌리에 달린 문을 열고 들어가자 꽤 거대한 공간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프레이야를 따라 조금 더 걸어가니 마치 회의실 같은 공간을 마주했다.
프레이야가 상석에 앉자 우리도 마주 보는 자리에 자연스레 앉았다.
"어디부터 설명해 드려야 할까요."
그녀는 살짝 서글픈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현재 상황을 말해주면 좋겠군. 전쟁이 일어난 이유와 드워프 왕국 관의 관계, 국제 정세등을 말이야."
그녀는 살짝 한숨을 쉬다니 자세를 바로 잡고는 입을 열었다.
"이곳 지도를 봐주세요."
그녀가 가르키는 방향에는 대륙 지도로 보이는 지도가 있었다.
"이곳 서쪽에 거대한 넓이의 영토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크로울리 제국 입니다. 그 주위로는 7개의 인간 왕국이 자리를 잡고 있죠."
그렇게 말하며 다듬어진 나뭇가지로 대륙의 서쪽 부분을 가르켰다.
확실히 크긴 하다.
'대륙의 50퍼센트를 혼자서 차지하고 있구만.'
그리고 그 주변에는 제국보다 훨씬 작은 영토를 가진 7개의 왕국이 다닥다닥 붙어서 제국을 감싸고 있었다.
저럴 경우 보통 왕국들이 연합을 맺어서 제국을 견제하지 않나?
"제국과 인간 왕국들은 원래는 자기들끼리 이권 다툼을 해왔습니다. 그럼에도 대륙은 항상 아슬아슬한 평화를 유지 했엇죠."
"제국은 쉽게 자신들의 힘을 표출하지 않았고 그 이유는 선대 황제인 세이드 반 크로울리 19세가 평화를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살아있을 당시 우리 엘븐가드에도 직접 초청을 할 정도로 그는 좋은 인간 이였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프레이야의 눈빛에는 말할 수 없는 그리움이 담겨 있었다.
"크로울리는 이종족들에 대한 개방 정책을 펼쳤고 그가 살아서 제국을 통치 한 82년이란 시간 동안 대륙은 유례 없을 평화를 유지 했었어요."
"그런데 세이드 황제가 재작년에 98세의 나이로 별세 했습니다. 인간들이란 너무나도 쉽게 죽어버리니까요."
"그리고 문제는 거기서부터 생깁니다. 세이드에게는 총 2명의 부인과 3명의 첩이 있엇습니다."
"세이드는 당연히 정통성 있는 1황자를 황태자로 지정했고 황태자 또한 세이드를 닮아 평화를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세이드가 죽자마자 2황자와 3황자, 5황자, 2황녀, 4황녀 총 5명의 세력이 연합하여 황태자의 정통성을 부정했습니다."
"당연히 황태자 측 세력은 황위즉위식을 준비 중에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고 반발했고 그렇게 제국에 내전이 불었습니다."
"황태자 측은 갑작스러운 반란에 속수무책으로 밀려났고 결국 제국에서 도망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똑 똑 똑
프레이야 말을 이어가는 도중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여왕 폐하, 케이든 황태자님이 여왕 폐하를 알현하고 싶다 하십니다."
얘도 양반은 아닌가 보네.
자기 이야기를 꺼내자 마자 자기를 불렀냐는 듯이 찾아왔다.
"이야기 도중 죄송하지만 위대하신 분들께서 황태자를 한번 만나보셨으면 합니다."
나는 상관없다.
'오히려 만나보고 싶기도 하고 말야.'
그런 눈빛으로 하련을 처다 보자 하련도 선뜻 허락했다.
"감사합니다 위대하신 분들 이시여."
프레이야는 우리를 향해 감사를 표하고는 밖을 향해 외쳤다.
"들어오시라 전해라!"
끼이이익
문이 열리고 밖에서 흑발의 남성이 들어왔다.
새까만 흑발 거기에 금안 특이한 조합이다.
"만남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왕 폐하."
황태자는 여왕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원래라면 제국의 황제가 되었을 사람이 엘븐가드의 여왕에게 고개를 숙이다니 사람 됨됨이가 괜찮다.
적어도 망나니가 아닌 건 확실한 것 같고
"황태자님 이쪽이 크세르이야가 예언한 위대하신 분들입니다."
"아! 이쪽이!"
황태자는 우리를 보며 흠칫 하더니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위대하신 분들을 뵙습니다."
황태자도 이러네?
아마 엘븐가드 측에서 황태자에게 우리에 대한 이야기를 해놓은 것 같다.
이쯤 되니 궁금하다.
'어떤 예언이길래 다들 이러는거지?'
나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프레이야를 향해 말했다.
"혹시 예언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네, 안될 것 없습니다 잠시만요? 흠흠흠."
프레이야는 잠시 목을 가다듬더니 자세를 낮추고 우리를 향해 목소리를 내리 깔고 말했다.
"엘프들의 땅에서 가까운 동남쪽 방향에서 위대하고 숭고로운 자들이 온다. 그들의 뜻에 따라 대륙의 명운이 달리할 것이다."
오, 뭔가 그럴듯한 예언이다.
이 정도면 굉장히 높은 정확도를 가진 것 같다.
옆에 있는 하련은 놀란 표정으로 프레이야를 향해 말했다.
"세계수가 그대들을 굉장히 이뻐하는 것 같군. 이 정도로 정확한 예언을 내릴 정도면 그녀의 사랑을 받는 아이가 있나 보구나."
"네, 그 예언을 받은 크세르이야는 어렸을 때부터 세계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세계수님의 열매를 먹은 아이거든요."
세계수의 열매.
이것에 대해서는 나도 가상 세계에서 들어서 안다.
하나를 먹으면 몸 안에 생명력이 차올라 굉장히 긴 수명을 얻게 되고 노화가 사라진다.
두 개를 먹으면 몸 안에 불순물이 사라지고 본인의 잠재력이 극대화 된다.
세 개를 먹은 자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없어서 들은 적은 없지만 위에 두 효과만 봐도 정말 대단하다.
세계수의 열매는 세계수가 총애 하는 엘프에게 주기 위해 세계수가 자체적으로 만들어내는 열매인데 주고 싶은 엘프가 없을 경우 세계수의 열매는 영영 안 열릴 수도 있다 한다.
그런 세계수의 열매를 먹었다면...굉장히 아끼는 엘프인 것 같네.
특이한 재능이라도 있는 걸까?
"세계수의 열매를 받다니 굉장히 총애 받고 있는듯 하구나. 아마 그 아이가 그녀의 취향에 맞는 외모를 가졌나 보군."
취향에 맞는 외모라고...?
나는 내가 잘못 들었나 해서 하련을 향해 물었다.
"세계수님이 얼굴을 보나요...?"
"아아 그녀는 상당한 얼빠다."
그런 말은 어디서 들은 거야...
아니,아니!
그거보다 잠깐만?
세게수가 얼빠라고?
내가 아는 그 단어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충격에 빠진 눈빛으로 하련을 보자 하련은 말없이 답을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긍정했다.
와...
이건 좀 깨내... 세계수가 얼빠라니...
얼굴 보고 총애 한다고?
엘프들이 들으면 기절하겠다...
그걸 증명하 듯이 프레이야도 경직된 얼굴로 하련에게 말했다.
"마치 세계수님을 아시는 것 같은 말씀이신데 혹시 세계수님과 일면식이 있으신가요?"
"물론 그녀의 본체와 만난 적이 있다."
그 말을 하자 순간 방에 정적이 흘렀다.
......뭐지?
하면 안될 말 이였던 건가?
프레이야는 덜덜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하련에게 말했다.
"세계수님의 본체를 보신 적 있으시다고요...?"
하기야 세계수는 엘프들의 신 같은 거니까.
프레이야가 충분히 놀랄 수 있었다.
"그래 그녀는 가끔씩 우리가 있는 곳에 놀러 오곤 하지 자신의 자매를 보기 위해 말이야."
라시르 또 너야?
이제는 라시르가 신이라고 해도 놀라지 않을 거다.
"세계수님에게 자매가 있으시다고요?"
"더 이상 이야기 하기는 그렇군, 마지막으로 대답해주면 친자매는 아니다."
그 이야기를 끝으로 다시 한번 정적이 흘렀다.
그때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케이든 황태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말을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