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14.레드팀 턴[개미굴에서 채광을!]
얼마나 쓰러져있던 걸까.
의식이 돌아오자, 가장 먼저 냉기와 퀘퀘한 곰팡이 냄새, 그리고 두통 등이 그녀로 하여금살아있음을 일깨워준다.
미간을 찌푸린다.
정수리를만지작거리며 중얼거린다.
어떻게 용케도 살았네.
부스스, 눈을 떠보니 그야말로 암흑, 그 자체다.
그녀가 눈을 찌푸린 채 주위를 둘러보자 아주 미세하게 쇠창살이 그녀의 눈에 들어온다.
“……!”
심장이 두방망이질 친다.
두근두근두근두근…
호흡이 가빠져온다.
입이 바짝바짝 마른다.
이를 까득, 악문다.
뭐, 예상은 했지만 썩 기분은 좋지 않네.
쇠창살을 붙든다.
“저, 저-”
어차피 풀어주지도 않을 텐데, 이래봤자 소용이 있나?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콧잔등이 아려온다.
제길…
그때였다.
저벅, 저벅, 저벅…
걸음소리와함께, 목소리가 들려온다.
“……도 저쪽이 보낸 첩자일까요?”
“확실히 모르겠어. 그런데 살려둬서 좋을 건 없지 않겠어?”
“맞아요. 첩자든, 침입자든 살려둬서 좋을 건 없죠.”
첩…자?
어떤 첩자를 말하는 거지?
“빨리 그년을 잡아서 족쳐야 그분께서 여왕님 자리에 올라가실 텐데…”
“누가 아니랍니까.”
“진짜 멍청한 거 같아. 브라마석이 있는 이상 여길 가나, 저길 가나 개미지옥에 빠진 개미라는 걸 모르나.”
“하루라도 더 살고싶다, 이거겠죠.”
동공이 확장된다.
놈들을 빤히 쳐다본다.
대체 저게 다 무슨 소리지? 브라마석이 있는 이상 아무리 돌아다녀도 개미지옥에 빠진 개미라고?
살포시눈을감는다.
잡혀 오기 전의 상황을 복기해본다.
브라마석을 발견하고 가위로 브라마석을 채굴하려다가 잡혀왔지.
그러면 설마브라마석에 어떤 내가 모르는 비…
“여왕이면 여왕답게 품위라도 지키고 뒈져야 할 거 아냐? 꼴사납게 도망치는 꼴이란…”
“누가 아니랍니까?”
“……!”
여왕이면 여왕답게 품위 지키고 죽으라고?
잠깐, 잠깐. 이렇게 되면 지금 여기서 쿠데타가일어나고 있다, 이거야?
집단 지성인 개미들의 사회에서?
이게 가능해?
입술을 잘근잘근 씹는다.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머리칼을 쓸어넘긴다.
미션이랑 연결시켜보자.
미션이 브라마석을 채광하여 여왕에게 인정받으라는 거였잖아.
브라마석이 뭐길래 여왕에게 가져다주면 인정해준다는 걸까? 단지 예쁜 광석이라서?
아니면…정말 없어선 안될 광석은 아닐까?
저 작자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이 복잡한 곳에서 쿠데타를 하려면 뭐가 가장 필요할까.
분명 여왕인 만큼, 그녀를 따르는 세력 또한 있을 터.
아마 모르긴 몰라도, 저 작자들은 지금 나를 여왕이 보낸 첩자로 의심하고 있는게 분명하다.
이 복잡한 개미굴에서 여왕의 세력을 제끼고 그녀를 잡아 숙청하려면 곳곳에서 지켜보는 눈이 필요할터.
'진짜 멍청한 거 같아. 브라마석이 있는 이상 여길 가나, 저길 가나 개미지옥에 빠진 개미라는 걸 모르나'
"으음..."
브라마석이 있는 이상 어딜 가든지 개미지옥에 빠진 개미이다?
내가 브라마석을 보자마자 개미들이 들이닥쳤지.
그럼 설마 브라마석이 CCTV 역할을 하고 있나?
만약 이게 맞다면, 설명이 돼. 내가 브라마석을 보고 있을때, 녀석들이 어떻게 알고 들이닥쳤는지.
그리고 왜 여왕에게 브라마석을 갖다바쳐야하는지도.
그때였다.
병정 개미 한 마리가 더듬이를 움찔거리며 그녀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흠칫!
심장이 두방망이질 친다.
두근두근두근두근…
호흡이 가빠져온다.
입이 바짝바짝 마른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른다.
마른 침을 꿀꺽 삼킨다.
주춤, 주춤 뒷걸음질 친다.
개미가 날카로운 말투로 묻는다.
“……너, 뭐야?”
“저, 저…그게…”
짱구를 굴려본다.
뭐라고 얘기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여기서 나갈 수 있을까.
그녀가 한참 머리를 굴리는데, 개미가 입을 연다.
“짱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군. 그럴 필요 없어.”
“뭐, 뭐라고요?”
“내일이면 네 몸은 형장의 이슬이 되어있을 테니까.”
“……!”
심장이 두방망이질 친다.
두근두근두근두근…
온몸이 경직된다.
동공이 확장된다.
뭐, 뭐? 설마처형?
거친 숨을 몰아쉬며 쇠창살을 붙들고, 미친듯 흔든다.
“아, 아냐! 뭘 어떻게 오해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난 첩자도 아니고, 침입자도 아냐! 아니라고!”
“그러면 뭔데?”
답답해 돌아버리겠네! 뭔 배경지식이 하나도 없으니 이빨을 털려고 해도 털 수가 없잖아!
“아니, 아…아냐! 어쩃든 아니라고-!”
“그럼, 하룻동안 잘 지내라고.”
녀석들은 그 말을 끝으로 사라지고, 혜정은 쇠창살에 얼굴을 바짝 대고 미친듯 소리를 질러댄다.
“으-아아아아아! 거기 안 서!”
그러나 돌아오는 건 공허한 메아리 뿐이다.
다리의 힘이 턱, 풀린다.
털-썩.
“제…제길!”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귓전에 대고 살고싶다고 비명을 지른다.
쇠창살이기댄 채, 머리칼을 움켜쥔다.
온몸이 파르르, 떨린다.
연신 이빨이 딱, 딱, 딱 부딪힌다.
“시발, 시발, 시발…!”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쇠창살 바깥을 쳐다본다.
당장이라도 그녀를 집어삼킬듯한, 거대한 암흑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마른 침을 꿀꺽 삼킨다.
연신 심호흡을 한다.
“흡, 후-우우…흐으읍, 후-우우…”
심호흡을 하고 있자니, 지난 번 그녀에게 심호흡을 해보라고 충고해주던 아힘사카의 얼굴이 떠오른다.
뒷머리를 긁적거린다.
조금 미안하네. 나 아쉬울 때만 찾는 거 같아서.
나지막이 읊조린다.
“……전음모드 온, 아힘사카.”
-아저씨, 뭐 조금 찾으셨어요?
-전혀. 못 찾겄어. 내가 눈이 어두운 건지, 아니면 진짜 없는건지…
콧잔등이 시큰해진다.
눈물이 핑, 돈다.
갇혔다는 걸 말해도 되는 건가.
어차피 구하러 오지도 못하는 데, 괜히 걱정만 끼치는 거 아닌가.
-다루마양은? 어디여?
-……
-뭐여, 왜 대답이 없어?
-아저씨,저 갇혔어요.
-그게 무신 소리여?
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그가 거친 전음을 보낸다.
-내가 구하러 갈테니께 대충 어딘지만 알려주…
-아저씨 위치 저한테 설명하라고 하면 하실 수 있으세요?
-……
-같이 탈출할 방법이나 고민해주세요.
그러나 아힘사카도 별다른 방법을 내놓진 못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진다.
하품이 나온다.
꾸벅, 꾸벅…꾸벅, 꾸벅…
의식의 끈이 멀어졌다가, 돌아왔다가를 반복한다.
“……!”
움찔!
“아, 안 돼!”
고개를 미친듯이 가로저으며 볼을 꼬집는다.
가위를 꺼내 손등을 찌른다.
탈출해야해, 탈출해야 한다고.
이런 곳에서 허무하게 죽을 수는 없어.
“하-아아암…시발, 진짜.”
어떻게 해야 여기서 탈출을…
그때였다.
“아, 여기 계셨군요. 한참 찾았습니다.”
흠칫!
심장이두방망이질 친다.
두근두근두근두근…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른다.
호흡이 가빠져온다.
입이 바짝바짝 마른다.
누, 누구지?
고개를 돌려보니, 쇠창살 너머로 개미 한 마리가 그녀를 말똥말똥 쳐다보고 있다.
“누구…?”
“……여왕님께서 당신을 뵙고싶어 하십니다.”
“……!”
동공이 확장된다.
마른 침을 꿀꺽 삼킨다.
확실하다. 쿠데타에 쫓기는 여왕과 그걸 도와하는 우리, 이게 이번 미션의 골자다. 아마 브라마석은 여왕을 도와야할 때 필요한 키일 테고.
“여왕님께서 저를 왜…?”
“브라마석이 보이시는 거죠?”
브라마석이…보이냐고?
그러면 개미들에게는 브라마석이 안 보인다는 거야?
“그게 무슨…말씀이시죠?”
“브라마석이 다른 광석과 구분이 되냐, 여쭤봤습니다.”
“……!”
자, 잠깐.
그럼 설마 여왕개미 측 개미들이 브라마석을 캘 수 없으니…우리가 브라마석을 캐가서 여왕개미를 기쁘게 해라, 뭐 이런 거야?
그럼 아까 그 곡괭이를 들고가던 개미들은 뭐지?
“예. 구분할 수 있긴 있는데요. 다른 개미들은 그게 안 된다는 겁니까?”
“그래서 지금 저희측 일개미들이 곡괭이 들고 광석이란 광석은 전부 캐고 있잖습니까.”
“……!”
그럼 설마 나 팀킬 당한거냐?
아니면 그냥 적팀이 곡괭이 주워서 때린건가?
“그러니까, 구분이 가능하시다 이거죠.”
“예. 그러니까 일단 저좀 꺼내주세요.”
“아, 지금은 안 됩니다.”
“……? 예? 그게 무슨?”
“……자세한 설명은 뒤로 미루고, 일단 이거부터 받으십시오.”
그가 건넨 것은 다름 아닌 웬 노란색 광석이다.
그녀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묻는다.
“다짜고짜 이게 뭐…?”
“메디석입니다. 그걸로 연락하십시오.”
동공이 확장된다.
개미와 메디석을 번갈아가며쳐다본다.
뭐? 이걸로 연락하라고?
아니, 연락이고 나발이고 몇 시간 뒤면 나 죽어!
“아니, 조금 있으면 저 죽어요! 처형당한다고요!”
“저희가 장소도 아니까, 구해드리겠습니다. 그걸로 연락하십시오.”
“아니, 지금 꺼내주시면 되는데 굳이 이러시는 이유가…”
“지금 꺼내드리면 자연스레 저희는 추적을 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있다가 구해드릴 경우, 추적을 조금 더 줄일 수 있지요.”
하아…지금은따질 처지가아니니, 일단 따르는 수밖에 없나?
“이거, 연락은 어떻게 하는 건데요?”
“돌에다가대고 386301호에게 전음, 이라고 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저에게 전음이 될 겁니다.”
미간을 찌푸린다.
386…301호? 뭔 이름이 그래?
설마 개미들에게는 이름도 없는 거야?
그저 숫자가 이름일 정도로 여왕의, 여왕에 의한, 여왕을 위한사회인 건가?
그녀가 확인 차 메디석에 손을 댄 채 중얼거린다.
“386301호에게 전음.”
-되지요?
-아, 그러네요.
“가보겠습니다. 이따가 뵙지요.”
“아, 네.”
그렇게 그녀는 살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을 받자마자 까무룩, 잠이 든다.
얼마나 잔 걸까.
보고싶지 않은 얼굴이 그녀를 맞이한다.
다름 아닌, 어제 그 개미다. 새로운 얼굴도 보인다.
“자연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
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
심장이 귓가에 대고 살려달라 울부짖는다.
온몸이 경직된다.
호흡이 가빠져온다.
뺨이 상기된다.
입술이 파르르,떨린다.
터업!
텁!
놈들이 양쪽에서 그녀의 팔을 한쪽씩 붙든다.
“따라와!”
“……”
마른 침을 꿀꺽 삼킨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재빨리 주머니에 있는 메디석에 손을 갖다댄채 중얼거린다.
“386301호에게 전음.”
-지금. 지금이예요!
-아, 알겠습니다.
눈을 질끈, 감는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는다.
너무 싫다.
내 목숨을, 운명을 개미 따위에게 맡겨야만 한다는게.
그녀기 그들의 손에 질질질 끌려서들어가는데, 일순 그녀의 오른팔을 붙들고 가던 개미가 제자리에 멈춰선다.
그리고는 피식, 웃으며 중얼거린다.
“……하, 이 새끼들 깜찍하네?”
“……나도그렇게 생각하던 참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