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화 〉13.블루팀 턴[탁란룡은 죽이고 와이번은 지켜라]
눈이 뻑뻑하다.
거친 숨을 몰아쉬고, 이를 까득 악문 채 붉은 투구를 만지작거리며 통증을 견뎌낸다.
“……”
벗을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벗어서 부숴버리고 싶지만 오직 녀석만이 그를 이 망할 투구로부터 자유로워지게 해줄 수 있다.
그 사이, 와이번이 드래곤 슬레이어들에게 수면 가루가 담겨져 있는 복주머니를준다.
“이걸 가지고 가서 녀석들에게 뿌리면 놈들이 잠들 것이다.”
이에 빌이 재빨리 와이번으로부터 그걸 낚아채다시피 받고, 이 모습을 보며 녹색 투구를 쓴 존이 말한다.
“빌. 신입한테 시켜보는 게 낫지 않아?”
“수면가루 보관하고 뿌리는 게 뭐 어렵다고 신입한테 시키고,말고를 따져? 이따가 힘줄 끊는 거나 시키면 되지.”
“아, 뭐…하기야.”
빌이 바지의 뒷주머니를 만지작거린다.
뒷주머니에는 우쿠케이 드래곤이 준, 인간들만 잠들게 하는 수면가루가 들어있는 복주머니가 있다.
있다가 그는 와이번이 준, 드래곤을 잠들게 하는 수면가루 대신 탁란룡이 준 인간들만 잠들게 하는 수면가루를 뿌릴 예정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입술을 잘근잘근 씹는다.
마른 침을 꿀-꺽, 삼킨다.
살려면 어쩔 수 없어.
그 누구라도 그랬을 거야.
그렇게 그들은 우쿠케이 드래곤들이 지내는 둥지로 향한다.
먼저 내려가는 건 다름 아닌 선배 드래곤 슬레이어들, 그 중에서도 빌이다.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못으로 고정되어 있는 와이어 로프에 매달린다.
어느새 손에는 땀이 흥건하다.
심장이 두방망이질 친다.
두근두근두근두근…
호흡이 가빠져온다.
입이 바짝바짝 마른다.
휘-이이이이이이이잉!
힘차고 강한 바람이 그가 얼마나 높이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눈을 질끈, 감는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연신심호흡을 한다.
이 와이어 로프는 몇 번이고 오르락 내리락 해봤지만 좀처럼 적응이 되질 않는단 말이지.
그가 한참 와이퍼 로프에 몸을 의지한 채 탁란룡의 둥지로 향하는데,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가 머리를 울린다.
-오고 있어?
“……!”
심장이 두방망이질 친다.
두근두근두근두근…
동공이 확장된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른다.
이를 까득, 악문다.
미간을 찌푸린다.
아직도 모르겠다. 녀석의 진짜 저의가 뭔지.
스파이가 필요한 게 아니라, 그냥 나를 갖고 노는게 재밌는게 아닐까?
다른 드래곤의 알과 자신의 알을 바꿔치는 그런 악한 본성으로 봐선…
충분히 합리적 의심이 든다.
그가 최대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전음한다.
-그, 그럼. 가고 있지.
-빨리 와. 보고 싶어.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이 나온다.
뭐? 보고 싶어? 지랄하고 자빠졌네.
그렇게 얼마나 내려갔을까.
어느새 우쿠케이 드래곤의, 탁란룡의 둥지에 도착한 상태.
이마에 흐르는땀을 닦는다.
휴우…시간도 얼마 안 흘렀는데 몇 년은 흐른 거 같…
그런데 아까 그 실력이 출중하던 신입이 당황한표정으로그와 존, 그리고 미셸을 번갈아가며 쳐다본다.
왜 저래?
그러나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다름 아닌, 그의 품에서 웬 드래곤의 유체,해츨링이 그의 손에서 꿈틀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
딱 보니 탁란룡의 새끼이다.
심장이 두방망이질 친다.
두근두근두근두근…
온몸이 경직된다.
호흡이 가빠져온다.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그들은 와이번 측 드래곤 슬레이어만큼 눈앞의 탁란룡의 새끼를 살려둘 이유가 없다.
그러나 탁란룡의 스파이인 빌만큼은 현재 신입이 가지고 있는 해츨링을 살려야만 하는 상황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죽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신입은 어떻게 저걸 갖고 있는 거지? 혹시…
나랑 같은 처지인가?
해츨링은 로터스에게 얼굴을 비비며 해츨링 특유의 키잉, 키잉 울음소리를 내고 있다.
드래곤들에게는 조류와 같이’각인 효과’가 있어서, 처음 보는 생명체를 부모로 인식하는 경향이 짙다. 그래서 아마 지금 저 해츨링 또한 신입을 부모로 여기고 있을 확률이 높다.
존이 미간을 찌푸리고, 신입을 매섭게 노려보며 묻는다.
“신입, 그 해츨링. 보아하니 우쿠케이 드래곤의 해츨링 같은데, 어떻게 갖고 있지?”
그러자 신입이 두 눈을 휘둥그래 뜨며 묻는다.
“어? 보통 해츨링 때는 우쿠케이 드래곤이랑 와이번이랑 구분 못하지 않나요?”
“이 사람아, 해츨링 때 우쿠케이 드래곤하고 와이번을 구별 못하면 드래곤 슬레이어를 어떻게 하나? 구분 못하는 건 드래곤들이나 구별 못하는 거지. 딴 소리 하지 말고 그 녀석, 어떻게 가지고 있냐고.”
“저 그게…아까 와이번의 둥지에 올라올 때 구해줬습니다.”
“흐음…”
거의 와이번이 부모나 마찬가지였던 존의 반응이야 안 봐도 뻔하다.
죽이자고 하겠지.
아니나 다를까, 존이 입을 연다.
“원칙대로 죽이자.”
“그러는 게 낫겠지?”
입술을 잘근잘근 씹는다.
마른 침을 꿀-꺽, 삼킨다.
아, 안 돼.
녀석을 죽였다간 나도 1+1으로 죽을 지도 모른다고!
분위기를 살피던, 특히 존의 눈치를 살피번빌이 힘겹게 입술을 뗀다.
“그, 그…냥 죽이지 말지.”
존의 눈썹이 꿈-틀, 거린다.
빌을 흘겨보며 그가 살벌하게 묻는다.
“뭐?”
이럴 떄일 수록 침착해야 한다.
“존, 내 말을 들어봐. 우리가 우쿠케이의 해츨링을 죽이는 이유가 뭐야?”
“갑자기 생뚱맞게 그게 무슨 소리야? 당연히 탁란룡의 성체가 되기 전에 싹을 제거하기 위해서지.”
“그러니까, 이 해츨링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탁란룡이 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 이 말야. 생각해봐. 드래곤의 해츨링들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드…아니지, 생명체들을 부모로 인식하잖아. 그러면 이제 이 녀석의 부모는 저 신입, 로터스일 텐데 그렇게 되면 이 녀석은 다른 와이번의 알을 깨뜨릴 일도 없고 탁란할 일도 없을 텐데 뭐하러 죽이냐 이 말이야.”
존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칼을 쓸어넘긴다.
비록 우쿠케이의 새끼를 살려둔다는 꺼림칙함은 있으나, 그의 논리에는 헛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신입이 입을 연다.
“……저도 사실 이 녀석을 키우고 싶긴 합…”
그러자 존이 굳은 얼굴근육으로 그를 흘겨보며 눈빛으로’신입은 닥치고 있어’라고 말한 후,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한다.
“어이, 빌 제임스. 본질을 잊지 마. 우리의 의무가 뭐야? 간단해. 와이번 드래곤의 명령에 따라 우쿠케이 드래곤을 죽이는 것. 근데 그걸 저버리겠다고?”
그의 말에 빌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뭔가 앞뒤가 안 맞는데?
와이번들은 모성애가 강하기로 유명한 드래곤이다. 만약 탁란룡이 새끼일 적에 탁란이란 행위만 하지 않는다면, 걸리지 않는다면…
나중에 자기 자식이 아닌 걸 알아챈다 하더라도 끝까지 자기 자식으로 품고 가는, 그런 작자들이 와이번이다. 그리고그 와이번의 모성애로 이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게 존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데지금존은 자신의 부모나 가족이나 다름 없는 와이번의 정신에 반하는 행동을 하려 한다.
“야, 야. 존. 뭔가 네 말이 앞뒤가 안 맞는다는 생각이 안 들어?”
“뭐라고?”
“그래, 네 말대로 와이번이 탁란룡을 죽이라고는 했어. 그런데 말야…와이번들은 그 어떤 용들보다 모성애가 강한 종족이잖아. 덕분에 네가 지금까지 살아있을 수 있는 거고.”
존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묻는다.
“본론만 말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자신과 전혀 다른 종족인 인간인 너를 키웠을 만큼 모성애가 강한 와이번이, 만약 탁란룡의 새끼란 이유만으로 저 해츨링을 부모 앞에서 죽이면 좋아라만 할까? 막말로 저 해츨링은 종족만 우쿠케이 드래곤이지, 탁란할 가능성도 전혀 없어. 인간 밑에서 자라니까.”
존이 이를 까드득, 갈더니, 이내입술을 씰룩인다.
아마 혼잣말로 육두문자를 뇌까리는 것 같다.
“……”
존은 한동안 해츨링을 빤-히 쳐다본다.
녀석을 빤히 쳐다보는 그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친부모를 잃고 와이번이라는, 전혀 다른 종의 품에서 자란 존.
친부모를 잃고 인간이라는 전혀다른 종의 품에서 자라날 탁란룡의 해츨링.
비록 종족은 정 반대인 상황이지만, 자신과 처지는 똑같은 아이.
아마 모르긴 몰라도, 녀석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있는게 아닐까 싶다.
“키잉…키잉…”
동공을 굴리며 분위기를, 공기의 흐름을 읽어본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고 해야할지, 세 명의 신입들은 모두 해츨링을 살리고 싶어하는 눈치다. 그리고 빌이 그렇게까지 설득했음에도, 존의 얼굴에는 고민의 기색이 역력하다.
미간을 찌푸린 채 마른 침을 꿀-꺽, 삼킨다.
속이 뭐가 얹힌 듯, 더부룩하다.
왜 빌이라고 탁란룡을 살리고 싶겠는가. 단지, 단지…
그저 살고 싶을 뿐이다.
그떄였다.
존이 깊이 한숨을 내쉬더니 몇 차례 헛기침을 한 후 쥐어짜내듯 말한다.
“……그럼, 다수결로 하지.”
빌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나쁘지않아.
신입들은 해츨링을 살리자고 할 확률이 높으니까.
“좋아. ”
“그래, 그렇게 해.”
그렇게 신입 세 명과 미셸, 빌이 살리자는 쪽에 손을 들어 5:1로 해츨링은 목숨을 부지하게 되었다.
아마 존은 원칙주의자라는 자존심과 체면을 구기기 싫었는지, 끝까지 살리지 말자 쪽에 섰다.
이야, 독하다. 독해.
그때였다.
머릿속에서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가 웅웅 울린다.
-달링, 다 왔어?
“……!”
심장이 두방망이질 친다.
두근두근두근두근…
동공이 확장된다.
입이 바짝바짝 마른다.
-거, 거의 다 왔어.
-그래? 그럼 나는 슬슬 나가있어야 겠넹. 놈들 데려오면 동굴로 유인해서 가루로 재우는 거, 잊지 마? 잊으면…
꽈-아아아아아악!
투구가 그의 머리를, 뇌를 조여온다.
-알지?
눈이 충혈된다.
이를 까득, 악물고 주먹을 꽉 쥔 채 고통을 감내한다.
-아, 알았으니까 그만 해!
그래, 살려면 어쩔 수 없어.
#3
심장이 두방망이질 친다.
두근두근두근두근…
입술을 잘근잘근 씹는다.
키잉, 키잉 우는 해츨링과 앞에 걸어가는 빌을 번갈아가며 쳐다본다.
빌이 스파이다. 분명해.
존과 미셸이 원칙대로 탁란룡의 해츨링을 죽이자고할 떄 오직 저 인간만이 이 아이를 살리자고 한 점.
아까 수면가루 정도는 나에게 맡겨도 됐을 텐데, 조급할 정도로 자신이 수면가루를 가지려고 한 점.
분명 수면가루가 들은 복주머니는 오른쪽 주머니에 넣었는데 뒷주머니에 또 하나의 복주머니가 삐죽 튀어나온 점.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멀쩡한데 빌만 유독 수시로 고통스러워하는 점까지 보면 틀림 없어. 빌이야. 저 인간이 스파이라고.
그렇다면 우선 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복주머니부터 빼앗는 게 우선이다. 저건 아마 탁란룡들이 빌에게 준, 인간들만 잠들게 하는 수면가루일 확률이 높으니까.
도중에 뒷주머니에서 오른쪽 주머니로 바꿨을 수도 있는데…
곤란하네.
얼마나 걸었을까.
드디어 그들은 탁란룡들이 둥지를 트고 사는 동굴에 도착했다.
“드디어 다 왔네.”
“오늘따라 왜 이렇게 먼 거 같냐.”
눈치를 보던 부용이 입을 연다.
“그런데 저어…빌 선배님.”
“……? 뭐야?”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복주머니를 두 개 받으셨나요? 하나를 받으신 거 같은데 두 개가 있으시네요.”
“……!”
빌의 표정은 말할 것도 없고, 존과 미셸의 표정이 굳는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드래곤 슬레이어들은 그때그때 와이번에게 수면가루를 받아 사용하면 가루가 부족한 날은 있어도, 남는 날은 절대 없으니 말이다.
존이 인상을 찌푸린 채 말한다.
“야, 두 개 다 꺼내봐.”
“……”
그가 망설이자, 뭔가 이상함을 눈치챘는지 존이 그를 추궁한다.
“뭐야? 뭐냐고?”
그러자 빌의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이내 손을 벌벌 떨며 뒷주머니에서 복주머니를 꺼낸다.
어느새 그의 눈시울은 붉어져 있다.
그의 울대가 출렁이고, 어느새 손은 벌벌 떠는 중이다.
그리고는 될 대로 되라는 듯, 복주머니를 개봉하고는 주머니에서 가루를 흩뿌린다.
아, 안 돼!
놈에게 달려드며 버럭, 소리를 지른다.
“다들 숨 참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