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화 〉12.레드팀 턴[사스쿼치와 이누이트의 시간]
일순 머릿속이 실타래 엉키듯 복잡해진다.
대체 왜지? 왜?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아직 확신할 단계는 아니다.
그러나 현재 눈앞에 놓인 정황들로만 봤을 떄는, 조각가가 유력한 용의자인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만약 내가 범인이라고 생각해 본다면…
그 타이밍에, 굳이 순록과 순록치기를 죽여야만 하는 이유가 뭘까.
눈쌀을찌푸린다.
침음을 흘린다.
“끄응…”
일단 지금 이누이트들이 사스쿼치들을 의심하고 있지.
설마 이누이트들로 하여금 사스쿼치가 죽였다고 인식하게끔 하려고?
어차피 사스쿼치와 이누이트는 적대적 관계인데 대체 왜?
어느새 클락업은해제되어
&&&&&&&&&&&&&&&&&&&
&&&&&& 클락업이 &&&&&&&
&&&&&& 해제됩니다 &&&&&&
&&&&& 쿨타임(1:29) &&&&&&
&&&&&&&&&&&&&&&&&&&&
라는 상태창이 뜬 상황.
미간을 찌푸린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는다.
뭔가 아귀가, 앞 뒤가 안 맞아.
사스쿼치가 범인이 아니라면, 분명 이누이트나 조각가, 그들 중에 범인이 있단 소린데.
그렇다고 그 순록치기가 순록 한 마리만 자살을 했다기엔 너무 부자연스럽고…
그때였다.
사스쿼치의 말과 에이든의 주장이 떠오른다.
‘이누이트, 먼저 우리 동족 죽이고 먹었다. 우리, 복수한다. 순록 모두 먹어서.’
‘진짜, 진짜 진실이라곤 1도 없군요. 끝까지 이눅슈크를 부쉈다는 말은 1도 없는 거 보면. 더구나 그 동족을 먹었단 소리도 틀렸습니다. 저희가 먹지도 않았으니까요.’
“……?”
심장이 두방망이질 친다.
두근두근두근두근…
온몸이 경직되고, 동공이 확장된다.
호흡이 가빠져온다.
일단 교차검증을 해서 팩트를나열해보면 이눅슈크가 부숴졌긴 부숴졌고, 사스쿼치가 죽긴 죽었다는 거 아냐.
그런데 서로 묘하게 주장이 엇갈리는 상황이고.
만약 둘 다 진실을 얘기하고 있다면, 단 하나의 가능성밖에 없어.
‘제3자의 개입’.
사스쿼치가 이눅슈크를 부수지도 않았고, 이누이트들이 사스쿼치를 죽이지도 않았다면 누군가가 사스쿼치를 대신하여 어떤 이유로 이눅슈크를 부쉈고, 이누이트들을 대신하여 사스쿼치를 죽여서 오해를 생기게 만들었다고 하면 모든 퍼즐이 맞춰져.
물론 너무 결과론적인 얘기긴 하지만.
그렇다면 설마 조각가가 사스쿼치를 죽이고, 이눅슈크를 부쉈고…
그걸 들킬까봐 사스쿼치에게 누명을 씌우기 위해 순록과 순록치기를 죽였나?
그런데 만약 조각가가 이눅슈크를 부쉈다면, 헷갈리는 게 가능한가? 사스쿼치와 사람을 헷갈리는게?
“흐음…어렵네.”
그는 잠시 이 사실을 에이든에게 말할까, 생각하다가 말았다.
일단 아직은, 아직은 이 사실을 이누이트들에게 알려선 안 된다. 이러나 저러나 우리의 미션은’조각가가 이눅슈크 조각상을만들 때까지 조각가를 지키는 것’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둘에게 얘기해보자.
“전음모드 온, 아힘사카.”
-이봐.
-……! 뭐여? 어디여?
-일단 사스쿼치, 어떻게 됐어?
-아직 그…족장 양반이 순록하고 순록치기를 사스쿼치들을 죽였다고 의심 중이여.
이를 까득, 악문다.
머리를 쓸어넘기며 한숨을 내쉰다.
이러면 일이 꼬이는데…
-일단 기다려. 내가 거기로 갈테니.
뽀드득, 뽀드득.
눈 밟는 소리는 여전히 기분이 좋다.
하지만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하다.
최대한, 최대한 객관적으로 방금 그 상황들을 복기해본다.
일단 한 가지 확실한점은, 사스쿼치만한 발자국은 없었다는 점.
이건 변함없는팩트다.
그리고 또 하나는 한 쌍의 발자국이 조각상으로 이어져 있었다는 것.
이것 또한 변함없는 팩트다. 그러나…
조각상으로 이어졌다고 해서, 무조건 조각가가 범인이라는 법은 없기에, 그 점만은 유의해야 한다.
그가 도착하자, 아힘사카의 말대로 이누이트들과 사스쿼치들은 아직도 대치 중이다.
“지, 진짜 아니다. 우리, 안 죽…”
“그래, 언제까지 너희들이 거짓말을 하나 보자고.”
이삭은 그런 그들을 뒤로 하고 아힘사카와 다루마를 향해 말한다.
“잠깐 따라와봐.”
“……? 뭐여?”
“왜 그래요? 여기서 도와야죠.”
“중요하게 해야할 말이 있어서 그러니까, 따라오라고!”
둘은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그의 뒤를 따라온다.
그는 몇 번이고 주위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는 입을 연다.
“놀라지 말고 들어.”
“뭐예요? 대체?”
“무신 중요한 얘기길래 이렇게까지…”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입을 연다.
“방금 죽은 순록하고 순록치기 말야. 아무래도 조각가가 죽인 거 같아.”
그러자 다루마와 아힘사카의 두 눈이 휘둥그래진다.
“뭐, 뭐여?”
“그, 그게 무슨…?”
“일단 가보니까 순록하고 순록치기가 죽어있었어.발자국이 세 종류가 있었는데…아무리 찾아봐도 사스쿼치의 발처럼 큰 발자국은 없었어. 확실히 사스쿼치들의 소행은 아냐.”
“그럼 셋 중 하나가 조각가의 발자국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순록치기의 시체근처에 있는 발자국이 조각상으로 이어져 있었어. 그래서 조각가가 아닐까, 의심이 가는 거지.”
그러자 다루마가 잠시 생각하는 눈치더니 입을 연다.
“일단 확실하진 않은 거잖아요?”
“조각가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사스쿼치가 아니란 것만큼은 내가 확신할 수 있어.”
이에 아힘사카가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다.
“흐음…근디 이걸 밝혀봤자 좋을 게 있남?”
“뭐?”
“생각해보쇼잉. 우리 미션 상대가, 경호상대가 누구여? 조각가 양반이잖여. 근디 이걸 밝혀봤자 좋을게 뭐가 있냐, 이거여.”
맞는 말이다. 우리로써는 그냥 조각가가 이눅슈크를 완성할 떄까지 그를 지켜주기만 하면 된다.
이 이상 일을 키울 필요가 전혀 없다는 소리.
잠시 정적이 흐른다.
불편한 송곳같은 정적이.
서로의 눈치만을 살핀다.
이런 상황이면 어떻게 하는 게 가장 현명한 판단이고, 처사일까.
미간을 찌푸린다.
턱 밑을 문질거린다.
숨기자니 양심에 찔리고, 그렇다고 말해버리자니 미션에 차질이 생기는데…
그때였다.
이 불편한 정적을 깬 사람은 다름 아닌 다루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조각가가 순록치기하고 순록을 죽일 이유가…”
“그거, 생각해봤는데. 하나의 전제만 깔면 모든게 맞아떨어져.”
“어, 어떤…?”
“이때까지 사스쿼치 쪽 주장하고 이누이트 쪽 주장하고 묘하게 엇갈렸던 거, 기억하지?”
“아, 당연하제.”
“그, 그렇죠. 근데 그게 왜…?”
“만약 조각가가 사스쿼치를 죽이고, 이눅슈크를 부쉈다면 주장이 엇갈리는 게 말이 돼. 끼워맞춰봐.”
“아니, 이눅슈크를 그 인간이 부술 이유가 뭐가 있는디?”
“나도 지금 그게 의문이야. 만약 조각가가 범인이 맞다면…대체 왜 그걸 부순 거지?”
#5
그녀의 심장이 미친듯 요동친다.
두근두근두근두근…
호흡이 가빠져온다.
입이 바짝바짝 마른다.
아무래도 이거, 가스라이팅 같은데.
동상을 지어서 태양이라는 당근을 준다고 인식하게 한 후, 극야에 맞춰서 동상을 일부러 부숴지게, 사스쿼치가 부순 것처럼만 꾸미면…
완전한 가스라이팅이야. 사람들은 동상의 유무로 해가 뜨고,안 뜨고를 판단할 테니까.
미간을 찌푸린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는다.
그런데 이러려면 전제가 하나 깔리는데.
동상이 만들어지는 시기와 극야의 시기가 전혀 상관이 없어야해.
“여기, 확실히 조각상을 만들면 극야가 끝나는 거 맞아요?”
“아직 그것까지는모르겠는데…왜?”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가 보기에는…가스라이팅 같아서요.”
“……?”
“뭐, 뭐여?”
“그러니까 한 마디로 동상을 통해 이누이트들의 심리를 조종하려 든다, 이거죠.”
“좀 자세히 말해 봐. 구체적으로.”
“보아하니 이눅슈크인지 뭔지 저 조각상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저 조각가밖에 없단 말이죠. 그리고 얼핏얼핏 대화를 들어보니한 두번 제작해본 것도 아닌 거 같고, 겸사겸사 이누이트들의 보호도 받고 있는 것 같고요. 그런데 만약 동상과 극야가 무관하다는 사실을 조각가는 알고 있는데, 이누이트들은 그걸 모르고 조각가를 맹신 중이라면…어떻게든 그 믿음을 유지하게끔 하려고 하지 않을까요?”
“흐음…일리가 있군.”
“일리가 있구마.”
“그러니까 일단 에이든, 그 족장만 데려와서 얘기해보죠. 우리가 말한다 한들 믿을지, 안 믿을지도 몰라요. 막말로 외지인의 말을 믿겠어요, 아니면 같이 지냈던 사람의 말을 더 신뢰하겠어요?”
“그런데…가서 얘기하는게 아니라 데려오자고?”
“그 전장 한복판에서 정상적인 대화가 되겠어요? 한쪽에서 대화를 하던가 해야지.”
“아, 그럼 나 혼자 다녀오면 되지. 뭐하러 다 가냐?”
그 말을 끝으로 이삭은 시야에서 멀어진다.
이삭의 뒤통수를 빠-안히 응시하며 가위를 꽉, 쥔다.
이를 까득, 악문다.
수현이만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찔러 죽이고 싶은 인간 중 하나지만…
아직은, 아직은 떄가 아니다.
아힘사카와 다루마 사이에서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
“……”
힐끗, 힐끗 곁눈질로 아힘사카를 쳐다본다.
이 양반은 알다가도 모르겠네. 지난 번에 조금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때였다.
에이든이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이삭의 손에 이끌려 마지못해 이쪽으로 오는게 보인다.
“아, 아니! 대체 무슨 할 얘기가 있다고!”
“잠깐이면 되니까…”
“대체 뭡니까?”
그들이 전후사정을 얘기한 후 아마 조각가가 이눅슈크를 부순 범인이며, 순록과 순록치기를 죽인 범인 또한 그 같다고 말한다.
그러자 그가 일순 인상을 찌푸리더니 피식, 웃으며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뭐, 뭐요?”
역시, 안 믿나?
그가 한동안 어처구니 없다는 듯 셋을 빤-히 쳐다보더니 입을 연다.
“증거는 있으셔서 말씀하시는 거죠? 발자국, 그딴 개소리 말구요.”
“아, 아…그게…”
제길…!
물증까지 잡고 말했어야 하는 건데!
“저희가 목숨도 살려드렸는데, 이렇게 나오시면 섭섭하군요. 그분은 어디까지나 저희에게 태양을 찾아주실 분인데…대체 어떤 이유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저는 그럼 이만.”
그는 그 말을 끝으로 그들의 시야에서 멀어진다.
이를 보며 혜정은 더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이들은 지금 길들여지고 있는 거야, 그 조각가 한 명한테.
#6
망치질을 하는 강마루의 한쪽 입꼬리가 씰룩인다.
아까 보아하니 외지인분께서 어줍짠께 추리를 하시는 거 같던데…
어림도 없지.
이제 한쪽 다리만 조각하면 완성이라고.
시간을 보니 이눅슈크를 완성하고 조금 뒤에 극야가 걷힐 듯싶다.
오케이, 좋아. 좋아. 어쨌든 동상이만들어짐으로써 해가 뜬다고 인식될 테니까.
그렇게 그가 깡-깡-망치질을 할 때였다.
“어, 어! 저…저기 좀 봐요!”
“어? 태양이다!”
“사스쿼치와 이누이트의 시간이 끝났다!”
“……?!”
뭐, 뭐라고?
심장이 미친듯 요동친다.
두근두근두근두근…
온몸이 경직된다.
호흡이 거칠어진다.
그가 고개를 치켜들어보니, 정말이었다.
태양이 서서히, 서서히 빼꼼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동공이 확장되고, 두 눈이 뻑뻑해진다.
대, 대체 이게 무슨…? 이러면 들킬 수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