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12.레드팀 턴[사스쿼치와 이누이트의 시간]
심장이 두방망이질 친다.
두근두근두근두근…
살았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경직된 근육이 이완된다.
여전히 얼굴과 손 등등은 강추위로 인해 감각이 없다.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얼음 속 개미지옥을 쳐다본다.
털이 다 벗겨진 사스쿼치의 사체가 그를 배웅한다.
하마터면 저 사스쿼치랑 같은 신세가 될 뻔 했군.
그가 공포란 가면을 쓴 채 억지 웃음을 띄우며 그를 꺼내준 사스쿼치에게 말한다.
“고, 고맙다.”
“아니다, 인간. 원래 인간, 이누이트 빼고는 착하다.”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이누이트’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느껴진다.
아까 이누이트들이 자신의 동족을 먼저 죽이고 먹었다고 했지.
대충 짐작해보면 아마 이누이트들이 사스쿼치들을 식량 삼아 먹은 거 같은데…
녀석이 순록을 들쳐업으며 말한다.
“인간, 갈 곳 없으면 따라와라. 이거, 같이 먹자.”
따, 따라오라고?
마른 침을 꿀-꺽, 삼킨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동공을 굴린다.
따라가서는 안 된다. 도망쳐야 한다고. 이 녀석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어.
녀석이 아직은 내게 적의가 없다 한들, 언제 태세 전환을 할 지 모르니까.
그런데 이 인간들, 진짜 왜 이렇게 안 와? 찾을 생각이 없는 건…
그때였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저 멀리서 두 명의 익숙한 얼굴들과 낯선 얼굴이 달려온다.
“저, 저깄…헙!”
“아, 저기였구마! 어, 어!”
“괘, 괜찮으십니까?”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빨리도 오네, 진짜…
일순 이누이트의 표정이 굳더니 소리를 버럭, 지른다.
“거기서 뭐하십니까! 어서 피하십시오!”
“이누이트, 나쁘다. 이누이트 친구도 나쁘다. 너, 이누이트 친구냐?”
“……?!”
심장이 두방망이질 친다.
두근두근두근두근…
동공이 확장된다.
온몸이 경직되고,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른다.
이 무슨 개같은 삼단 논법이야?
그를 구하기 위해 온 다루마와 아힘사카는 예상치 못한 광경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중이고, 이누이트 또한 당황해하는 눈치다.
그가 작살을 꽈-악, 붙잡은 채 소리를 지른다.
“사스쿼치, 애 먼 사람 잡지 말고 나랑 붙자!”
그러나 녀석은 이누이트의 말은 무시한 채 안광을 번뜩이며 대답을 재촉한다.
“대답해라, 인간. 이누이트 친구냐?”
짱구를 굴려본다.
뭐가 가장 현명한 판단일까.
상태창을 떠올리며미션의 내용을 복기해본다.
&&&&&&&&&&&&&&&&&&&&&&&&&&
&&&&&&& 水계 걸칸 3인 미션 &&&&&&&&
&& 조각가가 이누이트의 힘, 이눅슈크를 &&&
&&& 복구할 때까지 사스쿼치들로부터 &&&&
&&&&&&&&& 그를 지켜라 &&&&&&&&&&
&& 난이도:[어려움] 보상:[복주머니 3개] &&&
&&&&&&&&&&&&&&&&&&&&&&&&&&
주먹을 꽈-악, 쥔다.
이를 까득 악문다.
그래. 나의 본분은, 아니 우리의 본분은…
이눅슈크인지 뭔지를 만드는 조각가를 지키는 것이다.
괜히 다른 생각 하지 말고, 더 깊게 파고들 생각 하지 말고…
무조건 이눅슈크인지 뭔지를 지킬 생각만 하자.
그가 아힘사카와 다루마를 보며 사스쿼치를 고갯짓으로 가리킨 뒤 입모양으로 말한다.
‘죽이자’
그러자 그들은 한 차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런데 뭔가 무기가 좀 있었으면 좋겠…
그때였다.
이누이트가 이삭을 향해 자신의 작살을 던진다.
“……!”
“그걸 쓰십시오.”
아마 여분의 작살을 준 것 같다.
그가 이누이트를 향해 엄지를 치켜든 후, 토템을 박는다.
사스쿼치는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감을 느꼈는지 주춤, 주춤 뒷걸음질 친다.
그리고는 이삭을 노려보며 말한다.
“인간, 믿었는데 나쁘다. 은혜도 모른다. 인간.”
“……”
눈썹이 꿈틀, 거린다.
작살을 꽉, 쥔다.
물에서 구해주면, 은인에게 보은은 커녕 보따리를 내놓으라고 하며 아득바득, 꾸역꾸역 살아왔다.
일평생을 인두껍 대신 쇳가죽을 쓰고 후안무치, 파렴치한 소리를 들으면서도 악착같이 살아왔다.
그런데 일개 몬스터’따위’가, 몇 분 본 지도 안 된 몬스터 따위가 나 이삭에게 은혜를 운운해?
어느새 다루마와 아힘사카도 토템을 박은 상황.
그가 나지막이 중얼거린다.
“옥클레이 어페이.”
&&&&&&&&&&&&&&&&&&&&&
&&&&&&&& 클락 업 &&&&&&&&
&&&& 15초간 시간 감각이 &&&&&
&&&&&&& 느려집니다 &&&&&&&
&&&&&&&&& 00:14 &&&&&&&&
&&&&&&&&&&&&&&&&&&&&&&
그와 동시에 시간 감각이 느려지고, 이삭이 눈을 질끈, 감는다.
깊게 숨을 내쉬면서 자신을살려준 은인인 사스쿼치를 작살로 찌른다.
사스쿼치가 아니었더라도 다루마가, 아힘사카가 도착하여 자신을 살려주었을 거라는 자기합리화를 하며.
푹! 푹! 푸욱! 푹! 푸-욱! 푹! 푹!
&&&&&&&&&&&&&&&&&&&&&&&&&&
&&&&&&&&&&&&&&&& hp -59 &&&&&
&&&&&&&&&&&&&&& hp -59 &&&&&&
&&&&&&&&&&&&&& Hp -118 &&&&&&
&&&&&&&&&&&&& Hp -118 &&&&&&&
&&&&&&&&&&&& 빗나감! &&&&&&&&&
&&&&&&&&&&& hp -59 &&&&&&&&&&
&&&&&&&&&& hp -59 &&&&&&&&&&&
&&&&&&&&& HP:00/450 &&&&&&&&&
&&&&&& 사스쿼치(水) 등급:C &&&&&&&
&&&&&&&&& 공격력:130 &&&&&&&&&
&&&&&&&&& 방어력:15% &&&&&&&&&
&&&&&&&&& 속성:빙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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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혈이 느릿하게 허공으로 흩뿌려진다.
미세하게 사스쿼치의 표정이 바뀐다.
그리고 15초가 흘러, 사스쿼치가 쓰러진다.
쿠-웅!
이누이트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쓰러진 사스쿼치와 그를 번갈아가며 쳐다본다.
“뭐, 뭐하시는 분이십니까? 혹시 전문 사냥꾼…?”
“무슨 전문 사냥꾼이야, 전문 사냥꾼은. 괜히 비행기 태우지 말고, 어서 가자고.”
이누이트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묻는다.
“저, 어디 안 좋거나 하지는 않습니까? 크레바스에 오래 갇혀있다보면 저체온…”
그는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한다.
“괜찮아.”
이누이트가 뜻밖의 횡재에 입꼬리를 씰룩이고는 순록을 어깨에 들쳐매며 말한다.
“아, 하기야 환자의 몸놀림은 아니시던데 괜한 걱정이었나보군요. 그래도 혹시라는 게 있으니, 도착하기 전까지 제 장갑이라도 차고 가십시오.”
“……고맙군. 사양않고 잠시 빌리지.”
이누이트를 필두로 뽀드득, 빠드득 눈을 밟으며 걷고, 또 걷는다.
장갑을 껴서 그런지 아주 서서히, 서서히 감각이 돌아온다. 하지만…
얼굴에는 여전히 감각이 전무하다.
가는 내내 이삭의 머릿속에서 사스쿼치의 한 마디가 맴돈다.
‘이누이트, 먼저 우리 동족 죽이고 먹었다. 우리, 복수한다. 순록 모두 먹어서.’
보은을 하기 위해서도, 은혜를 갚기 위해서도 아니다. 단지…
순수한 호기심일 뿐이다.
고개를 갸웃거린다.
미간을 찌푸린다.
그러니까 적어도 사스쿼치들은 이누이트들이 자신들을 먼저 선빵치고 먹었기 때문에 이누이트들에게 반격한다, 이 논리 아냐?
그가 힐끗, 곁눈질로 순록을 들쳐맨 이누이트를 쳐다본다.
물어볼까? 물어본다고 진실을 알려줄까?
어느새 걷다보니 아마 이눅슈크로 추정되는 조각상에 다다라있다. 조각상에는 조각가가 조각상을 열심히 복구 중이다.
부서져 있는 이눅슈크. 그리고 다시 한 번 떠오르는 사스쿼치의 한 마디.
‘이누이트, 먼저 우리 동족 죽이고 먹었다. 우리, 복수한다. 순록 모두 먹어서.’
“……?”
뭐지?
녀석은 이눅슈크를 부쉈다는 소리를 한 적이 없는데?
물론 범죄자 치고는 자신의 치부를 자백하는 녀석 또한 드물기는 하다만…
이삭이 묻는다.
“이 조각상, 사스쿼치가 부순 거 맞습니까?”
그러자 그들과 함께 온 이누이트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답한다.
“그럼 누가 그랬겠습니까. 순록이 그랬겠습니까? 아니면 저희요? 저걸 부수면 이렇게 계속 밤이 지속되는데?”
“……?!”
일순 머리가 혼란스럽다.
이건 무슨 개소리야? 저걸 부순다고 밤이 지속된다니?
이건 그냥 극야 현상 아냐? 설정상 그런 건가?
이에 세혁이 둘에게 다가와 묻는다.
“무슨 일이여?”
“……”
그래, 이누이트들에게는 직접 말할 수는 없어도…
둘에게는 얘기해도 되겠지.
그가 아힘사카를 다루마가 있는 장소로 데려가 사스쿼치에게 들은 얘기를 꺼내자 둘의 표정이 굳어진다.
“지, 진짜여?”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사실은 이누이트가 먼저 사스쿼치를 공격한 거라니?”
“나도 모르겠어. 그런데…말 안하기에는 조금 찝찝해서. 그리고.”
“그, 그리고 또?”
“지금 이곳 설정상 진짜그런건지, 아니면 이누이트들만 미신으로 믿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는데…지금 이누이트들은 아무래도 저 조각상이 무너져서 극야현상이 시작되었다고 믿고 있는 것 같아.”
이 얘기를 들은 둘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
“하아…지랄하고 자빠졌어요, 진짜. 지난 번 야테베오인지부터…”
다루마가 잠시 생각을 하더니, 입을 연다.
“자, 잠깐만. 지금 양쪽 주장이 충돌을 하는데.”
“그라제. 이누이트 쪽에서는 사스쿼치가 먼저 조각상을부숴서 사스쿼치를 죽였다고 하고 있고, 사스쿼치들은 이짝이 먼저 자신들을 공격하고 먹어서 순록을 사냥하기로 했다는 건디…그럼…?”
“사스쿼치가 이눅슈크를 부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했던가, 사스쿼치가정말 이눅슈크를 부수지 않았던가 둘 중 하나네.”
이렇게 되면…제3자가 껴있을 가능성이 있단 소린데…?
미간을 찌푸린다.
이를 까득, 악문다.
머리를 쓸어넘기며 한숨을 내쉰다.
하아, 괜히 얘기를 꺼냈나, 싶네.
그냥 조용히 미션만 깨다가 갈 걸.
잠시 생각을 하던 아힘사카가 입을 연다.
“혹시, 이런 거 아녀?”
“어떤…?”
“아까 우리 쫓아왔던 녀석 있잖여.”
“그 사스…”
“아녔어. 순록이였단 말여.”
“……!”
“그러니께…저 이누이트들도 순록이 부순 걸 사스쿼치가 부순 걸로 착각한 거 아니냐, 이 말이여.”
순백의 순록을 응시한다.
밤이라면 순록을 사스쿼치로착각하는 건 어느정도 가능할 거 같은데…고작 순록의 뿔로 저 거대하고 단단한 조각상을 부수는 게 가능할까?
불가능할 거같은데…
그러거나 말거나 조각가는 말없이 이눅슈크를 만드는 데에 여념이 없다.
#3
심장이 두방망이질 친다.
두근두근두근두근…
호흡이 가빠져온다.
팔이 욱씬거린다.
시작은 우연이었다.
단지 내가 우연치 않게 이누이트들이 극야에 지쳐있을 때북극에 와서 그 현상이 끝날 즈음에 이눅슈크란 조각상을 만들어줬을 뿐이다.
그런데 이 인간들이 나를 거의 신 모시듯 하는게 아닌가?
아, 이거 잘하면 뱀의 머리가 될 수 있겠구나.
그 이후로 나는 일부러 이눅슈크를 부실하게 만들었다.
부수기 쉽게끔 말이다.
그렇게 나는 극야가 시작될 쯤이면 사스쿼치를 죽인 후 놈의 털을 뒤집어쓴 채 조각상을 부수고, 극야가 끝날 즈음에 이눅슈크를 만들어주었고 그 누구도 나를 의심하는 이는, 의심할 수 있는 아무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왜? 사스쿼치에 의해 이눅슈크가 부숴지면 어둠이 찾아오고, 내 손에 의해 이눅슈크가 만들어지면 해가 뜨니 그럴 수밖에.
망치로 정을 깡! 내리치며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혀로 입술을 쓰읍, 핥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