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5.블루팀 턴[水계 반지를 위하여]~맹공 합류~
맹공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다.
“악귀나찰이 뭐냐? 입니다.”
“한 마디로 악귀를 먹는 악귀예요.”
악귀와 악귀나찰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한을 품은 대상이, 과녁이 다르다는 점이다.
악귀는 원귀일 적에 한풀이 대상이 인간이거나 세상인 경우가 보통이다.
그에 반해 악귀나찰은 인간일 적 악귀가 되기 전의 원귀에게 지인을 잃는 등의 전적이 있어 한풀이 대상이 악귀다.
그리고 이제부터 부용과 맷은 살인귀를 살리기 위해 해치와 함께 피해자를, 피해자의 보복을 막아야 한다.
“……”
역시 눈 먼 요괴다운 판결이군.
해치는 본래 눈 먼 요괴다.
법을 집행하는 요괴인 해치도 그렇고 서양의 법을 천칭질, 즉 저울질하는 유스티티아도 그렇고 법 관련한 상징물들은 죄다 눈이 멀어있다.
법을 집행할 때는 그저 편견없이 판단하고 집행해야 한다는 건지, 아니면 법도 현실 앞에서는 그저 눈 먼 장님에 불과하다는 건지.
아마 고대에 만들어질 떄는 전자를 지향하여 만들었겠지만, 지금 대중이 느끼는 해치의 장님 설정은, 유스티티아의 눈 가림막은…
후자이리라.
어쨌든 지금은 눈 먼 법치의, 해치의 길라잡이가 되어여덟 명의 악귀들 중 악귀나찰 두 명을 색출한 후, 그들의 손으로 단죄해야 한다.
물론 마음 같아서는 그깟 악귀들좀 죽어서 어떻냐,싶지만 엄연히 이 노틸러스호 내부에서 윤회를 기다리며 인…아니, 귀생을 썩히고 있는 악귀를 죽이는 건 이중 처벌이기도 하거니와 미션을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이제 해치는 부용이나 맹공이 들이받으라는 수감자를 들이받을 텐데 만약 그 수감자가 악귀나찰이 아닐 경우 미션은 실패한다.
부용이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린다.
아이템이 있으면 좋겠는데. 그러면 감시자가 한 명 더 늘어나는 셈이 되니.
파일철 속 문서에 악귀들의 죄명과 죄를 저지른 동기 등이 써있다면 매우 편했겠으나, 안타깝게도 그건 부용과 맷이 추측해야하는 영역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 만약 그런게 기록되어 있다면 파일철만 악귀나찰이 얻으면 대학살이 벌어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부용이 파일철의 종이들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며 생각에 잠긴다.
우선 이 문서들에서 같은 악귀에게 원한을 품을만한 악귀들을 추린다.
그때 맹공이 말한다.
“나도 같이 보자, 입니다.”
“아, 그러죠.”
첫장을 넘기니 두 장의 사진이 나온다.
한 장은 화상자국이 진한 학생의 영정사진, 다른 한 장은…
옥상에서 투신자살 직후 학생의 사진이다.
그의 심장이 두방망이질 친다.
두근두근두근두근…
이맛살을 찌푸린다.
호흡이 거칠어진다.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입이 바짝바짝 마른다.
마른침을 꿀꺽, 삼킨다.
너무나 지리멸렬한, 선명한 현장 사진에…
욕지기와 함께 구역지기가 올라온다.
“씨, 씨발…”
생각을 해보자.
아마 화상자국으로 따돌림 당했나본데 왕따로 인해 자살했으면…
굉장히 원한이 많을 거야.
그런데 이런 사람이 원귀도 아닌 악귀라는 건 어떤 인간이든, 귀신이든간에 살생행위를 하고 여기에 왔다는 건데…
왕따 가해자를 죽인 후 여기 왔다고 추측하는게 맞지 않을까?
아냐, 아냐. 또 모르잖아. 어떠한 모종의 가능성이 베일 뒤에서 기다리고 있을지.
어디, 맹공씨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쭤볼…
응? 이 양반 왜 이래?
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있다.
“……? 맹공씨?”
“……”
“깜짝 놀랐잖아요. 시체 사진 때문에 그래요?”
“그렇다, 입니다.”
“맹공씨는 어떻게 생각해요? 이 학생.”
“뭐가? 입니다.”
“중요한 거 같냐, 이거죠.”
“……중요할 거 같다, 입니다.”
“오케이, 그럼 일단 중요표시.”
스륵, 또 한 장 넘기니 이번에도 사진 두 장이 나온다.
얼굴에 있는 혹이 매우 인상적인 남성의 영정 사진과 남성이 발견된 날의 현장 사진.
현장 사진을 보아하니, 고독사를 한 후 얼마 있지 않아 발견된 듯 하다.
[제갈윤수]
[나이:42 사인:고독사]
[2번 수감실]
[화재로 인해 온가족이 죽어서 홀로 살다가 간접적으로 자살을 택함]
[윤회까지 남은 년도:422년]
역시, 혹 때문에 홀로 사셨을 거라는 추측은 편견이었어.
그나저나 집에…화재가 났다?
원귀의 짓인가?
아니, 원귀가 이 남성에게 무슨 원한을 지녔기에?
그럼 어떤 미친 방화범의 방화인가?
아니면 운이 안 좋았을 뿐인가?
“맹공씨는 어떻게 생각해요?”
“……안 중요할 거 같다, 입니다.”
이 양반은 대체 판단 기준이 뭐야?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그냥 느낌이 말해준다, 입니다.”
“하아…”
일단[보류].
스륵, 다음 장을 넘기니 이번에는…
만두귀가 상당히 인상적인, 김원태란 남성의 영정 사진과 현장 사진이 나타난다.
현장 사진 속 남정은 새벽녘 길가에서 황망히 피를 흘린 채 죽어있다.
와, 이러다간 다 중요표시를 하겠는데.
과연 원귀가 퍽치기를 했을까? 그것보단 묻지마 살인이 더 가능성 있어 보이는데.
그리고 무엇보다 스물 다섯살 짜리대학 새내기한테 원귀가 원한 품을 일이 뭐가 있겠…
아, 군대가 있구나.
만두귀를 보아하니 한 성질 하셨을 거 같은데 말이지.
“맹공씨는 어떻게 생…”
이 양반 또 이러네.
그가 눈을 질끈, 감는다.
그의 안색은 창백하다.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주먹을 불끈, 쥔다.
“맹공씨? 맹공씨!”
“……아, 미안하다 입니다. 괜찮다, 입니다.”
뭐 시체 사진 보고 멀쩡한 게 더 이상한 거지만.
“맹공씨는 어떻게 생각해요? 이 양반.”
“……중요하다, 입니다.”
부용이 게슴츠레 눈을 뜨고는 맹공을 빤히 쳐다본다.
본인 상태가 이상할 때만 중요하다고 말하네.
판단력이 흐려지나?
스륵, 또 한 장 넘긴다.
이번에는 매부리코에 뿔테 안경을 끼고 있는, 전형적인 모범생 스타일학생의 영정사진이 나온다.
이맛살을 찌푸린다.
벌써 학생만 두 명째다.
어차피 정해진 결말인데, 죽음인데 대체 왜 그렇게들 결말을 앞당기려 하는지…
현장 사진은 아까 그 학생과는 다르게 목을 매 자살한 듯 하다.
부용이 힐끗, 곁눈질로 맹공을 쳐다본다.
이번엔 또 멀쩡하네?
“맹공씨, 어때보여요?”
“……별로 안 중요하다, 입니다.”
역시나 이 양반은 그냥 그로테스크한 것만 보면 중요하다고 하는 양반이었어.
스륵, 다음장을 넘긴다.
이번에 나타나는 이는 웬 흉터를 가진, 짝눈의 남성이다.
[정호석]
[나이:29 사인:자살]
[1번 수감실]
[범죄자로 누명을 써 자살]
[윤회까지 남은 년도:197년]
서른 넷에 범죄자의 누명을 써서 자살을 했다라…
과녁이 너무 많은데.
일단 1차적으로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사람들을 과녁삼아 화살을 겨눌 수 있겠고, 2차적으로는 자신을 믿지 않은 사람들, 3차적으로는 방관자들까지…
부용은 맹공의 멀쩡한 얼굴을 보고는 그에게 의견을 물어보려다가 만다.
돌아올 답이 안 봐도 비디오였기에.
흐음, 일단 보류.
스륵, 다음장을 넘기니 처음으로 여성의 사진이 나온다.
[강현지]
[나이:23 사인:과다출혈]
[3번 수감실]
[봉사를 하다가 피봉사자가 찌른 칼에 의해 사망]
[윤회까지 남은 년도:683년]
“……?”
몇 번이고 두 눈을 비벼본다.
아무리 인성이 파탄났기로서니, 도움을 받는 입장에서 도움 주는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긴 못할 망정…그 사람을 죽였다고?
이 여자는 인간 혐오가 안 생길래야 안 생길 수가 없겠는데?
“맹공씨, 이 여성분은 어때요? 제가 생각할 때는 거의 악귀 확정같은…”
“……”
그의 얼굴 근육이 경직되어 있다.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다 못해 갈라져있다.
“……맞다, 입니다. 제 생각에도 악귀일 거 같다, 입니다.”
그가 혀를 내두르며 펜으로[악귀 거의확정]이라고 적는다.
스륵, 한 장을 넘기니 이번에는…
코 옆에 있는 큰 점이 인상적인 남성 사진이 나온다.
[공태혁]
[나이:38 사인:자살]
[1수감실]
[내부고발하고 조직에서 쫓겨나 자살]
[윤회까지 남은 년도:349년]
아, 이 양반은 또 내부고발이야?
내부고발이라…
그가 손가락으로 턱을 문질거리며 침음을 흘린다.
“흐음…”
내부고발로 퇴사를 당해서 자살했다?
이럴 경우 아까 장호석, 그 양반마냥 겨눌 수 있는 과녁이 너무 많아.
이 공태혁이란 사람이 이성적이고 상식적이란 가정 하에, 내부고발을 하면 직장에서 잘릴 각오는 했을 가능성이 높아. 그런데 그것 가지고 자살?
뭔가 아귀가 안 맞아. 퇴사는 자살의 결정적인 역할이 아니었을 확률이 높아.
오히려 자신을 자른 회사의 간부가 아닌, 애먼 곳으로 과녁을 돌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기껏 작심해서 내부고발하고 조직에서 나왔더니 친구나 직장 동료가 멍청하다고 손가락질 했다던지, 아니면…
와이프나 자식이 있다면 그들이 그를 비하했다던지…
하여튼 가능성이 너무나 많아.
일단[보류]
스륵, 다음 장으로 넘기니 이번이 마지막 장이다.
강범수. 보험금을 노린 아내에게 패륜범죄를 당해 사망.
이야, 마지막장이라 그런지…
좀 세네?
악귀가 원체 원귀의 각성 버전이니 다들 불우한 사정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거라는 건 예상 내의 영역이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보험금 때문에 아내에게 죽었다면 아내에게 배신감이 장난 아니었을 거야.
그렇다면 악귀가 될 개연성이, 인간에게 원한을 살 개연성이 충분해.
맹공이 먼저 입을 연다.
“악귀가 맞을 거 같다, 입니다.”
“저도 그럴 거 같네요.”
부용이 다시금 파일철 속 문서들을 쭉 훑어보며 중얼거린다.
와, 절반이 자살이네. 자살률 1위 국가답…
아, 지금 보니까 사인에 따라 수감실이 나뉘어져 있나보네?
자살인 사람들은 전부 1번 수감실에 네 명, 2번 수감실 고독사에 한 명, 3번 수감실 과다출혈에 두 명, 4번 수감실 질식사에 한 명.
총 여덟 명.
맹공씨랑 4명씩 나뉘어서 자세한 사정을 들어봐야겠다.
부용이 파일철 속 사람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말한다.
“맹공씨.”
“왜 그러나? 입니다.”
“이제부터가 진짜예요. 이 악귀들 중 두 명이 악귀나찰이거든요.”
“……!”
“그러니까 우리가 두 팀으로 나뉘어서 감시할 사람 네 명을 골라서 감시합시다. 한 명이 여덟 명 전부를 감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알았다, 입니다. 그런데 내가 감시할 사람 골라도 되냐, 입니다.”
“예?직접 만나보지도 않고요?”
“그렇다, 입니다.”
그러자 부용이 파일철 속 종이들을 스륵, 스륵 넘기며 그에게 묻는다.
“그보다는 맹공씨나 저 둘 중에 한 명은 1수감실을 맡는 편이 더 낫지 않겠어요?”
“그게 무슨 말이냐? 입니다.”
“아직까진 제 추측이지만 아무래도 사인마다 수감실이 다른 거 같거든요. 자살자들이 1수감실인데, 여덟 명의 악귀 중 네 명이 1수감실 수감자더라고요. 그래서 굳이 다른 수감실을 왔다갔다 하느니…”
“아, 아…”
그런데 맹공의 표정이 영 탐탁잖은 표정이다. 이에 부용이 키득거리며 장난스런 말투로 말한다.
“흐음…설마 아까 그 공포스런 원귀들은 피하고 싶어서요?”
그러자 맹공이 곤란한 표정으로 얼굴을 긁적인다.
“으, 으으음…”
왜 저러지?
“……? 하실 말씀이 있으면 하세요. 상관 없으니까.”
“아까 그 네 명을 맡고싶다, 입니다.”
“예? 아까 그렇게 무서워하셨잖아요?”
맹공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한다.
“그냥, 눈길이 간다 입니다.”
뭐, 사람이 그렇게까지 이성적인 동물은 아니니…
근데 문제는 비효율적이란 말이지.
부용이 걱정스런 말투로 묻는다.
“확실하게 감시할 수 있겠어요? 이 수감실, 저 수감실 왔다갔다 하면서? 우리의 근본적인 임무는 악귀나찰을 찾으면서 놈들로부터 악귀를 보호하는 거예요.”
“할 수 있다, 입니다.”
“……”
하긴, 이렇게 되면 악귀나찰의 행동반경이 조금 줄긴 하겠네.
맹공씨가 왔다갔다 하게 되면 감시하는 범위가 넓어지는 셈이 되니.
“그럼 맹공씨는 네 명 감시하면서 그 방에 있는 악귀들도 겸사겸사 감시해주세요. 저도 그렇게 할 테니.”
“알았다,입니다.”
그렇게 나는 2번 수감실의 [제갈윤수], 1번 수감실의 [이태용], [정호석], [공태혁] 이렇게 네 명을,
맹공은 나머지 네 명, 즉 1번 수감실의 [임수영], 3번 수감실의 [김원태], [강현지], 4번 수감실의 [강범수]를 맡기로 했다.
부용이 파일철에서 맹공이 맡은 악귀들의 신원이 담긴 네 장의 종이를 건네며 말한다.
“이거 받으시고요. 조금 있다가 만나자고요.”
“어디서 만나냐? 입니다.”
“흐음…제가 모시러 갈게요.”
“알았다, 입니다.”
그렇게 부용은 우선 감시해야할 악귀들이 가장 많은 1수감실로 향하고, 맹공은 3번 수감실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