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화 〉1.29년만의 재회 (3/87)



〈 3화 〉1.29년만의 재회

부용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스칼렛의 소유를 빤히 쳐다본다.
내가 착각한 건가? 아니면……그녀의 딸?

인간계는 그날로부터 29년이 흘렀고, 길달이  여전사는 그당시 성인이었으니 딸이라 해도 말이 안 되는  아니다.
그런데 영혼까지 유전이 되던가?

그가 힐끗, 여유롭게 윷놀이를 준비 중인 자신의 삼촌을 쳐다본다.

아니면 설마…이것도 그날처럼 저 새끼의 설계?


바깥에는 사회자 겸 딜러 역할인 야차가 허상결계 바깥에서 그들을 빤히 쳐다보는 중이다.

그가 시선을 돌려 다른 열 명의 사람들을 쳐다본다.

열 명 중 대부분은 동양계 사람들이나, 서양계 사람도 보인다.
오호. 새로운 도전인가. 외국인이라니?

주변은 온통 나무 천지다. 그야말로 벤치가 없다는 것 정도를 빼면 서울에 조성됐을 법한 공원의 표본.
다만 조금 특이한  있다면 땅에 여섯 개의 기둥들이 박혀있다는 것 정도.

그리고 허상결계 바깥으로 시선을 돌리면 늘상 보던 익숙한 디자인의 탑과, 거대한 모래시계가 멈춰있다.
모래시계 속 모래는 현재 붉은색이다. 이제 놈들이 윷을 던지고, 윷말들이 미션을 시작하면 흐를 것이다.

모래시계가 다 흐르면낮과 밤이 바뀌는데, 모래의 색깔이 붉은색일 경우 낮이고, 푸른색일 경우는 밤을 상징한다.

그가기둥들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저 기둥들은 다름 아닌 야차들과 윷말들이 직속계약을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매개체, 즉'토템'이다.

그리고 지금 그의 눈에는 여섯 개의 토템에 각자 다른 귀기가 일렁이는 게 보인다. 아마 다른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웬만큼 영력이 강하지 않는 이상.


내가 노려야 하는 건 저  번째 토템이다.
[空계 토템]. 능력이 제일 강할 확률이 높아.


이제 관건은 어떻게 사람들에게 의심을 안 받고 저 토템을 뽑느냐인데…
지금으로써는 그 누구에게도 그가 전생에 길달이었다는 걸 들켜봤자 좋을 게 없기 때문에, 의심의 여지를 뿌리뽑아야 했다.

그때 그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슈퍼 히어로 영화에서 히어로가 나무를 뽑아 던지는 장면.

아, 맞아. 지금 아무도 어떤 행동을 취할 생각을 못하고 있으니 저 막인지 뭔지를 기둥으로 부숴보려 했다, 변명하면 되지.

그가 하나, 하나 사람들에게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계획을 세울 때였다.

푸른 눈동자를 한 서양계 남성이 공포 서린 눈으로 허공에다가 공허하게 말을 내뱉는다.
"혹시 어쩌다가 우리가 여기에 갇히게 됐는 지 누가 육하원칙으로 설명해줄 사람 없나? 입니다."


한동안 침묵과 쿡,  웃음 참는 소리가지나간 후 빨간 브릿지가 인상적인 남성이 손가락을 펼치더니 하나, 하나 접으며 말한다.
"내가, 지금, 여서, 그걸, 우째 아노?"

그러자 서양계 남성은 인상을 찌푸리다가 이내 그와 마찬가지로 손가락 하나를 접어보이는 시늉을 하며 답한다.
"……왜가 빠졌다, 입니다."


그때였다. 다른 사람들의 눈치만 살피던 한 여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공원 밖으로 향하는데…

퍼-억!
"……?"


그녀가 어처구니 없는 표정으로 그녀에게는 보이지 않을 허상결계를 쳐다본다.


나가질 리가 없지. 허상결계가 그렇게 두텁게 쳐져있는데.

이 모습을 본 스포츠 머리를 한 남성이 손을 절레절레 저으며 말한다.

"소용없슴니다."
"뭐라고요?"
"상식적으로, 여기 사람들이 유인원도 아니고. 탈출할 수 있었으면 벌써 탈출했겠지 않습니까?"

그렇지. 저게 맞지.

부용이주위를 둘러본다.
장막 내부에는 기둥들을 제외하곤 이렇다 할 만한 기물도, 물건도 없다.

이 정도면 그가 기둥을 뽑아 던지든, 뭘하든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입술을 질끈, 깨문 채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자 빨간 브릿지 남성이 묻는다.


“뭐하노?”
“뭐라도 해봐야 할  아닙니까.”

그렇게 부용이 남자를 뒤로 하고 저벅저벅 걸어가서 아까부터 점찍어놓은 네 번째 토템을 뽑자 그 자리에서 빛이 새나오더니, 뒤이어 위습이 나온다.


그가 토템을 놓치고, 입을 쩍 벌림과 동시에 뒷걸음질을 쳐 놀라는'척'한다.
"대,대체 이게 뭔…무슨 상황…"

그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곁눈질로 뒤를 살핀다.
그러자 뒤에서는 공허하게 체념만 하고 있던 사람들이 뒤늦게 상황파악을 하고 미친듯이 기둥을 향해 달려오는 중이다.


"저거였네!"
"이 씨발!"

그나마 토템 가까이에 앉아 있던 빨간 브릿지남성이 첫 타자로, 그리고 뒤이어 스포츠 머리를 한 남자가 다음으로 토템을 뽑는다.


더불어 외국인이 헐레벌떡, 뛰어와 토템을 뽑는다.
세 개의 토템에서 각자 빛들이 새나온다.

나머지 여덟 명 중 여섯 명이 미친듯이 달려오고 있다.
여덟 명 중 두 명은 아마 토템을 뽑아봤자 소용없다고 생각하는 눈치다.

여섯 명의 경주라고는 하나, 사실상 선두주자 세 명의 싸움이다. 세 명 모두 여성인데, 이들  소유가 압도적 1위다.


"나, 스칼렛 소유…라고! 허억…헉…"

그런 그녀를 향해 부용이 침을 꿀꺽, 삼키며 응원한다.
달려요, 달리라고!

여차하면 달려가서 능력을 써서 데려오고싶은 심정이다.
제발, 제발…


몸을 쓰는 직종 중 하나인 아이돌이라는 특성 상, 그녀가 1등인 건 정해진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그때였다.열심히달려오던 소유가, 털썩 넘어진다.
그녀가 미간을 찌푸린 채,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이젠장할…!"


보아하니 다리를 삐어 다시 뛸 상황이 안 되는 눈치다.
자칫 도와주다가 차별한다고 욕 먹을까봐 지켜만보던 세 명의 남정네들은 헉, 하고 숨을 삼킨다.


스포츠 머리를  남성이 다급히 말한다.
"저, 저거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님…니까?"

이에 서양인 남성이 대꾸한다.


"이깟 기둥 뽑는게 무슨 대수라고 야단법석인지 모르겠군, 입니다."
"꼭 이럴 때 여자한테 점수 따보려는 보팔러 새끼들이 있지."

그들이 그렇게 왈가왈부 하는 사이, 부용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를 악물고 그녀에게 달려가는 중이다.

부용이 무릎을 쭈그리고, 등을 내밀며 그녀에게 말한다.
"업혀요!"


그러자 그녀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부용을 쳐다본다.
"에, 예?"
"빨리!"

뒤늦게야 상황파악을 한 그녀는 얼굴이 불그스름해지며 부용의 등에 몸을 맡긴다.
"……”

그는 힐끗, 곁눈질로 자신의 등에 안겨있는 그녀를 쳐다본다.


전생의 기억답게, 다른 건  흐릿한데…
아직도 그 기억만큼은 생생하다.

휴프노스란 은인이자 악인의 손에, 너클에 설원 위를 붉게 물들이던 한 여인이.
누군가의 딸이자, 누군가의 누이였을 한 여인의 마지막이.


가슴 한 켠이 쿡쿡 쑤신다.
입술을 질끈, 깨문다.


스티그마를 죽인 이상, 반드시 놈은, 휴프노스란 남자는…
윷판 어딘가에서 npc로 있을 것이다.

반드시 놈을 찾아 물어볼 것이다.
대체  그랬느냐고. 왜 죽였느냐고.

그때였다.
소유가 미안한 목소리로 말한다.

“이걸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


아라홍련이란 꽃 아냐고 물어볼까.
간혹, 간혹 전생의 기억이 단어 하나로 데자뷰로 지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전생의기억이 좋은 기억도 아니고…
떠올라서 좋을 게 뭐란 말인가.


그는 얼굴에는  범벅인 채 싱긋, 웃으며 말한다.


“아, 괜찮아요. 제가 소유씨 찐팬이거든요.”
“아, 저…정말요?”
“이거, 서운한데요. 싸인회까지 갔었는데.”

그녀의 얼굴이 홍당무마냥 빨개진다.
싸인회에 참석했을 정도의 팬을 기억 못했다는 사실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남성팬의 등에 업혔단 사실 때문인지는 그녀만 알 터였다.

숨이 턱밑까지 차오른다.


심장은 미친듯이 그의 안녕을 묻는다.
두근두근두근두근...

어느새 여섯 명  한 명이 그를 제친 상황이다.
이에 부용이 작게 입모양으로 읊조린다.
씨팔.

이를 까득, 악물고 뒤를 쳐다본다.
아슬아슬하게 꼴찌로 들어갈 수 있을  하다.


얼마나 달렸을까.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녀를 내려놓는다.
그녀가 수줍게 양손을 배배 꼬다가 이내 꾸벅, 인사하며 말한다.

"……너무 감사합니다."
"아, 아닙니다."

그녀가 토템을뽑자, 여느때처럼 토템에서는 빛이 새나온다. 그리고 동시에 부용이 뽑은 푸른색 토템 외에 나머지 다섯 명이 뽑은 토템들이 빨간색과 푸른색으로 나뉜다.
이에 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그 새끼'를 쳐다보며 중얼거린다.


휴우…다행이다. 푸른색이면 저 새끼 팀은 아니네.

그가 힐끗, 자신의 토템과 소유의 토템 색깔을 비교해본다.
둘 다 푸른 색이다.

오오, 나이스! 같은 팀이잖아!

그가 싱글벙글, 웃으며 좋아할 때였다.

그들을 가로막던 허상결계에

-찌지, 직-


금이 가더니, 얼마 안 가


쨍그랑! 깨진다.

"……!"
"……!"


그와 동시에 내내 결계 바깥에있던 남성,  사회자 겸 딜러로 추정되는 남성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들이 뽑은 기둥과 매우 비슷한 디자인의 거대한 탑과 그들을 빤-히 내려다보고 있는, 아수라와 두억시니가 그들의 시선에 들어온다.

그러자 누군가는 동그랗게 눈을 뜨고, 입을 쩍 벌린  현실을 부정하듯 연신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아수라와 두억신을 빤히 쳐다보고, 누군가는 쭈그려앉아 귀를 틀어막아 소리를 지르며, 누군가는 흐느끼고, 흐느끼다가 이내 실신한다.


동시에 두억시니가 기둥을 뽑지 못한 사람들을 하나, 하나 집어든다.
"사, 살…려…줘…"


그리고 거대한 손으로 움켜쥐어 압사 시키거나,
"커헑!"


벌레잡듯 머리와 몸통을 떼는 중이다.

눈앞의 장관에 부용이 흠칫, 놀라고는 눈쌀을 찌푸리며 고개를 휙, 돌린다.

이를 악문다.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확실히 야차의 몸으로, 화면 너머로 보는 인간의 죽음과 인간의 육신을 하고 현장에서 직접 몸소 체험하는 같은 인격체의 죽음의 무게는…
그 무게가 너무나도 다르다.


주먹을 불끈, 쥔다.
눈을 희번득 뜨고 이를 꽉 악문다.


아냐, 아냐. 이거 하나 예상 못 했어?
괜한 감정에, 동정심에 휩쓸려서 29년의 차디찬 베란다 생활을, 공들인 계획을 망치지 마.

그 사이 지리멸렬한 소리와 함께 허공에서 붉은 빛 폭포수가, 빗줄기가 내려친다.
그렇게 놈들의 손에서 한 명 한 명 죽어가더니, 순식간에 열 두명  절반이 죽는다.


그는 최대한 의심받지 않기 위해 이를 꽉, 악물고 눈을 희번득 뜨고 털썩, 주저앉아 온몸을 웅크리고는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미친 듯 고개를 젓는다.
그리고는 미친듯이 양손으로 뺨을 깎아내리고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덜덜덜 떨며 웃는다.
"으, 으으으…히히…히힛…"

그래, 나는 그저…그저…놈의 멱을 따는 일에만 집중하면 된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그리고 그의 뒤에서는 어느새 그가 뽑은 기둥에서 나온 위습이이 분열한  모습을 변환시켜

&&&&&&&&&&&&&&&&&&&&&&&&&
&&&& 시바신을 따르는 야차(님)께서 &&&&
&&&&& 당신과의 계약을 원합니다. &&&&&
&&&&&&&&&&&&&&&&&&&&&&&&&

&&&&&&&&&&&&&&&&&&&&&&&&&
&&&&&& 계약 조건:甲은 乙에게 &&&&&&
&& 乙이 타인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 한 &&
&&&& 空계 능력 [미러링]을 빌려준다. &&&
& 발동주문:오웨어페이 에플리카 티온레이 &
&&&&&&&&&&&&&&&&&&&&&&&&&

&&&&&&&&&&&&&&&&&&&&&&&&&
&&& 시바신을 따르는 야차(님)과 계약을 &&
&&&&&&&& 승낙하시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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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세 개의 창들을 만들어 허공에 일렁이고 있다.

잠시 정적이 감돈다.
계약이란건, 자고로 신중해야 하는 것.

그가위습에 손을 댄  나지막이 물어본다.

“……타인의 범주가 어디까지인지물어봐도 되나?”

&&&&&&&&&&&&&&&&&&&&&&&&
&&&& 시바신을 따르는 야차(님)이 &&&&
&&&& 당신에게 [꼼꼼하네? 타인은 &&&&
&&&&&& 너랑 같은 종족들까지.] &&&&&
&&&&&&&&& 라고 말합니다. &&&&&&&
&&&&&&&&&&&&&&&&&&&&&&&&&

한 마디로…
저 다섯 명한테’거짓말은 하지 않는다’기술을 시전하면 된다, 이거군.


그가 이를 악물며 위습에 손을 뻗은 후 작게 중얼거린다.
"승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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