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29 거울아 거울아(1)
콜린이 눈을 뜬 것은 마침 해가 떠올랐을 무렵이었다.
눈을 비비고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면 어제의 참상이그대로 남아있었다.
'조금 심했나…?'
침대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는 육체들을 바라보며 콜린은 미간을 찌푸렸다. 돌이켜보니 자신이 좀 많이 과격했나 싶어진다.
물론 딱히 동정심은 들지 않았다. 어차피 오늘 사생결단을 내야 할 사이가 아닌가.
콜린은 그녀들은 신경 쓰지 않기로 마음먹은 뒤 욕실로 들어가 몸을 씻었다.
다시 나온 후에도 백설과 난쟁이들은 아직 깨어날기미가 보이지 않았기에 대충 옷을 걸친 뒤 복도로 나왔다.
"콜린, 좋은 아침이에요."
그렇게 복도를 걷던 중에 콜린은 저기서 걸어오는 갈색 토끼와 마주쳤다.
나른하고 온화한 표정은 여전했으나 머리칼은 평소와 다르게 조금 부스스했다. 아마도 깨어나서 바로 복도로 나온 모양이었다.
"마치 누나, 식당 가시는 거예요?"
"…그래요."
콜린이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부르자 순간 멈칫하는 그녀였다. 아마도 누나라고 불렀던 것에 반응했으리라 콜린은 생각했다.
"콜린도 오늘은 여기서 먹는건가요?"
"네. 어제 영주님이 말해주셨어요."
어차피 여기서 아침을 맞이하게 될 테니 식사도 하고 가라던 체셔였다. 굳이 그 호의를 거절할 필요는 없었다.
콜린은 한숨을 쉬며 왼손을 휘휘 저었다.
그리고 복도를 조금 걸어가다보니 저기서 검은색 책이 둥실둥실 날아오는 게 보였다.
콜린은 그것을 붙잡아 허리에 끼더니 다시 시선을 마치에게로 돌려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러고 보니 영주님께 부탁했던 건 어떻게 됐나요?"
"어느 쪽 말인가요?"
"둘 다요."
전에 콜린은 체셔에게 편지를 보내 필요한 것을 몇 가지 부탁했다. 백설을 상대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었다.
"양쪽 다 도착했어요."
"다행이네요. 그러면 일단 사과 하나는 저 주시고 나머지는 레니 씨랑 나눠가지세요."
길잡이인 체셔의 권능으로 파악한 바에 의하면 백설은 불사신에 가까운 존재라고 한다. 특정한 경우가 아니면 거의 죽지 않는다는 모양이었다.
당연하지만 그녀를 상대하기로 한 이상 그 불사의 권능도 대비해둘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체셔에게 부탁해 준비한 것이 바로 독사과였다.
'뭐, 영주님이라면 부탁하지 않았어도 준비는 했겠지만.'
길잡이의 권능이 어떠한 것인지 체셔에게 대충 설명을 듣기는 했지만 콜린의 감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조금 왜곡이 있긴 해도 그나마 이해하기 쉬운 비유를 들자면, 그것은 눈앞에 있는 존재의 이야기를 읽는 느낌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백설을 바라보고 있을 때 머릿속에서 백설공주 동화책이 펼쳐지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읽을 수 있는 건 꽤 단편적인 내용들 뿐이라는 모양이었다.
'그 외에도 자신이 기원을 두는 시대에서 멀어질 수록 더 읽기 어려워진다고 했었지.'
체셔라면 아마도 1860년대일 것이다.
백설공주가 등장하는 그림 동화 출판이 1812년일 테니 시기상으로는 꽤 가깝다. 거의 바로 그녀의 권능을 알아챈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에 두 사람은 식당에 도착했다.
의외로그곳에는 체셔가 없었다. 아직 오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이미 먹고 갔는지는 알 수 없었다.
"왔니?"
"그… 오랜만이야."
대신 테이블에는 다른 두 여성이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오랜만이에요."
콜린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들에게 인사했다.
"아라크네 길드장님,그리고 안젤리나 씨."
아라크네와 안젤리나. 식당에는 있는 것은 두 사람이었다.
콜린이 이전에 체셔에게 보낸 편지에는 두 사람을 불러달라는 내용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백설을 쓰러뜨리기 위한 여덟 사람 중 두 자리는 그녀들이 차지할 예정이었다.
"와주셔서 고마워요."
"…강제로 불렀잖아?"
하지만 콜린의 인사에 아라크네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당연하지만 백설에게 대항하면 매우 높은 확률로 제후 대리에게 찍히게 된다. 하나의 길드를 이끌고 있는 아라크네에게 이 상황이 달가울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그녀가 이곳에 온 것은 이전의 내기로 콜린의 소원을 하나 들어주기로 된 탓이었다.
"설마 그때부터 이럴 생각이었던 건 아니지?"
"그건 너무 과대평가인데요."
물론 그때부터 치밀하게 계획했던 건 아니었다.
그저 언젠가 쓸 데가 있겠지 싶어 보류해뒀던 소원권의 존재를 때마침 떠올렸을 뿐이었다.
어느 쪽이건 졸지에 생사여탈전에 끌려온 아라크네 입장에서야 한숨만 나오는 일이었지만 말이다.
"안젤리나 씨도 고마워요."
어차피 이제 와서 사과해봐야 의미가 없었기에 콜린은 안젤리나에게로 고개를 돌려 미소를 지어주었다.
안젤리나는 그와 눈이마주치자 슬쩍 시선을 피했다.
저번에 봤을 때만 해도 꽤 자기중심적인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어째 수줍어하는 모습이었다.
"아니, 뭐… 네가 부탁했다고 하니까."
아마 실제로도 그녀는 콜린에게 호감을 품고 있었을 터였다.
안젤리나가 이곳에 온 것은 콜린의 소원과 별개로 그녀 자신의 의지였으니 말이다.
"정말로 고마워요."
"응, 그, 그래……."
콜린은 다가가서 그녀의 손을 살포시 잡으며 바라보았다. 안젤리나는 내색하지 않으려는 것 같았지만 뺨에 발그레 달아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 모습을 보더니 아라크네는 한숨을 쉬며 이마를 짚었다.
아마 안젤리나가 일종의 어장관리를 당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듯 했다.
정말이지 남자에게 속아넘어가기 좋은 성격이라고 아라크네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안젤리나는 좋게 말하면 열정과 혈기가 넘치고, 나쁘게 말하면 건방지며 단순무식한 여자다. 고민하기보다도 일단 한 번 들이받아보는 타입이었다.
그러니만큼 누군가에게 한 번 빠져버리면 맹목적이게 되고야 마는 것이다.
'그걸 금세 알아차리고 어떻게 꼬시면 될 지 알아차리는 저 꼬마도 보통이 아니지만.'
아라크네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아주 잠깐이지만 콜린에게 대적했던 그녀 입장에서는 저 사내의 정체를 조금은 파악할 수 있었다.
저건 사람의 마음을 씹어먹고 자라는 괴물이다.
안젤리나에게 저런 모습을 보이는 것도 결코 악의가 있다거나 무언가 뜯어내려 한다거나 하는 게 아니었다.
그저 진심으로 그녀의 마음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을 뿐이었고, 그 과정을 즐기고 있을 뿐이었다.
'그게 더 악질이란 말이지.'
아라크네를 상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콜린의 모습에서는 희미하게나마 즐거움을 읽어낼 수가 있었다.
그의 모습은 서로의 심리를 읽어내고 수싸움을 하는 것 자체가 즐거워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보였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은 어떨까.
자신의 전부를 걸고 백설과 맞서 싸우게 될 이 순간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노닥거리는 건 그쯤 해두렴. 그건 일이 다 끝나고 해도 괜찮잖니."
"아, 죄송해요. 오랜만에 안젤리나 씨랑 만나서 조금 신났나봐요."
콜린은 멋쩍게 웃더니 안젤리나의 손을 놓고 테이블에 앉았다.
"그래. 오늘은 정말 전력으로 싸워야 할 테니까 미리 마음을 다잡아두는 게 좋아."
그것은 단지 스쳐지나가듯 중얼거렸을 뿐인 말이었다.
실제로 백설 본인이 제안한 게임에서 그녀의 승률은 100%에 달했다.
진심을 다해도 과연 이길 수 있을 지 모르는 상황이었고, 그러니 이것은 아주 당연한 조언이었다.
"……."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콜린은 잠시 몸을 굳혔다.
전력으로 싸워야 한다?
그래. 당연한 이야기였다. 게임 한 번에 길드의 명운이 걸려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백설은명백한 적이었다.
이전에 아라크네를 상대할 때처럼 스포츠 경기의 상대방 같은 게 아니라 정말로 쳐부숴야 할 존재였다.
…전력으로 싸워도 된다.
무슨 수단을 써도 괜찮고, 상대를 배려할 필요도 없다.
아주 당연한 것이지만 콜린은 이제야 새삼스레 그것을 실감하고는 웃었다.
"……?!"
그 표정에 미소가 떠오르는 것을 보고 아라크네는 순간 몸을 흠칫 떨었다.
아주 잠깐이지만 마치 눈앞에 이무기가 한 마리 앉아있는 것만 같았다.
'역시… 괴물이야.'
눈을 한 번 깜빡이고 다시 바라보니 소년의 몸을 휘감고 있던 환상은 사라져 있었다.
그저 그가 뿜어낸 기백 탓에 잠시 환상을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아라크네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콜린이라는 사내의 본성이었다.
노름을 즐기고, 타인의 속내를 읽어내길 즐기는 능구렁이.
"일단 밥이나 먹을까요?"
그 간사한 뱀이 혀를 날름거렸다.
×
영주 저택의 뒤뜰.
평소라면 그리 많은 사람이 오다니는 곳은 아니었다.
해봐야 가끔씩 체셔나 마치가 바람을 쐬러 나오는 정도였다.
"흐음, 참가 인원은 그걸로 결정이란 말이지?"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 뒤뜰은 역사적인 기록을 세우고 있었다.
무려 아홉 명이나 되는 사람이 이 자리에 있었던 탓이다.
백설은 부점 길드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목에 칼을 들이밀고 그랬으니 거부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내건 인원 제한은 여덟 명.
눈앞에 서있는 그들을 백설은 팔짱을 낀 채 훑어보았다.
"그래, 이걸로 결정이야."
정장을 차려입은 보라색 고양이. 부점 길드의 수장인 체셔 캣이었다.
그가 이 게임에 참여하는 건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
그 옆에 있는 건 어깨를 스칠 듯하게 자른 금발의 여성, 괴력의 레니 테세오.
부점 길드의 최대 전력인 그녀가 불참할 리는 없었다.
"저기─ 시작은 언제 하나요──?"
다음으로 백설이 바라본 것은 온화한 인상의 여성이었다. 연한 갈색의 머리칼 위로 복슬복슬한 토끼 귀가 불쑥 서있었다.
일단 전투력만 보면 레니에게 밀리지 않는마치 헤어였다.
다만 매사에 진지하질 못하다는 그녀가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길드 전체의 존망이 걸린 상황이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데려온 것이라고 백설은 판단했다.
그 다음에 백설과 눈이 마주친 것은 붉은 머리칼의 소년, 콜린이었다.
어젯밤의 굴욕이 떠올라 미간을 찌푸렸지만 그는 오히려 히죽히죽 웃을 뿐이었다.
괜히 짜증이 나서 시선을 홱 돌려버렸다.
자신에게 굴욕을 준 그에게 뭐라 하려고 하면 자신의 추태를 드러내야 했으니 그럴 수도 없었다.
다음으로 보인 것은 한나와 시안이었다. 그러나 백설은 그녀들의 이름조차 알지 못했다.
어차피 8명을 채우기 위해 불려나온 어중이떠중이인 게 분명했다.
마지막으로 백설은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설마 아라크네 길드에서 친히 납시셨을 줄이야 몰랐는데."
"무슨 소리인가요? 때마침 지나가던 용병인 아라크네네 씨와 신데렐라라 씨인데요?"
부점 길드를 도와주러 온 그녀들에게 어디 각오하라며 경고한 백설이었지만 콜린이 거기 끼어들어 통하지도 않는 헛소리를 내뱉었다.
능글맞은 그 웃음에 백설은 인상을 팍 쓰고 그를 노려보았다.
물론 콜린에게는 역효과였다.
알몸으로 개구리처럼 널브러져서 가랑이에서 정액을 흘려대는 꼴을 어제 막 보고 온 참인데 대체 뭐가두렵겠는가?
"…그러면 각자 신체포기각서에 서명해주시지."
백설은 혀를 차고서 손가락을 퉁겼다. 그러자 모두의 눈앞에 연푸른빛의사각형이 떠올랐다.
물론 신체포기각서라는 것은 비유였다.
거기에는 게임의 규칙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규칙이 세세하게 정해져 있었기에 읽는 데만 해도 시간이 꽤 걸렸다.
'대충 요약하면 이런 느낌인가…….'
─게임은 9*9 형태로 배치된 방들에서 행해진다. 단, 정중앙의 방은 다른 방과 완벽히 차단되어 있다.
─부점 길드에서 결정된 지휘관과 백설은 중앙의 방에서 게임을 진행하고, 나머지는 80개의 방 중에서 하나를 결정해 그곳에서 시작한다.
─30초를 기준으로 각 진영의 차례가 주어지고, 그때마다 각자는 한 칸씩 방을 이동할 수 있다.
─백설은 '어떤 합당한 방법'으로만 살해할 수 있다.
─모든 난쟁이를 살해하고 지휘관이 백설을 살해하는 경우 부점 길드 측의 승리.
─모든 난쟁이를살해하기 전에 백설을 살해하거나, 1시간 동안 게임이 종료되지 않는 경우는 백설의 승리.
즉, 지휘관의 지시를 따라 나머지 사람들이 80칸의 방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한 시간 내에 난쟁이들을 모두 잡아내는 게임이었다.
"잠깐. 살해한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 다만 게임은 제후님의 권능을 일부 받아온 아공간에서 치뤄진다. 거기서는 죽어도 현실 세계로 쫓겨날 뿐이니 안심하라고."
콜린이 손을 들어 질문하자 백설은 코웃음을 치며 설명했다.
"그럼 처음에 시작하는 방은? 서로 초기 배치를 알려주고 시작해?"
그 다음 질문에는 그저 손가락을 퉁길 뿐이었다. 그러자 푸른빛의 사각형이 마치 체스판 같은 형태로 모습을 바꾸었다.
다만 일반적인 체스판보다 한 줄씩이 더 많았다.
"거기서 따로 설정을 해두면 아공간이 펼쳐질 때 자동으로 이동한다. 서로의 시작 지점은 모르는 셈이지."
이건 백설 쪽에 유리한 규칙이었다. 이러면 아무래도 도망자 측에서 유리해질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다른 질문도 있나?"
"답지않게 친절하시네."
"큭큭, 뭐 불만이라도 있는가봐?"
"아니, 나야 고맙지."
저러는 걸 보면 어지간히도 자신이 있는 모양이라고 콜린은 생각했다.
"지휘관이 따로 동떨어져 있는데 지휘가 가능해?"
"그거야 이쪽에서 통신용 아이템을 빌려주도록 하지."
"마음 같아선 내가 지휘관을 하고 싶은데 그쪽을 죽일 자신이 없으면?"
"저 아래쪽 조항 안 보여? 나는 상대지휘관의 폭력에 저항할 수 없어."
흠, 하고 콜린은 턱으로 손을 가져갔다. 백설이 딱히 저항하지 않는다면 문제될 건 없어보였다.
"그럼 됐어. 내가 지휘관을 하는 걸로 계약하자."
콜린은 계약서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손끝이 닿기 직전 고개를 돌려 다른 일행들을 바라보았다.
"다들 괜찮으신가요?"
"상관없어."
체셔가 대표로 그의 질문에 답해주었다.
말은 하지 않았어도 다들 동의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애초에 전투력이 전무한 콜린이 여기 있다는 것부터가 참모 역할로 데려왔다는 소리였으니 말이다.
"믿어줘서 고마워요."
일행들의 의사를 확인하고서 콜린은 계약서를꽉 거머쥐었다. 그것은 파스스 흩어져서는 빛무리가 되어 흩어졌다.
"좋아. 계약 성사로군."
"그렇게 된 김에 하나 더 물어도 괜찮을까?"
그 모습을 보며 백설은 히죽 웃었다. 콜린은 괜한심술이 나서 그 표정을 '간신 모리배의 얼굴'이라고 표현하기로 마음먹고 입을 열었다.
"뭐지?"
"10분만 작전회의 해도 되냐?"
"…뭐, 그 정도라면야."
백설은 어디 한 번 해보라며 턱짓했다.
콜린은 감사를 표한 뒤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건물 안쪽으로 들어왔다.
"콜린, 괜찮겠어?"
들어서자 마자 한나가 걱정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는 여기서 유일하게 아라크네길드와의 친선전에 참가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괜찮아. 나만 믿어."
"그래…?"
콜린의 실력을 확인할 기회가 없었으니 콜린이 그렇게 말해도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뭔가 계획은 있니?"
"그걸 생각하려고 작전회의를 하는 거잖아요."
반면 아라크네는 다른 소리를 하지 않고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전에도 느꼈지만 꽤나 실리를 중시하는 여자였다.
'그러니까 길드장을 할 수 있는 건가?'
콜린은 그런 생각을 흘려보냈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일단 저 빼고 5분 정도만 토의해주실래요?"
"응? 같이 하는게 아니라?"
이번에는 체셔가 의문을 품어왔다. 입을 열지는 않았지만 레니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더욱이 시안이나 안젤리나 같은 경우는 아예 콜린이 혼자 해답을 딱 내놓을 줄 알았던 것인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런 상황이라면 어떤 전략이 보편적으로 나오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그래요."
콜린이 게임 규칙을 확인했을 때 품었던 것은 커다란 위화감이었다.
'이걸로 승률 100%가 나온다고?'
이상했다.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다.
분명 백설에게 유리한 게임이기는 했지만 그 정도로 높은 승률을 보장할 수 있는 게임은 아니었다.
어쩌면 여태껏 백설이 상대해온 사람들이 전부 바보였을 수도 있지만, 그런 식의 행복회로는 오히려 전략 구상에 방해만 될 뿐이었다.
'그런 셈 치자'라고 생각을 관두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었다.
"분명 함정이 있어요. 그러니까 제3자 입장에서 남들이 어떤 식으로 함정에 빠지는지 확인해보고 싶어요."
콜린이 그렇게 말하자 다들 크고 작은 의문을 품은 표정이었지만 어쨌든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선 첫 배치가 중요하지 않을까?"
가장 먼저 입을 열었던 건 체셔였다.
"네, 역시 일렬로 서서 쭉훑는 게 좋지 않을까요?"
거기에 호응하듯이 시안이 말했다.
그녀가 내놓은 전략은 이른바 좀비게임이라 불리는 놀이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전략이었다.
확실히 이 게임은, 두 진영으로 나뉘어서 한쪽이 눈을 감고 상대를 붙잡는 좀비게임과도 유사했다.
"하지만 우리는일곱 명이고 방은 한 줄에 아홉 칸이지."
거기에 레니가 반박해왔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좀비게임에서 손에 손을 잡고 나아가는 전략은 방의 너비를 감당할 수 있을 때에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토의의 시작은 조금 어색했지만 한 번 물꼬가 트이고 나니 그 다음부터는 아주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중앙의 방도 있으니 그걸 감안해야 하지 않겠니?"
아라크네 역시 말을 보태었다.
실제로 좀비게임에서 방에 기둥 하나만 있어도 그 전개 양상이 완전히 바뀌어버린다.
기둥이 있다면 좀비들이 도중에 손을 놓고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아마 중앙의 방이 그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길드장님. 그래도 그나마 이게 나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이건 안젤리나의 말이었다.
그 말에는 콜린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일렬 전략의 효과가 떨어진다 해도 그보다 더 좋은 전략이 있느냐 물으면 대부분 고개를 갸웃거리기 마련이었다.
"빠져나갈 공간이 있다는 건 그걸 통해서 상대 움직임을 추측해볼 수도 있는 거잖아요."
실제로 역사적으로도 일부러 빈틈을 보여서 상대의 움직임을 유도하는 사례는 아주 많았다.
"역시 그게 정답이려나요. 30초씩 번갈아 한 시간이면 움직일 수 있는 건 60칸뿐이라 불안하긴 하지만요."
마치는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이마를 붙잡으며 한숨을 쉬었다.
평소 그녀의 모습에선 쉽게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마치는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그 사이 일곱 명을 붙잡는다… 가능할까?"
"저쪽도 이쪽 위치를 모르는 건 마찬가지니 불가능은 아니라고 봐요."
"상대가 어느 쪽으로 움직일지 나름 심리전도 중요하겠군요."
하나둘 아이디어가 나오고 옹호와 반박이 이어진다.
그녀들이 콜린에게 지휘관 역할을 맡기기는 했지만, 그건 그저 콜린에게 재능이 있었을 뿐 그들이 멍청하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었다.
그 모습은 그야말로 건전하고 합리적인 토론의 표본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였다.
"음."
그렇게 일행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콜린은 입술을 떼었다.
"……."
그 순간 모두의 이목이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열띤 토론이라고는 해도 결국에는 정공법 외에는답이 없다는 식으로 의견이 모이고 있던 참이었다.
"아… 너무 그렇게 보시면 긴장되는데요."
다들 단순한 정공법으로는 백설을 이기기 힘들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그 이상의 아이디어를 차마 떠올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콜린의 합류는 반갑기그지없는 일이었다.
그녀들의 모습에 콜린은 조금 멋쩍은 표정을 짓는가 싶다가 싱긋 웃었다.
저렇게나 기대를 해준다면 보답하는 게 마땅한 도리였다.
"──뭐, 그러면 시간이 부족하니 작전 설명은 한 번만 합니다. 귀기울이고 잘 들으세요."
자고로 사기꾼을 가장 잘 간파하는 건 사기꾼인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