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화 〉[스핀오프] 정조관념 이상한 여고생 썰 - 11
주말이 됐다. 직장인들에게 주말은 토요일만 해당된다. 일요일이 되면 다음 날이 월요일이라는 사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게 되니까.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주말은 토요일인 것이다.
내가 주말을 보내는 방법은 방에서 그냥 잠이나 자는 거다. 평소 못 피우는 게으름을 계속 피운다.
“아~ 무슨 또 올라온다고 난리야. 됐어.”
-너 청소도 잘 안하잖아. 그리고 올라가는 게 너 때문에 가는 게 아니라니까? 엄마랑 아빠가 근처에 결혼식이 있어서 가는 김에 니 자취방 들리려고 하는 거야.
“에이... 오지 마. 뭐하러 와.”
-아니 그게 아니라 지금 엄마, 아빠가...!
“아 몰라! 몰라! 끊어! 귀찮아!”
엄마가 뭐라 하든 말든 통화를 끝내 버리고 나는 근처 마트에서 장을 봤다. 일요일이 마트 휴무일이라 어쩔 수 없이 토요일 날 장을 봐야만 했다. 그렇게 마트를 돌아다니는데 어쩐지 쓸쓸했다.
조민영과 헤어진 지 며칠 되지도 않아 외로움을 느낄 줄이야. 역시 도덕이고 나발이고 여고생을 덮치면서 끝냈어야 한단 말인가.
무언가 말로 할 수 없는 아쉬움과 외로움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업무로 지친 발걸음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면 언제나 반겨주던 조민영. 그녀는 항상 밝은 미소로 나를 맞이해주었다. 물론 다 벗고 이상한 짓을 하긴 했지만... 그마저도 사랑스러웠다. 아... 시발 나 지금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네.
고등학생한테 빠져버린 건가.
조금 충격적이다.
그렇게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와 문을 열었을 때, 나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
“... 오, 오빠. 오, 오셨어요...?”
“...”
“...”
방문을 열자, 토요일인데도 교복을 입고 있는 조민영과 처음 보는 어떤 아줌마, 아저씨가 방에 앉아 있었다. 둘이 좀 닮아 보이는 게 부부 같기도 하다. 두 사람은 나랑 안면도 없는 그런 사이였는데 어쩐지 원수처럼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조민영은 안절부절 못하다가 내가 방문을 열고 들어오니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달려왔다. 그리고 내가 들고 있던 장바구니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저, 저 주세요. 제가...”
“조민영. 넌 앉아.”
“네? 넷?! 아. 네네!!”
어떤 아저씨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장바구니를 향해 손을 뻗던 조민영이 등을 찔린 토끼처럼 놀라더니 후다닥 달려가 탁자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짧은 그녀의 치마가 오늘따라 조금 내려와 있었다.
나는 뭔가 황당하기도 하고... 아니 세상에 남의 집에 와있는 주제에 뭐가 저렇게 당당해? 아무리 어른이라지만... 조금 짜증난 어조로 물었다.
“저 실례지만 누구십니까? 누구신데 저희 집에 와 계신 거죠?”
내 말투가 신경을 거슬렀나 보다. 부부가 혀를 차며 어이없다는 듯 소리를 낸다.
“참네.”
“실례? 예의를 아는 사람이 그러나?”
“... 네?”
“아, 아빠. 내, 내가 설명을...!”
“넌 입 다물어.”
“...”
아빠? 아~ 조민영네 아빠구나. 나는 그제야 그들의 정체를 깨닫고 장바구니를 내려놓으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두 부부가 앉아있고, 그 앞에는 탁자가 펴져있다. 탁자 위에는 아무 것도 없다. 최소한 주인 없는 집에서 아무거나 막 꺼내 쓰는 경우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이야기.
그럼에도 이 공격적인 태도는 무엇일까?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아버님, 어머님이시군요? 안녕하세...”
“아버님?”
“어머님?”
아니... 그 호칭이 그렇게 거슬려? 무언가 철벽으로 가로막힌 듯한 분위기에 내가 머뭇거리자 두 분은 계속해서 불편한 신음을 흘렸다.
“커허흠...”
“쯧쯔...”
“... 아... 저, 뭐, 뭐 좀 드시겠습니까? 커피나...”
“됐네. 일단 앉지 그래.”
무언가 분위기가 엄청나게 싸하다. 방 안의 온도가 10도 쯤 내려가 있는 것 같다.
이거 뭐지? 내가 대체 뭘 잘못... 나... 잘못한... 게 있긴 하구나. 어린애 첫 경험을 내가 훔치고 책임도 안지고 있었으니 뭔가 죄스러운 느낌은 있었다.
하지만 그건 내가 따먹히는 그런 상황이었는데. 막말로 조민영이 나를 덮친 거잖아. 나는 오히려 피해자라고! 답답했지만 딱히 따지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조민영 옆자리에 앉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넌 오늘 왜 교복이야?”
“어, 어제부터 옷을 못 갈아입어서요...”
“왜?”
“... 호, 혼나느라...”
“...”
어쩐지 웃음이 나온다. 그 철부지 같던 조민영도 지 아빠 앞에서는 아주 순한 양이 따로 없었다. 나는 혀를 차며 눈빛으로 살인을 낼 기세로 나를 보고 있는 아버님 어머님들에게 인사를 했다.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김.지.훈 이라고 합니다.”
“무슨 일을 하나?”
“아... 저 프로그래머입니다.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고요.”
“... 오늘은 내가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왔네.”
어머님은 아예 시선을 피하고 나를 보고 있지도 않았고, 아버님은... 어우. 진짜 칼이라도 있으면 당장 나를 난도질할 그런 눈이다. 무섭다. 나는 잔뜩 긴장해서 답했다.
“아... 네. 네. 말씀하십시오.”
“그래. 뭐. 가출한 여고생을. 보호해준 거. 참 고맙게 생각해.”
“아, 아닙니다.”
“그러나. 하지만... 대체 무슨 짓을 한 건가?”
“... 네?”
“솔직히 말해. 우리 딸아이에게 무슨 짓을 했나?”
꿀꺽-
그 눈빛을 보니 괜히 긴장이 된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이건 솔직히 말할 수가 없었다.
아니 막말로. 아직 남자 경험 없는 여자 고등학생 부모님을 앞에 두고 ‘아하하하! 제가 댁의 따님 처녀를 따버렸지 뭡니까?! 으하하!’ 이건 미친 짓이잖아. 이건 살인 나도 할 말 없는 거거든. 나는 시치미를 뚝 떼고 말했다.
“저... 무슨 말씀이신지.”
“시치미를 떼겠다 이거지?”
“... 네?”
“크흠...”
속내를 들킨 듯한 기분에 내가 딸꾹칠을 하자, 아버님이 혀를 차며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가방에서 나온 것은...
“...! 조, 조민영 너...!”
“히이이잉...”
내 팬티였다. 나는 당황해서 조민영을 쳐다봤고, 조민영은 반쯤 울면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아버님은 더러운 걸 만졌다는 듯 탁자에 내 팬티를 던지듯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래도 시치미를 뗄 겐가?”
“아, 아버님! 이, 이건...!”
“아버님 소리 그만해! 나는 자네 같은 아들 둔 적 없어!”
“... 민영이 아버님. 지, 진정하시고 이거는... 저... 그... 민영이가 지, 짐을 싸면서 아마도 섞여 들어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을까요? 그치 민영아?”
“히이잉... 오빠 대동해요... 히잉... 대동해효...”
팔꿈치로 툭툭 찌르는데 조민영이 이젠 아예 대성통곡을 한다. 나는 두근대는 가슴을 가라앉히며 아버님을 향해 말했다.
“뭐, 뭔가 오,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걸 준 적이 없고요. 민영이도 이걸 가져갈 생각이 없었을 거예요. 세상에 남자 팬티를 훔쳐가는 여고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흐음. 그래. 그렇다 이거지?”
“... 네.”
표정은 여전히 무섭다. 뭔가 더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네’ 라고 밖에 할 수 없었다.
민영이가요! 저희 집에서도 제 팬티가지고 자위도 하고 막 그랬어요! 그러니까 이건 조민영이 자위하려고 훔쳐간 거예요! 반찬으로 쓸려고!
그 딴 이야기는 할 수 없잖아! 미쳤어?
그 때 아버님이 이번에는 가방에서 웬 종이뭉치를 꺼내들었다. 종이뭉치를 탁자위에 올려둔 아버님이 침착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 내가 뭐하는 사람인지는 아나?”
“... 그, 글쎄요. 무슨 일을 하시는지...”
“검사야. 검사.”
“...! 거, 검사요?”
“그래. 내가 이 팬티에서 유전자 감식도 하고 오는 길인데. 이건 보고서야. 보고서. 보고서에서 말하기를. 정액이 다량으로 검출 됐다더군. 이건 어떻게 설명할 건가?”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보고서의 제목을 읽어보았다. ‘유전자 감식 보고서.’ 이건 빼도 박도 못한다. 나는 그저 벌벌 떨며 말했다.
“거, 검...”
“검출 됐다고. 그래.”
“저, 정...”
“정액이.”
“... 제, 제...?”
“그래. 자네 것. 김지훈. 나이 30세. 남자. 니 새끼.”
“...”
호흡이 가빠오기 시작한다. 식은땀이 마구 나고 옷 안에서 김이 새어나오는 것 같은데. 그 사이 아버님이 가방에서 뭔가를 하나 더 꺼냈다.
“...! 그, 그건...!”
“집에 돌아온 민영이가 이걸 또 쓰더군.”
“히이잉...”
조민영은 처다 보지도 않고 그게 뭔지 알았다는 듯 울음을 터뜨렸고, 아버님이 책상 위에 올려둔 ‘그것’ 은 책상에 올라가자마자 스위치가 켜졌는지 드르륵 거리며 몸을 떨기 시작했다.
위이이잉-
“뭔지 알지?”
“지, 진동 딜도...”
“우리 딸아이는 말이야. 순진하고 조용한 아이였어. 근데 자네를 만난 이후로 애가 아주 발랑 까져가지고 말이야. 대체 뭘 한 거야! 똑바로 말 해!”
“...”
턱에 맺히는 땀을 닦았다. 아니 근데 그건 내가 물을 말 아닌가. 쟤는 원래 이상했는데... 나는 조심스럽게 책상 위 딜도의 진동을 끄고 나서 벌벌 떨며 답했다.
“저... 일단 아, 아버님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버님...?”
“아! 네네! 죄송합니다! 그... 미, 민영이 아버님께서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잘 알겠는데. 그거... 그, 그런 게 아닙니다.”
“그런 게 뭔가?”
“... 그... 서, 성적으로 아이를 괴롭히거나 그런...”
“아. 그래? 성적인 행위는 조금도 하지 않았다 이건가?”
“... 네.”
“내 눈을 똑바로 보고 대답해. 성적인 행위를 조금도 하지 않았나?”
“... 꿀꺽.”
“이런 개새끼가!!”
드디어 아버님이 폭발했다. 책상을 뒤엎고 일어난 아버님이 나를 향해 짐승처럼 달려들었다. 그 순간 어머님이 아버님을 붙잡았고 조민영이 나를 보호할 듯 감쌌다.
“여보오오!! 참아요! 참아!!”
“아빠 안 돼!! 때, 때리지 마!!”
“이런 개자식이!! 이 자식이 감히! 우리 딸을! 우리 딸을...!”
“...”
“내가 어떻게 키웠는데!”
“아빠 그만해 좀!! 벼, 별거 아니잖아!”
“별게 아니긴 뭐가 별 게 아니야! 어?! 평생 이런 거 없던 애가 갑자기 딜도가 나오고, 정액 묻은 남자 팬티를 가져왔는데! 이게 안 이상해?! 어?!”
“그게 뭐 어때서!!”
“넌 고등학생이야! 고등학생! 다 큰 남자랑 동거하면서 뒹굴 거리고 있었다는 게 명백히 밝혀졌는데 이게 안 이상하다고?! 이게 알려지면 너 시집이나 갈 수 있을 것 같아?!!”
아버님이 화내는 게 이해도 되는지라 나는 조용히 무릎이나 꿇고 있었다. 나도 내 딸이 어느 날 갑자기 정액 묻은 남자팬티랑 딜도를 가지고 와가지고 집에서 윙윙 거리고 있으면 화날 것 같긴 했거든.
어머님이 거의 매달리다시피 아버님께 업혀있고 조민영이 그 앞을 가로막고 있었지만 말리기는 무리다. 아버님의 지금 모습은 아드레날린을 들이킨 광전사의 모습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하지만 놀랍게도 이 소란을 진정시킨 것은 조민영이었다.
“그럼 오빠한테 시집가면 되겠네 뭐.”
“... 뭐?”
“... 어?”
“지훈 오빠랑 하면 되잖아. 결혼.”
“...”
“...”
당돌한 말에 모두가 할 말을 잊었다. 아버님이 충격을 받은 듯 뒷목을 잡으며 주저앉았고 어머님이 한숨을 푹푹 쉬는데 그 때, 파란을 예고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들려서는 안 되는 소리였다.
삑삑삑- 삐리릭-
드르륵-
철컥-
도어락이 열린다. 설마... 그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