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화 〉[스핀오프] 정조관념 이상한 여고생 썰 - 4
“짜잔~ 김치찌개 완성!”
“자, 잘 먹을게.”
식탁에 김치찌개를 내려놓은 조민영이 물까지 떠서 내 앞에 내려놓았다.
참... 이러니까 신혼 분위기 같고 좋긴 한데 말이야.
도대체가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겠다.
8평 원룸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렇겠지만, 좁기 때문에 딱히 식탁이랄 게 없다. 접이식 다용도 탁자가 식탁이자 탁자이자 책상인 터라, 우리는 바닥에 앉아 있었다.
의자에 앉는 식탁이었다면 모를까. 바닥에 앉는다는 건 말이다. 남자를 유혹하기 아주 좋은 상황이라는 뜻이다. 남자 와이셔츠를 입고 아래에는 뭘 입었는지 모르는 여자애가 바닥에 앉아 허벅지를 드러내놓...
“... 너 그거 내 팬티 아니야?”
“네? 아. 네. 맞아요. 오빠 분홍색 사각 팬티도 있더라고요.”
“... 어... 하...”
“분홍색은 오빠가 입을 거였어요? 벗을까요?”
“아, 아니. 그, 그런 뜻이 아니라... 패, 팬티만 입고 있으면 좀...”
“왜요? 그냥 반바지라고 생각하면 되잖아요. 똑같이 생겼는데?”
“... 그, 그렇긴 한데... 됐다... 바, 밥이나 먹자. 마, 맛있겠다! 아하하!!”
너무 태연하게 반문하니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아이는 성관념이 뭔가 대단히 이상한 아이 같다. 세상에 처음 만난 남자의 팬티를 입는 여자가 어디 있어? 순수한 거야? 뭐야 대체?
더군다나 원래 민영이가 입고 있던 팬티는 빨래바구니에 있었으니까.
저 사각 팬티 안 쪽은 노 팬티라는 이야기인데...
와 미치겠네 이거.
진짜 섹스라도 하자 이거냐? 얘는 어떻게 경계심이 없어. 경계심이.
조민영은 다리를 한쪽으로 모아서 앉아 있었는데, 하얀 와이셔츠가 절묘하게 팬티를 가리고 있었다. 그러니 정말 아무것도 안 입은 것 같다. 그 밑으로 뻗어 나온 하얀 허벅지와, 허벅지 안쪽 근육이 꿈틀거리는 걸 보니 내 남근도 어쩐지 꿈틀...
“오빠! 김치찌개를 왜 코에 넣어요?”
“어? 아. 아아! 내, 냄새를 맡으려고! 이야 냄새도 죽인다야!”
“그래요? 히히. 맛은요?”
후르릅-
엄청 뜨겁네! 뱉을 뻔!
“마, 맛있지! 이야! 요리도 잘하는구나?!”
“혼자 살아서 요리 잘해요. 저.”
“... 혼자 살아?”
“네. 부모님은 지방에 사셔서 저만 서울 올라와서 살아요.”
“어쩌다 그렇게 됐어?”
“작년까지는 고모부랑 고모랑 같이 살았는데, 돌아가셨나보더라고요.”
“...”
뭔가 말이 이상하다. 마치 남 이야기하듯...
나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어쨌건 심각한 이야기는 사절이다. 남의 이야기마저 보듬어 줄 여력이 없었다.
밥을 다 먹자 조민영이 자기가 설거지까지 하겠다며 나섰다. 나는 그런 그녀를 화장실로 떠밀었다.
“됐고, 씻어. 설거지는 내가 할 테니까.”
“제가 해드려야 하는데...”
“괜찮다니까.”
그런 조민영을 억지로 화장실로 밀어 넣었다.
아. 그 순간에도 애국가만 5번은 부른 것 같다. 민영이가 방방 뛸 때마다 와이셔츠의 가슴 부분이 출렁거리는데 눈을 둘 데가 없었다. 단추 사이에 하얀 살결이 보일 때마다 남근이 지도 좋다고 춤을 춰댄다. 안 들어가겠다고 버티길래 억지로 화장실에 밀어 넣을 때에는 셔츠 너머로 야들야들한 살결이 느껴지자...
오 신이시여. 제발...
내가 대체 무슨 죄를 지었다고.
물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마저도 내겐 너무나 강한 유혹이었다.
그녀는 여고생이다.
그 여고생은 오늘 남자 변태에게 당했다.
변태로부터 구해줬기 때문에, 그녀 말로는 내가 운명의 상대란다.
그런 말을 민영이에게 듣지 않았다면 나는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 여고생이건 뭐건 성관계를 요구했을지 모르겠다.
그녀는 나를 믿고 있다. 내가 처신을 잘못하면 남자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가질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고, 어른이라는 자각 정도는 있었다. 정신 차리자. 쟤는 갈 곳 없는 불쌍한 가출 여고생이다. 그저 오늘 하룻밤 재울 뿐이야.
설거지를 하고 구석에 넣어둔 침낭을 꺼냈다. 침낭은 보통 겨울에 쓰던 건데 이 시기에 쓸 줄은 몰랐다.
그 때 물소리가 끝났다.
“후아~ 시원하다.”
“...”
젖은 모습으로 나오는 민영이의 모습을 보며 또 눈을 돌렸다. 셔츠가 조금 젖어서 살결에 늘러 붙어 있다. 정말 눈 둘 곳이 없다. 저 여자애는 정말 남자를 유혹하는 모든 방법을 다 익혀온 것 같다.
“침대에 올라가서 자. 나는 아래에서 잘 거니까.”
“네? 왜요 오빠?”
“아무리 그래도 여자애를 바닥에 재울 수는 없잖아.”
“아니요. 그런 뜻이 아니라...”
“아아! 손님 입장 주인 입장 이런 건 신경 쓰지 말고.”
“아니아니. 그냥 같이 침대에서 자면 되잖아요.”
“...”
“뭐하러 내려가서 자요?”
그래. 그치. 두 사람이 같이 자는데 이불이 마땅치 않으면 그냥 침대에서 둘이 같이 자면 돼지. 내가 그 생각을 왜 못했을까?
왜 못했겠어. 남근만 안 달렸어도 같이 자자고 했겠지.
내가 말을 잃은 사이 조민영이 침대에 펄쩍 뛰어들었다.
“아~ 좋다! 오빠 빨리 이빨 닦고 와요. 자자! 얼른!”
“... 그, 그래...”
이게 만화였다면 코피를 터뜨렸을 거다. 나는 긴장으로 떨리는 손으로 이빨을 닦았다.
내가 왜 이렇게 설레는 거지?
아무리 예뻐도 쟤는 고등학생이야! 고등학생!
심장이 처음 연애하던 시절처럼 마구 떨리고 있다.
이빨을 닦고 나왔다. 조민영이 침대를 손으로 팡팡 하고 내려치며 말했다.
“오빠! 불 끄고 들어와요!”
“... 저기... 내, 내가 그래도 아래에서...”
“같이 자요. 나 무섭단 말이야.”
“...”
무섭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뭔가 좀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남자라 여자를 잘 모른다. 남자와 여자는 생물적으로 그냥 다른 종류다. 다르기에 다른 사고를 가지고 있는 것이고, 그렇기에 서로 사랑하는 게 아름다운 것이다.
따라서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분명 저 여자애는 낮에 어떤 변태에게 당해버렸다. 버스 좌석 옆자리에 앉아 어떤 남자가 자신을 보며 자위행위를 했다는 굉장히 충격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의지하는 걸까?
그럼 억지로라도 참아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자. 그럼.”
나는 불을 끄고 침대로 걸어가며 정신무장을 단단히 했다.
저건 여자가 아니라. 짐승이다.
사람이 아니야! 정신차려!
만약 덮치는 날에는 김지훈 너는 개새끼다!
사람이 아니야!
개새끼야!
*
“이 개새끼야!”
“...”
“이런 씨발 병신 새끼!”
“... 후우.”
“자지 떼버려라!” “씨발놈 나가 뒤져라.” “븅신.”
“알아.”
“씹쌔기 저 새끼 자지 없는 거 아냐?” “너 내시지?” “고자냐?”
“그런가봐.”
“야. 뭔데. 뭔 일인데?”
“아 글쎄 과장님. 쑥덕쑥덕. 그랬답니다!”
“에유... 쯧쯧쯧. 줘도 못 먹어요.”
“휴우...”
회사에서 이야기를 꺼내는 게 아니었다.
어젯밤, 정말 한 뼘 앞에서 여고생이 잠들어 있다는 생각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조민영은 그 예쁜 얼굴로 나를 마주보고 자고 있었는데, 그녀의 숨결이 나올 때마다 비누냄새인지 뭔지가 계속 나를 자극해왔다.
남근은 정말 풀발기 상태로 당장이라도 돌격 앞으로를 외치고 있었고, 눈은 감고 있었지만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망상 때문에 뜬 것보다 자극이 더 심했다.
생각해봐라.
이불 하나에 몸을 잔뜩 웅크리고 여자애가 바짝 붙어있다.
근데 겁나 예쁘다. 진짜.
몸매도 죽여준다. 보면 바로 꼴릴 정도다.
그런 애가 내 와이셔츠를 입고, 내 팬티를 입고, 노 팬티에 노브라에.
무방비하게 잠들어 있다.
이런데 어떻게 자냐고. 이걸...
“됐고. 한 잔해. 아유. 어쩐지 낮에 졸더라.”
“네네.”
낮에 작업을 하며 계속 조는 바람에 동기하나가 왜 그렇게 조냐며 내게 물었다. 그래서 대충 이야기를 해줬을 뿐인데, 회식자리의 술안주가 되어 계속 씹히는 중이었다.
과장의 건배 제의에 다 같이 소주잔을 맞대 술을 들이키며 또 내 이야기를 시작했다.
“와. 나는 왜 그런 일 없나. 여고생 하나 오면 잘해줄 텐데.”
“너처럼 지저분한 상상만 하는 새끼한테는 절대 안 생겨 인마.”
“대리님은 그럼. 여고생이 집에 들어오면 한 판 안 뛸 거예요?”
“... 흠.”
“이거 봐. 이거 봐. 착한 척 하는 사람들이 원래 뒤로는 더하다니까?!”
최대리가 목소리를 높이자 윤대리가 머리를 긁적인다. 옆 테이블에 있던 과장 하나가 소주잔을 들고 내가 앉은 테이블로 오더니 뒤늦게 물었다.
“야. 뭐 어떻게 된 건데. 난 자세히 못 들었어. 김지훈 대리! 여고생이랑 하룻밤 잤다며?”
“아 진짜! 과장님! 조용히 좀 말해요! 자긴 누가 자! 아무 짓도 안했어요!”
“한 이불 덮고 잤다며?”
“그건 맞는데요...”
“얼굴은 예뻐?”
“... 엄청 예뻐요. 연예인 수준이에요.”
“에이~ 얼굴이 예쁜데 어떻게 한 이불 덮고 하루를 참아. 남자가. 못 생겼지? 솔직히 말해봐.” “제 말이 그거예요! 과장님! 김지훈이 저 새끼 고자라니까요?!” “여자일지도 몰라.” “줘도 못 먹어.” “여자는 아냐. 짜샤. 내가 쟤 꼬추 봤는데 엄청 커. 거물이야.” “후타나리 이런 거 아냐? 둘 다 달린...” “게이일 수도 있지.” “어쩐지... 저번에 나랑 자는데 자꾸 날 만지더라니까.”
나는 가만히 있는데, 지들끼리 쑥덕댄다.
남자들의 반응은 다 그렇다. 그래. 솔직히 나도 남의 일이라면 저렇게 신나서 말했을 거다. 하지만 이게 내 일이 되니까 차마 막 하지 못하겠다 이거다. 아이가 혹여나 상처받지 않을까 걱정도 됐고...
그 때 최대리가 킥킥대며 말했다.
“야. 애가 고등학생이면 완전 여자야. 여자!”
“그거야 그렇지. 그걸 내가 모르겠냐? 사복 입혀놓으면 구별 못해.”
“그래! 그거야. 그러니까 일단 박아!”
“... 뭘?”
“그거 임마. 그거. 고딩이건 중딩이건 여자는 일단 박으면. 그 다음부터는 너한테 꼼짝 못...”
빡!
그 때 옆자리에 앉아있던 윤대리가 신나서 떠들어대는 최대리의 머리를 후려쳤다. 최대리가 머리를 감싸 쥐며 외쳤다.
“아 왜 때려요?!”
“이 새끼 눈치 존나게 없어요. 팀장님 딸이 지금 중학생인데 뭐가 어쩌고 저째? 미쳤어?”
“... 아니 그냥...”
최대리가 그제야 팀장 눈치를 본다. 저 멀리서 팀장이 날카롭게 최대리를 노려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내 앞에 앉았다.
“대충 이야기는 들었는데... 그 여자애가 김 대리를 유혹하는 거 같은데. 객관적으로 봐도.”
“그렇습니까? 팀장님?”
“요새 애들이 만만치 않아. 우리 딸이 올해 중1인데 콘돔을 가지고 다니더라. 콘돔을.”
“...”
그 말에 주위가 싸해진다.
“굉장히 적극적이야. 옛날에는 여자들이 남자들이 알 듯 말듯하게 유혹했다면 요즘은 뭐랄까. 대놓고 함정을 판다고 해야 하나?”
“예를 들면요?”
“예를 들어서... 내가 여자인데, 마음에 드는 남자랑 같이 영화가 보고 싶어. 그럼 그 남자한테 가서 ‘무슨 영화 재미있더라고요.’ 라고 말하며 데이트를 유도하는 게 옛날 여자라면. 요즘 여자들은 아무 것도 모르는 척 ‘영화 보러 갈래?’ 라고 말하는 거지. 친구끼리도 갈 수 있는 건데 뭔 상관이냐는 거야.”
“음...”
“그러다 마음 맞으면 사귀는 거고. 안 맞으면 친구끼리 그냥 영화 보러 간 셈 치는 거지.”
“아니 그래도...”
“그치. 아무리 그래도 그 애랑 김지훈 대리랑 나이차이가 10살이 넘을 텐데... 일단은 대화를 좀 해보고. 그 아이가 순간의 감정에 취해서 그럴 수도 있으니까...”
*
-꽂아! 바보야!
“... 누나는 여자가 무슨... 꽂아가 뭐냐. 꽂아가.”
-여자니까 꽂으라고 하지! 남자끼리는 박으라고 하잖아!
“그런 말이 아니라...”
-아오! 김지훈 이 답답아! 그러니까 결혼할 여자도 못 만나고 있지!!
“... 뭘 또 그렇게까지 이야기를 해?”
회식이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너무 답답해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다가 친구의 부인에게까지 전화기가 넘어갔는데, 친구나 그 친구 와이프나 나와 아주 친한 사이였다.
대학교 같은 동아리 출신으로 오래 알고 지낸 사이. 그 누나가 여자 입장에서. 유부녀로서 내숭 0%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여자애가 필살기를 계속 날려대고 있는데! 남자가 어떻게 그걸 몰라! 바보 멍청아아아아!!!!
“필살기?”
-재워줘요! 1Combo! 남자 와이셔츠! 2Combo! 요리! 3Combo! 남자 팬티! 4Combo! 노브라! 노팬티! 샤워! 같이 자요! 그 외 기타등등!! 108Combo! 멍청아! 둔탱이! 평생 솔로로 살아라!! 대놓고 티를 내는데 눈치 좀 채라!
악담을 들어놓는 누나와 통화를 억지로 종료하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콘돔을 샀다.
주위에서 하라고 떠미니 진짜 할 생각이 들었다.
아. 진짜 나 쓰레기인가.
괜한 죄책감이 든다.
상대는 순수한 여고생인데... 내가 이래도 되나.
집 앞에 서서 고민 끝에 도어락을 열고 비밀번호를 눌렀다. 얼마나 심란한 지 몇 번 틀리기까지 했다. 그리고 문을 여는 순간. 내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졌다.
“다녀오셨어요?”
“... 어... 어.”
교복을 입은 조민영이 앞치마를 하고 현관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 상태로 나를 보며 방긋 웃는다.
... 이거 뭔 상황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