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화 〉[스핀오프] 정조관념 이상한 여고생 썰 - 2
“재워... 달라고?”
“네. 아저씨 집에서 자고 싶어요.”
“...”
이건 그냥 순수하게 자고 싶다는 의미일 거다. 그래. 그런 거다. 저 깜박이는 눈망울을 보라. 흑요석 같은 두 눈동자에는 그 어떤 의미도 담겨있지 않다. 순간적이나마 여고생과 성관계를 맺는 상상을 해버린 내가 썩은 놈이다.
이건 내가 착각하고 있는 거다. 여고생은 단순하게 잘 곳이 필요한 가출여고생이다.
나는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하며 여고생을 살며시 밀었다.
“이, 일단 생각해보자. 좀 떨어져 줄래?”
“... 아저씨 지금 제 가슴만지고 있는데.”
“히이익! 아, 아냐. 미, 미안해. 이건...!”
너무 붙어있어서 내가 손으로 가슴을 미는지도 몰랐다. 시발! 알 게 뭐야! 온갖 살결이 지금 다 달라붙어 있는데 가슴이 어딘지 내가 어떻게 알아!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게 느껴진다. 내가 손을 번쩍 든 채 사과하자 여고생이 그제야 떨어지더니 방긋 웃었다.
“그럼 재워주실 거죠?”
“... 후아... 미치겠네.”
괜히 덥다. 나는 셔츠를 펄럭거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디까지 온 거야 대체. 내릴 때가 된 것 같... 맞네. 내릴 때가 됐다. 여고생이랑 붙어있던 게 얼마나 긴장됐던지 시간이 엄청나게 빨리 흐른 것 같다. 버스가 삼선 카드 근처를 지나고 있기에 나는 재빨리 벨을 누르고 일어섰다.
삐-
그리고 여고생을 내려보며.
“아저씨가 지금 좀 바쁘다. 112에 전화하면 경찰 아저씨들이 도와줄 거야. 알았지?”
“네?”
“그럼 가볼게. 힘내고!”
그렇게 말한 후 그 아이에게 붙잡히기 전에 버스에서 후다닥 내렸다. 그리고 거리에 나서서 숨을 몰아쉬는데 누가 내 등을 콕콕 찔렀다. 뭐야?
“...”
여고생이다. 봄 햇살처럼 맑게, 그녀가 웃는다.
“히히. 어서 가요. 아저씨. 이제 집에 가는 거예요?”
“... 뭐?”
“아저씨네 집 어디에 있어요? 여기서 멀어요?”
와- 얘 진짜 왜 이래?
나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버스정류장에 서 있던 사람들이 이쪽을 힐끗거리고 있었다. 남자들 몇몇은 여고생이 예뻐서 쳐다보고 있었지만, 나는 괜히 눈치가 보였다. 사람들이 원조교제라 오해할 것 같았거든.
오빠, 동생으로 봐주려고 해도 정도가 있지. 나는 나이가 서른이 넘는다. 그런 아저씨가 고등학생이랑 붙어있으면 뭐라고 생각할까?
“잠깐 따라와 봐.”
“네!”
여전히 해맑은 여고생을 데리고 가는 내내 시계를 흘낏거렸다. 삼선 카드에서 컴플레인이 들어 온 이후로 한 시간 정도가 흘렀다.
가만있자. 우리 서버가 16대고, 스탠바이가 8대인데... 모조리 나가버렸다면 지금 쯤 전화가 계속 와야 정상인데... 그러니까 대충 뭔가 수습은 됐다는 이야기야.
여고생이 아무리 예뻐도, 나는 일이 중요했다.
내 담당 고객사 서버가 죽게 되면, 내 경력에 악영향이 미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고, 카드사 서버가 죽는 것이기 때문에 고객들이 갑자기 카드 결제를 못하는 상황이 생긴다. 회원 가입자 수가 백만 쯤 된다고 치면 백만 명이 카드 결제를 못한다는 뜻이다.
그래도 전화는 안 왔으니까... 10분 정도만 이야기하고 들어갈까? 나는 아이를 설득해서 경찰에 데려갈 생각으로 카페로 향했다.
“뭐 먹을래?”
“나 딸기 스무디!”
“여기 딸기 스무디 한 잔하고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음료를 받고 구석진 자리로 아이를 끌고 가서 물었다.
“너 말이야. 재워달라는 게 무슨 뜻이야?”
“말 그대로인데요?”
“... 우리 집에서 자고 싶다. 그런 뜻이라고?”
“네. 맞아요. 나 아저씨네 집에서 잘래요.”
“...”
그 당돌함에 할 말을 잃었다. 세상에 오늘 처음 만난 남자. 그것도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사람에게 재워달라니. 이거 미친 거 아닌가?
어이없어 여고생을 보다가 순간 멍하니 빨대를 무는 입술을 보고 말았다.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입술 위로 빨간 스무디가 묻으니 그렇게 매혹적일 수가 없었다.
워!
뭐야!
정신 차려. 미쳤어?
나는 괜히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이름이 뭐야? 명찰은 왜 안 달고 다녀.”
“명찰 여기 있는데요?”
“응?”
여고생의 손짓에 따라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그 아이의 명찰은 교복 셔츠 아래쪽 단추 있는 곳에 달려 있었는데, 단추가 몇 개 풀려 배꼽이 보였다. 나는 이름만 확인하고 얼른 고개를 돌렸다. 이름 ‘조민영’. 이 얘는 본능적으로 남자를 유혹하는 애다. 이성에게 경계심 1%도 없는 그 모습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모르는 거다. 순수한 건지... 어떤 건지.
“그래. 민영아.”
“눼~”
“가출했어?”
“아니요~ 왜요?”
“... 후우.”
이 철없는 애한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가르쳐줘야 하는 걸까.
나도 세상을 잘 모르기는 하지만. 상식적으로 여자애가 남자에게 재워달라는 건 말이 안 된다. 이건 정조관념이 뭔가 이상한 게 분명하다. 집안에 뭔가 문제가 있거나, 어릴 때 성적 학대를 받아 아이가 뭔가 사고구조가 잘못됐을 수도 있다.
“민영아. 잘 들어봐. 아저씨가 보기에는 지금 우리 상황이 굉장히 이상하거든?”
“뭐가요?”
“음. 아저씨는... 나이가 30이 넘는 남자고. 너는 고등학생인...”
“18이요!”
“어. 그래. 18살인 여자애잖아?”
“아~ 오빠라고 부르라고요? 알았어요. 오빠. 히히. 나이가 많긴 해도 훈남이니까 오빠라 불러줄게요! 사실 아까 저도 고민 좀 했다니까요? 아저씨라 부를까, 오빠라고 부를까 하고요.”
“...”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아예 개념이 없잖아?
“그런 뜻이 아니라. 예를 들어서 어떤 남자랑 여자랑 한 방에서 하룻밤을 보냈어. 그럼 뭐 어떻게 되겠어?”
“음~ 임신?”
“... 어, 어... 그, 그래. 그렇지?”
무언가 과정을 엄청나게 건너뛴 것 같지만 그렇다 치고.
“근데 이 아저씨는.”
“오빠!”
“... 그래. 이 오빠는 남자야. 근데 내가 만약에 니 말대로 너를 내 방에서 재워. 그럼 어떤 일이 생기겠어?”
“제가 오빠 애를 임신해요.”
“... 하아...”
말을 하면 할수록 수렁에 빠지는 느낌이다. 나는 시계를 힐끗 댔다. 5분 남았다.
“그럴 일은 없을 거야. 없을 건데.”
“그럼 문제없네요? 그죠?”
“문제가 왜 없어?”
“저 임신시킬 거예요?”
“!”
그 말에 깜짝 놀라서 주위를 둘러봤다. 임신 이야기에 어쩐지 사람들이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나는 괜히 얼굴이 붉어져서 손부채를 하며 말을 이었다.
“좀. 조용히 좀...! 자. 정리하자. 남자랑 여자랑 한 집에서 자는 건... 어... 도덕적으로 바르지 않는 행위야. 그리고 음... 오빠 같은 어른들은 너와 같은 가출 청소년을 보면 신고를 해야 할 의무가...”
“가출 안했는데?”
“... 와. 씨... 뭔 말을...”
“오빠. 인기 없죠?”
“뭐?”
“나 어떻게 생각해요?”
이건 또 무슨 전개야? 나는 이 당돌한 여자아이의 질문에 땀을 뻘뻘 흘리며 답했다. 뭘 어떻게 얘를 설득해야할지 모르겠다.
“예쁘다고 생각해. 또래에 비해서 성숙미도 느껴지고... 전체적으로 굉장히 매력적...”
“근데 그런 여자가 쉽게 한 번 하게 해주겠다는데, 뭘 그렇게 고고한 척해요?”
“... 뭐?”
“솔직히 우리 터놓고 말해요. 저랑 한 번 하고 싶지 않아요?”
“...”
“하룻밤 재워줘요. 대신 한 번 대줄게요.”
도발적으로 유혹해오는 말이었지만, 나는 전혀 꼴리지 않았다. 순간 이 년이 미쳤나? 싶었다. 그 때 책상 아래로 민영이의 다리가 내 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하얀 맨다리가 내 종아리 사이로 파고들어와 남근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발도 예쁘다. 잡티 하나 없는 피부에, 발톱도 깨끗하다. 뽀송뽀송해 보이는 게 피부가 꼭 아기 발 같다. 그 발이 내 남근으로 향한다.
분명 야동에서나 나오는 꼴리는 상황인데, 화가 난다. 무엇이 얘를 이렇게 만들었단 말인가?
나는 그 발을 꽉 잡고 조민영을 노려봤다. 그녀는 여전히 웃고 있다.
“웃어?”
내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하자 민영이도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들은 것 같다. 나는 그녀의 발을 붙잡고 힘을 꽉 주어 눌렀다.
“아아아!! 아, 아파요!!”
조민영이 몸을 비틀며 소리를 질렀다. 주위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나는 주위에서 나를 쳐다보든 말든 조민영에게 딱딱하게 말했다.
“이 아저씨가 학생이 안타까워서 좋게 말을 해주려하는데 이게 뭐하는 짓이야.”
“오, 오빠...”
“너 학교는 어디야? 너 부모님이랑 선생님이 이러는 거 알아?”
“아, 아니 오빠! 왜, 왜 그래요.”
“너 아직도 내가 장난하는 거 같아? 너 여기 딱 있어. 경찰에 신고하고 올 테니까.”
살며시 그녀가 내게 웃으며 애교를 부려보지만, 나는 지금 화가 난 상태였다. 이 애한테도 화가 났지만 대체 어떤 집이기에 애가 이지경이 되도록 방치했단 말인가? 내가 정말 경찰을 부를 생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을 때였다.
“오빠아아아!!”
“!!”
조민영이 갑자기 카페 바닥에 무릎을 꿇더니 내 바지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오빠!! 진짜 안 돼!! 나 한 번만 봐줘!!”
“... 아, 알았... 윽! 야 거, 거긴!”
“오빠... 용서해줘... 응? 한 번만...!”
“알았다니까!”
그 와중에 남근을 쥐어뜯고 난리가 났다. 카페 사람들도 뭔 일인가 하고 쳐다보는 중이었고, 나는 난처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알았어. 이, 일단 앉자. 앉자. 응?”
막 울먹거리는 애를 자리에 억지로 앉히고 주위에 양해를 구했다. 어떤 남자가 뭐하는 짓이냐. 변태 아니냐며 항의를 했다. 워낙 흉흉한 세상이다 보니 내가 고등학생 납치범이라도 되는 줄 알았나보다.
조카라고 속이고 대충 넘어갔다.
“후우...”
나는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으며 냅킨을 들고 와서 조민영 옆에 앉았다. 민영이가 손으로 눈물을 닦기에 냅킨을 건네주며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그만 울고. 너 잘한 거 하나도 없어. 알지?”
“흐우... 네. 네... 경찰에 신고하지 마요... 으으.”
“부모님은 괜찮고?”
“부모님도 안 돼요...”
대체 뭐지? 뭔가 복잡한 집안 사정이 있는 건가?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 그 사이 조민영이 내 품에 냉큼 안겨왔다. 머릿결에서 풋풋한 향이 풍긴다. 나는 손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고 있다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안고 토닥여줬다. 그러자 그녀의 손이 또 내 사타구니와 등 근육을 탐스럽게 만지기 시작했다.
애정결핍인가? 뭔가 이상했지만 그냥 그렇다 치자.
조민영의 흐느낌이 진정되자 나는 다시 자리로 돌아가 그녀와 얼굴을 마주했다. 와. 얘는 우는 얼굴도 예쁘네. 연예인 할 외모인데...
“자. 민영아. 이제 진정 됐지?”
“네. 오빠.”
“그래. 자. 봐봐. 음... 너는 법을 지켜야 된다는 생각은 있어?”
“법이요? 네. 지켜야죠.”
“실종아동 보호법이라는 게 있어. 너 같은 학생들을 나 같은 일반인이 정당한 이유가 없이... 막 재워주고 그러잖아? 그럼 불법이야.”
“... 그래요?”
“그렇다니까? 또, 만약에... 이 오빠가 너를 재워줬어. 근데 니가 집에 돌아간 다음 내게 성폭행을 당했다며 신고를 하잖아? 그럼 오빠는 바로 잡혀갈 거야. 그러니까 너를 경찰에 신고하려는 건, 너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나를 위해서이기도 해. 무슨 말인지 알아?”
“... 성폭행...?”
“성관계를 합의 하에 했다고 누가 믿어줄 거야? 니가 만약에 강제로 당했다고 하면, 나는 몇 달이나 수사를 받아야 할 거야. 게다가 이런 경우 내가 무죄를 증명할 방법이 마땅치가 않아. 알겠어?”
“... 흐음...”
내 말에 조민영의 말문이 처음으로 막혔다.
휴우.
이제 좀 알아먹는구나. 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아메리카노를 마시기 시작했다. 정말 목이 탄다. 목이 타.
그 사이 조민영은 골똘히 생각에 잠기더니 가방에서 노트를 하나 꺼냈다. 노트 한 장을 찢은 그녀는 탁자 위에 그것을 놓고 뭔가를 펜으로 쓰기 시작했다.
얘가 뭐하는 거지?
호기심이 생겨 물었다.
“... 민영아.”
“네?”
“너 지금 뭐하는 거야?”
“각서써요.”
“... 각서? 무슨 각서?”
“성관계 합의서요.”
“아~ 그래. 성관계 합의... 푸훕-! 쿨럭! 쿨럭! 뭐, 뭐?!”
그녀의 말에 아메리카노를 뱉고 말았다. 내가 잘 못 들은 건가? 입에서 흐르는 아메리카노를 손으로 닦으며 조민영을 보았다.
교복을 입은 여우가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오빠도 사인하실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