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에필로그 - 9
“아... 좀! 가만히 좀 갑시다! 어차피 다 끝났어요!”
“잠깐만! 김지훈! 이 개자식아!!”
형사 둘에게 붙잡혀 나오던 이현지. 그녀는 형사 둘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쳤지만 형사들의 힘이 더 강했다. 이현지는 그들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어딜 만져! 이 새끼들아! 경찰이 이래도 돼?! 이거 성희롱이야?!”
“누가 만집니까. 조용히 갑시다!”
“팔 놔! 나 지금 불쾌해?! 감히 여자의 팔을 만져?! 이거 성희롱이라구!!”
“...”
“놔!! 놓으라... 어?”
그렇게 팔에 붙잡혀 가던 이현지. 그녀는 무언가 이상한 것을 깨달았다. 형사들이 마치 돌이라도 된 듯 굳어버린 것이다. 지나가는 차도 멈추어 섰고, 바람도 멈추었다.
이현지는 이 이상한 상황을 이해하자마자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아, 아냐... 아냐...!!”
“아니긴 뭐가 아냐. 바보 같은 년.”
“껄껄. 이렇게 될 줄 알고는 있었지만 재미는 있구만.”
그 때 그녀의 팔짱을 끼고 있던 형사 둘의 모습이 변했다.
한 명은 붉은 드레스의 여인으로, 다른 한 명은 양복을 입은 노 신사로.
그 둘의 모습을 발견한 이현지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제, 제발! 다시 기회를 주세요! 이번에는 정말! 이번만큼은 정말 김지훈을 유혹할 수 있...!”
“자네 입으로 말하지 않았던가? 한국 남자들은 모두 잠재적 성범죄자라며? 그러니 압도적으로 섹시한 육체만 주어진다면 김지훈을 유혹하는 것 정도는 우습다면서?”
노신사가 말하자 여인이 말을 받았다.
“여성 상위 세계로 보내달라고 해서 보내줬더니 자살을 하다니. 너 참 대단해? 왜 생각보다 쉽지 않았나보지? 왜? 거기가면 남자들이랑 쉽게 섹스할 수 있을 줄 알았어?”
“여, 여성 상위 세계다보니 세상이 저에게 너무 요구하는 게 많았어요! 여자니까 울지 마라! 여자니까 혼자 알아서 해라! 여자니까 적극적으로 행동해라! 여자니까 용기 있게 행동하라! 그런 세계에서 어떻게 사냐구요!! 제발 김지훈처럼 다시 기회를 주세요! 제발요!”
이현지는 무릎을 꿇고 엉엉 울고 있었다. 그녀는 여성 상위 세계로 가기를 희망했다가 막상 여성이 우위에 있는 세계에서조차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자살을 해버렸다. 성별의 우위 여부는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별 거 없었고.
이현지를 싸늘하게 내려 보던 여인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돼.”
“어, 어째서!!”
“김지훈은 스스로가 원했던 정조역전세계에 대한 욕망을 뒤로하고, 고환까지 우리에게 바치려고 했지.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둘 모두! 고자가 되면서까지 그가 원했던 것?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행복을 원했어. 누군가는 사랑에 아파하지 않기를 염원해주었고, 누군가는 불임이 낫도록 기도했으며, 누군가는 성폭행 사실이 없어지도록 빌고 또 빌었어. 아무리 우리라 해도 감동 받을 수밖에 없잖아? 우리는 김지훈의 조건을 받아들이고 고환 하나만을 조공 받으며 한 가지 시험을 하기로 했지. 지금 그는 시험을 완벽하게 통과했어. 정조역전세계에서 맺었던 인연을 되찾으니까.”
“아, 아직 아니잖아요! 아직 장현정과 이어지지 않았잖아요!”
이현지의 발악을 듣던 노신사가 껄껄 웃더니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추악하구나 추악해! 아주 맛있겠어! 너는 뚱뚱한 몸을 날씬하게만 바꿔주면 김지훈을 유혹할 자신이 있다고 했지? 그래. 처음 만났을 때처럼 섹스나 매일 했다면, 김지훈은 결국은 너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을 거야. 그럼 시험은 실패로 돌아갔겠지.”
“으으으...”
“하지만 어리석은 너는 간악한 술수를 부리고 말았어. 이 모든 것은 네가 자초한 일이다.”
“끄아아아아!!!”
노신사가 손에 힘을 주자, 이현지는 그 노신사의 손에 빨려 들어갔다. 마치 뜯어 먹히듯. 노신사는 손을 몇 번 주물럭거리더니 만족한 듯 웃었다.
“흐음... 추악한 향. 아주 좋군.”
*
“아빠! 이게 아빠 대학교 때 사진이야?”
“아... 그거. 대학교 때 사진이긴 한데 이게 아직 있었네?”
한 아이가 책장에서 낡은 사진첩을 들고 낑낑거렸다. 남자는 그 사진첩을 보고 난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눈치를 봤다. 그런 그의 행동을 보던 여자가 웃으며 말했다.
“뭘 눈치를 봐.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아니 그래도... 당신이 좀 민망할 것 같아서.”
“왜? 뭐가? 뭐가 민망해?”
아이는 아빠의 바지에 매달려 엄마와 아빠를 번갈아 보았다. 아빠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 퍼진다. 그는 아이를 번쩍 들어 안으며 말했다.
“그게 말이야... 아빠가... 여보. 이거 어떻게 말해야 해? 애기한테 설명할 만한 게 아닌데.”
“음...”
“뭔데에~ 왜 나만 따돌려~!”
아이가 울 듯하자 아빠는 당황한 듯 엄마에게 얼른 아이를 넘겼다. 아이를 받아든 엄마는 웃으며 아이에게 말해주었다.
“그게... 엄마랑 아빠는 대학교 때 너를 낳았거든.”
“정말? 대학교면... 학생이잖아? 돈 없잖아.”
“야... 너는 어떻게 그런 걸 아냐?”
“학생은 거지라던데.”
“누가 그래?”
“테레비에서.”
아이의 천연덕스러운 대답에 아빠가 엄마를 노려보며 말했다.
“당신 대체 애랑 뭘 보는 거야?”
“그냥 드라마 봤지 뭐.”
“무슨 드라마였는데?”
“캠퍼스 러브스토리.”
“... 무슨 내용인데?”
“글세... 사귀기도 전에 여자가 임신을 하는 바람에...”
“...”
“...”
갑자기 입을 다문 두 남녀. 아이가 눈치 없이 둘을 돌아보며 또 묻는다.
“엄마. 아빠. 임신이 뭐야...?”
“그, 그런 게 있어! 넌 몰라도 돼!”
엄마가 당황하자 아빠가 나무란다.
“요즘 애들 똑똑해서 다 말해도 되거든? 그거 당황하는 게 더 웃겨.”
“내, 내가 언제 당황했다구!”
“임신은 너를 그러니까... 엄마 뱃속에서 만드는 걸 뜻해.”
“그러쿠나... 근데 어떻게 만들어지는 거야? 갑자기 뿅 하고 생겨?”
“그러니까... 엄마랑 아빠가 사랑을 나누면...”
아빠가 당황해서 그렇게 말하자 엄마가 퉁명스럽게 말한다.
“우린 사랑 나누기도 전에 생겼잖아.”
“... 거 좀...”
“그래서 그게 어떻게 생기는데. 나 보여주면 안 돼?”
당돌한 아이의 말에 엄마와 아빠가 벙찐 표정을 지으며.
“하, 하여간 그런 게 있어! 넌 몰라도 돼!”
“알려줘어어어... 으에에엥...!”
“몰라도 된다니까!”
-정조역전 썰썰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