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화 〉에필로그 - 8
이현지가 만든 프로그램은 단순한 폴더 정리 프로그램이었다.
그녀는 프로그래밍에 재능이 없었다. 이건 확실하다.
프로그램 발표일이 됐다.
발표는 앞에 나와서 공학과 학생들에게 공개를 하고, 질의응답을 받는 간단한 방식이었다.
말이 간단하지, 프로그램에 대해서 상세히 이해하고 있지 않으면 대답을 못하기 때문에 종합적인 프로그래밍 능력이 뛰어나야만 했다.
"어... 이거는... 순환 방식으로 폴더를 탐색해서..."
이현지는 땀을 뻘뻘 흘리며 설명을 했다. 그녀는 내가 해준 말을 거의 외우다시피 해서 발표를 했다. 누군가 질문을 몇 개 했지만 어차피 간단한 프로그램이었다. 대답을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순서가 흐르고 흘러 장현정의 차례가 됐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올라와 발표를 시작했다. 이곳저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녀의 섹스테이프가 있다는 소문이 학과 전체에 퍼져 있는 상황. 그럼에도 장현정은 흔들림 없이 발표를 시작했다.
“제가 만든 프로그램은 메신저입니다. 단순한 단방향 통신이 아니라 양방향으로 하도록 만들었고...”
하지만 나는 그 당당한 모습이 마지막 그녀의 자존심인 것을 안다. 눈물을 흘리던 그녀의 본 모습을 보고 말았으니까.
“질문 있는데... 통신 시 프로토콜은 어떻게 짜셨어요?”
“프로토콜은 대충... 임의로 짰는데요. 단순합니다. 출발지 주소와 도착지 주소를 두고 나머지는 메시지로 채웠어요. 해당 객체는 하나로 묶어서 직렬화해서 전송했고요.”
“직렬화 부분 자세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그건...”
장현정은 생각보다 수준 높은 프로그램을 만들어왔다. 그녀의 발표가 끝나고 이제 내 차례가 됐다. 나는 단상에 올라서 학과 학생들을 둘러보며 빔프로젝터에 노트북을 연결했다. 노트북을 연결하고 프리젠테이션을 실행시키자 어떤 사진 하나가 강의실의 큰 화면을 가득 채웠다.
사진은 강아지의 몸에 내 얼굴을 합성시킨 그런 사진이었다.
“보시는 화면은 제가 임의로 만든 합성사진입니다. 이 합성 사진에 제가 만든 프로그램을 입혀 보겠습니다.”
딸깍-
내가 프로그램을 실행시키자 합성 사진에서 합성된 내 얼굴 사진만 검게 나타났다.
“보시다시피 합성된 부분은 검게 나타나죠. 응용프로그램은 자체 구조는 단순하지만. 내부 계산은 꽤 복잡합니다. 마스크를 입혀 픽셀 평준화 작업을 통해 픽셀값을 고르게 한 후, 특이점이 발생하는 부분을 잡으면 그곳이 합성된 곳인지 아닌지를 판단 가능합니다. 이렇게요.”
딸깍-
간단한 프로그램 설명을 끝낸 후 다음 화면으로 넘어갔다.
그러자 화면에는 중요부위만 가린 현정이의 알몸 사진이 떠올랐다. 그녀의 몸에는 정액이 덕지덕지 묻어있었고, 몸 곳곳에는 정액이 차있는 콘돔이 묶여 올라와 있다.
그리고 그녀를 둘러싸고 털이 가득한 지저분한 남자들의 발이 보였다. 마치 윤간을 했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웅성웅성-
“자네...!
교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학생들도 놀라서 서로를 돌아보는 눈치다. 이현지는 재미있다는 듯 키득거리고 있었고, 장현정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그녀에게는 이미 사전에 허락을 받았었으니까.
나는 소란스러운 강의실에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이 사진은 장현정 학생의 윤간 사진이라고 하여 떠돌았던 사진입니다. 해당 사진으로 인해 장현정 학생은 심적으로 큰 고통을 받아왔었는데, 프로그램으로 이 사진의 합성여부를 가려보겠습니다.”
딸깍-
내가 클릭하여 프로그램을 동작시키자 중앙에 있는 현정이의 몸을 제외한 주위의 남자 발들이 검게 변조가 됐다.
“보시다 시피. 남자들의 발은 합성 사진입니다.”
“... 이봐. 김지훈 학생! 이게 뭐하는...!”
“잠깐 기다려 주세요. 교수님. 현정이와 이미 이야기가 됐습니다.”
“...”
교수가 장현정을 돌아보더니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끝까지 지켜보겠다는 뜻.
나는 이현지에게 시선을 던진 후 다음 사진을 열었다.
웅성웅성-
“너! 김지훈...!”
다음 사진이 열리는 순간 이현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앞으로 뛰쳐나오는 그녀를 보며 내가 외쳤다.
“쟤 잡아.”
이 프로그램을 만들고 나는 몇몇 친구들을 불러 현정이에게 가진 오해를 풀어주었다. 그 친구들은 현정이에게 사과하고 내 말을 따르기로 약속했었다. 그 친구들이 발악하는 이현지를 붙잡아 바닥에 내쳤다. 이현지는 바닥에 얼굴을 비비면서도 악마처럼 구겨진 얼굴로 나를 노려보았다.
“김지훈!! 당장 그거 안 치워...!?”
나는 그녀를 싸늘히 내려 보며 말했다.
“이 사진들은 이현지 학생 노트북에서 발견한 사진입니다. 다들 아실 겁니다. 제가 이현지 학생과 깊은 관계에 있다는 걸요. 맞습니다. 저는 어느 날부터인가 이현지 학생과 섹스를 즐기는 사이가 됐습니다. 언제나 저는 그녀의 보지에 질내사정을 하며 신나게 몸을 섞었죠. 그 날도 그녀와 섹스를 즐기던 날이었습니다. 이현지 학생이 잠든 사이 그녀의 노트북을 봤는데. 아 글쎄. 이게 있지 뭡니까?”
“...”
웅성 웅성-
학생들은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교수도 어쩔 줄을 몰라 하는 그 때, 내가 다음 화면으로 넘겼다.
“!!”
학생들의 얼굴이 변했다. 화면에 뜬 것은 사진 여러 장이었다. 이현지가 어떤 남자들과 섹스를 하는 사진. 나는 그 사진들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 사진들을 아까 현정이의 합성사진과 대조해보겠습니다. 이런! 남자 발들이 딱 일치하네요? 그렇습니다. 그 사진들은 이현지 학생과 섹스한 남자들의 발이었던 겁니다. 그녀는 남자들의 발을 찍어 장현정 학생의 사진에 그것들을 합성했습니다.”
“아냐!”
“맞아! 이 쓰레기 년아! 저 년 아가리에 뭐 물려.”
“으읍...!!”
나는 이현지를 노려보며 다음 사진으로 넘겼다. 다음 사진에는 그녀의 화장실 변기대 안쪽에 숨겨진 콘돔들이었다.
“다음 사진입니다. 이현지는 섹스 중독자로서, 섹스 한 파트너의 콘돔을 모으는 취미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정액이 담겨져 있죠. 이현지는 MT 에서도 저와 섹스를 했습니다. 그 때 그녀는 제 정액을 체취 해갔죠. 그 정액이 어디에 쓰였냐?”
현정이의 사진으로 돌아왔다. 현정이의 몸 위로 뿌려진 정액과 콘돔에 담긴 정액들. 그리고 그녀의 보지에서 흐르는 정액들. 모든 것이 내 것이었다.
“바로 여기에... 쓰였습니다.”
“...”
“읍!! 읍...!”
현정이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흐느낌이 커지기 시작할 때 내가 말했다.
“이현지 학생은 MT 당일 4명만 있던 여자들 방에서 다른 학생들에게도 술을 먹여 완전히 취하게 만들었습니다. 해당하는 증언은 이미 확보 했구요. 그날 MT 전에 이현지 학생이 술 깨는 약을 산 영수증도 찾았어요. 그녀는 술에 취한 장현정 학생의 옷을 벗기고, 그녀의 성기에 제 정액을 뿌리고, 콘돔들을 올려놓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게 사건의 전말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더 이상 이 일로 장현정 학생을 괴롭히는 일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형사님.”
드르륵-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맨 뒤에 있던 사복을 입은 남자 둘이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터벅터벅 내려오더니 이현지를 누르고 있는 학생들을 물러나게 한 후, 수갑을 꺼냈다.
“현행범 체포합니다. 신고가 들어와서 왔는데 이런 이야기를 들어버렸네요. 증거물도 있으니 모두 수거해가겠습니다.”
“웃기지마! 현행범 같은 소리하네!”
“정말이에요. 김지훈 학생이 할 말이 있다 해서 왔는데... 이런 범죄를 알게 됐네요. 서까지 가주셔야겠습니다.”
“아니야!!”
“묵비권 아시죠? 말조심하세요. 법정에서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자, 잠깐만! 이건 아니야!”
“혹시 연락하는 변호사 있으면 부르시고요...”
형사 둘이 이현지를 붙잡아 나가는 동안 강의실에서는 아무도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저 현정이의 울음소리만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