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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화 〉에필로그 - 6 (80/101)



〈 80화 〉에필로그 - 6

이현지가 무섭다는 생각이 든 것은 MT 때였다.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이 기획한 MT가 어쩌다 보니 갑자기 일이 커져서 50여명이나 가는 엠티가 돼버렸다. 엠티의 규모가 커진 이유는 공대 여신  명 때문이었다.


이현지는 색기 넘치는 몸짓과 잘 대준다는 소문에 노출 많은 옷. 거기다 풍만한 가슴과... 하여간 외형적인 조건이 완벽에 가까운 그런 여자였다. 누가 뭐라 해도 대단한 미인.


다른 여신  명은, 미모는 이현지에 비하면 조금 처지는 면이 있었다. 미모가 대단하기는 했지만, 사실 외모만 보면 확 눈에 띄는 그런 미모는 아니었다.

그녀의 이름은 장현정.


늘씬한 다리가 매력적인 그녀는 언제나 꾸밈없이 웃었고, 성격도 좋아서 주위에 사람이 끊이질 않았다. 그녀가 MT에 참가하기로 하자 너도 나도 참가하는 MT가 되버린 것이다.

이현지가 외모에서 풍기는 마력이 대단하다면, 장현정은 사람 자체에서 풍기는 매력이 강렬했다. 그 매력이 그녀를 더 예쁘게 보이도록 했다. 그녀는 사람들 사이에서 웃고 있을  더 예쁜. 그런 여자였다.

"지훈아! 안녕?!”

MT 계획을 짜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 등을 한 대 쳤다. 뒤돌아보니 장현정이었다. 그녀는 내 책상 앞에 앉으며 내게 말했다.

“반가워. 잘 지내지?"
"아. 어."
"군대 갔다 와서 제대로 이야기 한 번  해봤네."
"하하. 그러게..."
"다음에 밥 한 번 먹자. 근데 너 군대 갔다 오니까 뭔가 좀 멋있어졌어. 남자다워졌다고 해야하나? 옛날에는 좀 빈약한 느낌이 있었는데..."
"운동해서 그런가? 공익은 퇴근한 후에 시간이  남는 편이거든."
"공익이 뭐야? 군대랑 그게 그거 아니야?"
"에이. 좀 다르지..."


장현정은 MT가 확정된 날부터 내게 다가와 아는 채를 했다. 그녀와는 그저 동기인 그런 사이였는데, 군대갔다온 나를 기억한다는 게 고마웠었다. 공대여신이라 내게는  그런 사이인  알았는데 나를 기억하다니...

그녀는 1년 휴학을 해서 아직 3학년 이었고, 나이를 먹은 만큼 더 성숙해 있었다.

"저 언니랑 무슨 이야기 했어?"


근데 장현정과 내가 이야기 나누는 걸 이현지가 봤나보다. 날카롭게 쳐다보는 눈이 무섭다. 이쯤 되니 아무리 예쁘고 공대 여신이라 불리는 애라지만 짜증이 났다. 내가 뭘 했다고? 오랜만에 만난 동기와 즐겁게 이야기한 게 죄인가?


물론 장현정에게 이성적으로 끌리는 건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녀를 유혹한 것도, 그녀가 나를 유혹한 것도 아니었다. 단순히 정말 동기로서 안부만을 묻고 못했던 대화를 했을 뿐인데 그것이 그렇게도 불편했단 말인가?

말이 곱게 나오지 않았다.


"밥 먹기로 해서  먹기로 했는데?"
"먹을 거야?"
"어. 동기 사이에 밥 먹는   나빠?"
"그럼 이제 오빠 나랑 섹스 못할 텐데도?"
"... 하... 야. 맘대로 해라. 너 좀 짜증나는 거 아냐?"
“뭐, 뭐?”

내 말에 이현지가 충격 받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전이었다면 미안해서 벌벌 떨었겠지만 그녀와 섹스를 하며 익숙해졌나보다. 이래서 남자는 변한다는 이야기가 있는 걸까?


“아니 시발... 섹스가 뭐 대수야? 솔직히 너 그거 가지고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 웃겨. 적당히 해.”

나는 울먹거리는 그녀를 두고 강의실을 나왔다.

*


이후에 현정이와 약속도 잡고 단 둘이 밥도 함께 먹었다. 맥주도 간단하게 마시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왜 우리 오티때 이상한 오빠 하나 있었잖아.”
“누구 말하는 거야? 준태 형?”
“아니이이! 여장한 오빠.”
“아아아... 그... 이름이 뭐였더라. 한승? 유한승?”
“그 오빠가 나보고 꽂아준다고 이력서만 내라는 거야.”
“... 꽂아? 뭘 꽂아?”
“응? 아하하하! 야 김지훈! 너 이렇게 음흉한 애였어?! 왠일이야 진짜...!”

별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1학년 때 처음 만났던 이야기와 학교 이야기까지. 잡다한 농담부터 공부에 관한 이야기까지. 편한 친구끼리 할  있는 그런 말.


이현지와는 대화가 오로지 섹스 뿐이었는데, 그녀와는 온갖 대화가  통했다.


그렇게 즐거운 분위기는 MT까지 이어졌다. 이현지가 달라붙어 대놓고 장현정을 경계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녀는 MT에 와서도 내게 섹스를 요구해왔다. 조금 귀찮았지만 얌전해질까 싶어서 화장실 같은 곳에서 섹스를 해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얌전해지지 않았다.


현정이와 내가 마트에 갔다 왔는데, 이현지가 눈이 뒤집혀서 장현정에게 달려들었다.

“언니! 우리 오빠한테  떨어지죠? 뭐하는 짓이에요?”
“응? 아... 불쾌했다면 미안해. 알았어.”

장현정에게 면박을 주는  모습을 보자 나는 어이가 없어서 그녀에게 말했다.


"야. 이현지. 너 미쳤어?"
"내가 뭘?"
"현정이랑 내가 뭔 이야기를 했다고 이래? 동기끼리 장도 보고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둘이 갔다왔다는  그렇게 거슬려?"
"장만 봐온 거 맞아? 둘이 섹스라도  거 아니고?"
"... 하. 넌 대가리에 섹스밖에 없냐?"


이현지는 정신병자처럼 내게 집착을 했다.
나를 좋아해서 그런 건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든 간에, 나는 그녀가 너무 귀찮았다.
그래서 술자리가 이어지는 내내 이현지를 피했다.

공대 술자리가 다들 그렇듯. 마지막에 가서는 다들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을 마시고 잠들었다.
늘어진 소주병, 맥주병 사이에서 남자들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잤고, MT에 참여했던 여자 4명은 한 쪽 방에 가서 잠들었다.


MT를 다녀온 이후.

학교에 큰 사건이 하나 터졌다.

공대 건물에 대자보가 하나 붙었는데, 현정이가 알몸으로 다리를 벌리고 있는 사진이었다.
사진에서 현정이는 완전히 취했는지 잠들어 있었고, 입고 있던 원피스는 위로 젖혀져 가슴을 다 보이고 있었다. 벌어진 다리 사이에는 팬티는 없고, 그 대신 질 내에서 백탁액이 엉덩이를 따라 흐르고 있었다. 그녀의 하얀 몸 위에는 정액이 담긴 콘돔 등이 놓여 있었는데 한 두 개가 아니었다. 얼핏 보기에도 10여개.

그렇게 잠든 현정이 주위로 남자들이 서 있었다. 털이 나있는 발들이 여러 개가 그녀를 둘러싸고 서있다. 사진이 의미하는 건 너무나 명확했다. 현정이는 윤간을 당한다음 사진을 찍혔다.


"아, 아냐... 이거 나 아니라고!"

현정이가 울면서 사진들을 뜯었지만, 이미 학교 인터넷 게시판 등을 통해 그녀의 알몸 사진이 퍼지고 또 퍼진 후였다.


[합성 아닌가?]
[아무리 봐도 합성 아닌데. 몸이랑 이런 건 다 진짜 같던데...]
[와... 섰다.]
[개쩌네... 근데 쟤 이제 학교생활 어쩌냐?]
[저거 MT 때 남자들한테 따먹힌 거냐?]
[시발... 뭐야. 왜 나는 몰랐지? 여럿이서 돌림빵 놨더는 거 아냐? 어떤 놈들이냐.]


인터넷 게시판도 난리였다. 남자애들은 진위여부를 놓고 한창을 싸워댔고, 평소 남자들하고 친했던 현정이는 여자애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다.

그녀는 학교를 빠지지 않고 나왔지만, 예전과 같은 생기 넘치는 웃음을 잃어버렸다.


경찰 수사 결과, 최초 유포자는 컴퓨터 공학과 조교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조교는 자신의 컴퓨터 있던 사진을 올린 죄밖에 없다고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죄였다.


합성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고, 사진에 현정이를 윤간한 남자들이 누군지를 두고 수사가 진행됐지만 지지부진했다. MT에 참석한 남자들 모두 혐의를 부인했으니까. 다들 술에 취해 기억이  나는 상황이었다. 나조차도.


사건이 그렇게 난관에 부딪히고, 수렁에 빠져들 때. 현정이는 사건 결과와 상관없이 이미 만신창이가 된 이후였다. 우리 과 학생들 모두 그녀를 윤간 당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웃긴 건, 이현지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는 것이다.
나는 거기서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

수업이 있으면, 현정이는 수업 직전에 나타나 강의실 구석에 앉는다. 출석을 부르면 조용히 손을 들고 대답하고 수업이 끝나면 바로 강의실을 떠났다.

어떻게 보면 대단한 아이였다. 결백한 것일까?

나는 그녀의 그런 의연한 태도와 이현지의 광기어린 웃음을 본 순간 무언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현지 : 오빠 어디야? 수업 안 들어와?]
[김지훈 :  거야.]

나는 이현지를 따돌리고 건물 근처에 숨어서 현정이를 기다렸다. 이현지의 눈을 피해 그녀를 만나야만 했다.

현정이가 오는 것을 발견한 후 나는 그녀를 붙잡아 구석진 곳으로 끌고 갔다.
그녀는 거칠게 내 손을 뿌리치려 애썼다.


"이거 놔! 뭐하는 짓이야?!"

그렇게 밝고 꾸밈없는 성격을 가졌던 장현정은 날카롭고 경계 가득한 성격이 돼버렸다.
뿌리치려는 그녀를 억지로 건물 뒤로 끌고 가자 장현정이 다짜고짜 내 뺨을 날렸다.

짝-


"왜? 너도 내가 쉽게 보이니? 한 번 대달라 이거야?!"

나는 뺨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버티며 그녀의 팔을 붙들어 잡았다.


"그런 게 아니야."


잡아야만 했다. 그녀는 옷을 벗으려고 하고 있었으니까.
내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니었으니까.


"맞잖아! 다른 남자 새끼들이랑 너도 똑같은 놈이잖아! 여기서 할까? 여기서 하면 되겠어?! 가슴 보고 싶어? 그래! 보여줄게! 보여주면 되잖아!"
"..."
"그래 맞아. 그 사진  맞다고. 나는 그렇게 걸레 같은 년이야. 그러니까 이제  놔둬. 알았어?"
"... 근데 왜 울어?"
"..."
“왜 울기만 해. 바보같이.”

나를 향해 소리치는 그녀의 눈에서는 어느새 짙은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녀의 몸부림이 점점 옅어진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현정아. 난 그 사진이 가짜라고 믿어. 진심이야."
"... 아무도 안 믿는데... 니가 날 어떻게..."
"넌 그런 애가 아니니까. 어떻게 된 건지 말해줄 수 있어?"
"..."

현정이는 그  기억이 없다고 답했다.

MT에 참가한 여자는  4명. 4명은 한 방에서 잤고, 방에 돌아와서 이현지의 권유로 술을 또 먹었다고 한다. 그녀는 완전히 필름이 끊겨 그 이후로는 아무 것도 기억을 못했다.


그녀의 대답을 들은 후 우리는 수업을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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