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화 〉에필로그 - 5
그 날 이후로 나와 이현지는 틈만 나면 섹스를 했다. 그녀는 정말 미친 사람처럼 내 몸을 원했다. 성욕은 성별과 관계없이 사람에 따라 다른 것이라 말만 들었는데, 이현지의 경우가 정말 그랬다. 그녀는... 섹스 중독자였다.
"하앙... 하앙! 지, 지훈아! 하앙... 너무 좋아..!"
“자, 자지가 기, 깊이... 하앙...! 하아아앙!”
“내 보지를 더... 하앙!”
차에서도 하고, 강의실에서도 하고, 화장실에서도 했다. 그녀는 언제나 질내사정을 원해왔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임신을 하면 힘든 쪽은 여자일 텐데... 물론 나도 책임을 져야한다는 부담이 있지만 그녀는 신체적으로 어려움을 겪지 않나? 모르겠다.
섹스를 딱히 원하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엉겨오면 어느 순간 나는 그녀와 섹스를 하고 있었다.
"안에...! 안에! 하앙! 저, 정액으로 가득 채워줘...! 하아앙!!"
싸고 또 싸고, 범하고 또 범했다.
그녀의 보지를 정액으로 채우고, 그녀의 입에 내 남근을 물려 고환에 쌓이는 정액을 모조로 싸냈다. 이현지는 그 정액을 맛있다는 듯 꿀꺽 대며 먹었다.
가끔 콘돔을 끼고 섹스를 하기도 했는데, 이현지는 그 때마다 콘돔을 묶어서 가지고 갔다. 그걸 대체 어디다 쓰려는 건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쨌건 섹스 자체는 환상적이었기 때문에 나는 곧 그 사실을 잊었다.
어느 날, 이현지의 집에서 섹스를 하고 나오다 궁금해서 물었다.
"저... 근데 우리 사귀는 거... 지?"
"응?"
이현지가 방금 전까지 격렬한 섹스를 나누었던 침대 위에서 요염한 자세로 나를 올려본다. 그 모습을 보니 그녀의 육체와 질의 조임을 기억하는 내 남근이 불끈댔다.
"나는... 지훈 오빠가 좋아."
"..."
"오빠를 만난 이후로 다른 남자랑은 못하겠어. 나는 오빠하고만 섹스를 하고 싶어."
과연 그녀는 나를 좋아하는 걸까. 내 남근을 좋아하는 것일까. 그녀는 입술을 할짝거리며 내 남근을 바라보고 있었다. 예쁜 얼굴, 애교 많은 성격, 침대 위에서는 엄청난 섹스머신!
매력적인 여자임은 틀림없었다. 놓치기 아까운 그런 여자.
과 퀸카인 그녀가 왜 나를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내가 이현지를 버리게 된다면, 그녀는 다른 남자들과 무분별한 섹스라이프를 이어갈 것이다. 그게 걱정되어 한 마디 해주었다.
"그럼 사귀는 걸로 알아둘게."
"오빠. 나 좋아해?"
"응?"
"나 좋아하냐고."
"..."
내가 현관에 서서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자 이현지가 알몸으로 침대에서 일어나더니 성큼성큼 다가왔다. 환상적인 가슴이 출렁거리고 그녀의 골반이 좌우로 들썩들썩.
그 아름다운 나신을 보는 내 남근도 펄떡거린다.
옷을 다 입고 있는 내게 안겨온 이현지가 키스를 해왔다.
츄읍... 읍... 쪽.
내게 안긴 그녀는 내 귓가에 달콤하게 속삭였다.
"확실히 말할 수 있을 때 해줘. 기다릴게."
"아. 응..."
"하지만 오래 기다리지는 않을 거야. 알았지?"
그렇게 말하며 요사스럽게 웃는 그 눈웃음을 보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하지만 나는 어쩐지 그녀가 꺼려졌다.
좋다? 친구로서 좋은지도 잘 모르겠다.
섹스야 환상적이었지만... 평소에 대화 코드도 잘 맞지 않았고, 우리는 공통점도 없었다.
오로지 섹스. 섹스뿐이었다.
*
"여보세요?"
"김지훈 씨? 저 이미진인데요."
어느 날 이미진이라는 미술 대학원생에게 전화가 왔다.
"아. 네네."
"조각 깨버린 거. 많이 미안하죠?"
"그럼요. 미안하죠."
"그 조각이 친구들이랑 제가 같이 만든 건데, 그거 복구하겠다고 제가 몇 날 며칠을 밤을 샜거든요."
"아...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부주의해서..."
이미진은 다짜고짜 나를 엄청나게 미안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했던 이야기를 또 하니 미안하기는 했지만 좀 짜증이 났다. 꽤 쿨한 여자인 줄 알았는데, 그 평가는 취소다. 이렇게 집요한 여자일 줄은...
"그래서 말인데 제가 부탁이 있거든요? 지금 이 쪽으로 좀 오실 수 있을까요?"
*
"... 누드모델?"
"아니이~ 그게 말이죠오~ 모델이 갑자기 일이 생겨서 못한다지 뭐에요~ 지훈 씨이~ 지훈아! 아니 지훈 오빠! 헤헤~"
"..."
이미진의 손에 의해 미술대 작업실에 끌려온 나는 멍청한 표정으로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녀는 미술 조교를 하고 있었는데, 급히 누드모델이 필요하다는 말에 나를 불렀다는 거다.
애교스럽게 웃으며 달라붙는 게 싫지는 않았지만, 누드모델은 무리였다.
고환이 한 쪽밖에 없는 놈이 이걸 어떻게 꺼내놓는단 말인가.
"저기... 제가 그거는 어렵겠는데요."
"김지훈 씨가 내 조각을 아예 산산조각을 내버리고..."
"아니. 그거는 미안하다고요. 하지만..."
"히이잉... 내가 얼마나 열심히... 흑흑."
"..."
"..."
우는 척하는 연기가 다 보인다. 내가 멀뚱멀뚱 쳐다봤더니 이미진이 슬쩍 내 눈치를 본다. 그리고 또 눈웃음.
"히히~ 해줘용~ 네?"
"... 제가 사정이 있어서..."
"무슨 사정? 알몸 부끄러울 거 없어요! 아! 내꺼 볼래요?! 그럼 되겠다! 그치?"
"저기요. 그런 게 아니라고요."
"아 진짜 시간이 없어서 그래요. 남자 모델은 구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요? 나 한 번만 살려주라~"
막무가내로 우기기에 한숨을 깊게 내쉬며 말해줬다.
"저 고환이 한쪽이 없어요."
"... 네?"
"그러니까... 이렇게. 이렇게 생겼다고요."
대충 옆에 있는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려줬다. 귀 한쪽 없는 코끼리 모양. 그걸 보더니 이미진이 심각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시더니 내 곁에 앉아 이상한 이야기를 꺼냈다.
"... 나참. 이런 걸 말해주면 부탁 못하잖아."
"그렇죠?"
"사실 저도 한쪽이 없어요."
"네?"
"뭐라더라... 무슨 증후군? 이라던데... 그거 때문에 병원 갔더니 불임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인생 망했구나 싶었는데... 난소 한 쪽은 살아 있다네요? 임신에는 무리가 없는데 폐경은 일찍 할 수도 있데요."
"..."
"근데 그 쪽도 하나가 없네. 우리 인연인가 보다. 그죠?"
그 말에 내가 뚱한 표정으로 돌아보니 이미진이 담배를 물고 히~ 하고 웃어보였다.
아.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거절할 수가 없잖아.
*
"그래서 이미진이라는 여자와 놀고 왔다는 거야?"
"논 게 아니라 누드모델을..."
"그게 그거지. 그 여자랑 앞으로 대화하지 마."
"..."
"대답 안 하면 나 앞으로 오빠랑 섹스 안 해?"
"... 알았어."
별 일 아닌 것 같았는데, 이현지가 어쩐지 엄청나게 화를 냈다. 질투인가?
섹스 안 한다고 같잖은 협박을 하기에 같이 화를 내주려다 삐진 모습이 불쌍해서 그냥 한 번 져주었다.
하지만 이상하단 말이지. 이현지는 연예인이 와도 밀리지 않는 그런 외모의 소유자다. 전혀 질투할 대상도 아닌데 왜 질투를 하지? 생각해보면 질투도 아닌 것 같다. 가끔 동기 여자애들이랑 학교에서 인사를 하거나 대화를 나누기도 했었거든. 그 때는 가만히 있고 왜 이미진만?
이상했지만 어쨌건 이현지는 내 첫 섹스상대에, 계속 섹스를 즐겼던 내 파트너다. 사귀지는 않고 있었지만 나는 그녀에 대해 묘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이미진을 다시는 안 만나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 날 부터였다.
여유롭게 보이던 이현지가 미묘하게 날카로워진 것은.
*
"야. 너 이현지랑 사귀어?"
"진짜야? 와... 어떤 의미로는 대단하기도..."
얼굴을 알고 지내던 남자애들이 나에게 와서 묻는다. 나는 무슨 소리인가 했다.
전에 사귀자고 했을 때는 좋아하지 않으면 그런 말 하지 말라더니 갑자기 이게 뭐지?
"오빠! 오늘 점심 도시락 먹을래? 내가 도시락 싸왔는데!"
"어? 어어."
이현지가 내가 앉은 책상 위로 도시락을 얹었다. 어리둥절해서 도시락을 펼쳤더니 하트모양으로 장식이 된 예쁜 도시락이 하나 나왔다. 내가 말을 잃은 사이, 내 도시락을 훔쳐본 남자들이 부럽다는 듯 말했다.
"와... 김지훈 짱이다."
"진짜 부럽다... 현지야. 우리도 먹으면 안 되냐?"
"안 돼요! 이거 지훈 오빠 주려고 싸온 거예요."
"어유~ 닭살이네."
그녀는 이상하게 애정을 과시하며 내게 달라붙어왔다. 왜 그런지를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