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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화 〉마지막 썰썰썰 - 6 (59/101)



〈 59화 〉마지막 썰썰썰 - 6

아침에 눈을 뜨니, 설아 누나는 나보다 먼저 일어나 씻고 있었고 미진 누나는 아침 요리를 하고 있었다. 나는 미진 누나 눈치를 보며 이불을 개어 장롱에 집어넣고, 식탁에 가서 앉았다.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미진 누나가  하고 한 차례 나를 노려봤다.


"야. 김지훈."
"... 네. 누나."
"너 어제 기억 다 나지?"
"... 아, 아뇨. 제, 제가 뭐 했어요?"
"술 먹고 발정 난 짐승 김지훈 씨. 설아도  취했는데 설마 니가 취했겠어요? 거짓말 할래?"
"..."
"아우. 술이 원수지 술이 원수야. 뭔 남자애가..."

중얼중얼.
미진 누나는 연실 투덜거리며 계란 후라이 3개와 잔반, 김치찌개를 식탁 위에 차렸다.
가만히 앉아있기에는 눈치가 보여 나도 곁에서 밥을 푸고, 수저를 꺼내놓는 중에 화장실에서 설아 누나가 나왔다. 잔뜩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비비며.

“아.”
“... 잘 주무셨어요?”
"응. 지훈이도 잘 잤어?"


누나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우물쭈물하고 있었고 나도 어쩐지 민망했다.
술도 취했겠다, 누나는 사귀던 남자랑 삐걱 댔고, 나는 현정이랑 싸우는 바람에 어쩌다 보니   하긴 했는데... 이게 그렇다고 사귀자는 뜻은 아니거든.


이런 상황에서는 여자가 풀어야 분위기가 풀린다. 왜냐면 정조에 있어서 남자보다 여자가 불리하기 때문에 남자가  죄책감을 가지게 되는 법이거든.
그러니 정조역전세계에서는 내가 나서야 하는 거다.

"저기. 누나. 어제는 제가 너무 취해서..."
"어? 어? 아. 어, 어... 나, 나도 너무 취해서 그랬는데... 저..."

쾅-

물병을 식탁에 내려찍듯 놓은 미진 누나가 으르렁 거리자 우리는 누구라  것도 없이 입을 다물었다. 사나운 눈빛으로 나와 설아 누나를 번갈아 본 미진 누나가 말했다.


"이것들이 어제 밤에는 AV를 찍더니, 아침이 되니까 로맨틱 코메디를 찍고 앉아있네?  안 보여? 누가 우리 집에서 드라마 찍으랬어. 어?"
"..."
"..."
"난 씻고 나올 테니까 처먹고 가시든 말든 맘대로 하셔요~! 흥!"

그러더니 휙 하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삐진 걸까? 아니면 질투?
미진 누나의 저런 반응은 상당히 의외였다. 누나라면 어제 화내고 그걸로 끝낼 줄 알았거든.


"설아 누나. 미진 누나 왜 저렇게 화가 났어요?"
"... 글쎄. 동창회 때문에 그런가?"
"동창회?"
"응. 내일 우리 고등학교 동창회 있거든."
"누나도 같이 가겠네요?"
"아니. 나는 안 가. 고등학교 때  좋은 일이 있어서. 별로 보고 싶지 않아."

설아 누나랑 미진 누나는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미진 누나네 부모님께 듣기로는 고등학교 때 설아 누나가 왕따를 당했던 모양. 그런 일이 있다면 당연히 싫겠지.


"근데 동창회랑 화난 거랑 무슨 상관이에요?"
"... 너. 아는 거 아니었어?"
"제가 뭘... 아."

그래.
미진 누나의 무난자증 때문에 결혼 파기한  남자는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때문인가?
신경이 날카로울 수밖에 없는 일이긴 했다.

남자가 무정자증 때문에 여자 동창에게 차였다.
동창회에 참석을 해야만 한다면... 짜증나겠지.
아니지. 짜증 나는 정도가 아니지.

원래 세계로 생각하자 이것이 꽤 어려운 일이라는  알겠다.
남자의 자존심이 짓밟힌 상태로 또 만나야 한다는 것이니.


*

미진 누나는 동창회 모임 주축 멤버인 모양이었다.
성격도 활달하고 리더쉽도 있으니 당연한 거겠지.
그래서 빠질 수 없는 것 같다. 답답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아 누나가 회사에 출근하고, 미진 누나도 학원에 일하러 간 사이.
나는 미진 누나 집에서 만화책이나 보며 뒹굴 거렸다.
대부분은 여성향 판타지나 다름없었지만, 담겨있는 감성 자체는 남성향이었기 때문에 나름 재미가 있었다.

[이미진 : 집이냐?]


미진 누나가 올 시간이 되자 나는 누나와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설아 누나의 회사로 향했다.
 회사로 가냐고?
임형진이라는 놈을 골탕 먹일 계획이 있었거든.


"자신 있는 거야?"
"네. 이거 먹힌 다니까요."
“음. 나도 동의는 하지만...”

나는 미진 누나가   검은 양복을 입었고, 나이가 좀 들어보이도록 머리도 넘겼다.
뭐 그래봐야 애처럼 보이지만. 나이를 많이 쳐서 봐도 대학생 수준으로 보였다.
만반의 준비를 끝낸 우리는 설아 누나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김지훈 : 설아 누나. 누나는 1층 내려와서 임형진  쳐다보지도 말아요. 알았어요?]
[윤설아 : 어떻게 안 봐. 형진 오빠는 안내데스크 직원인데... 나 방문자들 카드반납도 해야 하는데...]
[김지훈 : 제가 말했잖아요. 아니, 안 돼, 좋아 이것만 하라고요.]
[김지훈 : 마치 나는 임형진  관심 없어. 이런 느낌 팍팍 들게.]
[김지훈 :  아니더라도! 나는! 다른 남자. 너보다 더 멋진 남자 만날 수 있어! 뺏기기 싫으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걸?! 이런 걸 딱 보여주는 거예요.]
[윤설아 : 그럼 끝이야?]
[김지훈 : 네. 그렇게 해봐요. 그 다음은 내가 해결 할 테니까.]

메시지를 보더니 이미진이 말한다.

"재밌을 것 같긴 해. 흥미로워."
"누나 이제 화는 풀렸어요?"
"화라고 할 것까지 있냐. 그냥... 내가 좀... 후우. 질투가 났나봐."
"저한테요? 히히."

딱-


질투했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서 킥킥 하고 웃으니 미진 누나가 내 이마에 딱밤을   때렸다. 눈물이 핑 돌아서 내가 한 차례 째려보니, 누나가 씁쓸하게 웃으며 답했다.


"... 그냥... 평범하게 남들은 연애하고 사랑하는 구나 싶어서..."
"..."

아. 그런 의미였구나.
나는 또 철없이 그녀를 상처 입히고 말았다.

설아 누나 회사 근처에 차를 주차 시킨 후, 우리는 거리에 잠복했다.
설아 누나가 나오면 행동을 개시할 생각이었거든.


임형진이라는 사람은 오늘도 안내데스크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키도 크고 잘생겼다. 하. 부럽네.
그러니 설아 누나 상대로 밀당도 하고 어장관리도 하는 거겠지.
하지만 나에게는 ‘나이’ 라는 무기가 있었다.
나는 영계거든.
34살 짜리 여자보다 20살 짜리가  매력적인 법 아니겠냐?


"왔다. 야 지훈아. 설아 내려왔다."


미진 누나가 엘레베이터 쪽을 보고 외쳤다.
나는 그 이야기에 자리에서 일어나 심호흡을 했다.
거리를 측정하고.
설아 누나에게 들키지 않게.


"하하하. 오늘 진짜 웃기지 않아요? 걔네 무슨 처리를 그렇게 하는 거야."
"내 말이. 서비스 단에서 그걸 밀어버리면 뒷사람들이  어쩌라고?"
"오늘 점검은 다 끝난 거지?"
"네네. 모두 끝났고, 스캔본은 내일 주기로 했습니다."

설아 누나와 같은 팀 팀원들이 우르르 안내데스크로 향한다.
나는 그들을 뒤따라 안내데스크로 향했다.
그리고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설아 누나 근처에 섰다.
설아 누나가 임형진과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 오늘 방문한 엔지니어들 출입 기록이고, 방문 카드 반납하러 왔어요."
"..."

임형진이 설아 누나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평소 성격이라면 설아 누나가 안절부절 못했어야 정상이거든.
하지만 설아 누나는 내가 가르쳐준 대로 싸늘하게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사무적인 어투로, 그것도 존댓말로 상대에게 말을 했다.
임형진은 설아 누나가 내민 카드더미와 문서를 받으며 말했다.


"... 여기 줘. 그리고 혹시 할 이야기 있어?"
"아니."

누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주위 팀원들이 헛기침을 한다.
분위기가 싸했으니까.
괜히 연인 사이의 다툼에 끼어버리면 난처해지는 건 이쪽이었다.


"커허흠."
"설아야.  것도 해줘."
"윤 대리님 이거 여기 두겠습니다."
"응. 그래. 내가 할 테니까 두고 먼저 가있어."
"아닙니다. 옆에 있을 게요."

둘이 사귀기로 했다가 갑자기 헤어진다 어쩐다 하며 싸운 거.
팀원이라면 뻔히 알 텐데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지 팀원들은 살짝 옆으로  발 물러나서 자기네끼리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전혀 다른 주제였지만, 이 쪽에 귀를 잔뜩 기울이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
임형진은 윤설아가 차갑게 거절하자 당황한 눈치였다.
그렇겠지. 장난감이 손에서 벗어나는 중이니까.


"... 끝나고 시간 돼?"
"안 돼. 빨리 처리나 해 줘."
"..."


그래! 그거라고 누나. 저거 봐. 누나 눈치를 보잖아.
이게 주도권 싸움이라는 거거든.
좀 만 참아.

"그러지 말고... 이대로 지내면  그렇잖아. 같은 회사 다니면서 계속 보는 사이인데."
"... 좋아."

설아 누나가 좋아라고 말하는 순간 팀원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잘 됐으면 하는 눈치다.

하지만 그건 아니지.
나는 다짜고짜 설아 누나를 위에서 끌어안으며 말했다.

"그건 안 되겠는데요."
"...! 지, 지훈이 너...!"
"얼레?"
"어머머. 쟤 뭐야...!"

팀원들이 놀라는 소리가 들렸지만, 가장 놀란 건 임형진이었다.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본다.
갑자기 장난감의 가치가 올라가는 순간이거든.
수요가 늘어나는 바람에 가격이 튀어 오르는 바로  순간.
설아 누나는 내 팔을 뿌리치더니  뒤돌아서 내게 말했다.


"너, 너! 너가 여, 여기는 왜...!"
"누나. 내가 누나 좋아한다고 했잖아요. 그래놓고 고작 이런 늙은이 만나려고 한 거예요?"
"일단 나가자. 나가서 이야기해."
"난 누나 안 뺏길 거예요! 절대로! 특히 이런 늙은이한테는 양보 못해!"
"나가자니까! 김 대리님!!"
"아! 어 그래! 내가   테니까  일봐!"
“왜 나는 안 되는 건데요! 누나도  좋다고 했잖아!”
“따라와! 정말 나 곤란하게 할래?!”
“누나... 제발. 나 잘할 게요. 누나가 하라는  다 할게요.”

정말 당황한 누나와 그런 누나의 모습이 재밌던 나의 연기력이 폭발했다.
눈물까지도 핑 돌았다. 예전생각에 감정이입했거든.
출입증 다발을 던지듯 내려놓은 설아 누나는 내 팔목을 잡아끌고 회사 밖으로 향했다.
팀원들은  멀리서 휘파람을 불고 난리가 났다.


"와~ 윤설아 그 고딩이냐?"
"쩔어 쩔어. 인기 절세 미녀!"
"야. 저거 인기가 저렇게 많았나. 예쁜 건 알았지만..."
"부럽네 부러워..."

나는 그렇게 설아 누나에게 끌려 나가는 내내 임형진을 노려봤다.
멍청해진 얼굴이 보기 좋다.
쌤통이었다.
놓치기 싫으면 니도 열심히 들이대라.
사람 마음 가지고 장난치지 말고.


*

회사 밖을 나오니 미진 누나가 배를 잡고 웃고 있었다.
우리의 계획은 임형진을 질투 나게 만드는 것이었다.
본래 남의 떡이  보이는 법이니까.


"이게 뭐하는 거야 진짜!!"


설아 누나는 눈물을 글썽거리면서까지 화를 냈다.


“형진 오빠가 이걸 보면 뭐라고 생각하겠어! 팀원들이 뭐라고 생각하겠냐구!”
"야야! 내가 보장한다. 이거 효과 있어! 킥킥!"
“효과는 무슨 효과야! 나 바람둥이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그럼 우리 사이 더 멀어지는 거잖아!”
“아니라니까?”
“그리고 회사사람들은 날 뭐라고 생각하겠어. 저 거 이 남자 저 남자 막 먹고 다닌다고 생각할 거 아냐!”
“날 믿어. 진짜! 야! 푸하하!”

미진 누나는 엄지손가락을 세우면서 재미있어 했다.
설아 누나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어쩔  몰라 하다가 핸드폰 진동이 계속 울려서 그런지 메신저를 확인했다. 나와 미진 누나는 그런 설아 누나 옆에 붙어 함께 메시지를 읽었다.


회사 단체 채팅방이었다.

[정윤희 : ㅋㅋㅋㅋ 윤설아 이 년 봐ㅋㅋㅋㅋㅋㅋㅋ]
[이민영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민영 : 댘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박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박우리 : ?? 뭔 데요?  일 났어요?]
[이민영 : 댘ㅋㅋㅋㅋㅋ 박ㅋㅋㅋㅋㅋㅋㅋㅋㅋ]
[김찬미 : 들었어요? ㅋㅋㅋ 누난 내꺼야! 저딴 늙은이한테  뺏겨!]
[정윤희 : ㅋㅋㅋ 하앍하앍ㅋㅋㅋ 그  그 고3 아니냐? ㅋㅋㅋㅋ]
[이민영 : 몰라요. 사진을 봤어야짘ㅋㅋㅋ]
[박우리 : 뭔 일이에요.]
[이수향 : ?? 뭐야 뭐?]
[조은이 : ㅋㅋㅋㅋㅋ 윤설아 대리님이 저번에 고딩에 일주일인가를 재워줬잖아요.]
[박우리 : 근데?]
[이수향 : ?! 설마! 회사 찾아왔어?!]
[정윤희 : 나 누나 좋아해! 근데 왜 그런 늙은이 만나!]
[정윤희 : 니가 임형진이야?! 나 너 싫어! 난 너 한테 누나 양보 못해!]
[박우리 : 왘ㅋㅋㅋㅋ 도랏맨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수향 : ㅋㅋㅋㅋㅋㅋㅋㅋ 대박ㅋㅋㅋㅋ 드라마야? ㅋㅋㅋㅋ]
[이민영 : 실제 상황ㅋㅋㅋㅋㅋㅋㅋ 형진 씨 표정 봤어?ㅋㅋㅋㅋㅋㅋㅋㅋ]
[정윤희 : ㅋㅋㅋㅋㅋ 흥미 진진ㅋㅋㅋㅋㅋㅋㅋ]
[정윤희 : 왜 나는 안되는데요?! 누나도 나 좋다고 해짜나난나나~]
[이수향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박우리 : 헐... 개젖는다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 잘생겼어요?]
[정윤희 : 설아 누나! 잘할 게요! 누나의 노예가! 개가 될게요!!]
[이민영 : 잘생겼어. 귀엽고 좀 풋풋한 훈남스타일?]
[박우리 : 와... 부럽다 윤설아 대리님...]
[이수향 : ㅋㅋㅋㅋㅋㅋㅋ 무슨 소설도 아니곸ㅋㅋ]
[김찬미 :  고딩 장난 아니던뎈ㅋㅋㅋㅋㅋㅋ 윤설아 능력 쩔엌ㅋㅋㅋ]
[정윤희 : ㅋㅋㅋㅋㅋ 형진 씨 표정 개 썩었던데 ㅋㅋㅋ]
[정윤희 : 설아야~ 대답 좀 해봐 ㅋㅋㅋ 고딩 데리고 모텔 갔냐?]


난리도 아니었다.

설아 누나가 조금 안심한  보이자 나는 누나를 향해 활짝 웃으며 손을 뻗었다.
그렇게 나와 설아 누나, 미진 누나는 승리의 하이파이브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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