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마지막 썰썰썰 - 1
페티쉬 카페 이용자들에게 내가 윤간을 당한 이후, 성혜 아버님이 나를 대신해 학교에 연락을 한 것인지, 아니면 경찰 측에서 연락을 한 것인지는 몰라도 담임선생님에게 전화가 왔었다.
-지훈아. 이야기는 들었다.
"어떤 이야기요?"
-그... 아주 좋지 못한 일을 당했다고 들었어. 사실이니?
"... 아마 선생님이 상상하시는 그게 맞을 거예요."
-몸은 좀 어떠니? 선생님도 한 번 보러 갈까 하는데...
"아니에요. 그렇게까지는 하지 마세요. 부담스러워요. 선생님."
-... 그래. 학교에는 내가 이야기 해둘 테니까. 한동안 쉬고 있어라. 전달 사항 있으면 내가 소연이한테...
"소연이요? 배소연?"
의외의 이름에 내가 목소리를 높여 묻자, 도리어 선생님이 이상하다는 듯 되물었다.
-그래. 너 소연이랑 친한 사이 아니야?
"... 글쎄요."
친한가? 그 년은 그저 나를 따먹으려 했던 미친년일 뿐인데?
지금 선생님은 윤간당한 여고생에게 준강간범을 소개시켜주고 있었다.
같은 반 여고생을 평소에 좋아하다가 스토킹까지 하게 된 남학생이 있다고 치자. 그 남학생이 어느 날 우연히 여고생의 약점을 알게 됐어. 정상적인 남학생이라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현정이처럼 화내고 혼내거나, 실망하며 멀어지려 해야 정상인 거지 약점을 핑계로 대가를 요구하는 게 정상이겠어?
배소연은 내 약점 아닌 약점을 잡자마자 잘됐다는 듯이 본색을 드러냈었다.
-너가 학교 안 나오니까 소연이가 얼마나 걱정을 하던지 난리도 아니었어.
"그렇구나."
-전달사항 있으면 소연이한테 말해줄 테니까. 맘 편히 쉬고 있어. 알았지?
"네. 선생님."
-힘내고. 용기 잃지 말고. 말하기 힘든 점 있으면 선생님에게 문자라도 남겨라. 언제든 달려갈 테니까.
우리 담임 선생님은 평소에 말도 없고, 학생들에게 관심도 없는 인간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말하는 것도 재수가 없는 스타일이었다. 학교 다닐 때 왕따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눈치도 없었다.
그런 사람이 의외로 진중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에 나는 감동했다. 그 말 사이에서 진심이 느껴졌으니까.
선생님과 대화를 끝내고 나는 하숙집에서 나와 배주리 집으로 향했다.
배 씨는 다들 그럴까?
배소연도 그렇고, 배주리도 그렇고 좀 극단적인 애들이었다. 배주리의 경우 가출 청소년에 학교는 자퇴한 여자아이였는데, 이미지가 약간 이미진을 닮았다. 개성 넘치고, 제멋대로인 구석이 미진 누나와 비슷하다.
굳이 차이가 있다면 배주리에게는 어떤 탐욕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길을 가는데 누가 하늘에서 돈을 뿌린다면, 이미진은 '개웃겨 ㅋㅋㅋ' 하고 웃고 말테지만 배주리는 목숨 걸고 돈부터 주울 것이다. 그런 집착과 광적인 집중력을 가졌기에 인터넷 방송에서도 승승장구 하는 것이리라.
"어~ 지훈아! 왔어?! 반갑다!"
그녀는 정말 순수한 개인 방송 스트리머였다. 잘나가는 상위권 스트리머의 경우 매니저도 두고, 코디, 작가 등도 고용하여 공중파 방송국처럼 운영한다지만 배주리는 그게 아니었다. 소규모에서 조금씩 커나가는 그녀 입장에서 김지훈은 아주 반가운 소재였다.
"야! 너 그거 알아? 찌꺽찌꺽 동영상이 벌써 조회수 1만 넘었다! 킥킥!"
"뭐? 1만? 벌써?"
"어! 이대로라면 10만도 넘기겠어. 큭큭큭."
며칠이나 지났다고 동영상 조회수가 1만을 넘겼다는 걸까. 솔직히 무슨 소리하는지 잘 모르겠어서 배주리에게 물었더니 배주리가 동영상 하나를 틀어주었다. 동영상은 주리 방송 팬이 편집한 동영상으로 내가 찌걱찌걱을 외치는 장면만 모아놓은 것이었다.
뜻을 알고 보니 엄청나게 한심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신나게 찌꺽찌꺽- 을 연발하고 있었다.
"주리야. 근데 찌걱찌걱이 뭐야? 여기 고... 뭐 그거 빨고 싶다는 분이 찌걱찌걱 거리는데. 황녀 님도 그렇고. 왜 강제 퇴장 된 거야?"
"둘 다 싸우지 말구... 찌걱찌걱이 뭔데 그래?"
"... 찌걱찌걱?"
"찌걱찌걱~! 찌걱찌걱~!"
"태평양고래보... 아. 이건 좀 아이디 부르기가 그런데요. 아. 본명이 김지은 이시라고요? 김지은님 찌걱찌걱 감사합니다."
그 동영상에 나는 민망해서 얼굴을 붉혔고, 주리는 배를 잡고 웃어댔다. 동영상 전문 사이트에 올라온 영상 댓글을 보니 댓글은 이미 수백 개가 넘어가는 중이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개웃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쳤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남자가 찌걱거리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귀엽다 진짜 ㅋㅋㅋ 무슨 의민지 모르나봐 ㅋㅋㅋㅋ
순진하넼ㅋㅋㅋㅋ 매력 있다 ㅋㅋㅋㅋ
그래서 품번은?
ㄴㅋㅋㅋㅋㅋㅋㅋ 미친 새끼 딱 봐도 인방이잖아 ㅋㅋ
이런 반응들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원래세계를 기준으로 생각해볼 때, 특정성별이 반대쪽 성별들만이 할 만한 어떤 행동을 하게 되면 관심을 끄는 법이었으니까.
예를 들어 패션과 머리 스타일로 동영상으로 뜬 남자라든지, 탁탁탁 하는 동영상으로 떠버린 라디오 DJ 등이 있을 수 있겠다. 그게 아니라면 터프한 여자라든지, 화장하는 남자라든지.
물론 그렇게 예상했던 것보다 반응이 뜨겁기는 했다.
"뭐야. 댓글이 왜 이렇게 많아?"
"킥킥. 그게 말이야. 니 움짤이라고... 움짤이 뭔지 알아?"
"움직이는 짤방? gif 같은 거?"
"어어어. 니 움짤 같은 게 인터넷 커뮤니티에 지금 화제야. 보여줄까?"
"응. 보여줘."
내 대답에 배주리가 인터넷에 접속하더니 어떤 인터넷 커뮤니티를 보여주었다. 커뮤니티 최대 추전 게시판을 보니 나와 관련된 여러 게시물들이 올라와 있었다.
열정적으로 쑤시는 찌꺽남.gif
요즘 인터넷 방송에서 화제인 찌꺽남.gif
웃으면서 보지를 찌꺽거리는.gif
물론 그 내용은 아주 다양한 편이었다. 멍청한 표정으로 찌꺽찌꺽 거리는 소리를 내뱉는 장면이나, 혹은 내가 갈고리 모양으로 손을 만들면서 신나게 찌꺽거리는 장면이라든지... 사실 나야 그저 후원쿠폰 들어온다니까 신나서 외친 것이었지만...
"참! 주리야. 후원쿠폰은 어떻게 됐어?"
"응? 후원쿠폰?"
"수익 얻으면 나도 나눠준다면서."
"아~ 그거."
우리는 그제야 수익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사실 저번에 풋살장에서 방송할 때만 해도 별 생각 없이 방송에 참여했던 것이지, 수익 얼마에 정산 시 비율 얼마. 이런 식으로 정해놓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주리와 나는 방송 전 수익 계산부터 시작했다.
[장현정 : 주리가 이상한 짓은 안 해?]
[김지훈 : 응. 별 일 없어.]
[장현정 : 걔가 괜찮은 년이기는 한데... 좀 충동적인 면이 있어.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바로 도망쳐. 알았지?]
[김지훈 : 걱정하지 말라니까. 수업이나 열심히 들어.]
현정이는 여자와 단 둘이 남은 내가 걱정 됐는지 문자를 몇 개 보내왔다. 사귀는 사이가 아니긴 해도, 우리는 거의 사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서로의 몸을 만지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상태였으니까.
그런 마음에서 걱정을 한 것이었지만 애초에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주리가 덮치더라도 내가 거부할 테니까. 정말 엄청나게 예쁜... 예를 들어 설아 누나 정도가 아닌 이상 내 눈에 현정이보다 예쁜 여자는 없었다. 지금으로선 말이다.
"일단 저번 방송 수익은 5:5가 어떨까 싶은데..."
"야. 배주리. 너 원래 수익은 얼마나 되냐?"
"나, 나? 그, 그건 왜 물어?"
뻔뻔하게 5:5를 외치는 배주리에게 어이없다는 듯이 묻자, 그녀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사실 웃기거든.
내가 본 쿠폰만 해도 수십 장이고, 후원쿠폰보고 까무러치게 놀란 게 배주리였거든.
평소에도 그렇게 들어왔으면 놀랄 이유가 없는 거 아니냐?
내가 추측하기로, 평소 배주리 방송에는 내가 출연한 정도의 열광적인 반응은 없었다.
후원쿠폰 10장에 닉네임 불러주며 감사인사.
후원쿠폰 100장에 절을 하며 감사인사 하는 것이 리액션 기준이었으니까.
반면, 내가 방송할 때만해도 100장은 기본이고 1000장, 10000장까지 들어오지 않았던가?
결국 나로 인한 효과인 건데, 그 수익을 5:5로 나눈다는 건 날강도나 다름없었다.
나는 무표정하게 대꾸했다.
"8:2."
"8:2? 내가 8인거지?"
"아니. 당연히 내가 8이지. 무슨 소리야?"
"뭐?! 야! 김지훈! 너 좀 너무하지 않냐?! 이거 내 방송이야!"
"왜 8:2 인 줄 알아? 네가 평소에 하루 종일 방송해서 1천 장의 후원쿠폰을 받았다고 치자. 물론 그만큼 받지는 못했을 거야. 그렇지?"
"... 그럴 때도 있긴 한데..."
입을 삐죽이며 반박하는 배주리. 나는 잔뜩 심통이 난 그녀의 말을 어이없다는 듯 반박했다.
"야. 너 뻥칠래? 평소에는 100장 넘길까 말까 한 거 알고 있거든?"
"..."
다 알아. 니 방송 이미 재방송으로 보고 왔어.
하루에 5만원 벌면 많이 버는 주제에 웃겨 아주.
원래세계로 생각해볼 때, 여자BJ 들이나 잘나가는 남자 몇 몇이나 때 돈을 버는 판국에, 배주리가 뭐 특색이 있다고 돈을 많이 벌겠나.
하여간. 1000 장의 후원쿠폰이 들어왔다 치자. 그걸 인터넷 방송 회사와 나누면 600 장 정도가 배주리에게 떨어진다. 액수는 대충 6만 원 정도.
근데 내가 출연함으로서 후원쿠폰이 1만 장 들어오게 되고, 그걸 8:2로 나눈다고 하자. 그럼 배주리에게 2천 장의 후원쿠폰이 떨어지고, 그걸 인터넷 방송 회사와 나눈다 해도 1200장의 후원쿠폰을 배주리는 얻을 수 있다.
결론적으로.
8:2로 수익을 나누어도 배주리는 두 배나 이익인거야. 배주리는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아무리 8:2로 나누어도 자기가 이득인 건 맞거든. 소규모 인터넷 방송이 나로 인해서 홍보도 할 뿐더러, 컨텐츠도 확보하고, 수익도 늘어나는데. 이걸 안할 거야?
"그래서 뭘 할 건데? 벗방 이런 건 하기 싫어."
수익은 그 정도로 합의를 했고, 그 덕에 첫 방송 수익금이 100만원 가까이 나왔다.
배주리가 투덜대며 내 통장에 돈을 입금하는 것을 확인 한 후, 나는 그녀와 방송 컨텐츠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확실히 이런 점은 주리가 나보다 훨씬 더 해박했다.
"음... 벗방 이런 건 생각 없어. 남자 벗방은 단기로 돈을 뽑는 데는 좋아도, 결국 장기적으로 돈을 뽑는 건 내용물이거든."
"그래서? 나는 뭐 잘하는 게 없는데..."
"상관없어. 원래 인터넷 방송을 보는 사람들은 외로워서 보는 거야. 지훈이 니가 대답만 잘해주고, 채팅들에 반응만 잘 해주면 엄청나게 좋아할 거야. 생각해봐. 외로운 사람들이 자신의 대화를 들어주는 사람을 만났어. 기쁘지 않겠냐? 그런 거라고."
"그럼 나보고 그냥 대답이나 잘 하라는 거야 뭐야?"
"아니아니. 그런 뜻이 아니야. 오늘은 뭘 할 거냐면..."
배주리는 나를 중심으로 짜둔 오늘 방송 내용에 대해 신나서 떠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100만원을 벌은 덕분에, 잔뜩 고무된 나는 그녀의 제안에 적극적으로 동조했고 방송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돈을 벌고, 명성을 높일 필요가 있는 배주리에게 나는 아주 매력적인 아이템이었다. 일명 찌꺽남으로 인터넷에 명성이 퍼지기 시작한대다가 남자들 특유의 부끄러움이 전혀 없었으니까.
원래 세계에도 보면 여자들은 괜히 판 깔아주기 전까지는 부끄럽다고 뒤로 빼지 않던가? 속으로는 겁나게 하고 싶으면서.
그럴 때 적극적으로 나서는 여자가 있다면 남자들이 열렬한 환호를 보내기 마련인거다. 더구나 나는 정말 사내 같은. 정조역전 세계로 따지자면 정말 여자 같은 성격의 소유자였으니, 더욱 매력적인 카드였다.
“그래서 벗으라는 거야?”
“아니~ 누가 벗으라냐. 그냥 이거 입고 하다가 가끔씩 살짝 숙여주면서 가슴골 좀 보여주면 찌꺽찌꺽이 채팅창에 도배 될 거라니까?”
가장 마찰이 심했던 부분은 방송 복장이었다. 배주리가 내게 제안한 복장은 V넥에 헐렁거리는 티셔츠였는데, 게이 같아서 거부감이 강하게 들었다. 특히 배주리는 가끔 고개를 숙이며 가슴과 유두가 보일 듯 말듯이 노출을 해달라고 요구해왔다. 화제가 될 거라나 어쩐다나.
방송은 모두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안녕하십니까! BJ로키입니다! 오늘 방송은요~! 스페셜 게스트를 모셨습니다. 지금 문 밖에서 대기하고 계신데요~ 모셔보겠습니다. 요즘 인터넷에 찌꺽남으로 떠오르는 분이시죠? 제가 오늘 특별히! 오늘만큼은! 찌꺽찌꺽을 채팅창에 치는 것을 허용하겠습니다!”
찌꺽찌걱
찌꺽찌걱 가자 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설마 그 남자애? ㅋㅋㅋ
찌꺽찌꺽ㅋㅋㅋ 개웃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BJ로키의 친구! 김지훈 씨를 소개합니다!”
“안녕하세요.”
나는 배주리의 소개에 맞춰 방문을 열고 들어오며 수줍게 인사했다. 상황이 뭔가 재밌고 웃겼으니까. 인터넷 방송 채팅창에는 찌꺽찌꺽이 도배되며 후원쿠폰이 무더기로 쏟아지는 중이었다.
딸랑-!
딸랑거리는 후원쿠폰 소리에 나는 활짝 웃어 보이며 손가락을 갈고리 모양으로 만들어 흔들어 보이며 외쳤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로키 친구 김지훈입니다~”
<... 님이 후원쿠폰 500 장을 쏘셨습니다!>
<... 님이 후원쿠폰 100 장을 쏘셨습니다!>
<... 님이 후원쿠폰 10 장을 쏘셨습니다!>
<... 님이 후원쿠폰 150 장을 쏘셨습니다!>
<... 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