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동급생 협박 썰 - 9
"어... 그냥 가게?"
이미진이 머리를 긁적이며 묻는다.
"그럼 뭐 어쩔까요? 가서 납치라도 할까요?"
"나는 얼굴이라도 보고 갈 줄 알았지. 설아 끝날 시간도 다 됐을 텐데."
"..."
솔깃했다.
진짜 지지리 궁상이다. 지지리 궁상이야...
저런 이야기에 솔깃하는 내가 바보였다.
하지만 나는 기다렸고, 그렇게 10분이란 시간이 흘렀다.
퇴근 시간이 됐는지, 한 무리의 사람들이 건물 안쪽에서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 무리들 가운데는 설아 누나가 있었다.
누나는 환하게 웃으며 어딘가를 향해 손을 흔들었고, 안내데스크에 있던 형진이 잠깐 밖으로 나오더니 설아 누나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행복하게 서로를 안는다.
오. 해피엔딩이야.
물론 나한테는 해피 엔딩이 아니었다.
"그만 가요. 괜히 봤네."
그렇게 돌아온 이미진의 차 안. 보조석에 앉아 자동차가 출발하길 기다리고 있는데, 이미진이 그녀답지 않게 내 눈치를 봤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았나보지?
당연히 심상치 않지.
어린 시절의 첫사랑은 그게 사랑인지도 모르고, 흐지부지 끝난다더니 딱 그거다.
내가 성적 대상으로 생각한 첫 사람이라 그런지 너무 갑작스럽게 빠져들었다.
그만큼 매력 있는 여자였고. 이게 사랑인가.
괜히 슬프네.
"... 저. 지훈아. 오늘 일하기는 틀렸겠다. 그치?"
"왜요? 할 수 있어요."
“에로 만화 볼 그런 분위기는 아닌 것 같은데.”
“할 수 있다니까?”
"하긴 뭐. 실연의 아픔은 원래 이것저것 하면서 잊는 거긴 한데..."
"누가 실연을 당해요? 말 그런 식으로 하지 마요! 누가 보면 진짜 실연당한 줄 알겠네!"
내가 짜증을 확 내며 돌아보자 이미진이 눈을 껌벅거리더니 천천히 안전 밸트를 풀었다.
그러더니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다가왔다.
성숙한 여인의 향기가 점점 짙어지고, 그녀의 얼굴이 내 곁까지 다가왔을 때. 나는 키스하는 건가 싶어 눈을 꼭 감았다. 근데 내가 생각했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귀와 귀가 스치는 느낌과 따뜻한 무엇이 내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별 일 아니다. 누구나 다 그런 일쯤은 있어. 알지?"
"..."
나를 꼭 안은 이미진이 나를 토닥거려준다. 너무 의외의 사람에게 의외의 말을 들었다.
흔들거리는 마음이 그녀로 인해 더욱 뒤흔들리자 나는 감정이 갑자기 휘몰아치는 것을 느꼈다. 감정들이 마구 들끓기 시작한 것이다. 대체 지금 내 마음을 주도하는 감정이 무엇인지 나도 인식하지 못하겠는데. 내 품에는 여자의 몸이 안겨있다.
"그러니까 오늘은 일찍 들어가서... 으읍...?!"
보조석은 나와 그녀가 섹스를 했던 장소였다. 이곳에서 그녀와 다시 한 번 섹스를 한다고 해도 나는 별 거부감이 없었다. 거칠게 그녀의 입술 위에 내 입술을 가져가자 입술이 찢어졌는지 쌉싸래한 피 맛이 났다. 이미진은 깜짝 놀란 듯 눈을 껌벅거렸지만 별 다른 저항은 하지 않았다. 그저 소극적으로 내 움직임에 맞추며 나를 받아주었다.
“지, 지훈... 읍! 자, 잠깐...!”
나는 거칠게 그녀의 옷을 찢듯이 헤집어 젖가슴을 마구 주물렀다. 딱딱하게 치솟은 유두와 따뜻한 가슴이 터질듯 짓눌렸다가 퍼졌다.
"아, 아파앗...! 사, 살살... 읍!"
이제는 내가 그녀 위에 올라탔다. 좌석을 뒤로 눕히고 매끈한 그녀의 신체를 내 남근 아래로 내리 깔았다. 올라타서 그녀의 손목을 가로채 못 움직이게 하고 미친 듯이 키스하고 애무했다. 그녀의 전신을 빨아들일 듯.
"..."
하지만 반응이 없자 마음이 식었다. 아니. 애초에 섹스 할 마음도 없었다. 그저 공허함을 채우고 싶었을 뿐. 나를 멈춘 것은 내 밑에 깔려있던 이미진의 눈빛이었다. 그녀는 안타깝다는 듯 나를 올려보고 있었다.
"... 왜 그렇게 봐요?"
내 눈에서 흘러나온 눈물이 이미진의 얼굴에 뚝뚝 떨어졌다.
이미진은 병신처럼 질질 짜는 내 얼굴을 보다가 떨어진 눈물을 혀로 살짝 핥았다.
차 밖에서 들어오는 빛에 비춰 한껏 야릇해진 혀가 입술 주위를 훑고 지나간다.
"... 눈물이 좀 짜네?"
그럼 눈물이 짜지... 당연한 걸...
뒤늦게 터져 나온 눈물을 짜내며 나는 그대로 이미진의 품에 안겼다. 이미진은 말없이 나를 안은 채 엄마처럼 토닥여주었다.
*
진짜 100년을 두고두고 놀려먹을만한 일이었지만, 이미진은 나를 놀리지 않았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나를 집까지 태워줬다.
이미진도 이미진이지만 나도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수다를 늘어놓을 기분도 아니었고,
그러고 보니 이미진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한테 강제로 당했는데.
기분이 어떨지는 몰라도 당황스럽울 거야.
"도착했어. 여기 맞아? 네비에는 여기라는데."
자동차가 하숙집이 있는 골목에서 멈춰 섰다. 나는 자동자 문고리를 잡은 채 망설이다 말했다.
"... 저. 아까는 미안해요."
"신경 쓰지 마. 그럴 수도 있지. 솔직히 난 좋았어. 히히."
그렇게 말하며 윙크 한번. 우울했던 기분이 조금 가신다.
"근데 좀 의외였어요."
"응? 뭐가?"
"제가 막 그러면... 좋다고 할 줄 알았는데."
"내가? 하하하! 야. 내가 아무리 이상한 년이지만 실연한 고딩의 마음을 이용해서 먹을 정도로 쓰레기는 아니야. 알지?"
"... 인정."
"아~ 설마 하고 싶은 거였어? 지금이라도 할래? 박고 싶은 박아! 벌려줄게! 컴온!"
"... 하아~ 됐어요. 그럴 기분 아니에요. 갈게요. 그리고 오늘 고마웠어요. 만화는 다음에 같이 봐요."
"그래~ 지훈아 들어가!"
이미진도 미친 것처럼 보였지만 그래도 성숙한 어른이었다. 나는 그녀에게서 처음으로 어른다움을 느꼈다. 그렇게 이미진의 차가 사라지는 것을 보다가 나는 하숙집이 있는 골목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때 어두운 골목 한쪽에서 담뱃불 하나가 허공을 날았다.
틱- 틱-
붉은 재가 바닥에 떨어지며 사방으로 퍼진다.
뭐야?
양아치인가? 아. 아니지. 강간범일 수도 있구나.
여긴 정조역전세계로 강간범의 대다수가 여자였다. 여자도 강간을 당하기는 하지만, 여자는 강간보다는 강도나 특수폭행 등을 더 많이 당하는 편이었다.
하여간 다 떠나서.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어두운 골목은 위험한 곳이다. 상대가 기습적으로 공격을 하고 심지어 무기까지 들었다면 대응할 새도 없이 당할 테니까.
그래서 잔뜩 긴장하고 있었건만, 골목에서 나온 건 내가 아는 얼굴이었다.
"뭐야. 왜 니가 거기서 나와?"
"너 뭐하고 오는 거야?"
배소연이었다. 그녀는 무섭게 굳은 얼굴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대체 이 여자에가 어떻게 내 집 주소를 알았을까?
아니. 그것보다 여긴 왜 왔을지 더 궁금했다.
"니가 상관할 바가 아닌 거 같은데?"
“자동차에서 내리는 거 봤어. 그 여자지? 그 여자 맞지?”
“근데?”
"이 밤늦게까지 그 여자랑 돌아다니는 거 보니 너 혹시 원조교제 하냐?"
"뭐? 원조교제?"
배소연을 지나치던 내가 어이가 없어 물었다. 원조교제는 무슨 시발!
설아 누나와의 일만 없었어도 배소연을 살살 놀려가며 달랜 다음 돌려보냈을 텐데 지금은 그럴 정신이 없었다. 당장이라도 이불에 코를 박고 잠이나 자고 싶었는데, 이런 일을 당하니 재미는커녕 짜증이 났다.
낮에 집착하는 모습은 귀여웠지만 이건 정도가 지나치잖아?
"너 지금 하는 거 되게 웃겨. 우리 집 주소는 어떻게 알았냐? 나느 너를 데려온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대답 안 해?”
“이거 스토킹이야. 알아?"
"원조교제냐고 묻잖아! 이 씨발놈아!"
배소연이 내 어깨를 잡아채더니 벽으로 밀쳤다.
어쭈? 웃겨 아주.
내 팔을 잡은 채 벽에 붙잡아 놓은 배소연은 나를 잡아먹기라도 할 것 같았다.
조금 무섭기도 했다.
"원조교제면 어쩔 건데?"
"뭐?! 야! 기, 김지훈! 너 지금 원조교제라고 했어? 제정신이야?!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알아?!"
"아니... 시발. 원조교제면 어쩔 건데? 어?"
"대체 뭐하고 왔냐?! 내가 생각한 그런 거야?! 모텔 갔다가 온 거야? 돈 받고 한 번 박아준 거냐고!"
"어! 맞아. 대줬어! 아주 질펀하게 섹스하고 왔어. 남산에 차 세워 놓고 서울 야경 보면서 존나게 박아줬지. 30대 아줌마라서 그런지 고딩 자지 맛보니까 아주 좋아 죽던데. 여기 봐봐. 입술 터진 거 보이지? 뭔 아줌마가 키스를 그렇게 격하게 하던지. 30년은 굶은 년처럼 내 입술을 핥아대더라고. 씨이발! 정액 짜내느라 고환이 찌부러지는 줄 알았다. 됐냐?"
내가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쏴줬더니 배소연이 경악한 얼굴로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그리고 충격 받은 듯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 너 이런 애였어?!"
"이제 알았어? 나 이런 애야. 자동차 시트 젖혀놓고 위에서 존나 박아주고, 내가 누우니까 아줌마가 올라타더라고. 그리고선 내 허리를 잡고 흔드는데 좆 뿌리가 뽑혀서 죽는 줄 알았다야. 내 눈앞에서 흔들거리는 젖통을 쥐어짜듯 핥아줬더니 교성을 터트리는데! 와우! 죽여줘! 그렇게 격렬한 섹스를 하고 왔더니 지금 좀 피곤하거든? 그러니까 좀 꺼져주라. 스토킹 짓은 눈감아줄 테니까. 알았어?"
"..."
배소연이 아랫입술을 깨무는 것을 보고 나는 그녀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그리고 하숙집으로 향하는데, 띡- 하는 소리와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어! 맞아. 대줬어! 아주 질펀하게 섹스하고 왔어. 남산에 차 세워 놓고 ... 내 허리를 잡고 흔드는데 좆뿌리가 뽑혀서 죽는 줄 알았다야... 와우! 죽여줘! ..."
와. 저 미친년 녹음을 했네?
하도 어이가 없어서 내가 배소연을 보고 있는데 배소연이 말했다.
"들었지? 니가 말한 거 다 녹음했고. 나 저 여자 자동차 넘버도 기억해놨어. 거지같은 꼴 보기 싫으면 다 끝내라. 알았냐? 학교도 짤리고 경찰 신세 지기 싫으면. 알았어?!"
"아니 이 씨발 년아! 니가 뭔데 이 지랄 이냐고! 어?! 니 나 좋아하지도 않잖아!"
“좋아해! 좋아해서 걱정돼 그런다 왜?!”
“하. 시발."
설레지도 않는다 시발. 도저히 설렐 마음이 아니었다.
배소연은 울지도 않는다. 나는 저런 말하면서 처 울기나 했는데.
그래. 좋아하는 구나. 너도 같은 마음이구나.
내가 설아 누나에게 집착했듯 너도 나에게 집착하는 거구나.
뭐랄까. 고백을 들었는데도 기쁘지가 않다.
고맙다? 고맙기는 한데 무언가 좀 부담스럽다.
그제야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미친 듯이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고, 받아주는 사람도 기뻐야만 사랑이라는 걸. 설아 누나와 내가 가졌던 것은 사랑이 아니라, 단순한 집착이었다.
“이거 녹음한 거 들리지?”
“... 뭐 어쩌라고.”
“내 말. 순순히 따르면 지워줄게.”
“하! 협박이야?”
“앞으로는 내 말 잘 들어. 만약에 니가 내 말을 거스른다면. 나는 이 녹음 파일을 학교에 보고하고, 인터넷에 올려 퍼뜨려 버릴 거야.”
“야. 배소연. 그런 짓 하면 너는 멀쩡할 것 같아?”
“걱정하지 마. 니가 그런 변태 걸레 놈이 되어 사회에서 매장당해도 나는 너를 좋아해줄 테니까. 더 좋겠네. 나만 바라볼 테니까.”
그렇게 말하며 배소연은 손을 들어 내 뺨을 천천히 매만졌다. 그 손길은 내 광대뼈 근처를 맴돌다 서서히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고, 그녀의 호흡은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자극적이었지만 솔직히 존나게 어이가 없었다.
원조교제는 하지도 않았는데, 배소연이 착각하는 것도 어이가 없었고. 대단한 약점이라도 잡았다고 생각하는지 내 볼을 쓰다듬는 것도 어이가 없었다. 무슨 생각하는지 다 알겠거든.
이거 안 봐도 팬티가 푹 젖었을 거야. 당장이라도 내 자지를 빨고 싶겠지. 아주 시발 내가 박아주겠다고 하면 좋다고 보지를 벌리겠어.
침을 꼴깍 삼킨 배소연의 야릇한 눈동자가 내 입술에 향해있다. 그녀의 손길은 내 볼을 지나 입술로 향했다. 소중한 것을 쓰다듬듯, 간질이는 듯 내 입술을 만지던 손가락이 터진 내 입술 위 상처를 살짝 눌렀다.
“아.”
내가 통증에 살짝 인상을 쓰자 배소연이 씨익 하고 웃는다. 그녀는 미안하다는 듯 상처를 토닥이더니 입 안으로 손가락을 넣으려 했다. 하지만 내 이빨과 입술의 저항에 막혔다.
“벌려.”
“...”
살짝 입을 벌려줬다. 그랬더니 담배냄새가 나는 부드러운 엄지손가락이 내 혀 사이를 헤집고 들어온다. 배소연은 가쁘게 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옳지... 착하다.”
내가 반항적인 눈빛을 쏴주고 있지만, 그건 오히려 그녀를 흥분시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내가 정조역전세계에 넘어와 처음 겪는 악의였다.
그럼에도 내가 지금 참고 있는 것은. 그녀에게 동정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 솔직히 불쌍했다. 누군가를 좋아하면서도 같은 마음으로 사랑받지 못하고. 결국에는 집착하고야 마는 그 마음을 이해하기에 참아주는 것이다. 정도가 지나치면 바로 한 대 칠 생각이었지만.
배소연은 내 침이 진득하게 묻어있는 손가락을 입가로 가져가더니 혀를 내밀어 핥았다. 요사스러운 혀가 그녀의 엄지를 핥는 모습은, 남근을 혀로 핥는 모습을 연상시켜 아주 야했다. 배소연은 내 침을 음미하듯 혀 안에서 굴리더니 꿀꺽 삼키고 말했다.
“김지훈.”
“왜.”
“내일 학교 나와. 빠지지 말고.”
“...”
“학교 빠지지 말고 나오라고 했어. 대답해.”
“내 맘이야. 참견하지 마.”
“하. 그래. 너무 쉬우면 재미없지. 들어가서 잘 씻고. 앞으로 그 여자랑 연락하지 마. 알았어? 녹음한 걸 들키기 싫다면 말이야.”
배소연은 그 말을 끝으로 대답도 듣지 않고 자리를 떴다.
참나.
내일 학교 안 갈 거다. 시발 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