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동급생 협박 썰 - 5
내가 지켜본 바에 의하면 남녀 공학은 여고, 남고에 비해서 아이들이 온순한 편이다.
이성을 본다는 점에서 스트레스가 풀리기 때문인지, 혹은 이성이 지켜본다는 점 때문인지는 몰라도 왕따 문제나 폭력문제가 상대적으로 덜하다.
물론 상상하는 것처럼 남자 여자가 함께 놀고, 그런 일은 많지 않다.
보통은 남자끼리, 여자끼리 갈라져 노는데 그래도 서로의 시선은 의식한다.
한창 때 남녀가 30명 씩 몰려있는데 서로한테 관심이 없으면 그게 이상한 거지.
반에 마음에 드는 이성 한 둘씩은 다들 있을 걸?
그러니 남고, 여고 보다 냄새, 청결, 몸가짐 등에 신경을 쓰는 거다.
잘 보이고 싶으니까.
물론 그렇더라도 양아치인 놈은 어디를 가져다 놔도 양아치 짓을 한다.
"좋냐? 어? 너지?"
"뭐가?"
"이 새끼 모르는 척 하네? 담배 핀 거 꼰지른 거 너잖아."
정조역전으로 남성성과 여성성에 변화가 오자, 학교 내의 관계들도 크게 변했다.
원래 활발했던 애들이 여전히 활발한 건 마찬가지였지만, 뭐랄까. 폭력성을 공공연하게 드러낸다고나 할까?
여자애들이 힘이 쌔지니까 더 날뛴다.
지금처럼.
"우리가 당황하는 게 재미있지?"
"아니..."
"존나 많이 컸다? 조민영?"
배소연과 무리지어 다니는 친구들이 누구 하나를 괴롭히고 있다. 여자 셋, 남자 둘.
흔히 상상하는 대로 어디 구석진 곳에서 그러는 것도 아니다.
운동장 벤치에서. 멀리에서 보면 친한 친구들 같이 뭉쳐서.
하지만... 여자애들이 그러니까 뭔가 좀 웃기다.
그녀들이 한 학생을 괴롭히는 방식이 내가 아는 남자들과 비슷한 방식이었으니까.
남자 둘은 옆에 빠져서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고 있다.
"와. 뭐야. 김지훈. 너 학교 왔냐?"
괜히 끼어들기 싫어서 지나치는데 그 무리 중 하나가 아는 척을 해왔다.
누군가 하고 보니 원래 세계에서는 주로 남자들 뒤에서 낄낄거리던 여학생으로, 나와는 같은 반 학생이었다.
난 아는 척 하고 싶지 않았는데 왜 말을 걸지.
괜히 기분이 나빠서 툭 하고 쏘듯 말해주었다.
"어. 그러면 안 돼?"
아마 같은 성별이었으면 내 말에 짜증부터 냈겠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녀들의 정복욕을 불러일으킨 것 같았다.
짜증은커녕 웃기만 한다. 귀엽다는 듯. 그러며 나를 위아래로 훑는다. 분명 괜찮은 외모를 가진 이성의 시선이었지만 어쩐지 기분이 나빴다.
"안될 건 없지. 잘 왔다야. 소연이가 니 기다리던데."
"야야. 그런 말을 왜 하냐."
"킥킥킥. 얼마나 기다렸다고."
자기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고...
근데 소연이가 기다렸다고? 나는 이 것들의 말을 들으며 배소연이 '나를 좋아한다' 까지는 아니어도 관심이 있다는 걸 확신했다.
정조역전세계에서 학교에 나오는 동안 배소연은 괜히 시비를 걸거나, 혹은 까칠하게 말하고는 했다. 원래 세계에서는 날 가지고 놀듯이 말하던 여자애라 좀 의외였었다.
예를 들면 ‘지후니이~ 오늘은 뭐할 거야? 끝나고 또 집에서 혼자 게임해~?’ 라든지.
‘으이구 으이구 지훈이 숙제 다 했쪄요? 나 보여줄 거징?’ 라든지.
근데 이 세계에서는 시비 걸듯 말했다.
“걔가 날 왜 기다려?”
“글쎄다~ 내가 아니~?”
“혹시 또 모르지 다른 마음이 있을지.”
“야야 너무 갔어. 킥킥”
왜 여자들보다 남자들은 '누군가를 좋아한다' 며 이야기하기 좋아하잖아.
여자들 세계에서 '야. 누구누구가 너 좋아한데~' 라고 어떤 여자애 대신 친구가 장난친다고 생각해봐. 그건 친구가 아니야. 엿 먹이는 거거든. 개망신 떨게 해주겠다는 의도인 거야.
근데 남자들 세계에서 그건 도와주는 게 되. 친구끼리 대신해서 밀어주는 느낌인 거라고.
여자는 마음을 숨기려고 하고, 남자는 보이려고 하지.
그렇게 더 적극적인 게 남자들이야.
정조역전으로 완전 뒤바뀌었으니 어쩌겠어.
소연이가 너 좋아한데~ 이런 거 툭 찔러주고 싶겠지.
그런 거였냐? 배소연?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양아치 일진녀가 내 눈치를 본다는 거잖아.
기분이 한껏 업 된 나는 되지도 않는 오지랖을 부렸다.
"수업 이제 시작할 텐데. 남 그만 괴롭히고 들어가지 그래?"
"누가 누굴 괴롭혀?"
"우리가?" "아닌데~ 노는 건데~"
"애초에 너희들이 담배를 안 피었으면 서로 피곤할 일 없는 거 아냐? 걸려놓고 엄한 애한테 화풀이하지 말라고."
"하. 야. 너 좀 웃긴다? 남자애라고 그냥 넘어갈 줄 아나본데?"
솔직히. 그런 마음도 있었다. 이 세계 여자들이 설마 남자를 때리겠나 싶어서.
정조역전에서는 남자가 여자보다 힘이 약한 게 보통이거든.
그게 아니더라도 내 눈에는 이 여자애들이 만만했다.
뭐 얼마나 싸움을 잘하겠어? 싸움은 기본적으로 체격과 체중, 신체능력이 중요한데 내가 보기엔 이 애들은 다 나보다 작고, 힘도 약해보였다.
"니가 뭔데 갑자기 나대냐? 요새 이상하다 너? 소연이가 뒤 봐준다고 이러는 거야?"
"건방진데?"
여자 일진들이 위협하는 사이 뒤로 빠져있던 남자 일진애들이 나왔다.
그래. 남자에는 남자지. 나도 여자는 못 때리겠다 야. 나는 정조역전세계에서 태어난 놈이 아니거든. 앞으로 나선 남자애들이 내 가슴을 툭툭 손가락으로 밀며 내게 시비를 건다.
아. 근데 얘들은 어떻게 그대로냐.
이전 세계에서는 무서워서 말 걸기도 무서웠던 남자애들인데, 지금은 뭔가 만만하다.
하는 짓도 뭔가 비리비리한 게... 몸도 작아지고, 근육도 별로 없어 보인다.
탁-
내 가슴을 찌르는 남자 일진의 손가락을 붙잡고 꺾었다.
"아앗-! 아, 아파!"
아오 닭살. 뭔 남자애가 이러냐? 반응도 거지같네?
아프다며 내 손을 손바닥으로 찰싹찰싹 치는데, 여자애 손을 꺾는 것 같아서 소름이 돋았다.
손에서 느껴지는 힘이나, 반응이나... 다 여자 같다.
"야! 안 놔! 이 새끼가?!"
옆에 있던 다른 남자 일진이 내 머리끄댕이를... 야. 이건 아니지 차라리 죽빵을 갈기라고!
남자가 주먹 놔두고 왜 꼬집으려고 하냐?!
내가 남자애 손을 쳐내며 손으로 한 번 밀치자 철퍼덕 하며 바닥에 엎어진다.
정말 가녀리게. 바람 불면 날아가겠어? 여자였으면 반했겠네. 어쩜 그렇게 가냘프냐?
"야야. 나와. 뭐하는 거야?"
"김지훈 미쳤네? 너 싸움 좀 했구나?"
결국 여자애들이 나섰다. 아. 근데 아무리 그래도 여자애들은 어떻게 때리냐.
확실히 여자일진 애들은 힘이 쌨다.
손을 꺾는 내 손을 움켜쥐는데 마치 남자들이 나를 말리는 것 같다.
여자가 힘이 세다는 사실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특히 자동차에서 이미진과 카섹스를 할 때, 반항하는 그녀의 힘은 제압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이미진이 나와 섹스한 후에 힘이 빠진 상태가 아니었다면 벨트로 자동차에 묶어놓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걸 어쩔까?"
"뭘 믿고 이렇게 까불지? 소연이 때문인가?"
"아오. 이거 진짜 소연이 아니었으면 뒤지는데."
여자애들은 내 손목을 가로채 잡고는 내 어깨를 누른다.
아 제발 한 대만 쳐다오...
차마 여자애 상대로 먼저 주먹을 날릴 수는 없었으니까.
맞으면 바로 두들겨 패고, 홀딱 벗겨다가 운동장에 묶어놔야겠다.
어차피 정조역전이잖아?
니들이 여자라 봐야 이 세계에서는 빨게 벗어도 그냥 젊은 날의 추억정도겠지. 안 그래?
저기 축구 골대에다가 묶어놓고 몸에다가 육변기라고 낙서해줄게 애들아.
"이 새끼가 말을 씹네?"
찰싹-
여자애 하나가 내 뺨을 갈겼다.
나이스! 왔구나!
나는 맞는 순간 그녀에게 달려들어 태클을 하듯이 허리를 감싸 쥐었다.
얇고 가녀린 허리가 내 품에 푹 하고 안긴다.
"꺅!"
여자애는 내 체중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넘어갔다.
그리고 나는 그 위에 마치 침대에 몸을 던지듯 엎어졌다.
푹신한 가슴이 내 얼굴에 와 닿았고 단단한 골반 뼈가 내 가슴을 자극했다.
평평한 음부가 느껴지자 괜히 만지고 싶었다.
치마가 밀려 올라가서 팬티가 다보이고 있었거든. 그 사이에다 무릎을 집어넣고 비비며 나는 여자애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아악!"
비명을 지르며 여자애가 내 얼굴을 밀어내려 했다.
그래봤자지.
나는 그 손마저 치우며 여자애를 완전히 깔아뭉갰다. 위에 올라타서 분노로 일그러진 여자애의 얼굴을 보자 짜릿한 감각이 아랫배에서 느껴졌다.
와. 이대로 자지를 꺼내서 저 입에 물려볼까?
내 자지를 물고도 저런 표정을 지을까?
흐트러진 상의 사이로 가슴이 보이고, 부드러운 쇄골에 얇은 목선이 내 성욕을 자극한다.
그래서 잠시 방심했다.
퍽-!
옆에 서 있던 여자애도 바보가 아닌지라 잠시 당황한 이후에는 나를 바로 걷어찼다.
내가 넘어지자 남자 일진들도 하나가 되어 나를 밟기 시작했다.
그 때였다.
"야! 그만해! 뭐하는 거야?!"
소연이가 등장했다.
원래 세계에서 그녀는 일반적인 일진들과 다르게 혼자 열심히 미술하고 뭐 그런 애라고 생각했는데, 취소다. 이런 애들이랑 친구면 똑같지 않겠어?
"뭔 일인데 남자애를 때리고 있어?!"
"아니 이 새끼가 말을 싸가지 없게 하잖아..."
"지훈이가? 내가 이야기할게."
"하지만..."
"내가 이야기 한다고."
"..."
배소연이 일진들이랑 눈싸움을 시작한다.
원래 세계에서도 이런 비슷한 일이 있긴 했다.
그녀와는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는데 반에 있던 남자 양아치가 나를 빵셔틀 시키려고 하자 소연이가 안된다고 했다. '쟤 내 따까리인데 왜 니네가 쓰냐' 는 논리였다.
지금도 뭐 비슷하다. 왜 내꺼 건드리냐는 식이다.
싸움 잘하기로 소문난 배소연이라 그런지 일진 애들이 눈을 피하며 내 손목을 놓았다.
배소연은 나를 일으키며 말했다.
"따라와."
*
배소연은 나를 양호실로 데려갔다. 양호선생님은 없었기 때문에 배소연은 자기가 치료하려는 듯 나보고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양호 선생님도 없는데?"
"내가 할 거야."
"니가 뭐 알아?"
"많이 다쳐봤으니까 알지."
그런가보다 하고 가만히 기다렸다. 배소연은 짧은 단발머리의 여자애였다.
날카롭게 잘 벼려진 한 자루의 칼 같은 분위기는 말 그대로 '쿨뷰티'.
그녀는 까진 내 손을 보더니 약을 바르고 내 몸 이곳저곳을 살피기 시작했다.
뭔가 야한 느낌이 드는 건 내 착각인 걸까?
손을 만지는 그 손길도, 내 다리를 만지는 그 손길도 무언가 끈적끈적하다.
내가 변태새끼다보니까 이런 건 좀 민감하거든.
약을 다 바른 후 배소연이 내게 물었다.
"뭔 일 있었어? 애들이 왜 그래?"
"운동장에서 걔네가 누구 괴롭혀서 그냥 그만하라고 했어."
"그래?"
일반적인 반응은 아니었다. 시큰둥한 느낌.
얘는 내 앞에서만 안 그러지 뒤에서는 혹시 저것들과 똑같은 거 아닐까?
배소연은 내 옷을 털어주며, 아닌 척 말했다.
"뭔 남자애가 겁이 없어? 제정신이냐? 여기저기 나서지 말고. 알았어?"
듣고 보니 좀 기분이 나빴다.
"... 니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아니... 짝이니까."
그녀는 당황한 듯 보였다.
나는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그녀가 내게 마음이 있었다고.
돌이켜보면 원래 세계에서도 관심 표현이 자주 있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나한테 숙제를 보여 달라든지, 괜히 나한테 기대서 수다를 떤다든지.
나는 그게 단순히 일진 양아치가 나를 만만하게 보고 그러는 줄 알았는데.
나 좋아해서 그랬구나?
나는 웃으면서 배소연에게 물었다.
"너. 나 좋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