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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화 〉동급생 협박 썰 - 4 (21/101)



〈 21화 〉동급생 협박 썰 - 4

현정이의 친구들은 보쌈이 도착하기도 전에 취했다.
어디보자...
굴러다니는 술만 세어 봐도 맥주 캔 다섯 개, 소주 다섯 병...
 사람당 소주 한 병 씩은 먹었다는 건데, 무슨 애들이 술이 이렇게 세지?
다들 술 때문인지 얼굴도 벌겋고 기분도 좋아 보였다.


"게임 안 하냐 게임?"
"게임하자!"

현정이가 주문한 보쌈이 도착하고 본격적인 술자리가 시작 됐다.
아니 근데 이것들아.
게임하는  좋은데... 게임하자면서 나를 그렇게 보고 있으면 의도가 너무 뻔하지 않냐?
나도 여자 한 명이 술자리에 있었으면 저럴  같기는 해.

아직 대학을 가보지는 않았지만, 나는 컴퓨터 공학과를 가려고 했거든?
컴퓨터 공학과면 공대잖아. 거기는 거의 남자 밖에 없다고. 여자 하나 두고 남자들이 우르르 모여 있으면 당연히 여자한테 시선이 쏠리겠지. 여초에서 남자가 왕따 당하는 거랑은 대우가 천지 차이야. 그래서 이해는 하는데.

너무 티를 내니까 부담스럽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싫지는 않았다. 이성에게 저런 눈빛을 받고 기분이 나쁠 수는 없지. 내가 매력적이라는 거니까. 그렇게 기분 좋아진 나는 술을 거부하지 않았고, 우리는 술자리 게임을 하기로 했다.


"무슨 게임 할 거야? 나도 하고 싶은데."

하자고 해봤자 내가 술자리 게임을 뭘 알겠나. 이렇게 본격적으로 술을 먹어본 것도 태어나 처음인데.
더군다나 또래 이성 친구들과 이런 술자리를 고등학교 때 가져볼 줄은 상상조차 못해봤다. 그런 건 잘나가는 일진들이나   알았거든.
현정이가 남자친구 없다고 무시 받는 게 열 받아서 끼어들었는데, 막상 끼어들고 보니 내가 즐기는 중이다.

"방법을 알려줄게."


나에게 더없이 친절한 3명의 여자애들에게 여러 가지 게임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몇 가지 게임설명을 들은  나는 그녀들과 게임을 시작했다.
물론 자꾸 나만 걸렸다.
내가 못하는 건지. 이것들이 의도적으로 날 처먹이는 건지.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술이 들어 간다 쭉쭉!"


어설픈 어른들 술자리 흉내를 내며 여자애들은 내게 술을 강요했다.
의도는 뻔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그래서 마시려는데...

"내가 흑장미한다."
"에이~" "야! 니 남자친구도 아니라며." "썸타냐?"
“난 괜찮은데...”
“내놔.”
“워... 야. 소원 빌어 소원.” “혹시... 키스?” “야야. 너무 갔어. 키스는 무슨.”
“그런 건 이미 해봤는데.”
“했어?! 아니 이것들은 진짜.” “염장질 진짜.” “사귀는 사이도 아니라며. 뭐하는 것들이야 이거.”

수다를 떠는 여자애들을 뒤로하고 현정이가  잔을 터프하게 뺏더니 후루룩 술을 마셔버렸다. 야. 뭐야 너. 설레잖아. 한 순간 내가 여자가 된 기분이었다.
비장하기까지 한 현정이의 태도에 가슴이 조금은 두근댔다.


 뒤로도 몇 번의 게임을 바꿔가며 술자리를 가졌다.
짓궂은 벌칙 같은 것도 했다.
예를 들면 내가 누워있고 여자애가 위에서 팔굽혀펴기를 한다든지... 근데 그건 벌칙인지 아닌지  모르겠던데? 예쁜 애가 입술을 바들바들 떨며 다가오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거든. 키스해주고 싶을 정도로.
흑장미로 너무 많이 나서버린 현정이가 가장 먼저 뻗어버리자 벌칙의 강도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왕 게임을 하더니 키스 뽀뽀 포옹... 섹스 하는 거 빼고  입고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3명과 키스를 한 번씩 다하고 나서는 코를 골며 자고 있는 현정이 옆에서 우리는 수다를 떨었다. 학교생활, 게임 이야기, 만화 이야기...
아무리 날고 기는 날라리라고 해도, 학생은 학생이다.
대화의 범위가 넓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다양한 맛은 있었다.

이 집에 모여 있는 4명은. 서로 엉키고 엉켜서 서로 떼놓을  없는 그런 관계였다.
현정이는 그래도 학교생활에 충실하면서 알바 하는. 비교적 모범 학생이었다.


"우리 카페에서 알바하지롱~"

김성혜라는 친구 집은 꽤 규모가 큰 카페를 운영했다.
현정이가 파트 타임으로 그곳에서 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꽤 놀랐다.
솔직히 노는 친구들 인상이 좋지는 않잖아. 현정이고 첫인상은 슬리퍼 질질 끌면서 야밤에 담배하나 꼬나문 양아치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어쨌건 현정이는 거기서 파트타임으로 간간히 일하는 모양인데, 김성혜는 나보고 와서 아르바이트를 해보란다.


"나 때문에 여고생들 많이 몰리면  더 줄 거야?"
"어머. 너 자신감 좀 넘친다?"
"넘쳐도 되지 뭐."
"히히. 그건 그래.  와! 지훈아! 근데 우리 카페는 주위에 남고가 있어서 여자애가 알바하는  나을 것 같기도 해."


다른 친구 하나는 가출 청소년에, 자퇴까지 한 2관왕 친구였는데, 자기가 인터넷 방송을 한다며 언제 한 번 놀러 오란다. 김성혜처럼  여자애도 나를 데려가려고 애를 썼다. 정조역전세계 남자들은 조신해도 너무 조신하다나 뭐라나. 그래서 내가 쓸모가 많아 보인단다.
뭐에 쓰려고?

"게임 할 줄 아냐?"
"나? 잘은 못 하는데..."
"아~ 아냐 아냐. 괜찮아. 못하는 것도 나름 매력이 있어. 흐흐. 잘 못하는 남자애를 구박해가면서 하나하나 슬슬 가르쳐주는 재미가. 으흐."
"..."

상태가  안 좋은 애였다.
근데 뭐.  친구들과 나는 친분도 깊지 않았고. 딱히 할 이야기도 없어서 대부분 현정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보냈다.

"현정이 첫사랑 누군지 알아?"
"나 아니야?"
"어머 어머. 웬일이니." "얘 봐. 자신감 장난 아닌데." "대놓고 자기래~ 어쩐지 현정이가 목숨 걸고 흑장미 외치더라니."

무슨 말만 하면 자기네끼리 웅성거린다.

"때는 중학교 2학년! 현정이가 처녀를 떼기 위해 매의 눈으로 같은  남학생을 노리고 있었지!"
"캬. 고 년 빠르다 빨라. 우리는 다 고등학생 되고서야 뗐는데."
"현정이가 딱 남자애 붙잡아 놓고 이야기 하더라. 너. 내 남자해라."
"꺄아아~" "개설렘. 미침."

정조역전이지만 수다만큼은 그대로인 것 같았다.


"그 남자애도 동정이었나 봐. 보통은 여자가 남자랑 한 번 하고 버리는데,  남자애는 특이하게 동정을 떼자마자 현정이를 차버렸어."
"왜 그러는 거냐? 대체? 남자 심리는 도통 알다가도 모르겠어."
"남자 대표로서 한 말씀 하시죠?"
"하여간 남자들 어장 쩔어요... 쯧쯧."

아니. 애들아. 내가 남자기는 한데, 정조 역전 남자들의 마음은 잘 몰라.
원래 세계라고 해도 마찬가지겠지만.
여자가 여자 심리를  알고, 남자가 남자 심리를 잘 안다는 편견과는 다르게, 누구든지 누구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한평생 같이 산 가족 마음도 모르는 게 세상인데 어떻게 알겠나.

"그거야... 내가 어떻게 알아? 남자들마다 다 생각이 다른데. 왜 그럴까. 나도 잘 모르겠는데? 현정이 괜찮은데."
"하여간 그것 때문에 충격 먹고 쟤가 한동안 연애를 못 했어요~"

어쩐지 내가 동정이라니까 표정이 변하더라니.
현정이를 만난 첫  결국 우리는 섹스를 못했다. 다른 거 할  다하고 동정이라는 이유만으로 현정이가 거부했었다.


"아. 그러고 보니까 지훈이 너 호명고 학생이지?"
"응."
"거기 배소연이라고 있지 않나?"

 여자애 입에서 의외의 이야기가 나왔다.
배소연은  옆 자리에 앉는 짝꿍으로, 호명고 일진 중 한명이었다.
뭐. 여기 애들도 꽤 노는 것 같으니, 노는 친구들끼리 안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지만...


"우리 반 애인데. 왜? 니들이 배소연을 어떻게 알아?"
"현정이 차버린 애가 헤어지기 무섭게 배소연이랑 사귀었어. 그 뒤에는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소연이  우리 패밀리였는데."
"맞아. 근데 나 걔 싸가지 없어서 마음에 안 들었어."
"그 년이 현정이 맨날 졸래졸래 따라다니더니, 현정이 남친이랑 사귀고 부터는 아예 쌩이잖아."
"배소연도 미술 했다고 하지 않았나?"

내가 배소연 짝꿍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현정이는 뭐라고 할까?
친구들의 수다를 들으며 나는 생각에 잠겼다.


*

현정이의 집에서 다 함께 잤다. 솔직히 여자애들이 덮칠까 봐 무섭기는 했는데, 현정이 옆에서 자서 그런지 별 일은 없었다. 아니. 무섭지는 않았고 솔직히 기대를 조금 하긴 했다. 덮쳐서  위에 올라타  하든 말든 나는 자는 척하려고 했었지.


새벽에 일어나니 현정이가 나를 꼭 끌어안고 자고 있었다. 얘는 잠을 왜 이렇게 자? 내 옷에다가 침 질질 흘리면서.
손가락을 들어 침을 닦아주니까 귀찮다는  짜증을 낸다.


찰싹-


살짝 뺨을 때렸다. "아으으응." 하는 요사스러운 목소리와 함께 현정이는 돌아누워 자기 시작했다.

새벽 5시. 잠도 많이 못 잤다. 대충 애들이 깨기 전에 몰래 집에서 나왔다.
하숙집에 안 들어간지 너무 오래됐거든.
오랜만에 돌아온 방. 방은 며칠씩이나 방을 비웠던 것 치고는 먼지가 없었다.

"아줌마가 치웠나?"


하숙집 아줌마는 30대의 젊은 주인으로 내게 항상  대해주시는 분이었다.
집을 구하러 처음 찾아왔을 때부터 고아라 불쌍하다고 얼마나 잘 챙겨주시던지.
근데 내  몰래 들어온 건  그렇네?


하여간.

학교를 가야했지만, 숙취가 너무 심했다. 잠깐  붙이고 가려고 누웠는데 일어나보니 12시였다.
젠장.
망했네?
지금 달려가도 지각이다. 학교를 하루 더 재낄까 고민하고 있는데 메시기가 하나 도착했다.


[배소연 : 너 오늘도 학교 안 나오냐? 선생님이 물어 보라든데?]

흠.
이건 어떤 심리일까?
남고딩인데, 평소 관심 있는 여자애가 학교를 안 나와.
무슨  있나 궁금해. 그래서 물어보고 싶은데, 뭔가 민망해.
관심 있다는 속내를 들키는 것 같고.
결국 변명이랍시고 한 줄을 덧붙여.
선생님이 물어 보라든데?


이런 시나리오는 아니겠지?
우리 담임이 나한테 그렇게 관심 있는 성격은 아니었는데 말이야.

[김지훈 : 몸이 안 좋아서 지금 일어났어. 병원 갔다 올려고.]

만약 알았어. 라고 끝내거나 메시지를 씹으면 정말 선생님이 물어본 거겠지.


[배소연 : 어디가 또?]

 정말 나한테 관심 있는 거 아닐까?
생각해보면 원래 세계에 있을 때도 배소연은 꾸준히 나한테 말을 걸어왔었다. 말 뿐이면  몰라. 그녀는 예상치 못한 스킨쉽을 해오던 여자 아이였다.
내게 기대앉거나, 어깨동무를 한다거나, 헤드락을 걸며 어떤 '영역' 을 계속 침범해왔다.

친하지 않은 사이에. 연락도 서로 안하는 사이의 여자애가 헤드락을 걸어와.
목 뒤와 귀로 여자 가슴이 느껴진단 말이야.
어떤 남자가  설레겠어? 향기부터가 설렌다고.
그런데 배소연은 그런 행동들을 내게 아무렇지도 않게 해왔다.


정조역전세계로 온 이후 태도가 달라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김지훈 : 배도 아프고, 머리도 아프고...]
[배소연 : 얼마나?]
[배소연 : 얼마나 아픈지 선생님이 물어보래]


선생님이 물어볼 리가 없지. 거기다 얼마나 아픈지는 뭐 하러 물어.
 정말 나한테 관심 있나?
배소연의 아리송한 태도에 흥미가 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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