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미술 하는 누나 썰 - 6
그녀는 내 하숙집 주소를 찍은 후, 설아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이야기는 하고 있어. 이야기 좀 해볼게. ... 아. 그럼 어떻게 하냐. 니 집 안 들어가겠다고 그러는데. 하숙집 있데. 원래 살던데. 거기 데려다 주려고. ... 그래. 미안하다고. 너까지 왜 그러냐~ 내가 좀 쌔게 나간 건 미안해! ... 아 그래 알았어."
"..."
"알았어. 알았어. 설아야. 화내지 말... 아이구. 끊었네."
"..."
뭔지는 모르겠는데 이미진이 중간에서 욕먹고 있는 상황이었다.
뭐야 이거? 갈수록 더 궁금하네?
나는 설아 누나와 이미진의 통화가 끝나기 무섭게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된 거예요. 말해봐요."
"하아. 아 씨발.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뭘 저 때문이에요! 전 당하기만 한 건데!"
"당하기만 해? 응?"
"... 그건 아니지만."
"저번 날에. 설아가 뭔가 이상하다는 거야. 술 먹고 일어났는데 지훈이가 자기를 대하는 태도가 이상한 것 같데. 근데 내가 걔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라서 잘 아는데, 걔는 술먹으면 그냥 세상 모르고 자는 얘거든? 그러니까 주사 때문에 네 태도가 달라질 리 없는거지. 그래서 내가 물어봤어. 지훈이가 잘 때 너한테 이상한 짓 한 거 아니냐고."
"..."
시발 예리하네.
눈치 못 채는 게 이상한 건가.
아. 이미진만 아니었어도 안 걸리는 건데.
"근데 솔직히 여자들이 다 그렇거든. 완전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거기다 잘생겼지. 어리지. 그런 애가 한 번 해주는데 좋은 거잖아. 그래서 내가 부럽다고 했더니 지훈이는 그럴 애가 아니라고 하네? 뭐 그러다가 술 먹고 여차저차 하다가 내기나 해보자 어쩌구 하면서 이렇게 된 거야."
"무슨 내기요."
"오늘 술을 좀 먹다가..."
"... 오늘요? 그럼 지금 음주운전 하시는 거예요?"
"어. 왜?"
"..."
하. 이 여자 진짜... 예술 하는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 많다더니 진짜였네.
앞으로 미술하는 사람은 피해야겠다.
내가 어이없다는 듯이 째려보자 이미진이 캭캭 거리며 경박하게 웃더니 답했다.
"야야. 뭐 얼마 안 먹었어. 설아 엄청 취해보이지? 저거 술 엄청 약해. 소주 한 병만 먹어도 인사불성 되는 애야. 아까 둘이서 소주 한 병 먹고 들어온 거다."
"아니 그래도 음주운전을 하면 어떻게요?!"
"반병은 입가심이지 입가심."
"무슨 입... 하아 참나. 그래서 이야기나 좀 자세히 해봐요.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얼버무리지 말고."
"술 먹다가 내가 그렇게 말했지. 내가 보기에 그 김지훈이라는 애는 보통 남자애랑 다르다. 게다가 하는 짓 보면 너를 좋아하는 것 같다. 너도 김지훈 좋아하지 않냐! 둘 다 내숭 그만 부리고 폭풍 섹스하고 애를 낳던지 해라! 그런 후에 결혼 도장 꽝 찍어주면 나이스 한 거지! 그냐 안그냐?"
"그냐는 무슨 얼어 죽을..."
갈수록 가관이다.
"설아가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고딩한테 그럴 수는 없다며 내숭을 부리길래 내가 좆까지 말라고 뻑큐를 날려주고, 일단 먹어라. 남자는 일단 먹고나면 그 다음부터는 여자한테 꼼짝을 못한다!"
"참네."
정말 가관이다.
"이 때가 아니면 니가 13살 차이를 언제 만나보겠냐! 딱 그러니까..."
"13살 차이?!"
"... 어. 너 우리 몇 살인지도 몰랐어?"
"아니... 나이를 묻기도 좀 그래서."
어쩐지 설아 누나가 묘하게 나이에 대한 답을 피한다 했다. 그래서 나이를 몰랐는데 이제야 정확히 알게 됐다. 13살 차이면 이제 서른 하나인가. 설아 누나나 이미진이나 워낙 동안이서 눈치를 못챘다. 많아 봐야 28 쯤이라 생각했는데...
설아 누나가 내가 들이대면 부담스러워했던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래. 그렇지.
아무리 어린 여자가 좋다고 해도 서른이 넘으면 세상 경험은 충분히 한 나이다.
여고딩이 당돌하게 유혹해오면 잘 타일러서 돌려보낼 생각을 하지 일단 먹고 보는 어른은 얼마나 되겠나?
서른이란 나이는 법적인 책임, 사회적 책임감, 도덕적 지탄 등등 자신의 행동에 대한 위험 범위를 충분히 인식 할만한 나이니까.
그런 면에서 이미진은 정말 싸이코였다. 그녀는 기회가 오면 마다하지 않는 사람으로 보였으니까.
그녀는 섹스하자고 하면 당장이라도 옷을 벗을 여자였다.
나이스! 무르기 없기다? 룰루~ 남고딩 자지!
이 지랄 하고도 남겠지.
"하여간 설아가 정말 그럴 리 없다고 그러는 거야. 그래서 막 캐물었더니. 거기가 어쩐지 좀 저린 느낌도 있었다네? 그 날 내가 기억하기로는 걔 팬티가 이상하게 완전 젖어 있었거든? 그래서..."
"치마를 올리니까 정액 냄새가 났다면서요?"
"내가 언제 그랬어. 익숙한 냄새가 났다고 했지. 그리고 남이 입은 팬티에서 무슨 냄새가 나는지 어떻게 알아? 툭 찔러봤더니 니가 제발 저려서 술술 분거잖아. 바보야."
아. 시발. 그런 거였냐.
이런 삼류 저질 같은 유도심문에 걸리다니.
"그러니까 나는 설아가 술에 취해서 자고 있으면 김지훈이가 분명 이상한 짓을 할 거다! 이렇게 주장했고, 설아는 지훈이는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한 거야. 지훈이는 착하고 장래가 창창한 애라고. 자기 같은 아줌마한테 고딩이 뭐하러 그러겠냐며... 하여간 눈치 더럽게 없어요. 그러니까 연애를 잘 못하지. 바보처럼."
이미진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설아 누나에게 실망했던 마음이 조금씩 풀리고 있었다.
한 편으로는 나를 믿는 그 마음을 배신한 것 같아 불편했다.
나는 어쨌건 누나에게 해버렸으니까.
"그래서 집에 김지훈이도 있겠다. 너는 취한 척 하고 자빠져서 잠이나 자라. 그 다음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 애가 어리니까 겁 좀 주면 눈물 질질 짜면서 술술 불거다. 왜. 자신 없냐. 지훈이 믿는다며? 이러면서 툭툭 건드렸더니 술도 취했겠다. 해보자고 하네?"
"..."
"니가 설아를 업고 들어가는 걸 보다가 현관문을 살짝 잡았지. 완전히 안 닫히게. 근데 니가 문 안 닫힌 걸 눈치 못 채더라고. 거기서 딱 느낌이 왔지. 이 놈이 이거 완전 발정났구나! 그리고 몰래 따라 들어갔는데 세상에. 니가 설아 위를 올라타고 키스를 하고 있더라고."
"그, 그거는...!"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아냐? 남고딩이 굉장히 수줍게 입을 살며시 대고 있는 그런 장면을 상상했는데 아예 올라타고..."
"그건! 잘못했어요. 인정한다니까요?"
그러니까 설아 누나는 그 때 깨어있었다는 말이다.
그것도 완전히 멀쩡히.
하. 미쳤다 진짜 나 이제 설아 누나를 어떻게 보지.
"그래서 동영상도 찍고, 사진도 찍은 거지."
"그거도 정상은 아니거든요? 말려야지 동영상은 왜...!"
"재밌잖아. 키키킥 그냐 안그냐?"
"노예계약서는 뭐예요?!"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된 거지. 하도 어이가 없어서 좀 놀려주려다가..."
"제 거기를 치고 만지고 비빈 건요? 그건 범죄 아니에요?"
"니가 첫 날에 뭐했는지 캐내려고 분위기 조성하다 보니 그렇게 된 거지! 범죄? 이 시발 진짜 누가 먼저 잘못했는데! 발랑 까져 가지고! 첫 날에 니가 한 짓은 아무리 남자가 여자한테 한 거지만 성폭행이야 새끼야! 알아?!"
"... 첫 날 이야기는 왜 자꾸... 씨."
"요즘 남고딩들은 그게 별 거 아닌가 봐? 우리 때만 해도 남자애들은 우리 손만 닿아도 으아악! 하면서 도망갔는데 말이야."
"..."
"니가 팬티에다 사정했다고 딱 말하는데,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냐? 티는 안냈는데 엄청 놀랐다고. 설아 년은 더 놀랐을 걸?"
결론적으로 내가 계속 잡아 뗐으면 넘어갔을 거란 이야기네?
아 정말 짜증난다.
"하여간 팬티에다 사정했다고 하니까. 장난끼가 좀 발동해서 설아 좀 골탕 먹어보라고 똑같이 해보라고 했지. 사실 나는 자위하면서 팬티 위에다 싸버릴 줄 알았어. 그래서 니가 팬티를 내리려 할 때쯤에는 멈추게 하고, 설아도 깨우고, 그러려고 했더니 와! 이게 또 설아 팬티를 내려버리네?"
"..."
"뭐할 건지 궁금해서 놔둬봤지. 하여간 너 진짜 음란의 화신이더라. 아주 섹스 꿈나무야. 거기를 그런 식으로 비비는 건 생전 처음 봤다. 하여간 넌 진짜 앞으로 남성 섹스계의 창의적 행위노벨상을 탈 놈이다. 내가 장담한다."
"..."
"그걸 하란다고 진짜 하냐? 설아는 몰라도 나는 생전 처음 보는 여자잖아. 내 앞에서 팬티를 벗고 그걸 꺼내다니. 넌 진짜 뭘 해도 될 놈이다 야. 물건도 크고."
"그럼 어떻게요! 노예계약서까지 썼는데! 안 했다가 어떻게 될지 알고! 아 씨 진짜. 짜증나."
"그래그래. 대충 오해는 풀렸지? 응?"
"... 뭐. 용서한 건 아니에요."
"알았어. 누나가 누나답지 못했어. 인정인정! 미안해."
"참네."
"미안하니까 내가 쏜다. 맛있는 거 사줄까?"
"됐어요. 필요 없어요."
"아니면 어떤 거? 가방? 옷? 누나 돈 좀 있어."
"얼마나 있길래요. 그래봐야 뭐 직장인이지."
"원래 미술 같은 건 집에 돈 있는 애들이 하는 거야. 진짜야. 내가 진짜 미안해서 그래. 설아도 화내고 있는데 나 불쌍하지도 않냐? 도와주라~"
진심으로 사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설아 누나 집에서 있었던 일은 양 쪽의 오해와, 타이밍 미스와, 오기가 겹쳐 벌어진 일이었다.
화가 조금 풀려서 미진 누나를 돌아보니 그녀는 운전을 하다 말고 내 시선을 느꼈는지 히히- 하며 웃어보였다.
신나셨네. 그래. 그렇다 이거지?
"누나가 뭐 해줄 수 있는데요."
"엄청난 건 안 되겠지만..."
"정말 해달라는 거 해줄 거예요?"
"그래. 말만 해. 내가 다...!"
"섹스."
"해 줄... 엥?"
"섹스해달라고요."
끼이이익-!
자동차가 급브레이크를 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