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직장인 누나 썰 - 4
도대체 무어라 표현할 수 있을까. 이 감정을.
순식간에 에베레스트 산 정상 8848m 에서 마리아나 해구 챌린저 해면 11035m 그 아래까지 처박혀버린 내 기분을.
나는 나도 모르게 발밑에 있던 멀티탭 스위치를 눌러 컴퓨터를 껐다.
그러자 모니터 안에서 내 심장을 향해 총을 쏴대던 메시지들이 사라지고 거무스름한 화면이 떠올랐다. 나는 꺼진 모니터 화면을 멍하니 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저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발정난 개새끼마냥 누나의 방 안을 두리번거리며 걸었다.
형진 오빠?
누나보다 연상이네? 누나 연상 취향이었어?
원래 세계라면 모를까 여기는 정조역전세계인데?
그럼 연하를 만나는 게 보통이잖아. 연하가 더 매력적인 거잖아.
남자가 좀 더 어린 여자를 좋아하듯이, 누나는 형진이보다는 나를 좋아해야 정상이잖아.
[이미진 : 근데 형진 오빠는? 그 날 밤늦게까지 있었잖아. 그 이야기나 좀 해봐.]
[이미진 : 그 오빠 죽여주잖아. ㅋㅋㅋㅋ]
죽여줘? 뭐가?
대체 뭔 이야기를 한 걸까. 왜 밤 늦게까지 있던 거지?
이 걸레년이 나한테는 비싸게 군 주제에 여기저기 벌리고 다녀?
그럼 왜 그렇게 깨끗하고 착한 척 했던건데.
그 부드러운 살결을 내가 잠깐이라도 느끼게 하지 말았어야지.
푹신한 가슴에 내 얼굴이 파묻히지 않게 했었어야지!
핥고 싶던 허벅지. 그 다리. 내가 만지지 못하게 했었어야지!
다른 남자랑 놀았으면서 왜 내가 박아준다니까 뺨을 갈긴 건데?!
정조 역전이라며. 정조 역전이라며!
그럼 나를 향해서 보지 벌리고 있어야 정상 아니야?!
짐승처럼 하고 싶단 말이야. 나는!
메시지의 뒷내용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누나를 만나고 싶었지만, 만나고 싶지 않았다.
반대되는 감정들이 내 머리를 복잡하게 했다.
다짜고짜 누나 집 밖을 나왔다.
윤설아의 집은. 누나의 집은 그녀의 향기로 가득해서 그저 머무는 것만으로도 나를 기쁘게도, 화나게도 했으니까.
한참을 걷다 근처 비어있는 놀이터에 가서 벤치에 앉아 하염없이 하늘을 보았다.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 하교하는 학생들, 퇴근하는 직장인들이 보일 때까지 그렇게 있었다.
근데 이게 생각해보니까 진짜 병신같은 거지.
설아 누나? 만난지 하루도 안 됐어.
손에 넣을 수 있고, 섹스하고 그 육체를 주물럭 거릴 수 있다고 생각한 건 그저 내 망상이잖아.
누나도 나를 보며 흥분했던 건 사실이지만 우리 둘 사이엔 아무 관계도 없었던 거잖아.
뭘 나 혼자 흥분해서 이러고 있나.
별 일 아닌 걸로 자기 혼자 기뻐하고 실망하는 나에 대해 자책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냥 가져버리자. 일단 박고 나면 좋아하겠지.
원래 세계의 남녀관계를 생각해보자고. 친분이 있는 사이. 그저 호감만 있는 사이.
그런 관계에서 여자 쪽 육탄돌격에 남자가 홀라당 넘어가는 경우도 많잖아?
이 이상한 세계에서는 내가 달려들면, 누나는 못 이기는 척 나를 받아들일 거야.
교성을 지르다가 말고 다리를 뻗어 내 허리를 감싸고 내 등허리에 길고 얇은 손톱자국을 남기겠지.
안된다고 말하던 그 입술에서는 사랑한다는 말이 나올 테고.
그런 생각도 했다.
생전 처음 보는 나를 위해 참고, 도움을 주고, 친절을 베풀었던 성숙한 여인에게 나는 못된 상상하기도 원망하기도 했다. 누나가 대체 뭘 잘못했기에? 나는 쓰레기였다.
자존감이 점점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나는 여기서도 여자한테 안통하나?
나랑 하고 싶은 애가 없나보다.
그렇게 생각하니 또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울보야 완전. 그렇게 혼자 질질 짜고 있을 때였다.
"무슨 일인데 그렇게 우냐?"
어떤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여자애였다. 분홍빛 입술에는 하얀 담배가 하나 물려있었다.
딱봐도 양아치지 뭐.
느슨하게 단추를 풀어놓은 상의 교복. 그 사이에 둥그런 가슴라인을 따라 타투가 보였다.
가슴은 적당히 컸고 골반은 보통. 얼굴도 풋풋하고 귀여운 맛은 있지만 대단한 미인은 아니었다.
그러나 교복치마 밑으로 뻗어 나온 다리는 예술이었다.
마치 글레머러스한 여자처럼 굴곡이 있으면서도 무릎과 발목이 가는 환상적인 다리였다.
맨발로 삼선슬리퍼를 질질끌며 다가온 여자애는 내 옆자리에 털썩하고 주저앉더니 다리를 꼬고 앉았다. 팬티가 보일만큼 짧은 치마 밑으로 살덩이들이 밀리며 탐스러운 곡선으로 꼬아진다.
"무슨 일이냐고. 안 들려?"
얘는 또 뭐야? 내가 만만하나?
짜증이 났다. 세계가 바뀌었다한들 내 힘은 그대로라 여자보다는 세다.
나는 운동도 꽤 했었기 때문에, 여자한테 맞고 다니는 건 상상도 못해봤었다.
그러니 내가 양아치 같은 여자애한테, 그것도 혼자 있는 애한테 쫄 리가 없잖아?
슬쩍 그 애를 보며 나는 조용히 말했다.
"그냥 가라. 짜증나니까."
"뭐? 참네."
여자애는 재미있다는 듯 키득거리더니 몸을 내 쪽으로 틀어 앉았다.
왼쪽 가슴에 노란 명찰이 번들거린다.
'장현정' 그녀의 이름.
"여자한테 차이기라도 했냐? 불쌍해서 말 걸었더니. 존나 까칠하다 너?"
"..."
"뭘 보냐? 그나저나 어떤 년인지는 몰라도 보는 눈 존나 없다. 꽤 반반하게 생겼는데 말이야."
담배 필터를 질겅질겅 씹으며 피우는 장현정을 보며 나는 생각에 잠겼다.
혼란스러워서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게 또 남녀를 바꿔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상황이었다.
텅 빈 놀이터에서 질질 짜고 있는 여자 고등학생.
그 여자 고등학생에게 접근한 일진 양아지 남자 고등학생.
옆에 앉더니 말한다. 어떤 새낀지 몰라도 보는 눈 존나 없다.
이거 작업 거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니까 웃음이 나왔다.
피식-
"왜 기분 나쁘게 웃고 그러냐? 진짜라니까? 너 꽤 괜찮게 생겼어."
"알아."
"알아? 하하하! 미치겠다. 이런 반응은 또 처음이네. 매력 있다? 이름이 뭐야?"
"김지훈."
"너 이런 시간에 남자 혼자 돌아다니지 말라는 거 못 배웠어?"
"혼자 돌아다니지 못할 건 또 뭐야?"
"안되고 말고지. 남자가 이 시간에 그렇게 무방비하게 다니다가 여자한테 잘 못 걸리면 무슨 짓을 당..."
"예를 들면, 너 같은?"
그 말에 눈을 장현정은 눈을 껌벅이더니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뭐 아니라고 하겠지.
나는 그녀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손을 뻗어 담배를 빼앗았다.
멍청하게 가만히 있던 장현정은 내가 그녀의 담배를 입에 물자 몸을 들썩이며 물었다.
"야. 그, 너, 그, 가, 간접키스인데?"
"간접키스?"
그녀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그래서 나는 그녀와 시선을 마주하며 혀를 보이게 내밀어 담배 필터를 핥았다. 그러자 장현정의 얼굴이 더 붉어졌다. 장현정의 침이 묻어있던 담배 필터는 축축하고 쓴 맛이 났다.
"뭐 이런 거에 의미를 두고 그러냐. 애도 아니고."
"그, 그치?"
담배 연기는 역했다. 나는 담배를 피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연기를 머금은 채 숨을 깊게 들이쉴 수가 없었다. 연기를 입에 대충 머금었다가 한 번 내뱉고는 다시 장현정에게 돌려주었다.
잠시 망설이더니 담배 필터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는 장현정.
아까는 담배필터를 오징어처럼 질겅질겅 씹더니 이제는 입술 끝에 살짝 문다.
그리고 담배 연기를 조심스럽게 빨아들이기에, 내가 대뜸 물었다.
"나랑 섹스하고 싶어?"
"흐웁! 쿠엑! 쿨럭! 컥컥! 무, 무억헉 라고?!"
"섹스하고 싶냐고."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남자애가 조신하지 못하게?!"
"그럼 왜 나한테 와서 말 걸었어? 울고 있는 애 달래면 어떻게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온 거 아냐?"
"헛소리하지 마. 아까부터 계속 울고 있어서 뭔 일인가 해서 물어봤구만 왕자병 걸렸냐?"
하지만 담배를 피는 속도는 빨라졌고 장현정은 내 눈을 마주하지 못했다.
물론 달래주려 한 거겠지만 내가 남자가 아니었으면 말 걸었을까? 또 못생겼으면?
무시했겠지? 이성관계란 그런 거야.
"아까부터라니? 아까부터 계속 지켜본 거야? 나를?"
"아니거든? 한 30분 전에 마트에 가다가 널 봤는데, 돌아오는 길에도 울고 있으니까 물어본 거지. 아! 몰라 몰라. 시발 별 이상한 애 다 보겠네."
"마트 갔다 왔다는데 왜 빈손이야?"
"아는 언니가 마트에서 일하거든. 이거야 이거."
그렇게 말하며 장현정이 담배를 툭툭 털며 보여준다.
그러니까 아는 언니라는 사람이 담배를 공급해준다는 말이겠군.
순식간에 납득했다.
"에휴. 괜히 오지랖 부렸나? 집이나 가야지. 남자 새끼 울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 건데. 내 탓이지 뭐~"
"집이 이 근처인가 봐? 여기 원룸촌인데?"
"그러니까 이 근처에 있지. 나도 원룸에서 사니까. 반 지하 방이라 좋은 방은 아니지만 살만해~ 하여간 이제 밤이니까 싸돌아다니지 말고 빨리 집에 기어 들어가라. 난 간다."
그렇게 말하며 일어나는 장현정의 손을 잡아채 의자에 앉혔다. 어리둥절해하는 그녀의 곁에 체온이 느껴질 정도로 다가가 앉자 장현정은 당황하며 말했다.
"너, 너 이거 뭐하는 거야?"
"알잖아?"
"뭘 아는... 데? 너 설마?!"
"설마는 무슨."
"나 지, 진짜 해버린다? 어? 나 진짜 해버릴 거라니... 읍!"
뒤로 조금씩 물러나던 그녀의 가녀린 목을 잡아채 당겨왔다.
조금 전까지 담배연기가 머물던 작은 입술이 내 입술 아래 모습을 감췄다.
입술을 맞대고 혀를 내밀어 핥자 닫혀있던 입술이 아! 하는 탄성과 함께 열렸고, 그 사이에 혀를 밀어 넣어 그녀의 안으로 삽입했다. 장현정이 들고 있던 담배가 툭 하고 떨어졌고 벤치를 잡고 있던 손이 오그라들었을 때쯤 키스가 끝났다.
입과 입 사이를 이어주는 침으로 된 긴 줄이 생겼다가, 늘어졌다가, 뭉쳐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쾌락과 흥분으로 가득한 현정이의 얼굴을 보며 다시 물었다.
"섹스하고 싶어?"
"너, 너어, 어, 너어 지, 지금."
"싫으면 말고."
"자, 잠깐. 지, 진짜? 진짜지?"
내가 가버릴 듯 벌떡 일어나니 이번엔 현정이가 내 손을 붙잡아 다시 자리에 앉혔다.
그러더니 내 무릎위에 올라타더니 바짝 몸을 당겨 앉았다.
터질듯 부풀어 오른 내 바지위에 그녀의 회색 팬티가 키스하듯 맞닿는다.
허리를 움직여 잠시 비비는 현정이의 팬티가 점점 젖어가는 걸 보며 나는 물었다.
"젖었는데?"
"젖는 게 당연하지. 신체현상인 걸."
살며시 그녀의 허벅지 사이로 손을 얹는다.
그러자 부드럽고 탄력 있는 허벅지가 점점 열기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그녀의 감정과 연결이라도 된 듯, 하얀 피부 아래에서 근육들이 꿈틀거린다.
앞으로 튕겼다가 아래로 쳐지기도 했다가.
내 허벅지 위로 올라온 두 하얀 허벅지 위에 손을 얹었다.
느낌이 너무 좋다. 볼이라도 비비고 싶을 정도다.
길을 따라가듯 그녀의 허벅지를 타고 무릎까지 올라가 손을 한 번 쓸었다.
그리고 점점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허벅지에서 시작된 손길이 점점 중심부로 향하자 현정이가 몸을 움찔거린다.
어느덧 내 손은 현정이의 팬티의 위까지 올라왔다.
물을 머금고 있는 듯 완전히 축축해진 팬티를 절반으로 나눌 듯 손가락을 움직이자, 현정이가 참고 참았던 신음을 터트렸다.
"흐으응..."
그래. 이래야 정조 역전이지.
숙맥도 아니고 양아치 남자가 있다고 쳐봐.
멀쩡한 여자애들도 어떻게 하면 따먹어볼까 하루 종일 생각하는 것들이 그 놈들이야.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 것도 열심히 하기 때문에 경험도 많아.
근데 비슷한 동갑내기 쌔끈한 여자애가 키스해주고 섹스하자고 곁에서 속삭여.
안할 거야?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안 박힐 거냐고.
내 위에서 야릇한 신음을 흘리던 현정이는 앞뒤로 움직이던 허리를 멈추며 나를 내려 봤다.
입가에는 자신만만한 미소가 피어있었다.
"너야말로 딱딱한데? 흥분했나 봐?"
"나야 좋지."
내 말에 현정이가 킥킥 하고 작게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말려 올라간 치마를 내리고, 팬티 근처를 손으로 한 번 닦더니 내게 말했다.
"우리 집으로 가자."
"나는 여기도 상관없는데."
"미, 미쳤어?! 놀이터에서 무슨! 여기 CCTV도 있어. 비디오 찍고 싶지 않으면 따라와.“
솔직히 말하면, 장난이었다고 하고 안 따라가려고 했다.
이미 설아 누나가 내 마음을 가득히 차지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순간 설아 누나에게 메시지가 도착했고, 그 때문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윤설아 : 지훈아~ 누나가 오늘 약속이 있어서 좀 늦을 것 같다 기다리지 말고 먼저 씻고 자~ 알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