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화 〉직장인 누나 썰 - 2 (3/101)



〈 3화 〉직장인 누나 썰 - 2

"뭐, 뭐?"
"피곤하다고요. 누나 집에서 쉬게 해줘요."


내 말에 직장인 누나의 얼굴이 터져버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붉게 물들었다.
엄청나게 당황한 것 같았다. 맞아. 당황할 만도 해.
위기에서 여고딩을 구해줬더니 다짜고짜 재워달라네?
웬 떡인가 싶을 거야. 그치?


그녀는 헛기침을 한 번,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옷매무새를 정돈한 후, 버스 벨을 누른다.

삐-


"너. 따, 따라와 봐."

그리고 내 손을 잡더니 버스에서 내렸다.
그녀의 손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이제 하는 거야?
방금 전 버스에 타고 있던 그 섹시한 커리어 우먼이랑 섹스 할 수 있는 거야?
누나도 참 적극적인데? 그렇게 나랑 하고 싶어?
원래 세계였으면 어림도 없었을 텐데.


묘한 기대감이 가슴을 설레게 한다. 이건 뭐랄까.
그래. 처음 창녀촌이 있는 거리를 걸을 때의 기분과 비슷했다.
혹시나 섹스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남근을 세우는 그런 기분.
나는 은근한 목소리로 누나에게 물었다.


"집에 가는 거예요?"
"누나네 집은 어디 있어요?"
"얼마나 멀어요?"


근데 누나가 대답이 없다. 그녀는 심각한 표정으로 버스에서 내려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버스에서 내릴 때부터 거리를 걷는 동안 시선들이 따라온다. 여자들이다.
불량해 보이는 문신녀, 배랑 가슴 처진 아줌마, 착실해 보이는 학생까지. 나를 본다.
입가에 살며시 입소를 지어보이며 웃어주었더니 마주 웃어준다.
좋덴다. 계집년들. 니들한텐 안 박아.

"아메리카노 두 잔이요. 아. 아니. 너는 단 거 좋아하려나?"
"저는 플레인 요거트요."

근처 카페에서 나는 플레인 요거트를, 누나는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음료가 나오자 직장인 누나가 나를 끌고 구석진 자리로 데려갔다.
그녀는 빨대를 입에 물며 말했다. 붉은 입술이 물기에 번들거려 유난히 시선을 끈다.

"너, 너 말이야. 그, 그게 무슨 뜻이야? 집에서. 집에서 쉬게 해달라니?"
"말 그대로인데."
"설마 내, 내 집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
"맞아요. 누나 집에서 쉬고 싶어요. 재워줘요."
"..."


그 말에 입을 뻐금뻐금하는 누나. 아. 입술만 예쁜  알았는데 이빨도 고르네.
치아가 예쁜 여자다. 입도 크고, 웃는 게 예쁠 것 같은 그런 얼굴.
물론 지금처럼 잔뜩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얼굴도 너무 예뻤다.
얼굴 구석구석 키스해주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한창 혼란스러웠던 내 마음은 이미 성욕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나는 정조역전이 아닌 세계의 남자였고, 고3이었고, 동정이었다.
여자 손도  잡아보고, 연애 한 번 제대로 해본 적 없는 그런 놈이었다.

하지만 연애에 있어서 남자가 절대 우위라는 것을 조금  확인한 상태였다.
그러니까 버스에서 여자가 내 곁에 와 팔을 비비며 자위한 것 아니겠어?


또한 연애에 있어서 남자가 절대 우위라는 것을 확인하고 있는 중이었다.


"저  뭐야? 왜 남자를 저렇게 거칠게 다뤄?"
"저 남자 괜찮네. 나한테 오면 잘해줄 텐데."
"저거 원조교제 아니냐? 남자애는 교복 입었는데?"

길거리 여자들이 나와 내 손을 잡고 빠르게 걷고 있는 누나를 보며 했던 말이다.
길거리에서 예쁘다고 함부로 쳐다보는 것도 원래 세계에서는 이상한 일이었다.
생각해봐라. 아무리 예뻐도 길거리의 남자들이 우르르 대놓고 쳐다보든가?
근데 여기는 나를 우르르 쳐다본다.
카페에는 낮 시간이라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가끔 있는 여자들이 나를 보고 있다.

결국 결론은 하나.
이 세계는 내가 예상하는 것보다 여자의 성욕이 훨씬 더 강하다는 거다.
나는 그저 메마른 여자 가슴에 스위치만 켜주면 된다.
그러면 좋다고 달려들 것이고, 나는 오늘 직장인 누나랑 섹스를 할 수 있다.

고된 직장 생활. 지치는 사회. 매일 매일 반복되는 노곤한 일상.
 일상 가운데 발랑 까진 여고딩이 직장인 남자에게 다가와 말한다.
재워줘요.
이건 자야지. 그치? 뭘 고민하는 걸까?


"이름이 뭐니? 나는 윤설아야."


번뇌하던 회사원 누나가 고민 끝에  말은 의외로 지극히 평범하고 이성적인 말이었다.
얼마나 고민하는지 얼음이 동동 떠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빨대로 계속 휘휘 젖고 있었다.


"저. 김지훈이요."
"그래. 지훈이. 멋진 이름이네? 그... 혹시 가출했니?"
"아니요. 왜요?"
"... 재워달라니. 남자애가 그런 말 함부로 하는  아니야."
"누나는 좋은 사람 같아서 괜찮을  같았어요. 아. 가족이랑 같이 살아요?"
"그럴 리가. 남자라면 모를까 여자가 이 나이 먹고 가족이랑 같이 살면 능력 없는 애지."

그러니까 자취한다? 좋네. 집도 비었겠다.

"그럼 문제없잖아요. 재워줘요."
"아, 아니. 문제가 있지 왜 없니? 나도 여자야. 니가 내 방에 있으면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르..."
"무슨 짓이요?"
"응? 아. 그, 그러니까 음... 아, 아이를 만드는 뭐 그런 거?"
"제가 싫다고 해도 강제로 할 거예요?"
"아, 아니! 절대 그러지는 않지만.  이전의 문제지."

아. 이 사람은 정말 좋은 사람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정도 유혹하는데도 훈계를 하려 노력하다니.
그런데 이걸 어쩌나.
나는 좋은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니라 나랑 섹스  여자가 필요한데.


"누나."
"응?"
"누나. 인기 없죠? 남자 하나 못 만나봤죠?"
"뭐?"
"나 그래도  괜찮은 남자 아닌가요?”
“괜찮지. 잘생기고 매력 있다고 생각해.”
“근데 그런 남자가 먹기 쉽게 해주겠다는데  그렇게 고고한 척해요?"
"너, 너 지금..."
"그냥 솔직히 하죠. 박아줄게요. 누나 지금 나랑 섹스하고 싶어서 애액 줄줄 흘리고 있는   알고 있..."

짜악-!


그 순간 윤설아가 내 뺨을 때렸다. 카페에 있는 모두가 이쪽을 처다 보며 놀랐다.
세상에나 어떻게 남자를 때리지?  그런 눈이었다.


나도 놀랐다. 여자는 무조건 박히고 싶어   알았는데 그러지 않는구나.
그래. 이 세계도 어느 정도 지켜야 하는 규율과 도덕규범이 있었구나.
생각해보면 그렇긴 하지.
아무리 까진 예쁜 여고생이 벌려준다고 해도 어른이 다짜고짜 따먹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윤설아처럼 행동하겠지.


그녀의 뺨은 날 정신 차리게 만들었다. 나는 쉽게 쉽게  따먹을  있을 줄 알았거든.
최소한의 과정은 거쳐야 한다 이거구나.
그래.  사람들도 사람이니까.
여기도 나름의 규칙이 있는 사회니까.

내가 멍하니 윤설아를 보는데, 윤설아는 화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너. 좋게 말하려 했는데 안 되겠구나. 당장 경찰서에 가자. 어른을 놀려?"
"..."
"가서 네 부모님께 다 말씀드리고 집으로 돌려보내야겠어. 당장 일어나!"
"..."
"그러고 보니 학교는 어디니? 교복이 눈에 익은데. 너 선생님이 이런 거 알아?"


순간 좆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조역전이니까 맘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했던 내가 바보였다.
나는 어쨌건 이 세계에서 계속 살아야 할 텐데 이대로라면 인생이 망가질 위험이 있었다.
로또에 당첨됐는데 한 푼도 못 쓰고 감옥에 가면 억울하잖아.

윤설아의 화난 목소리.
그리고 버스에서의 보여준 정의로움과 끝까지 신사적인 올바른 정신.
이것들을 감안할 때 그녀는 정말로 학교에  짓거리한 것을 모두 떠벌릴 것 같았다.
그럼 어떻게 되겠어?  어떻게 되.
좆.된.거.지.
정조 역전 세상에서 남자가 걸레 짓을 하고 다니는데 좋은 평가가 나오겠어?
 지역에서도 평가가 안 좋을 거고, 학생부에도 이상하게 기록되겠지.
심하면 정신병원에 갈지도 몰라. 섹스중독 이런 걸로.

"..."
"일어나라니까? 안 일어나?! 너희 부모님께 가자!"

주위는 사람들의 웅성거림으로 가득하고, 나는 어찌해야할지 몰랐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손이 벌벌 떨리고 마땅한 변명거리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울었다. 시발. 쪽팔리긴 한데. 울었다고.


"으... 으흐흑."
"운다고 봐줄 것 같아?! 너가 지금 그런..."
"저, 저 부모님 어, 없어요...! 고아란 말이에요!"
"...!"

순간 굳어버리는 윤설아. 나는 기회를 잡은 김에 폭풍처럼 이야기를 쏟아냈다.
물론 어느 날 갑자기 정조관념이 바뀌었다는 그런 믿지도 못할 개소리는 안했다.


근데 이게  웃긴 게 이야기하다보니까 내가 생각해도 너무 불쌍한 거지.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고아인데.
어느  갑자기 등교하다 쓰러지고 일어나니까 땀 투성이에...
그렇게 아픈데도 날 돌봐줄 부모가 없다는 생각에 슬퍼서 정처 없이 길을 헤매고 있었다...
는 믿기 힘든. 하지만 사실이면서도, 대충 말도 되면서, 존나 존나 불쌍한.
그런 이야기가 줄줄 나왔다.
윤설아는 다시 자리에 앉았고 심각한 표정으로 내 이야기를 경청하기 시작했다.

"... 그렇구나. 하지만 지훈아. 남자가 고등학생이면 이미 성인이야. 그런 남고생이 여자에게 재워달라고 하는 건..."


내가 앓고 있는 병이 뭔지는 몰라도 어느  길가다 쓰러질 정도면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거 아니냐.
근데 나는 평범한 남자들처럼 가정을 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섹스도 하고 그런  못하고 죽으면 너무 슬프지 않냐.


"그래... 힘들었겠구나. 그래도 그렇지. 지훈아. 너는 누나를 오늘 처음 보잖아. 처음 보는 사람이랑..."


누나는 변태한테 당하던 나를 도와주려고 하지 않았냐.

"그건 누구라도 그랬을 거야. 너 같은 학생이 그런 일을 당하고 있는데 어떤 여자가 안 나서겠니?"


하지만 누나가 처음이었다. 그래서 보는 순간 운명의 상대라고 생각했다며.
말하면서도 내가 참 대단한 것 같았다.
그래. 소녀 감성으로 그럴 수도 있지.


왜 중고등학교 여자애들 보면 로맨스 소설 빠져서 백마 탄 왕자 기다리잖아?
그러니까 내게 백마 탄 공주는 윤설아. 너인 거지.
한 순간에 사랑에 빠져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왕자님이 바로 너야.


"하, 한번만 요, 용서해, 용서해주세요우우... 흑."
"..."

계속 울고 있자 그제야 주위가 신경 쓰였는지 주위를  번 돌아보는 윤설아.
그녀는 카페 안에 있는 냅킨들을 가져와 내 곁에 앉았다.
그리고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싸 고개를 들게 한 다음 냅킨으로 눈물을 닦아주었다.
마치 보물을 만지듯, 정성스럽고 다정하고, 상냥한. 그런 손길이었다.


"지훈아. 울지 말구. 잘생긴 얼굴 다 망가지네."
"하, 학교에는 마, 말 하지 마요."
"알았어. 알았어. 귀엽기는. 착하지이~"


귀엽다는 듯 나를 토닥이는 윤설아.
화가 풀린 것 같았다. 나는 은근슬쩍 안았다. 그랬더니 냉큼 안아주며 내 등을 쓰다듬어 준다.
누나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손을 뻗어 치마 아래로 나온 그녀의 허벅지 사이에 끼었다.
아. 부드럽다. 손바닥과 손등을 함께 스치는  살결이 너무나 부드러웠다.
 느낌만으로도 다시 미친듯이 흥분되기 시작했다.

"이제  괜찮아?"

귓가에서 들리는 누나의 목소리는 천사의 목소리와도 같았다.
정말 성녀와도 같은 여자였다.
남고딩의 유혹을 이겨내고 바른길로 훈육하는 올바른 직장인 여성.
정말 숭고하다 숭고해. 그러니 더 꼴리잖아.


잠시 눈치를 보던 나는 윤설아를 향해 말했다.


"... 그래서 재워주실 거죠?"
"뭐?"
"누나 집에 가고 싶단 말이에요. 정말루."


잠시 황당하다는 듯 눈을 껌벅이던 윤설아는 곧 낭랑한 웃음을 터뜨렸다.


"큭큭. 킥. 너, 너 지금 그게 하, 할 소리니? 하하하! 얘   진짜. 어쩜 좋아?"
"헤헤."


내가 그녀를 만나고 처음 보는 밝은 웃음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