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화 〉End 그리고.......
“뒤에 실은 건 뭐야?”
“돈 가방.”
“돈 가방? 돈 가방을 왜?”
“그 일을 시킨 총각한테, 자기가 돈을 줬을 거잖아. 변호사 비용도 대줬을 거고.”
“됐어. 내가 알아서 한 일이니까.”
“그런 게 어디 있어. 자기가 그 총각한테 얼마를 줬는지 이야길 하지 않아서, 그냥 내가 알아서 챙겨 왔어.”
양 여사에게 연락이 왔기에 양산 종합운동장 주차장에서 만났다.
그런데 양 여사가 내 차로 옮겨 타면서, 차에 타기 전에 뒷좌석에 소위 007 가방이라 불리는 가방을 던져 넣고서는 조수석에 올라탔다.
“당신 저거 다시 가지고 가.”
“왜?”
“저기 얼마가 들었는지는 몰라도, 계좌에서 거금이 빠져나가면 어디선가 추적할 거란 생각은 해보지 않았어?”
“걱정하지 마. 내가 그렇게 바보일까 봐? 저 돈은 그 새끼뿐 아니라 아무도 모르는 돈이고, 또 통장에 있던 돈도 아니라서 누가 추적하지도 못해.”
“도대체 얼마나 되기에, 아무도 모르게 저 돈을 챙길 수 있었어?”
“3억이지 얼마긴 얼마야. 5만 원짜리 넣으니 딱 3억 들어가던데.”
“3억까지 들지 않았어. 나도 처음엔 3억을 생각했었는데 2억이면 충분하다더라. 그리고 그 돈도 제 보스였던 친구에게 맡기고 들어갔고.”
“하지만 사람 앞일이란 게 모르는 거잖아. 교도소에서 나온 후에 생각이 바뀔 수도 있고. 혹시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다행이고.”
“그러니 그건 나중에 생각하자고.”
“그니까 하는 말이야. 혹시 돈이 남으면 자기 수고비라고 생각해. 솔직히 자기하고 나 관계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고......”
3억이라는 돈이 적은 돈도 아니고, 준다는 데 계속 사양할 이유도 없었다.
어차피 양 여사 말마따나 양 여사와 나 사이의 관계는, 지금 당장 인연을 끝낸다고 하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는 관계다.
그리고 양 여사 같은 경우는 이미 이혼절차까지 완전히 끝이 나서, 이젠 더는 남의 눈치조차 볼 이유가 없는 완전히 자유로운 상황이니, 굳이 나란 사내와 인연에 얽매여 살 이유도 없을 것이다.
솔직히 치사한 생각이긴 하지만 나도 며칠 전까지만 해도 양 여사의 그 일로, 종수에게 2억을 건넨 문제로 혼자 속앓이를 하지 않았던가 말이다.
아무리 그 돈이 내가 땀 흘려 번 돈이 아닌 자경이가 넘겨 준 공돈이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몇 번 오입한 대가로 오지랖을 부리다가 2억이란 거금을 쓴 것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았던가 말이다.
“나 갈게.”
“점심도 먹지 않고?”
“응, 오늘 엄마하고 서울 올라가. 다녀와서 연락할게.”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양 여사는 자기가 타고 온 차의 운전석에 올라 공설운동장을 떠났다.
그런데 그렇게 떠나는 양 여사의 차 뒤꽁무니를 지켜보던 내 가슴 속에서는, 이상하게도 어쩌면 오늘의 이 만남이 양 여사와의 만남에서 마지막 만남일 것만 같다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뒷좌석에 던져두고 간 3억이 든 돈 가방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만약 오늘의 이 만남이 마지막이라고 하더라도 딱히 아쉽거나 안타깝다는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냥 ‘어쩌면 저 여자와 나 사이의 인연이 여기까지구나.’라는 그런 생각만 남아 있을 뿐.......
그리고 그런 나의 예상이 맞았다는 사실은, 채 5분도 지나기 전에 내 눈으로 확인할 수가 있었다.
뒷좌석에 던져두고 간 가방을 조수석으로 가져와 가방을 여니, 5만 원짜리 지폐 다발 위에 흰 봉투가 있었으니까.
‘자기야 미안해. 자기 얼굴 보고 이야길 해야 하는데, 차마 그러지 못하겠어서 이렇게 간단하게 글로 쓰게 되었어. 우선 나를 지옥에서 건져준 것은 정말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는 은혜라고 생각해. 그렇지만, 아무리 내가 미친년이라고 해도, 내 배로 낳은 딸하고 같이 자길 몸에 받아들인다는 것은 쉽지가 않네. 지민인 자기가 알아서 해. 지민이가 원하고, 자기도 원한다면 내가 말릴 생각은 없으니까. 지민이도 그런 팔자를 타고 태어난 것을 어쩌겠어. 아무튼 그동안 고마웠고, 또 이렇게밖에 할 수 없어서 미안해.’
길지도 그렇다고 짧지도 않은 담백한 내용의 글이었다.
물론 편지를 보고나니 조금 아쉽기도 했고, 또 지난번에 섹스를 하자고 했을 때 거절했었던 그것이 미안하기도 했지만, 솔직히 양 여사와 나 같은 비정상적인 관계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깔끔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이왕이면 지민이도 제 엄마처럼, 나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또래의 사내를 찾을 수 있다면 좋겠다 싶었다.
‘후~우~’
조수석의 돈 가방을 트렁크로 옮기고 나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아빠.”
“응? 가게에 무슨 일이라도 있어?”
“아니. 그런데 왜 놀래고 그래?”
“인마, 대낮에 전화를 걸었으니 혹시 가게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게 아닐까 하고 놀라지.”
“아니거든. 우린 준비를 다 끝냈다고.”
“응? 어........ 알았어. 그럼 내가 비행기 편이 어떻게 되는지 알아볼게.”
담배를 물고 멍하니 있는데 휴대전화의 벨이 울렸고, 액정화면에는 지혜의 이름이 떠 있었다.
지혜는 해외여행을 떠날 준비를 끝을 냈다는 말을 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아무튼 언제까지 나와는 별 관계도 없는 양산에 머무를 수 없었기에, 나는 시원하게 고속도로나 달릴까 하는 생각으로 양산 IC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런데 양산 IC로진입하려고 신호를 기다리다가 순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2차로를 타고 있던 내 눈에 1차로에서 신호대기 중이었던 양 여사의 차가 보였고, 그 차의 조수석엔 어리다고밖에 보이지 않는 젊은 사내애가 타고 있었다.
마치 엄마와 아들처럼 보이는, 그런 정도의 나이의 어린 사내가.......
순간 목구멍으로 뜨거운 무엇이 확 치밀어 오르고 있었지만, 나는 이내 허탈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내 차의 트렁크에 있는 3억이 든 돈 가방으로 양 여사와 나 사이의 관계는 이미 끝이 났고, 설령 그 돈 가방이 아닌 양 여사와 나 사이가 현재진행형이라고 하더라도, 지금 저렇게 젊은 사내아이와 바람을 피우는 것을 가지고 뭐라고 따질 수 있는 관계였던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우리 둘이야 서로 뜨거운 욕정을 달랬던 사이, 그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관계가 아니었던가 말이다.
그냥 서로 섹스를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것 말고는, 서로에게 남은 빚이 없는 그런 관계.......
신호가 바뀌자 차들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뒤에서 연신 빵빵거리는 경음기 소리를 들으며 나는 급하게 차선을 변경했다.
양 여사의 차를 본 후에, 굳이 내가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조금 전까지의 약간 우울하면서도 미안했던 감정을 털어낼 이유가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냥 그렇게 사람은 제각각의 세상을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갑자기 바다 생각이 나서 공수마을에나 가서 시간을 보내려고 국도를 통해 가고 있는데, 휴대전화의 벨이 울렸다.
그런데 내가 새로 개통한 전화번호도 아니고 준이에게 받은 대포폰으로 걸려온 전화였기에, 비상등을 켠 후에 차를 갓길에 세웠다.
“아빠.”
“누구십니까?”
“누구긴 누구야, 아빠 딸 지민이지.”
“네가 이 번호를 어떻게 알고?”
“치! 나한테는 가르쳐주지도 않고, 엄마에게만 가르쳐주는 그런 아빠가 어디 있어. 아무튼 지금 어디야?”
결국 나는 지민이와 통화를 끝내고, 차를 돌려서 다시 양산으로 향했다.
“빨리 왔네.”
“우선 타.”
그렇게 양산 시외버스터미널 부근에서 지민일 태우고, 나는 부산대학교 병원이 있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아까 양 여사와 만났던 공설운동장은 아무래도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이었기에, 지민이처럼 어린 여자아이와 차 안에서 이야기한다는 것이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주차공간이 넓어, 딱히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양산 부산대학교병원 주차장으로 가기로 한 것이다.
“어딜 가려고?”
“저기 병원주차장이 조용하거든.”
“그냥 텔 가자.”
“까분다.”
“최소한 한 달에 한 번은 해주기로 약속했었잖아. 또 내가 정말 하고 싶을 때도.......”
“아직 한 달이 되지도 않았다.”
“힝~ 그런데 나 정말 많이 하고 싶단 말이야.”
아직 지민인 제 엄마와 나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를 것이다.
그런데 제 엄마와 관계가 끝이 났다는 것을 알게 되면, 지민이 성격엔 이전보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덤벼들 것 같기도 했기에, 과연 그 사실을 알리는 것이 현명한 일일까 하고 고민이 되긴 했다.
“이게 뭐야?”
“응, 네 엄마 편지.”
“까였어?”
“응.”
“됐어. 안 봐도 돼. 대충 눈치는 채고 있었으니까.”
“뭐?”
“엄마 요즘 애인 생긴 것 같은 눈치를 보였으니까. 거기에다가 나이도 어린 느낌이었고.”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런 걸 왜 몰라. 아빤 2주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할 수가 있겠어?”
결국 내가 섹스 동영상 처리 문제 때문에 동분서주하는 그 시간에, 양 여사는 치밀어 오르는 성욕을 해결하지 못해서 다른 사내를 찾았던 것이고, 그 대상이 아까 그 젊은 애였던 모양이었다.
하긴 양 여사도 나름 불안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불안한 감정이 섹스를 갈구하게되었던 것이고, 하필이면 그 순간 눈에 띈 젊은 애가 양 여사의 일용할 양식이 되었던 모양이었다.
만약 일이 잘못되기라도 했더라면 같이 똥물을 뒤집어쓰기 딱 좋았을 상황이었는데, 종수가 책임을 뒤집어쓰고 들어가는 것으로 일이 결론 난 덕분에, 이 젊은 친구도 망신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아무리 지민이 눈치가 빠르다고 하더라도, 그런 사실을 딸인 지민이가 눈치를 채게 한 양 여사의 그 무신경함이 놀랍기만 하다.
“아무튼 엄마가 아빠를 깠다고, 아빠도 날 까진 않을 거지?”
“인마, 까고 말고가 어디 있어.”
“그럼 됐어. 엄만 엄마 인생을 사는 거고, 난 내 인생을 살면 되는 거니까.”
“다 좋은데 동생은 어떻게 하냐?”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방학 때 여기로 전학하기로 했으니까, 여기 양산에서 학교 다니면 되지.”
“동생도 알아? 엄마에게 애인 생긴 거?”
“수민이도 눈치라는 게 있으니까. 그런데 걱정할 것까지는 없어. 어릴 때부터 아빠란 새끼 때문에 워낙.......”
“그렇다면 그나마 다행이고.”
“그런데 언제까지 이렇게 이야기만 하면서 시간 보낼 거야? 나 정말 하고 싶거든.”
“지민아, 다 좋은데, 몇 달만 참고 내년부터 하면 안 될까?”
“뭐가 문젠데? 내가 미성년자도 아니고, 그냥 졸업만 하지 않았을 뿐이잖아. 그리고 요즘 나보다 어린 애 중에서 조건을 하는 애도 얼마나 많은데.”
결국 오늘도 내가 질 것 같았다.
아니 속으로는 나 스스로 지고 싶어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마음 한쪽에서는 ‘아무리 미성년자가 아니더라도.......’하는 그런 마음이 있는 반면에, 다른 한쪽에서는 지금처럼 요염한 표정으로 유혹하는 지민이의 모습에, 당장에라도 속옷을 찢어발긴 후 덮치고 싶다는 욕망이 강하게 치밀어 오르고 있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