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9화 〉복수? (4) (79/90)



〈 79화 〉복수? (4)

“예, 형님.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눈이 침침한 것을 넘어, 아예 눈을 뜨기조차 힘들었다.

그렇게 양 여사의 얼굴과 몸이 드러나지 않도록 모자이크 처리를  후에, 나는 강준이가 내게 붙여준 동생에게 전화해서 내 사무실로 오게 했다.

“와! 도대체 몇 시간이나 작업하셨어요?”
“모르겠다. 어제부터 매달려서 계속 이 짓만 하고 있었으니.......”
“준이 형님 말씀대로 일반인 치고 깡이 엄청나시네요.”
“아무튼  정도면 될 것 같아?”
“예. 여자분 신상 털릴 일은 전혀 없겠네요.”
“그럼 이걸 어디에다가 뿌릴까?”
“마무리 작업만 마치시고, 저하고 나가시지요.”
“어딜?”
“여기서 올렸다가는 당장 경찰이 들이닥칠 걸요.”

그러더니 강준이 후배는 영상을 3분 정도 길이로 자르기 시작했고, 그렇게 자른 영상을  친구는 자기가 가지고 온 노트북에 저장하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까지 가려고?”
“밀양쯤 갔다가, 거기서 대구로 가든지  생각입니다.”
“거긴 왜?”
“IP 때문에요.”
“IP?"
“예. 쉽게 말씀드리자면 인터넷 주소 같은 거거든요. 아까 형님 사무실에서 영상을 업로드하면 바로 경찰이 찾아와요. 접속한 IP 주소만 확보하면 잡히는 건 금방이거든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차피 휴대전화에서 다 걸리잖아.”
“그러니까 대포폰을 이용하는 거죠.”
“대포폰?”
“예. 대포폰을 노트북하고 연동시키면, 제 아무리 날고 기는 경찰 수사관이라도  찾습니다. 차도 대포차고 폰도 대포폰인데 무슨 재주로 찾아요.”

역시  바닥 물을 먹어본 친구이다 보니, 나쁜 짓을 하고도 들키지 않는 방법에 관해서 빠삭했다.

그러면서도 조심성이 대단한 것이, 지금 끌고 다니는 차가 대포차라고 했으면서도 도로 곳곳에 있는 카메라를 피하기 위한 어플리케이션까지 작동시켜 가면서, 길을 잡고 있는 것이다.

이 친구가 하는 행동을 보면, 정말 나쁜 짓도 머리가 나쁘면 할 수가 없다는 말이 사실인 것 같았다.

“왜 여기서 세워?”
“어차피 와이파이로 전송하는 것은 늦어서 힘만 들거든요. 여기서 조금 들어가면 카메라가 있으니 여기서 올리려고요.”

그러더니 노트북에 USB를 꽂고 작업을 시작했다.

미리 업로드 할 사이트를 정해두고 또 계정까지 만들어둔 것인지, 강준이 후배의 작업속도는 거침없었고 30분이 채 지나기 전에 모든 작업을 끝냈다.

그렇게 작업을 끝낸  이 친구는 노트북 뚜껑을 열더니 하드디스크를 분리했고, 트렁크에서 망치를 꺼내서 하드디스크를 산산조각내기 시작했다.

“하드디스크는 포맷해서 사용하면 안 돼?”
“준이 형님께서 이렇게 형님 눈앞에서 하드디스크를 까부셔야, 형님이 안심하실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친구 꼼꼼한 성격은 여전하네. 망치 이리로 줘봐.”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드라이버로 하드디스크를 열고, 제법 넓적한 돌 위에 올려놓고, 기판뿐 아니라 디스크 부분을 아예 갈가리 찢듯 망치로 두들겨 놓았으니, 기술자가 아니라 기술의 신이 와서 복구하려고 하더라도 복구가 불가능할 것이다.

그걸 보고 나는 망치를 달라고 해서 방금 건네받았던 USB까지 완전히 박살을  후에, 돌판 위의 잔해들을 발로 쓸어버리고 쇳덩이 부분을 풀숲에다가 던져버렸다.

아마도 몇 시간 후면 대한민국이 떠들썩해질 것이다.

영상을 올리면서 제목을, 아예 ‘현역 국회의원 변태 행각’이라고 대문짝만하게 써두었으니 말이다.

“왜 되돌아가?”
“형님, 지갑은 가지고 오셨죠?”
“당연하지.”
“제가 시내로 들어가서 내려드릴 테니까, 형님은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가세요.”
“넌?”
“전 적당한 곳을 찾아서 차를 버리고 가야지요.”
“차를 버린다고?”
“괜히 돈 몇 푼에 욕심내다가 작전을 완전히 망칠 수 있거든요.”
“그럼 넌 어떻게 하려고?”
“일단 차를 적당한 곳에 버려두고 좀 걸어야지요.”

정말 철저하게 준비를 했다 싶었다.

“이거 받아.”
“안 됩니다. 준이 형님이 아시게 되면, 저 반쯤 맞아 죽습니다.”
“네가 이야기하지 않으면 강준이가 어떻게 알아.”
“그렇지만.......”
“나, 네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여유가 있어. 이렇게 동생뻘에게 일을 시키고 수고비도 챙겨주지 않으면 내가 나쁜 놈이 되는 거잖아.”

아무래도 이 친구를 다음에  필요로   같았기에, 나는 준비해 온 봉투 중에서 500이 든 봉투를 건넸다.

어차피 내가 들키지 않고 민강수라는 놈을 처리하려면  정도 금액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한 일이니, 나로서는 정말 싸게 일을 처리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형님, 이건 정말 너무 많습니다.”
“앞으로 나 안  생각이야? 그러니까 내가 다음에 다른 일로 도와달라고 부탁하면, 그땐  거들어줄 거냐고?”
“제가 어떻게......”
“그러니 수고비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형이 용돈 준 거로 생각하고 그냥 받아.”

세상에 돈 싫어하는 사람은 없는 법이다.

그리고 봉투를 받아 안주머니에 챙겨 넣은 강준이 후배의 태도는, 나를 대하는 태도가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달라졌음을 느낄  있을 정도였다.

“나중에 부산에 도착하거든 전화해.”
“그때는 다른 번호로 전화를 드릴 겁니다. 지금 쓰고 있는 이 폰도 버리고 갈 거거든요. 아직은 가다가 무슨 일이 있을지 몰라서 들고는 있지만.”
“그래. 내일 저녁에 만나서 소주나 한잔 하자.”

그렇게 나는 밀양역 부근 CC-TV 카메라가 없는 곳에서 내렸고,  친구는 다시 오던 길을 되돌아갔다.

아마도 이곳으로 오는 산중 어디엔가 차를 버리고 걸어 나오든지, 아니면 아예 다른 지역으로 가서 차를 버리고 부산으로 돌아갈 생각인 모양이었다.


“전화 많이 했네?”
“왜 오늘 온종일 전화가 안 됐어?”
“배터리가  된 것을 모르고 있었어. 지금 어디야?”
“양산에 와 있어.”
“양산?”
“응. 지민이하고 수민이 데리고 양산 친정에.”

사무실 부근에 도착해서 휴대폰을 켜니, 부재중 전화와 수많은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아예 휴대전화를 사무실에 놔두고 가려다가 혹시 급하게 전화를 걸어야 할 일이 생길까 봐 가지고 가긴 했었지만, 휴대전화 전원을 아예 꺼두는 것이 안전하다는 말에 지금까지 전원을 꺼뒀었다.

마카롱 가게인 ‘혜, 주, 민’에 얼굴이나 비치고 나가려다가, 또 잔소리를 들을까 봐 살며시 주차장으로 가서 운전석에 올랐다.

“여기 예전 시외버스터미널 있는 쪽인데 어디로 가면 돼?”
“그 옆에 대형마트 있잖아. 그 마트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어. 내가 도착하면 전화할게.”

그러지 않아도 며칠 동안은 집에서 나와 있으라고 이야기할 참이었는데, 무슨 일인지 집이 아닌 양산 친정에  있다고 했기에, 나는 양 여사가 알려준 대로  양산으로 왔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그 새끼하고 이혼하려고.”
“갑자기 왜?”
“그럴 일이 있었어.”
“나한테 이야기해주기 곤란한 일이야?”
“곤란할 것까지는 없지만, 자기가 들어서 기분 좋을 이야기는 아니라서.”

굳이 이야기하기 싫다는 것을 억지로 들을 필요까지는 없었다.

그런데  여사의 화장이 평소보다 많이 진한 것 같았고, 뺨 부분이 조금 어둡다는 느낌이다.

“그냥 테이크아웃해서 바깥에서 마시면 안 돼?”
“알았어. 뭘 마실래?”

부산도 아닌 양산이니 딱히 아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해서 커피숍으로 들어가자고 했더니, 아예 손사래를 쳐가면서 테이크아웃하길 원했다.

커피를  들고 차로 돌아와서,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한적한 곳에 차를 주차했다.

“나, 이혼하기로 했어.”
“갑자기 왜?”
“그제....... 그제 그 개새끼 만났었잖아. 그런데 이제 더는 그 짓거리를 도저히 못 하겠어.”

영상에서 봤던 것처럼, 지금 양 여사가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이유가 나 때문인 것 같았다.

그런데 양 여사가 이혼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양 여사와 함께 살림을 차릴 수도 없고, 설령 그렇게 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그럴 생각까지는 없었다.

좀 치사하고 더러운 이야기지만 사내들이 주인(?)이 있는 유부녀를 선호하는 이유가, 들키지만 않고  여자가 미친년만 아니라면 문제가 생길 이유가 없다는 점과 또 섹스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점 때문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렇게 이혼을 하겠다고 나서면, 솔직히 어떻게 이 상황을 해석해야 할 것인지조차 아득한 것이다.

“그렇게 심각한 표정 지을 것 없어. 어차피 전부터 이혼하려고 몇 번이나 마음먹었었지만 단지 실행에 옮길 자신이 없어서 참고 살았을 뿐이니까. 그러니 자기가 부담 가질 이유는 없어.”
“아이들은 뭐라고 하는데”
“내가 이혼한다고 하니 당연히 좋아하지. 지금까지 자기가 세상 살아오면서,  아빠라는 인간을 두고 개새끼라고 하는 자식을 본 적이나 있어?”

수민인 어떤지 몰라도 지민인 확실하게 이혼에 찬성할 것 같았다.

“그래 이혼은 해주겠다고 해?”
“해주지 않으면 개망신을 줄 텐데, 제 놈이 어쩌겠어.”
“그럼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려고?”
“가게 하나 차릴 돈은 있거든. 그리고 여기 양산에 작지만 내 앞으로 된 건물이 하나 있기도 하고. 거기에다가 미용실 차릴 생각이야.”
“미용실?”
“응, 나 예전에 제법 잘 나가던 미용사였는데. 내가 그때 눈에 뭐가 씌었던 것인지 그런 새끼를 만나서.......”

이미 이혼 후에 어떻게 먹고살 것인지, 그것까지 모두 계획을 잡아둔 것 같았다.

어차피 나하고 살림을 차리지도 않을 것이라고 하고  이 문제는 별로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이혼 후에 먹고살 것까지 걱정할 것이 없다는데 굳이 이혼을 말릴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내가 괜히 일을 서둘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혼하게 될 것이라면 앞으로 더는 민강수란 놈에게 그런 치욕스러운 일을 당할 일도 없을 것인데, 괜히 일만 크게 벌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럼 하려던 일은 중단하는 것이 좋겠네?”
“어떤 일? 그거? 동영상 찍어서  새끼 개망신 주는 일?”
“응. 그거 말고 다른 게 뭐가 있어.”
“해! 그 새끼한테 전화가 오면 내가 한 번만 더 나가서 만날 테니까 찍어서 올려.”
“굳이 그렇게까지  이유가 없잖아. 이혼하면 억지로 만날 필요도 없는데.”
“아니!  복수할 거야! 그래서  새끼가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얼굴도 들고 다니지 못하게 만들고 싶어.”
“괜히 그걸 찍어서 유포했다가 잘못하면 당신도 걸려들어 갈 수가 있어.”
“괜찮아.   살고 나오면 되지. 나처럼 팔자가 사나운 년이 몇 년 살고 나온다고 뭐 대수겠어?”

이혼하기로 마음을 굳힌 양 여사의 태도는, 이전보다 훨씬  강경해져 있었다.

이런 생각이라면 아까 영상을 업로드 한 것이 실수한 것이 아닐 것이니, 이제 양 여사를 당분간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숨어 있게 만들면 됐다.

그래서아까 올린 동영상을 놓고 경찰과 검찰이 수사하는 과정에, 수사망이 양 여사 쪽으로 좁혀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그 사건이 조금 잠잠해질 때까지만 기다리면 그런 사건이야 흐지부지되게 되는 것이다.

일단 동영상이 업로드되던 그 시간에,  여사가 부산에 있었다는 사실만 증명되면  여사의 알리바이는 확실하니, 경찰은 자연 양 여사에게서 관심을 떼고 대신 몰래카메라 업자들을 족치게 될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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