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0화 〉협박 (4) (70/90)



〈 70화 〉협박 (4)

“아빠, 어젠 왜?”
“요즘 일이 좀 바쁘다. 그런데 가게영업은 어떻게  되는 것 같아?”
“아직은 모르지. 우린 어제 가게 마치고 아빠랑 술이나 한잔 하려고 기다렸었는데.”
“뜬금없이 갑자기 술은?”
“개업하고 난 후에 같이 모인 적이 없었잖아.”
“그건 너희가 바빠서 그랬지. 아무튼 오늘 저녁이나 아니면 수일 내로 일정을 잡아보자.”
“왜? 오늘도 어딜 가기로 되어 있어?”
“아직 약속은 없지만 일하다가 보면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모르는 일이잖아.”

물론 그동안 섹스를 해결하고 살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셋과 한자리에서 얼굴을 맞대고 개인적인 시간을 갖는 것이 많이 불편했다.

애들이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셋 모두와 관계를 했고, 그걸 셋 모두가 알고 있다는 것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오늘은 손님이  있었어?”
“매일 비슷하지. 하나같이 원룸을 찾는 손님이니 딱히 돈  만한 일은 없네.”
“그러니까 뭘 하든지 해야 한다니까.”
“하긴 또 뭐를 해?”
“기획부동산을 해보든지 아니면 이 의원이 구청장이 될 수 있게 도와서, 구청 쪽에서 일을 따내든지 해야지.”
“구청하고 부동산하고 무슨 상관이 있다고.”
“우리가 꼭 부동산 일만 하라는 법이 있나? 기사 면허를 임대해서 단종 면허를 내든지 해서 건설업을 할 수도 있고, 그게 아니면 하다못해 광고라도 할 수가 있잖아. 직접 하지 못할  같으면 중간에서 연결해주고 거마비라도 챙기면 쏠쏠하잖아.”

 소장이 아침부터 찾아와서  헛소리를 씨불이기 시작했다.

솔직히  소장 이 친구를 볼 때마다, 도대체 이놈은 오지랖 부리는 일이 없으면 세상을 무슨 낙으로 살까 하는 의심까지 들기도 한다.

무슨 하고 싶은 일이 그리도 많은지,걸핏하면 우리 업종과 전혀 관계도 없는 사람과 엮여서 무엇인가를 해보자고 나를 꼬드기고, 그랬다가는 또 금방 포기하고........

“아빠, 어딜 가요?”
“응, 산청에 좀 다녀오려고.”
“산청엔 왜요?”
“산청에서 약초 재배를 하는 친구가 있는데,  친구에게 부탁할 것이 생겨서.”

아무래도 그런 부탁을 하려면 직접 가서 이야기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 나는 아이들에게 산청을 다녀오겠다고 이야기하고 사무실을 나섰다.

물론 전화로 해도  일이지만 전화로는 상세한 설명이 힘들기도 했고, 오랜만에 강준이  얼굴도 보잔 생각이었다.

“네가 여기까지 웬일이냐?”
“그냥 오랜만에 얼굴도 좀 보고 부탁할 것도 좀 있어서. 그런데 저분은 여기서 일하시는 분이야?”
“지랄, 얼굴 보고도 모르겠어?”
“내가 어떻게 아냐. 내가 여기 와본 거라고는 이번이 딱 두 번째인데.”
“인마, 여진이잖아.”
“응?”
“그 친구가 여길 어떻게?”
“새끼, 지가 빼돌린 애 얼굴도 기억 못 하고. 어~이 이리 와봐. 반가운 손님 오셨으니까.”

정말 뜻밖의 얼굴을 만나게 되었다.

자경이 보다 먼저 그 생활을 청산하게 했었던 친구였고, 완월동을 나간 후에 그동안 연락이 끊겼던 친구였는데, 어쩐 일인지 이곳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 사람의 인연이란 것이 보통 질긴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자경이와 지수를 만난 것도 보통 인연이 아닌데, 자경이와 지수는 나를 찾기 위해 노력했기에 인연이 다시 이어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진이 같은 경우는 완월동을 나간 후에는 스스로 모습을 감춘 케이스였기에, 이렇게 강준이와 함께 있는 모습이 뜻밖이었던 것이다.

“오빠.......”
“그래, 오랜만이네. 그런데넌 어떻게 갈수록 더 예뻐 지냐?”
“그런데 오빠가 여길 어떻게?”
“야, 나야 저놈하고 친구니까 찾아오는 것이 당연하지만, 넌 어떻게 여길 다  있어?”

사람 팔자라는 것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기구한 팔자를 타고난 사람은 주변 환경이 바뀐다고 하더라도 거기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지, 여진이가 완월동을 벗어나고도 결국  생활 때문에 또다시 기구한 삶을 살게  것을 보면.......

“그럼 그동안에는 창원에서 지냈던 거야?”
“응. 창원이  고향에서 가까우니까.”
“그럼 그놈은 뭘 하고 살아?”
“몰라. 신경 쓰기도 싫고.”

창원으로 옮겨서 평범한 여자처럼 공장에서 일하다가 만난 남자와 결혼에는 성공했지만, 하필이면 재수도 없게 당시 강준이 가게를 들락거리던 놈이 여진이 남편의 친구였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결국 여진이가 완월동에서 몸을 팔았다는 사실이 남편에게까지 알려지게 되고, 결국 그것 때문에 여진이 결혼생활이 끝이 난 것이다.

“그럼 아이는?”
“준이 오빠 호적에 올려서 키우고 있어.”
“그럼 둘이 혼인신고를 한 거야?”
“응.”

비록 완월동이라는 부산의 대표적인 사창가에서 포주라는 이름으로 막장 인생을 살기는 했지만, 강준이 놈을 마냥 욕할 수만 없는 것이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아무리 나이가 들었고 그런 막장 인생을 살았다고 하더라도, 부산에서의 생활을 완전히 정리하고 이곳 산청까지 와서 신분세탁을 완전히 한 후에 이 지역에서 제법 유지인 양 하고 다니는 놈이니, 결혼을 하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괜찮은 여자와 결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처럼 여진이와 동거를 한다고 하더라도, 굳이 혼인신고까지 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새끼, 혼인신고를 하려면 결혼식부터 치러야지. 그래야 축하를 하러 오기라도 했을 거잖아.”
“오빠, 그건 내가 싫다고 했어. 애까지 딸린 년 하고 결혼한다고 해봐야 누가 좋은 소릴 하겠어.”
“그래, 아무튼 잘 됐고 축하한다.”

시간이 흐른 후에는 조금은 더 자연스러워지겠지만, 여진이가 아직은 나를 만난 것이 그리 편하지 않은 표정이었기에 그 정도 선에서 이야기를 끝내기로 했다.

그리고 혹시 앞으로 다시 한 번 이혼한 남편과 살면서 벌어졌던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강준이는 전 남편이란 작자와는 다르게 행동할 것이니, 이들 부부에 관해서 내가 걱정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웬일이야?”
“너 예전에 알던 동생들하고 연락되지?”
“그리 자주 연락하고 사는 건 아니지만 걔들은 왜?”
“몰카를 하나 설치해야 해서.”
“몰카를? 그거야 심부름센터만 가도 다 알아서 해주는데, 굳이 우리 애들까지 동원해야 해?”
“제대로 촬영해야 하고, 또 얼굴이 제대로 나와야 하거든. 그리고 어설픈 애들 썼다가 뒤를 밟힐 염려도 있고.”

중요한 것이 뒤를 밟히지 않는 것이다.

솔직히 양 여사의 남편이자 기초의원인 이영진만 상대하는 일이라면, 그냥 대충 내 신분이 드러나지 않는 선에서 일을 의뢰하고 파일만 넘겨받으면 된다.

하지만 기초의원이 아닌 현역 국회의원을 상대하려면, 현역 국회의원이 동원할  있는 사람이나 권력에 따른 변수도 고려해야 하는 것이어서, 이렇게 그런 쪽에는 일가견이 있는 강준이 도움을 받기 위해 이곳까지 찾아온 것이다.

“상대할 놈이 도대체 누군데?”
“현역 국회의원.”
“뭐? 너 미쳤어? 그 새끼들하고 잘못 엮이면 목숨이 간당간당해질 수도 있어. 우리와는 노는 세계가 다른 인간이란 말이다.”
“그걸 아니까 널 찾아왔지.”
“지랄, 친구라고 하나 있는 게, 아예  묏자리를 잡아주려고 난리를 치네.  의원회관에 설치라도 해줄까?”
“모텔이야. 그것도 항상 고정된 방. 하지만 그놈이 언제 그 모텔에 올지는 미정이고.”
“그나마 모텔이라면 좀 낫겠다. 고정된 방이지만 평소엔 다른 손님을 받긴 하지?”
“아무래도 그렇겠지.”
“배우들 비용은 네가 내라.”

강준인 처음엔 현역 국회의원이라고 하니 기겁하는 표정이더니만, 다른 곳도 아닌 모텔 방에 몰카를 설치하면 된다고 하니 그나마 안심이 되는 모양이다.

“그런데 배우라니?”
“너도 생각을 해봐라. 그 방을 그 국회의원이란 새끼가 항상 사용한다면서? 그런데 단골도 아닌 놈이 찾아와서 그 방을 달라고 하면 종업원이 ‘예, 여기 있습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이러면서 그냥 방 열쇠를 주겠어?”
“그럼?”
“그러니까 배우를 동원해야지.”
“어떻게?”
“그 방을 줄 때까지 계속 애들을 투입해야지.”
“그렇게 했는데도 그 방을 주지 않으면?”
“방이 만실이  때까지 밀어 넣어야지 별수 있어?”
“그럼 오히려 의심할 텐데?”
“도대체 넌 머리를 장식으로 달고다니고 있어?”

뭔가 이해가 될 것도 같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방법은 아닌 것 같았다.

 여사 말에 의하면 그 모텔이 외곽에 있는 모텔이어서 그렇게 손님이 많지 않은 모텔인데, 갑자기 낮거리 손님이 줄을 선다면 그게 오히려 의심을 받는 지름길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이런 나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강준인 오히려 나를 향해 비아냥거리고 있었다.

“네 말대로 그 모텔이 러브호텔처럼 그렇다면서? 그런 곳에 갑자기 떼로 몰려가면 당연히 의심을 받지. 그러니까 초반에 단체손님을 밀어 넣어야 할  아니야. 일단 2/3쯤 채워두고도 그 방을 주지 않으면 그때부터  팀씩 밀어 넣어야지.”

그러고 보니  방법이 안전한 방법이란 생각이 든다.

내가 예전에 그 주변을 지나면서 가까운 곳에 기업의 연수원도 있었고 운동장도 하나 있는 것을 봤으니, 핑계를 대충 둘러대면 강준이 말대로 크게 의심받을 일을 없을  같았다.

“그럼 나한테 연락처를 주고, 그 친구에게 내 이야기도 미리 좀 해둬.”
“됐어. 이런 일은 내가 직접 애들 데리고 해야 말이 새어나갈 위험성이 적어. 그러니까 모텔 이름하고 호실만 적어두고 가.”
“그럼 애들 일당은 얼마나 주고 갈까?”
“지랄하고 있네. 네가 나보다 부자야? 돈도 제대로 벌지도 못하는 놈이 설레발은.......”
“지랄! 나도 요즘은 사장소리 듣고 산다. 물론 내 돈이 아니라 자경이 돈이지만.”
“아무튼 돈은 됐고, 자경이 그년은 잘살고 있긴 하나 보네.”
“그런 것 같더라. 그런데 지난번에 그 돈을 돌려주려고 했더니 아예 연락을 받질 않아. 지수 말로는 해외여행을 갔다고는 하는데 그건 핑계인 것 같고.”
“인마, 걔가 그럴만한 이유가 다 있어서 너한테 그러는 거야. 제 마음 편하자고 하는 짓이니까 그냥 모른 척하고 받아서 써. 그게 그놈 마음 편하게 만들어주는 방법이다.”

아무튼 이번 일은 강준이가 직접 맡아서 해주기로 했다.

물론 그런 일에서만큼은 세상 누구보다도 용의주도한 놈이니, 그걸 설치하고 제거하면서 꼬투리 잡힐 일은 없을 것이다.

“자고 가라니까?”
“됐어. 내  놔두고 뭐하려고 한뎃잠을 자냐. 그것도 눈치까지 봐가면서.”

강준이와 여진이는 나보고 산청에서 하룻밤 자고 가라고 붙잡았지만, 애써 뿌리치고 산청에서 출발했다.

“자기 지금 어디야?”
“응, 여기 함안 휴게소.”
“함안까지는 무슨 일로 갔어?”
“당신  일을  부탁하려고. 그런데 무슨 일이야?”
“애들이 자기를 만나보고 싶다고 해서. 혹시 늦더라도  수 있을까?”
“부산에 도착하면 9시나 되어야 할  같은데?”
“괜찮아. 도착하거든 전화나 좀 줘.”

거절할 수도 그렇다고 뻔뻔하게 ‘내가 네 엄마 애인이다.’ 이러기도 난감한 상황이었다.

솔직히 아비란 놈이 아이들에게 어떤 짓거리를 했었기에, 아이들이 제 엄마보고 애인을 사귀라고 하고 그러면서 제 엄마의 애인을 면접까지 보겠다고 나서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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